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3 파렴치한 흑마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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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티움
클라우티움은 가리우스 공국의 수도와 가까운 곳에 있었다. 대도시로, 사람들이 상당하다고 했다. 헌데 듣기로 이곳은 수도보다 더 큰 도시라고 했다. 인구도 상당하며, 오히려 수도는 교역 중심이라고. 가리우스 공국은 그런 나라였다. 고작해야 공국이면서, 대도시를 잘 갖춘 그러한 나라. 뭐 그래 봤자 수도랑 클라우티움으로 유명하다고 하지만, 아무튼 이곳은, 도시 외곽으로 성벽이 길게 펼쳐져 있어서, 사뭇 굉장하다는 말만 나온다. 이곳의 남쪽 성문에 우리 두 사람은 도착했다.
“아, 주인님. 참고로 이 곳의 인구는 수십만명인데, 수도보다 지역도 큰 주제에 인구가 수도에 비해 적다고 합니다.”
또 다시 지식백과사전. 항상 같이 다녔는데, 이 기집애는 대체 어디서 저런 지식들을 죄다 습득해왔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대도시라고 할 수 있어?”
“어디 까지나 수도보다 적을 뿐이기도 하고, 일단 이 공국 도시들에 한정으로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흠 그리 보니까 또 그렇네.”
고개를 문지르며 생각해본다. 생각해보니, 공국이란 개념 자체가 상당히 작은 나라라고 볼 수 있다. 인구가 그 정도나 되는 것도 공국치고는 많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아무튼 도착했으니 통행이 문제다.
“아무튼 간에, 저쪽에 경비병들이 있네요.”
이레아는 눈앞 저 멀리서, 사람들의 행렬을 두루 살피는 병사들을 가리켰다. 어째 하나 같이 다들 경비를 엄중히 하는 모양인데, 혹시라도 나에 대한 소문이 돌은 것은 아닐지 심히 우려된다. 어차피 가명은 많으니까. 상관없어. 문제는 통행증인데, 이 나라 통행증을 내가 미리 만들어뒀는지가 문제다.
“흐음, 그렇군. 통행증이.”
통행증도 항상 만들어둔다. 물론 뒷 세계의 모습으로, 주작해두거나, 구할 수 있으면 구해두거나, 특히 가명으로 여러개를 만들어둔다. 지금가지 만든 통행증들은 대충 5개국, 12개 정도를 만들어두었다.
“참고로 이곳은 상당히 사람들에게 개방적입니다. 현재 공국 성격상. 통행에 대해 강화시켜 이 대도시에 오는 여러 기득권세력들에게 반감을 사서는 안 되거든요. 때문에, 병사들에게 돈 좀 쥐어주면, 알아서 통행증 만들어주고 통과시켜줍니다.”
여전히 무표정으로 모든 것을 알려주고 있는 이 여자. 가끔 보면 무표정인 것이 소름끼칠 때도 분명히 있었다.
“흐음. 그래? 그렇구나. 그나저나 어디서 그런 정보는 다 나와?”
“출처는 제 머리입니다.”
이레아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정말 귀여운 녀석이긴 한데, 어째 열받는 것은 왜일까. 몇 대 패버릴까?
“아아, 그러셔요? 출처는 네 머리? 아무려면 어때. 돈은 그럼? 얼마나 드는데? 이제 보니까. 공국 신분증은 없단 말이야.”
“3000마르만 주시면 해결해드리겠습니다.”
“3000씩이나? 허, 나 참.”
“일단 그건 통행세고, 들어가면 신분증을 새로 얻어야겠지요. 아무래도 그 동안 벌은 것 좀 싹 팔아야 겠어요.”
“허!”
하도 어이가 없어서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보통 통행세는 2천 마르가 선인데, 왜 저렇게 비싸게 받지? 개방되었다고는 하나 시세를 너무 높게 받았잖아. 정말 기득권세력을 위한 거란 말인가? 1000마르는 신분증만드는데 쓰일 텐데, 통행세가 3천마르면, 신분증은 얼마나 비쌀지 상상도 안 간다.
“왜 그러시는지요?”
“정말 무섭네. 작은 고추가 무섭다더니, 그 말이 딱인 거 같아.”
나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그와 동시에 머리를 흔들었다. 솔직히 맞는 말인 듯 싶다. 정말이지. 고작해야 소국 주제에 어떻게 돈을 그리 받아 처먹는 다는 말인가. 이 나라의 환율에 나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이곳에서 일도 조금 더 늘릴 수밖에 없어. 어차피 손님이야 많겠지만.
“흐음. 그러면 조금 아양 떨어볼까요? 1000마르는 안 되겠지만, 2000마르 대에서 어떻게 잡아볼게요.”
“너 아양 떨 줄도 알아?”
“후우, 이 몸으로 생활하면서 이것저것 알게 되었어요 저도. 아직까지 애교부리는 것은 거부감이 들기는 하지만.”
“흐음. 뭐 그래봤자.”
저 무표정에서 애교가 나오면 얼마나 나온다고. 한 번 지켜볼까.
“그럼 따라와주시겠어요?”
“알겠어.”
일단 그 애교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고 싶었기에, 천천히 그녀를 따라가기로 했다. 이레아는 저 멀리 성문 앞에 있는 수비병들을 향해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는데, 잠시 이레아를 살피면, 손가락으로 자신의 옷깃을 만지고 있었다. 과연 나에게 그녀는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무척 궁금하다.
“뭐야, 너는? 뭐하는 계집이냐?”
성문에 닿자마자 들려온 소리는, 이레아의 앞길을 막았다. 수비병들이 이레아의 앞으로 창 두 자루를 들이민 것. 사실 이 쯤 되면 보통의 여자들은 곧장 벌벌 떨면서 어떻게든 애걸복걸 했겠지만, 이레아는 다르다.
두근두근
꽤 궁금해지는데, 어떤 말을 할지.
내가 조금 궁금하고 기대하던 찰나, 이레아는 천천히 허리를 숙이고 엉덩이는 뒤로 뺀 자세로, 수비병들을 향해 고개를 들이민다.
“저기 오빠들.”
오빠랜다. 이 순간 나는 큰 충격을 먹었다. 무표정이던 녀석이, 어느새 ‘오빠’라는 단어를 습득하고 수비병들을 현혹시키고 있던 것이다. 순간, 정말로 머리 한쪽이 지끈 거리면서 아파오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무표정만 많이 봤으면 이런 반응을 보이겠는가. 사실상 이건 거의 충격급이다.
“뭐, 뭐야?”
수비병도 상당히 당황한 모양이다.
“나랑 여기 뒤에 있는 일행이, 여길 지나가고 싶은데 통행증이 없어.”
여전히 에리아는 나에게는 항시 보여주지 않았던 ‘애교’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저기 어떻게 안 될까?”
“그러면 3000마르를 내고, 들어가서 신분증 2천마르 주고 만들어.”
이 세계는 신기한 점이, 각 나라마다 신분증을 따로 둔다는 점, 매번 만들 때 짜증난다. 물론 만드는 건 어려운 것도 아니고, 돈이야 내가 하는 작업만 계속 한다면야 별 달리 문제는 없다만, 그래도 기분이란게 있다는 것. 지금 저 기집애가 저렇게 애교 떠는 것도 전부 이 세계의 뭐같은 신분증제대 때문이다.
“3000마르도 없어서 그런다구요~신분증 만드는 거야 안에 들어가서 일하면 만들 수 있기는 한데~지금 가진 돈이 2000마르 밖에 없어서. 어떻게 안 될까요?”
“나 참 그러면 이곳에 왜 와? 메르헨 왕국이라도 가던가. 국경 근방에서 뭐라도 해서 돈벌어 오던가.”
경비병주제에 정말 논리적으로 나온다. 제길. 개방적이라면서 저런 건 곧잘 따지고 들어오잖아.
“국경 근처 그 시골 마을이요? 일거리도 없었어요. 그리고 공국 대도시에서 우리한테 맞는 일도 있어서~”
“그렇다고 해도!”
“그러지 말고, 오빠들. 네?”
단순한 애교로는 통하지 않자, 에리아는 눈에 온갖 섹기를 담아 두 남자의 팔에 가슴을 문지른다. 하필이면 단추도 풀어 놓은 지라, 아주 적당히 애교로 잘 먹힐 만했다.
“아, 진짜. 아, 좋아. 2천 마르만 내라.”
“진짜, 어휴. 원래 이런 건 안 해주는데.”
경비병 두명은 결국 이레아의 애교에 넘어갔다. 애교에 넘어가서는 곧장 내 앞에도 서서 통행세를 요구하듯, 손을 내밀었다. 순간, 에리아가 두 남자를 매혹시켰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던 나는 잠시 멍때리다가는 곧 경비병들에게 마르를 내주었다. 뭐 그래봤자 결국 두 사람 통행세로 총 4천마르까지 들어간다는 것이 조금 큰 타격이기도 하지만.
저벅저벅저벅
“어떠세요. 주인님?”
성문을 통과한 후에는, 이레아가 콧대를 높여가면서 잘 난척 하고 있었다.
“아, 이 순간, 여자의 몸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내심 느껴지는 군.”
“자아, 그럼 이제 어디로 가실 건가요?”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도 의뢰가 들어왔는데 말이야.”
“흐음 그런데, 잘 못하다가 메르헨 때처럼 혹시 사형위협이 생기는 건 아니에요?”
이레아는 손으로 상의에 풀린 단추를 묶으면서 말했다.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왔는데, 평소에도 저런 모습을 보인다면, 비교적 내가 이 녀석한테 성욕을 느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 음. 그게, 그때 그 사형집행은 당초 윗사람들과 조작이 있었어.”
“조작이요?”
“뭐 너도 알겠지만, 메르헨 귀족들은 내가 했던 일들은 자신들에게도 이득이 되었으니 말이야. 특히나 메르헨 왕은, 음란했던 왕후를 쳐낼 수 있어서 오히려 나한테 감사하고 있었지. 다만 백성들에게 들켰고, 자신의 체면도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나를 가짜로 사형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던 거야.”
사실 따지고 보면, 정말로 죽을 줄 알았다. 망할 백성들, 하필 메르헨에서 너무 귀족들 위주로 일을 골라잡다 보니 이리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