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 이모 그리고 그녀와의 결혼 (6-1)
9월에 드디어 전원주택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윤경고모네의 별장과 진숙이모네의 주택도 이제 구조가 잡혀 가고 있었다. 혜경이와의 결혼은 10월 말로 잡혔다. 이모의 출산 예정이 이달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모는 영혜이모와 함께 서울의 모처에 거처를 마련하고는 출산 이후 조금 더 머물다 내려오기로 했다. 혜경이 또한 벌써 휴학했고, 그 시간만큼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면 안 되기에 함께 서울로 향했다.
이곳에서의 결혼식 준비는 모두 희주선배가 도맡아 했다. 혜경이와 체형이 비슷했던 친구 한 명과 함께 드레스를 고르고, 그것을 사진으로 보내 혜경이의 허락을 맡고, 신혼살림을 사러 다니는 등 남은 일은 거의 희주선배가 도맡았다. 가끔 힘들까봐 저녁이라도 사줄라치면 오히려 그녀는 마치 자신이 결혼하는 냥 신나했고, 들떠 있었다. 그렇게 준비가 막바지에 이르던 어느 주말 오후, 희주선배가 그 친구와 함께 몇 가지 가구를 들여왔다. 어느 정도 가구 배치를 마치자 어느 새 날이 어두워졌다. 정원에 나가 시원하게 맥주 한 잔 하기로 했다.
“아, 시원해.”
“그래. 고마워, 누나.‘
“어라, 동생이었어?”
희주선배의 친구는 내가 후배인 줄 몰랐던 모양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이정윤. 24살, 나이는 희주선배보다 한 살이 적지만, 친구 사이로 지낸다고 했고, 지역 화단의 후배 화가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전에 한 두 번쯤 보긴 했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자세히 본 적은 없는 것 같았다. 마치 한 번도 햇볕을 쬐지 못한 사람처럼 하얀 피부, 갸름한 콧날, 그리고 약간 마른 듯 하면서도 어딘가 꽉 차 있다는 느낌을 주는 그런 여자였다.
“야. 인설아, 뭘 그렇게 쳐다 봐? 여자 처음 봐? 큭.”
“뭐..뭘?”
“호호..재밌네. 그럼 인설씨랑 저랑은 한 살 차이인가요?”
“아..네네..”
“그럼, 인설씨. 나랑 희주도 한 살 차인데 친구하잖아요. 그니까 우리도 친구해요..쿡쿡...”
“어머, 야..그럼 안 되지. 그럼 우리 셋은 어떻게 되는 건데.”
“뭐..어때..너두 이제부터 친구해. 글구 너네 보통 사이도 아니라며...호호”
“얘..얘는..별 말을 다 하네.”
“....”
갑작스런 윤주의 말에 잠깐 당황스럽긴 했지만, 우리는 그렇게 즐겁게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정윤이 또 말을 꺼냈다.
“인설씨, 나 희주 잘 알거든? 근데 인설씨가 도와줘서 이런 관계로 발전했다며?”
“아니,..뭐..그냥...”
“도와주는 김에 한 번 더 팍팍 도와주지 그래?”
“뭐..뭘?”
무슨 얘기인 줄 몰라 눈만 껌벅이고 있었고, 희주선배는 정윤이의 옆구리를 꼬집으며 말리고 있었다.
“희주가 지금 시내 오피스텔에서 작업실 겸 살고 있잖아. 안 그래도 좁은데 지네 엄마도 지금 와 계셔. 한 서너 달 되었나?”
처음 듣는 소리였다. 희주선배는 그동안 내게 그녀의 엄마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냥 그쪽에서 잘 살고 있겠거니 했고, 별로 신경도 쓰질 않았었다.
“안 그래도 비좁은데 이젠 작업도 힘들겠더라. 방값은 또 얼마나 비싸니? 그니까 말이야, 아까 보니까 여기 굉장히 넓던데, 저쪽 한 구석에 조그맣게 작업실 하나 마련해줘라. 엄마도 맘 편히 지내시게..어때?”
“....그야...뭐...희주선배 알아서 해...나야...좋지..뭐...이모도 희주선배 좋아하구....”
“얘는 별 소릴 다 하네. 인설아, 신경쓰지 마. 그냥 해본 소릴 거야. 아, 덥다..더워...맥주 좀 더 내올게.”
그 분위기가 마뜩찮았던지 희주선배가 맥주를 내오겠다면 자리를 떴다.
“인설씨 정말 몰랐나 보네. 희주가 지네 오빠한테 당한 것은 알고 있지?”
“아...네..네...”
“말 편하게 하라니까는...친구 하자니까...”
“아..어..응...알아...알았어..”
“근데 걔 실은 지네 오빠한테만 그런 거 아냐.”
“그..그럼, 설마?”
“맞아, 네가 짐작한대로야. 맨 처음 지네 아빠라는 놈한테 당했어. 그때 희주어머니가 그쪽으로 재취하실 때가 아마 희주가 6학년 때였을거야. 그리고 중학교에 입학했는데, 그때 당한거지. 지금 알고보니까 그때는 결혼이 아니라 순전히 팔려온 거나 마찬가지였지.”
“......”
“처음부터 성적 노리개로 팔려 오신거야, 희주어머니는.”
나중에 희주어머니, 즉 숙자아주머님께서 들은 말로는 그 생활 자체가 지옥 같았다고 했다. 남편이 요구하는 변태 같은 행위들을 모두 받아들여야 했고, 거부라도 하는 날이면 그때부터 쏟아지는 폭력이 도를 넘을 정도였다고 했다. 지금 숙자아주머님의 나이가 46살이니, 그때가 아마 35살 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그러다가 그 애비라는 놈이 중학교에 입학했던 우리 희주를...”
“이런..빌어먹을 놈이....”
“어느 날 밤 그 애비놈이 술이 떡이 되어 들어왔대. 그리고 안방에서 욕지거리와 엄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는 거야. 그러더니 갑자기 그 애비놈이 자기 방에 들어왔대. 네 애미가 저 짓 밖에 못하니까 네가 대신해라면서 마구잡이로 때리고 강제로 겁탈했다는 거야. 처음엔 무서웠지만 하지 않으면 더 맞을 것 같았고, 엄마도 맞을 것 같아서 그냥 참았대..”
“......”
“그때 그냥 참았던 게 병이지..휴...하긴 그 나이에 뭘 어쨌겠어...아무튼 또 지 애비가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지네 오빠라는 놈이 또 봤던 거야. 그러더니 그놈도 지 애비처럼 똑같이 흉내 냈고.”
“무슨..그런 개 같은 경우가....”
기가 막혔다. 무슨 놈의 인생이 그 모양일까. 희주선배는 그런 아픔을 어떻게 다 감당하고 살았을까. 희주선배는 나와 동질감, 어떤 의미로 보면 근친이라는 동질감 때문에 나를 이해하고 의지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차원이 달랐다. 나와 이모가, 그리고 혜경이가 사랑의 감정을 동반하고 있었다면, 희주선배는 전혀 그런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순전히 노리개였다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폭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 여자로서 말이다. 정윤이가 계속 말을 이었다. 더 충격적이었다.
“희주는 그때부터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지 애비놈과 오빠라는 놈을 번갈아 상대해야 했대. 그래도 희주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땐 어려서 그런 지 모르겠지만, 으레 다 그런 것이라고 여겼대. 고등학교 다닐 땐 임신까지 해서, 어머니랑 몰래 해결해야 했구 말야.”
“이..임신까지....이..이런..”
“더 충격적인 사실은 그 오빠라는 놈이 희주 어머님에게도 손을 댔다는 거야. 희주 어머님은 또 말없이 당하실 수밖에 없었고. 그놈이 학교도 안 다녔던 터라 지네 애비가 출근하고 나면 어머님을 겁탈했고, 그때마다 응하지 않으면 희주를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었나봐. 그러니 어머님이 뭘 어찌하겠어.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셨던거지.”
“그럼..어..어머님은 희주가 똑 같이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셨대?”
“아니, 희주가 지네 애비라는 놈한테 당한 날 어머님도 아셨어. 그 난리를 피웠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었겠어? 자살까지도 생각해봤지만, 희주 때문에 그러지도 못하셨대.”
“이..내..이 놈들은 당장에...”
“어머니는 오빠라는 놈한테 당하면서도 끝까지 희주는 보호하고 싶으셨대. 희주가 애비라는 놈한테 당하긴 했지만, 그 오빠라는 놈한테까지 당하는 것까지는 못 보셨겠지. 그래서 그 놈이 찾아올 때마다 빌고 또 빌었대. 자신이 모든 걸 대신 해 줄테니 제발 희주만을 건드리지 말라고. 근데 그 놈은...”
희주선배는 그렇게 살아왔다. 처절하게 살아왔다. 갑자기 희주선배가 너무 불쌍해졌다. 나와의 만남 뒤로 정말 밝이진 그녀에게서 더 이상 아픔 같은 것은 없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몇 달 전 어느 날 그 놈이 또 어머니를 겁탈하고 있는데, 지 애비한테 들켰다지 뭐야? 그런데 지 애비 놈이 더 가관이야. 어머님만 죽도록 패더니 그대로 쫓아내버렸대. 어머니는 정말 아무 말도 못하시고 쫓겨나셨고, 그때부터 희주와 함께 살게 된 거야.”
“안되겠다. 너, 그 집 알지? 어디야? 지금 당장이라고 가자. 내 이놈들을 가만 두나 봐라....”
그러자 정윤이가 손사레를 치며 말렸다.
“이젠 안 그래도 돼. 벌써 희주가 처리했어.”
“....? ”
“어머니가 쫓겨 오신 다음 날 희주가 그 애비 놈 찾아갔어. 변호사까지 데리고. 그리고 자신의 어렸을 적 이야기부터 최근 엄마의 이야기까지 쭉 내뱉었대. 그리곤 그에 대해 보상하지 않으면, 재판은 물론이고, 온 세상에 공개해버리겠다고 큰소리 쳤대. 첨엔 증거가 있냐며 할 테면 하라는 식으로 나오더니, 동영상 하나 내 놓으니까는 꼼짝을 못하더래. 그리고는 그 길로 보상 약속 받고 인연을 끊어 버린 거야.”
“아...그래..이제라도 다행이네...”
그때 현관 쪽에서 검은 그림자가 아른거리고 있었다. 희주선배였다. 그녀는 우리의 대화 내용을 짐작했는 지 이쪽으로 다가오지 못하고 근처에서 안절부절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손을 들어 보이면서 어서 오라고 희주선배를 불렀다. 다시 자리에 앉은 희주선배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런 용기를 냈던 그녀가 더욱 당당하게 보였다.
“누나, 저 쪽 소나무 있는 쪽 말야, 거기 어때?”
“뭐..뭘?”
“뭐긴..집터 말야, 집터.”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희주선배 곁에서 정윤이가 슬며시 웃고 있다.
“저기 다 집 지어...부족하면 내가 보태줄게.”
“저..정말? 그래도 돼? 이모는?”
“이모는 괜찮아. 다 아는 사이고, 그렇고 그런데 뭘 그래...걱정말구..집 짓고 우리 여기서 함께 살자, 어머니도 여기서 지내면 더 편안하지 않으실까?”
“그렇긴 하지만....”
“어머, 얘. 뭐가 그렇긴 하지만이야. 그냥 그런다구 하고 여기서 집 짓고 살아. 근사하게 작업실도 꾸미고, 나도 여기 신세 좀 지게..호호...”
“그래, 누나. 그리고 멀리 생각할 것도 없이 당장 가서 시내 집 정리해. 그리고 우리 결혼 끝나면 집이 지어질 때가지 우리 집 2층에서 살아. 직접 집도 꾸미고 좋겠네, 그럼..알았지?”
“그..그래..고마워.”
“하하하....좋아...”
그렇게 우리는 모여 살게 되었다. 그래도 네 가구가 모여 사는 만큼 마을 이름이라도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그래도 어엿하게 마을을 이루는 건데, 마을 이름 짓자. 정사촌 어때? 정사촌. 네 가구가 정을 나누며 오순도순 사는 마을, 정사촌. 괜찮지?”
“어머..좋다...얘...근사하다...근사해.”
정윤이는 그 뜻도 모르고 마치 자기 일처럼 좋아했지만, 희주선배는 어렴풋이 그 의미를 알았을 지도 몰랐다. 슬며시 미소 짓고 있었다. 정사촌. 의미라는 것이 부여하기 나름이고 또 받아들이기 나름이겠지만, 내가 의미한 것은 말 그대로 정사를 나누는 마을이었다. 그렇게 나의 결혼 준비는 마무리되었다.
정윤이는 그렇게 한 동안 우리와 어울리다가 억지로 돌아간다며 택시를 불러 타고 시내로 향했다. 자꾸 돌아보며 쳐다보는 눈초리가 심상치 않았지만, 둘이 남게 되었다는 것에 관심을 두는 것이려니 여겼다. 어차피 우리 사이를 모르는 사람도 아니었으니까. 집으로 돌아가 2층으로 희주선배를 이끌었다. 당분간 지낼 곳을 보여줄 요량이었다. 가구 하나도 없는 2층은 휑해 보였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만큼은 절대 휑하지 않았다. 그 텅 빈 한 가운데 우리는 마주 섰고, 그렇게 또 살포시 포개졌다.
“하압...하윽...이..인설아..고..고마워....”
“학학...그게 무슨..그런..말..이제...하..하지 마...헉헉..”
“그..그래도..하윽...흑....”
한참을 그렇게 카펫도 없는 마룻바닥에서 뒹굴고 있었다. 무릎이 아파왔지만 짐짓 참고 있었는데, 그 표정이 우스웠던지 갑자기 희주선배가 헐떡이며 말했다.
“아..아프지? 나도..어..엉덩이 아퍼..흐윽..흐윽...저..저기로....”
희주선배가 가리킨 벽으로 다시 그녀를 이끌었다. 그러자 희주선배는 뒤돌아서서 두 손으로 벽을 잡았고 엉덩이를 뒤로 내밀었다. 나 역시 뒤에서 그녀의 유방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다시금 조심스럽게 그녀의 보지에 삽입을 시작했다. 몇 번의 삽입이 있었을까? 그녀가 갑자기 벽을 잡던 두 손을 놓고, 바닥을 짚었다. ‘누난 이런 체위 싫어한댔는데.’ 라는 생각에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그녀 역시 그런 멈춤을 느꼈던지 한 손을 들어 계속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흐읍..흐억...아흑...아...자기야...아흑...흑흑.....”
“허억 허억....”
“아응..흐응..아흑..아...나....가....나..나...크윽..끅....”
“나도..조..조금만....조금만 더....”
그러나 희주선배는 그대로 바닥에 무너져 버렸고, 나 역시 그 순간 그녀의 몸 밖에서 정액을 쏟아냈다. 쏟아진 정액은 희주선배의 등으로 엉덩이로 튀었고, 또 마룻바닥으로 이리저리 튀었다. 한동안 함께 엎드려 쉬다가 휴지를 찾아 희주선배의 뒤를 닦아주려고 했다. 희주선배가 말렸다.
“그냥 내버려둬. 오늘은 그 흔적 남기고 싶어. 그리고 저기 묻어있는 것들도...”
그러면서 희주선배는 손가락으로 마룻바닥을 적시고 있는 정액 덩어리들을 가리켰다. 그것이 오늘 희주선배의 마음이라는 걸 알아채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조금 있다 희주선배를 데리고 일층으로 내려갔고, 함께 자자며 안방으로 이끌었지만, 그녀는 한사코 반대했다. 곧 있으면 신혼 방이 될 텐데, 자신이 먼저 그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거실 구석 이불을 펴고 누워서 이내 잠들어 버렸다. 평화롭게 잠든 그녀에게서 과거의 상처 같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앞으로도 영원히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그렇게 지켜주리라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