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8/73)

제 4화 다크 엘프 누님 

오늘, 유에라와 처음으로 다퉜다. 내 말을 전혀 들어주지 않았다. 

어젯밤 잠이 들 때까지, 나와 사랑을 나눴던 사람과, 같은 사람이 맞은가 싶을 정도였다.

아까는 유에라가 노려봐서 조금 무서웠다. 나와 유에라의 신체능력과 비교 했을 때, 유에라가 훨씬 강할 것이 분명했다. 나는 단지 강력한 무기를 가졌을 뿐이였다. 하, 정말 큰일이였다.

나는 조용히 유에라의 등을 응시했다. 유에라는 내 앞쪽에서 걷고 있었다. 유에라에게 화가 나 있어도, 늠름하게 걷는 모습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강인하고 아름다운 맹수처럼.

그리하여 나는 지금 만난 지 얼마 안된 누님과 나란히 걷고 있었다. (그보다 이 누님은 정말로 예뻤다.) 

유에라, 오늘 아침까지 서로 그렇게 사랑을 나눴었는데...... 어떻게 해야 용서해 주려나...... 

나는 오늘 아침의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렸다.

내가 눈을 떴을 때, 나는 담요를 덮은 상태로 유에라에게 팔베개를 해주고 있었다.

"저기, 유에라. 이제 일어나야해." 

"응......" 

유에라가 몸을 뒤척였다.

해는 이미 꽤 높이 뜬 것 같았다.

"응?" 

나는 옷 사이로 드러난 어깨를 가볍게 흔들면서 속삭였다. 유에라의 몸은 부드러웠고 따뜻했다. 

갑자기 유에라의 눈이 번쩍하고 떠지면서 나는 조금 놀라고 말았다. 꼭 이런 사람이 있었다. 아침에 밍기적 대지 않고 취침과 기상이 확실한 사람이.

"좋은 아침."

"좋은 아침." 

유에라의 손이 다가왔다. 긴 손가락이 내 가슴을 타고 오르면서, 몸을 일으킨 유에라의 입술이 내 가슴에 닿았다. 그대로 입술을 붙인 채로 위로 올라와서는 내 귓가에 속삭였다.

"......어제는 굉장했다." 

그리고 나에게 키스해 주었다.

유에라는 항상 내게 말해 왔다. 나랑 속궁합이 좋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딱 들어맞았다. 우리 둘 다 움직이지 않아도 만족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렇게까지 속궁함 잘 맞는 연인, 좀처럼 없었다.

오늘은 빛의 신의 날, 즉 월요일. 당연히 어제는 암흑의 신의 날. 일주일에 한 번, 나와 유에라가 연인으로서 사랑을 나누는 날이었다.

어제 나와 유에라는 가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자리를 잡고 야영했다. 왜냐면 암흑신의 날 이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따위는 없는게 당연했다. 여행을 하루 정도 멈추는 것 쯤은 상관없는 날이었다.

'저주'로 지정된 정확한 시간은 그날 일출부터 다음날 일출 전까지. 나와 유에라는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면서, 기분 좋은 일을 즐겼다.

오늘 해가 상당히 높이 뜬 후에야 겨우 가도로 돌아오게 되었다. 다시 봐도 훌륭한 길이었다. 커다란 자동차가 거침없이 달릴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실제로 마차의 바퀴 자국 같은 것도 꽤 나있었다.

가도 끝에 있는 마을을 목표로 여행을 계속했다. 잠시 걷고 있자니 삼각형의 오두막이 보였다. 이 세계의 가도 옆에는 가끔 이런 것이 있었다. 누구나 사용해도 되는 휴식처 같은 느낌이었다.

삼각 오두막의 앞에 도착했다. 삼각 오두막이라는 것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기둥을 삼각형으로 세우고는 그 위에 지붕을 얹은 것이다. 늘어진 지붕이 벽의 역할도 겸해서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또한 생각보다 튼튼했다.

오두막은 상당히 간단한 구조였다. 가도에 접한 한변의 중앙에 수직으로 굵은 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이쪽이 문이고, 반대쪽이 지붕이자 벽이라는 느낌.

잠깐 안을 들여다 봤다. 바닥재도 없이 흙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그리고 꺼져 버린 모닥불에서 아직도 강한 탄내가 났다.

"누군가 어제 묵었던 걸까."

"그럴지도 모르겠군." 

"응." 

뭐, 아무래도 좋은가. 우리들과 관계없는 일이고. 서둘러 가기로 했다.

잠시 걷고 있자 이번에는 다리가 나타났다. 작은 골짜기에, 상당히 훌륭한 다리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 주변의 얕은 물에 흰색 옷을 입은 사람이 있는 것이 보였다.

물 속에 있는 사람은 여자인 것 같았다. 흰색 부츠를 강변에 벗어두고 강물 속에 서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은발을 휘날리며 이쪽에 인사를 해 왔다.

"안녕하세요." 

나는 멈춘 채 뚫어져라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엘프라는 인종을 처음 보았다. 확실히 귀가 뾰족했다. 하지만 그건 그냥 '그렇구나' 라는 느낌. 중요한것은 그게 아니였다.

엘프는 기다란 키에, 너무나도 늘씬한 몸매를 하고 있었다. 이미 골격부터가 가늘어 보였다. 허리는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처럼 얇았는데, 그 위로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커다란 가슴이 달려있었다.

이목구비가 정말로 반듯하고, 가늘고 길게 찢어진 눈이 매력적인 너무 아름다운 누님이었다.

갈색 피부를 가지고 있으니까, 아마도 '다크 엘프'일 것이다.

누님은 새하얀 드레스 같이 생긴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몰랐던 사실인데, 갈색 피부에 새하얀 옷이란건 정말 에로했다. 순백이라는 색은 때 묻지 않은 맑은 이미지인데도 말이다.

"......안녕하세요." 

유에라가 인사를 하며 내 옆구리를 꽉 꼬집었다. 아팠다......

"안녕하세요." 

나도 인사했다. 다크 엘프 누님은 그 자리에 선 채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 당신들은 이 앞의 마을로 가고 있는 거야?"

"응."

내가 대답했다. 

"......그래?" 

누님이 물에서 나왔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는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도 그런데, 함께 가도 괜찮을까."

내가 침묵하고 있자 유에라가 대답했다. 

"딱히 상관없다." 

인사를 나누고 서로 자기 소개를 했다. 딱히 상태창을 보여줄 것까지는 없었다.

이 누님은 케레브릴이라고 했다. 꽤 발음하기 힘드네......

3명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기 시작했다. 나는 일행 중 가운데서 걷고 있었다. 

모두 나란히 걸어갔다. 이왕 같이 가게 됬는데도 2명 다 아무런 말도 없이 침묵하고 있었다.

나는 옆의 누님을 바라보았다. 여자 치고는 키가 무척이나 컷다. 나와 그다지 차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내가 누님에게 말을 걸었다.

"누나." 

"이름으로 불러."

누님이 짧게 되받아 쳤다.

"케레브릴." 

"왜 불러?"

케레브릴이 눈을 가늘게 뜨며 대답했다.

"이름이 발음하기 힘드네요."

"그런가?"

그러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여러 이야기를 했다. 

아까의 삼각 오두막에 묵은 것은 케레브릴이었던 것 같았다. 온천 여관이 있는 마을쪽에서 왔다고 했다. 어제 우리를 추월한 것 같았다. 뭐, 조금 지체했었으니 그럴수도 있겠다 싶었다.

케레브릴과 함께 걸어가며 생각했다. 이 누님도 유에라랑 같은 과였다. 작은 멜론 같은 가슴이, 걸을 때마다 흔들거렸다.

"저기, 왜 가슴만 보고 있는 거야?"

왜냐면 어쩔 수 없는거 잖아. 남자니까.

"미안해요." 

"상관없어."

케레브릴이 요염한 눈으로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왠지 소름이 돋았다. 왠지 다크 엘프는 성적으로 자유 분방하다는 이미지가 있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케레브릴의 가슴에서 눈을 떼고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들키지 않도록 곁눈질로 유에라를 살폈다.

유에라는 평소 표정의 변화가 적었다. 지금은 무표정하게 걷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저것은 단순한 무표정이 아니였다. 일부러 표정을 지우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괜히 찔끔 해서 화제를 바꾸었다.

"저기, 엘프는 전부 활을 사용하는 거죠?"

"엘프라고 모두가 활을 쓰는 것은 아니야."

"그런가요." 

"나는 사용하지만."

"그렇구나." 

"왜냐면, 직접 죽이러 가는 것보다 멀리서 쏴 죽이는게 편하잖아?" 

케레브릴이 상큼하게 웃었다. 길고 매력적인 눈으로......

나는 깨달았다. 이 분은, 사실 무척이나 무서운 누님이었다.

"동물을 쏴본 적 있어요?"

"있어." 

나는 사냥을 정말 좋아했다. 그래서 활과 화살로 하는 사냥이 난이도가 매우 높다는 걸을 알고 있었다. 단계로 따지자면 최상급이었다. 내게 있어는 사냥의 신같은 사람이 지금 눈 앞에 있었다. 

"자주 사냥하러 가나요?" 

"나는 '사냥'은 하면 안돼." 

"그런가요." 

사냥의 신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사냥에 손님 자격으로 따라가 봤을 뿐이야." 

"그랬구나. 어떤 사냥이요?" 

관심있는 주제로 텐션이 높아진 나는 계속 케레브릴과 이야기를 나눴다. 나무 위에 위장을 하고 숨어서 커다란 사슴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기어코 쐈다는 이야기는 최고로 흥미로웠다. 무척 즐거웠다. 시간이 가는 걸 잊은 채 이야기에 열중하게 되버렸다.

"즐거워 보이는군." 

갑자기 목소리가 들리며 정신을 차렸다. 유에라가 조금 앞에서 우리들을 돌아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유에라에게 이런 시선을 받은적은 단연코 처음이었기 때문에, 나는 놀랐다. 

수다를 떠는데 열중해서 걷는 속도가 느려졌던것 같았다.

"나는 먼저 가겠다." 

그렇게 말하며 유에라가 혼자 가버렸다.

"유에라." 

그 뒤로는 아무리 불러도 대답해주질 않았다. 오히려 더욱 빠른 걸음으로 점점 앞서 갔다. 화나게 해버린것 같았다. 어느새 한참 멀어져 버린 유에라의 등을 바라보며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에 빠졌다.

"저기, 당신들 연인사이야?"

케레브릴의 목소리에 나는 상념에서 벗어났다.

"맞아요." 

"애인이, 가버렸는데......?"

"알아요......" 

화나게 해버렸으니까요.

"쫓아가 보지 않아도 괜찮은거야?" 

"괜찮을 거에요." 

하지만 사실은 쫓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여기서 쉬면서 천천히 갈게." 

나는 갑작스러운 말에 케레브릴을 쳐다봤다. 눈웃음 지은 채 굉장히 상냥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없는 편이 좋을 거야."

"......고마워요."

그 때 케레브릴이 뭔가를 말하려다 머뭇거렸다. 그러고는 잠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언제나 당신 편이야." 

유에라가 있는 곳까지 달려갔다. 상당히 먼 거리를 뛰어서 숨이 찼다. 

"유에라." 

불러봤지만 여전히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대로 그냥 걸어갔다.

"저기, 유에라." 

이번에는 손을 잡았다.

"......" 

유에라 말없이 나를 바라보며 손을 빼버리고는 다시 걸어갔다. 나는 멀어져가는 유에라의 등을 보며 황급히 쫓아 갔다.

"어째서 곧바로 쫓아 오지 않은거냐." 

유에라가 여전히 앞을 바라보며 내게 물었다. 나는 변명하지 못했다. 하지만 미안한 마음에 뒤에서 어깨를 끌어안으며 사과했다.

"미안해, 유에라."

유에라는 이번에는 떨쳐내지 않았다.

"나를 혼자 내버려 두는건, 너무하지 않나......"

"미안해." 

나는 유에라를 꽉 껴안으며 키스하고, 사과의 말을 했다. 미안해, 유에라. 내가 잘못했어.

잠시 시간이 지나고, 좀 진정한 상태로 우리 둘은 자리를 잡고 케레브릴을 기다렸다. 케레브릴이 먼저 가라고 했던 얘기를 유에라에게 했기 때문이었다.

"착한 녀석이군." 

유에라가 그렇게 말하고는, 둘이서 케레브릴을 기다렸다.

"......나도 여자란 말이다."

그러다 갑자기 유에라가 불쑥 중얼거렸다. 질투한거였구나. 나도 조심할게. 

"좀 늦는군 마중나가지." 

유에라가 일어 섰다. 

"그래." 

나도 따라 일어났다. 그래, 상냥한 케레브릴을 마중 나가자고. 

그리고 며칠 동안 셋이서 여행을 계속 했고, 지금도 여전히 함께하고 있었다.

내 앞에서 두 사람이 나란히 걷고 있었다. 이 아름다운 여자들은 며칠새 무척이나 사이가 좋아졌다. 지금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왠지 너무 친해져 버린 것 같기도 했다. 최근에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내가 2명의 뒤를 따라갔다.

예전에 학교 선생님에게 배운 게 떠올랐다. '3명이 완벽해지기는 어렵고, 높은 확률로 2대 1로 나뉘어 버린다'고.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저번에 유에라가 느꼈던 기분을 알 것도 같았다.

뭐 그래도 나는 남자니까 예쁜 여자 둘이 친해지는게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저 멀리로 다음 마을이 조금씩 보였다. 계단 식으로 된 밭이 크게 펼쳐져 있는 산간 마을이였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여관 아저씨가 이 마을 촌장님의 집을 소개해 줬었다. 아저씨의 이름을 대면 묵을 수 있게 해 줄 거라고. 

오랜만에 침대에서 잘 수 있을 것이다. 촌장님의 집이 기다려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