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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40/40)

[TS] 은하보안관 이브 40편

<-- 코르디스 102지구 -->

17지구는 한때 코르디스의 1/3지분을 차지했던 쿰 라우라 컴퍼니의 본산이자, 현재는 마르테르트 컴퍼니 코르디스 지부의 주도였다. 이브에게 코르디스 17지구란 거대한 진짜 우주도시들의 모형이나 짝퉁 느낌을 지울 순 없었으나, 30년간 폐허나 다름없는 깡촌 도시에서 살아오며 썩어버린 눈으론 다소간의 놀람을 감출 순 없었다. 라임비의 하이-스트리트는 이곳과는 비교하기도 미안할 정도니까.

17지구의 우주 엘리베이터가 지상에 도착하자, 거대한 계획도시의 무자비하게 큰 로비가 그들을 반겨주었다. 마치 하늘을 뚫는 듯한 우주 엘리베이터를 뒤로하고, 철의 제국에 등장할 법한 웅장한 자태의 건물들과 그 사이에 지평선까지 쭉 뻗은 커다란 8차선 직선 도로가 있었으니. 우주 엘리베이터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럭스(Lux)풍의 가장 완벽한 계획도시의 형태였다.

또한 가득 찬 건물들과 함께 허공에는 드론들이 줄지어 구름 길 위를 다니고 있었고, 깔끔하고 상쾌한 대도시의 공기는 번화가의 분위기와 함께 일행을 맞이해 주었다. 길가에도 꾸준히 무언가 일을 하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모두에게 기본소득이 주어지는 우주시대의 기본적인 도시의 긍정적인 분위기가 가득했다.

“…우와.”

레아가 작은 입으로 감탄을 내뱉었다. 살랑살랑 기분 좋게 불어오는 바람이 레아의 연한 금빛 머리칼을 휘날렸다. 뒤로 보이는 거대한 도시 홀로그램에서는 ‘마르테르트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라는 익숙한 광고 문구가 나오고 있었다. 그야말로 마르테르트 사원들을 위해 만들어진 위대한 도시이자 휴양지인 셈이다. 

이브가 레아를 기르고 싶었던 곳은 이곳이 아니었다. 이보다 더 위대한 10대 행성에서 기르고 싶어 했다. 다시금 이상향에 가까운 스타 스트링스의 도시에 오게 되니 희망이 부풀었다. 깨끗한 도시의 풍경 속에 레아가 말끔한 옷을 입고 학교에 다닐 생각을 하니 기대되었다.

이브는 지금까지 너무나도 지친 나머지 일상 속의 행복을 느끼고 싶었다. 모든 적을 물리치고 돌아온 평범한 일상 속에, 레아와 함께 도시의 조그마한 집 한 채를 사서 살아가는 미래. 긍정적으로 스타 스트링스의 일원으로서 자라날 레아와 함께할 미래를 그려보았다.

그렇기에, 이브에게 목표는 이곳이 아니었다.

이브는 상념에서 빠져나오고자 양 볼을 짝짝 두들겼다. 제정신이 들었다.

앞으로 일주일.

시간도 없었고, 만날 사람도 많았다.

“VVVIP 및 마르테르트 정직원분들의 입성 수속은 이쪽입니다.”

안드로이드의 안내에 따라 일행은 움직였다. 라임비에선 볼 수도, 본 적도 없는 신기한 물건들이 우주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온 이들에게서 몸 검사를 실시했다. 나노와 아차원 단위까지 존재하는 위험물질들을 조사하는 기기들의 형태는 몹시 기이하고도 괴상했다. 물론 일행은 곧바로 통과했다.

금박이 칠해진 흰색 베스티아산 고급 소파와 은은한 클래식이 흘러나오는 수속실, 마치 고대 왕국의 응접실을 연상시키는 곳에 도착하자 알터는 안드로이드에게 조그마한 은하보안국 여권을 내밀었다. 이브와 레아의 것도 찍고 나자 안드로이드는 그들에게 공손히 인사하더니 잠시 기다리라고 말했다.

레아는 이브와 알터가 턱턱 소파에 걸터앉는 사이, 얼음처럼 굳어서 삐죽거리다가 이브의 곁에 조신하게 앉았다. 조그마한 빈민 행성 출신인 레아에겐 모든 것이 부담스러웠다. 레아는 숨 쉬는 것도 부담스러운 장소에서 자연스레 행동하는 아저씨와 언니가 유달리도 무섭고 큰 존재처럼 느껴졌다.

“저쪽에서 오라고 재촉하네요… 놀랍습니다.”

“저쪽이라면 어디지, 루드인가?”

“기다리다 지치겠으니 직접 날아오겠다는 말까지 덧붙여서 통신이 왔습니다.”

알터로서는 기도 안 차는 일이었다. 대체 보안국의 요청마저 제 맘대로 거부하던 그가 이렇게 발 벗고 나서서 원하다니, 역시 퀘이사 보안관님에 대한 애증은 부관들이란 다들 갖고 있었을 테지만 루드 크로노스조차 이 정도로 나설 줄은 몰랐다.

“기다리라고 해. 왜 애송이 새끼처럼 구석에 박혀서 조용히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다고 발이나 동동 구르나?”

이브는 억울한 감정을 담아 맘껏 비꼬았다. 곁에서 혹여 소파를 손상시키지는 않을까 떨면서 앉아있던 레아는 새삼 제 언니가 어떤 사람인지를 느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아저씨가 어떤 사람인지도.

이렇게 숨 막히는 공간 속에서 여유를 잃지 않고, 저 값비싼 옷을 입은 사람에게 자연스레 하대할 수 있는 사람이란 얼마 없을 것이다. 여기서 사람이란 그들을 안내해 이 방으로 데려다 준 안드로이드였다. 레아는 안드로이드와 사람을 구분하지 못했으니까.

관자놀이에 보이는 푸른 점이 있는데도, 너무 사람과 똑같이 생겼고 숨도 쉬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들은 인간과 신체적 차이가 크게 없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봐. 왜 우리는 여기서 기다려야 하지?”

“죄송합니다. 잠시, 마르테르트 코르디스 지부장님께서 보고 싶어 하셔서 그렇습니다- 아- 아- 안됩니… 으그극!”

검은 정복을 입고 있던 마르테르트 안드로이드의 형태가 흐트러지며, 음성 톤도 괴상하게 변질되었다. 그녀가 입고 있던 검은 정복과 함께 몸의 형체가 꿈틀거리는 은색 액체 괴물처럼 뭉그러졌다. 레아는 깜짝 놀라 까무러치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반면에 이브와 알터는 상당히 난처했다.

변화를 끝마치기까지는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소 큰 편이었던 안드로이드의 신장은 무척 작아졌다. 거의 레아와 맞먹을 정도로 작아졌다. 앙증맞은 입술과 어린 외모, 그리고 인형처럼 또렷한 코와 눈매를 갖게 된 안드로이드는 검은 드레스 비슷한 것을 입고 있었다. 그녀는 이브를 향해 허리 굽혀 손을 우아하게 펼치며, 고상한 스타 스트링스 상류층 풍의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뵈어 영광입니다. 라케리니아 경, 카이로스 경.”

“경 소리를 들을 만한 사람은 아닙니다, 지부장님.”

이브가 애써 모른 척 하며 답하자 인형같은 안드로이드의 눈매가 슬쩍 올라갔다. 한없이 차가운 은색 머리칼이 사르르 떨어지며 그 속에서 드라이아이스처럼 차가운 눈동자가 빛났다. 그리고 거침없이 또각또각 구둣발로 걸어가 이브의 앞에 종잇장처럼 가느다란 태블릿을 내밀었다.

“퀘이사 라케이니아 경, 당신께 주인님의 초대장을 드리기 위해 왔어요.”

이브는 거의 벌레 씹은 표정을 짓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소파가 높이가 조금 있었던 탓에 앉아있는데도 거의 눈높이가 맞았다. 무표정한 안드로이드 인형소녀 특유의 눈빛이 이브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불법이다.

명백히 말하자면, 은경련 합의서에 의한 안드로이드 관련 법안상 불법이다.

“로로, 네 주인에게 이런 짓은 그만두라고 해주지 않겠나?”

그녀의 이름은 안드로이드 로로다. 스스로를 천사처럼 여기는 안젤라 세라피나, 그 여자가 특수제작한 작은 아기 메이드들 중 하나다. 인형처럼 새하얀 머리칼에 푸르른 벽안은 이브로 하여금 라임비에 두고 온 어떤 인형광이 떠올리게끔 했다.

게다가 이브는 안젤라와 로로가 어떤 관계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공공연한 관계, 이어질 수 있다면 동경하는 퀘이사와 연결되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다면 로로를 인간으로 만들어 대를 잇겠다고 말하는 그런 관계.

새삼 이브는 자기 부관들이 미친놈년들 밖에 없는가 떠올렸다.

“주인님께선, 어여쁘신 퀘이사 라케이니아 보안관님께서 초대에 응하시길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로로의 뜻은, 주인님을 속상하게 했던 당신을 납치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고요.”

이브는 눈살을 찌푸리며 로로를 째려보았다. 대놓고 싫은 반응을 했는데도 로로는 이유 모를 여유로운 미소로 화답하였다. 지나치게 우아하고, 또한 지나치게 아름다운 인형은 그 아래에 흐르는 것이 피가 아니라 냉각수임을 깨우쳐 주었다.

초대장을 받은 이브는 당장 찢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용감한 짓을 했다간 바로 눈앞의 로로가 제 몸을 정보조차 안 남게 블랙홀 안에 집어넣을 게 뻔했다. 안젤라가 자길 생각하는 만큼, 로로도 안젤라를 생각했다.

이브는 어쩔 수 없이 강화복 안에 초대장을 집어넣었다.

“이런 식으로 접촉해 올 거라면, 본인이 직접 오라고 전해.”

“주인님은 이젠 보안관님의 부관이 아닌 마르테르트의 총수십니다. 경의 말씀을 들을 이유는 없을 겁니다. 원해서 오게 될 것이고, 원해서 머물게 되실 겁니다.”

경멸이 일 것만 같은 발언에 이브는 입술을 하얗게 될 때까지 깨물었다. 곁에 있던 레아도 처음엔 로로에게 겁을 먹었으나 로로를 향하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게 변해갔다. 로로는 인간에게서 향해오는 특이한 적의에 레아를 흘긋 보았다.

자그마한 라임빛 소녀는 굉장히 총명한 눈빛을 띄고 있었다. 자아를 지닌 안드로이드 로로가 좋아하는 인상이었다. 물론 가장 좋아하는 인상이라면 눈앞에서 새하얗게 색소를 잃고 물들어버린, 스스로를 이브라 부르며 변해버린 사람이었지만, 충실한 안드로이드는 주인님께 양보해야 한다.

곁의 아이 또한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은 충동회로를 자극시켰으니까.

“입성 수속은 끝났고?”

“예,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

이브는 퉁명스럽게 내뱉고는 일어났다. 곧잘 밖으로 나가 행성 내를 여행할 것이다. 일행에게 붙여 둔 눈은 로로가 이 곳의 임시 지부장으로 부임한 만큼이나 삼엄했다. 더군다나 전 부관이자 주인님의 동료 중 하나였던 루드의 만남까지 더해지니, 그들의 이야기는 하나도 빠짐없이 들을 수 있으리라.

어차피 곧 이브는 세라피나 주인님의 품에 안기게 될 것이다. 2주 뒤의 은경련 회의. 은하계 최상류층의 재벌가 모임이 이뤄지는 그때 이브는 참석하게 될 것이니까. 로로는 주인님의 큰 그림에 경탄을 품으며, 돌아올 이들을 향해 고상한 작별 인사를 행했다.

**

“안젤라도 알고 있었던 거지. 이제 알았냐?”

이브는 팔짱을 끼고 스코르피우스에 올랐다. 공기가 끈적하게 그들을 따라왔다. 기상나노머신으로 위장한 탐지용 나노드론들이었다. 알터가 적절히 강화복 자기장 기능을 펼쳐 날려 보냈으나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이제, 그 나노머신들은 화장실까지 따라와 이브의 치부까지 다 드러낼 것이다.

“…그냥 이대로, 포탈이 열릴 때까지 근처 아무 행성이나 가서 숨어있을까요?”

이브는 알터의 턱없는 제안에 혹했다. 그러나 그저 웃어넘겼다. 이렇게까지 사태가 꼬여버린 이상 될 대로 대라는 식이었다. 일단 이브의 목적은 되돌아가는 것보단, 자신을 이렇게 만든 놈들에게 복수하는 쪽에 더 무게가 실려있었으니까.

쉴드가 작동하며 스코르피우스가 이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규칙성을 지니고 수많이 떠다니는 드론과 비행기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알터는 자동항법장치를 작동시켰다.

“아니, 그럴 필요까지야.”

이미 호랑이 입에 들어와 있는 상태인데 발버둥 쳐봤자 뭘 하리. 다행인 건, 적어도 이 행성 내에서 신체적 위협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은하계 최강 중 하나인 전투 안드로이드가 그들을 지켜줄 것이니, 무엇을 더 걱정할까?

“왜 알고 있었으면서 알리지도, 찾지도 않았던 걸까요?”

“올 수 없는 일이 있었거나, 오지 않아도 될만한 일이 있었겠지. 아마 2년 전보단 더 뒤로 올라가진 않을 거다. 루드를 꾀어내서 비밀결사단에 대해 알아보면서 같이 알아보도록 하지.”

알터는 지극히 무표정이었다. 단단한 얼굴과 선글라스, 검은 트렌치코트 속에 숨겨진 근육이 울긋불긋 치솟고 눈동자 또한 일겅불이 이글이글 끓고 있어도 겉으론 태연해 보였다. 그러나 이브는 귀신같이 알터의 상태를 알아챘다. 목소리조차 떨리지 않았는데 말이다.

“왜, 내가 뛰어든다니까 싫냐?”

“보조하는 부하 생각도 좀 해 주시죠.”

“괜찮아. 괜찮아.”

이브는 운전석에 앉은 알터의 어깨를 팡팡 두들겼다.

“다 잘 될 거다.”

이브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오히려 자신이 확신을 갖고 싶어했다.

“잘… 되겠지.”

스코르피우스 비행기는 언제나 흐릿한 대기가 유지되는 102지구의 상공을 향해 날아갔다. 오로지 레이더와 관제탑에서 펼쳐지는 ILS를 비롯한 센서 신호에 의존해 운전해야만 하는 서쪽으로, 이브의 불안전한 미래와도 같은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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