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유에라, 앞으로도 내 옆에 있어줘. 나랑 사귀자."
유에라가 얼굴을 들었다. 나는 유에라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
유에라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동자가 점점 울먹울먹해졌다.
"......나 따위로 괜찮나?"
"유에라가 아니면 안돼."
유에라는 작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것은 거의 기도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런 유에라를 향해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에라, 괜찮아?"
"......아아."
유에라는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작게, 그러나 또렷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유에라. 기뻐."
"나도다...... 너무 기뻐서 어떻게 되버릴거 같다."
유에라가 기쁜 말을 해줬다. 내가 유에라의 허리에 팔을 감고 안자, 유에라도 살며시 내 목에 팔을 감아왔다. 숨결이 맞닿는 거리에서, 둘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것으로 우리는 연인이 된거군."
"응."
유에라는 행복한 미소 지으며,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곧 유에라가 원하는 것을 알았다.
"유에라......"
"응......"
우리는 서로 껴안은 채, 연인의 첫 키스를 했다.
.
.
.
"그래서, 내가 추천하는 『바람기 아내 시리즈』는......"
"......"
나와 유에라가 큰 나무 밑으로 돌아오자, 칸타로우는 낯선 남자들과 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장사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주위에는 영상 수정과 술병들이 널려있었다.
"......오늘은 이제 끝났군."
"......응, 그런거 같네."
칸타로우는 벌써부터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남자들과 칸타로우 모두 잔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오늘 여행은 끝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나와 유에라는 시선이 마주쳤다.
"앗, 거너씨. 갑자기 사라져서 걱정했어."
"미안해, 칸타로우. 잠깐 개울 쪽으로 갔었어."
내가 다가오는 것을 깨달은 칸타로우가 목소리를 내자, 남자들도 일제히 나를 쳐다 보았다. 나는 대답하면서 남자들을 관찰했다. 나에게 있어서는, 유에라와 칸타로우 이외의 첫 이세계인이였다.
"어랏...... 유에라, 잘 된거 같네?"
"......그렇다."
나와 유에라는 손을 잡고 있었다. 그것을 캐치한 칸타로우가 정말로 기쁘다는 듯이 웃었다. 칸타로우에게는 이런 좋은 점이 있었다. 유에라도 약간 쑥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칸타로우씨, 이쪽 분들은......?"
"손님, 이 두사람은 내 여행 동료야."
남자들의 리더격이라고 추정되는 남자가 칸타로우에게 나와 유에라에 대해 물었다. 두꺼운 가죽 갑옷을 입고 장검을 차고 있었다. 이런게 모험가인가?
"......그렇습니까."
"응, 응. 그러니까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 없어."
과연, RPG풍의 세계였다. 모험가라는게 있구나. 검이라든지 갑옷이라든지, 나는 처음에 코스프레 의상 같은 것을 상상하고 있었지만, 전혀 그런 느낌이 안들었다.
"두 분 다, 처음뵙겠습니다."
"......안녕."
"......아아."
리더는 나와 유에라에게 공손한 인사를 했다. 하지만 나의 첫인상은 별로였다. 사실 난 다른 사람을 꽤 가리는 편이였다. 그래서 첫인상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했다. 이 녀석은 아웃이였다.
"자들은 제 동료입니다."
"......"
리더의 동료는 전사풍의 남자, 도적풍의 남자, 로브를 입은 남자, 이렇게 세 명이였다. 정정한다. 나는 이 넷 모두싫어졌다. 단지 외모가 아니라, 인상이나 표정이 싫었다.
"이 사람들은, 이 숲의 고대 문명의 유적을 탐색하던 베테랑 모험가래. 유적에서 돌아오던 길이라고......"
"......응."
확실히 베테랑 처럼 보이긴 했다. 모두 30살쯤으로 보이고.
"그래서 말인데, 거너씨, 유에라. 미안하지만......"
"알아, 칸타로우. 장사도 중요하니까."
칸타로우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오후 안된 이른 시간이니까. 하지만 나도, 유에라도 특별한 목적이 있는것은 아니였기에, 여행을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죄송합니다."
"우리의 일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리더는 신사적으로 우리에게 사과해 왔다. 유에라가 대답했다. 외모는 나쁘지 않은데, 왜 AV 영상을 원하는 걸까?
"그런데, 당신은 거너라고 불리고 있습니다만......"
"응. 하지만, 스킬을 배운지는 얼마 안 돼서 잘 다루지는 못해."
왜 그랬을까? 나는 무의식적으로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이 녀석이 싫어서일까? 다시 얼굴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습니까......"
"응."
리더와 동료들은 나를 의심하는 것처럼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세계에서 거너는 드문 직업인 것 같았다. 이 녀석들이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 나와는 상관이 없었다.
"그럼, 칸타로우. 천천히 해."
"음. 저녁 때쯤 보자고"
오늘은 이쯤에서 야영을 해야 될 것 같았다. 나와 유에라는 미리 적당한 장소에서 준비를 하기로 했다.
"갔다왔어."
"늦었네."
태양이 지고 완전히 어두워졌을 무렵, 달빛을 받으며, 칸타로우가 얼큰하게 취한 채 돌아왔다. 이곳은 길에서 조금 벗어난 숲속의 개울에서 가까운 곳이였다.
"미안, 둘이서만 준비를 시켜서."
"괜찮아, 이정도쯤은."
나랑 유에라에게만 야영 준비를 시킨것을 칸타로우는 미안해했다. 하지만 나는 유에라랑 단둘이여서, 꽤 즐거웠다.
"저녁, 잘 먹었어"
"고마워. 잘 먹었어."
칸타로우는 배가 고팠던 것 같았다. 모닥불 옆에 앉자마자, 유에라가 해 놓은 저녁을 흡입했다.
"장사는 어땠어?"
"불티나게 팔렸지. 분명 유적에서 돈을 많이 벌은걸꺼야."
칸타로우는 득의 양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꽤 많은 돈을 벌은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게나 팔렸어?"
"이제 재고가 없을 정도라고~"
칸타로우가 기뻐하며 웃었다.
"그 사람들은?"
"그대로, 저기서 야영하는 것 같아. 피로가 쌓여 있는 것 같았어."
과연 쌓여있는건 피로만일까? 영상을 많이 산것 같으니, 저쪽에는 접근하지 않는게 좋을꺼 같았다.
"난 씻고 오겠다."
"......벌써 그럴 시간이구나."
생각해보니 벌써 저녁을 다 먹은 것이였다. 평소대로라면, 칸타로우와 AV영상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는 시간이였다.
"유에라, 조심해서 다녀와."
"......아아."
나와 유에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하며, 서로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럴 때마다, 내가 유에라와 사귀기 시작했구나, 라는 것을 실감했다. 나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맞다 그랬었지, 거너씨."
"응. 칸타로우가 응원해준 덕분이야."
유에라가 씻으러 간 후, 칸타로우가 기쁜 듯이 말했다. 우리를 진심으로 축복해 주는 것 같았다.
"난 아무것도 안했어...... 분명 두사람의 만남은 운명이야."
"......그렇다면 좋겠는걸."
그것은 즐거운 상상이었다. 내가 어둠의 여신에게 소환된 것은 유에라를 만나기 위해서였다면, 그것이 사실이라면 좋을거 같았다. 첫 만남이 너무 강렬해서, 우리들의 만남이 특히 더 특별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나는 칸타로우에게 유에라에게 고백했을 때의 이야기했다.
"그래서, 거너씨...."
"쉿!"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져, 내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긴장이 고조되며, 내 심장 소리가 크게 들렸다. 무엇이지?
"......"
나는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고요한 숲이였다. 칸타로우는 순간 겁먹은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읏......"
아무런 낌새도 느끼지 못한건 아니였다. 확신하지 못했을 뿐, 내 귀에 뭔가가 들렸다.
"유에라......"
"앗......, 거너씨......"
개울 쪽에서 무언가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달빛 아래, 나는 황급히 개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앗......"
달리기 시작하자 마자, 나무 그늘에서 갑자기 뭔가가 뻗어 나왔다. 어떻게 해서 피했는지는 모르겠다. 어느새 나는 휙 한바퀴를 구른 후 땅바닥에 무릎을 대고, 도적풍의 남자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
도적 남자는 양손에 큰 나이프를 들고있었다. 나와의 거리는 7~8m정도. 중심을 낮춘 채, 나를 경계하고 있었다. 남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읏......!"
남자의 얼굴을 본 순간, 나는 직감했다. 도적풍의 남자는, 범죄자 특유의 광기를 띤 흉악한 표정을 짓고있었다. 저항하지 않으면 죽는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
한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놈의 목적은 돈일까? 아니면 유에라?
그렇지만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총을 꺼낼 틈이 없었다.
"......거너씨~"
긴장감이 흐르던 순간, 칸타로우의 커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의 주의가 흐트러졌고, 나는 아이템 창을 열고 라이플을 꺼냈다. 아직 쏴보지도 못한 리볼버는 믿을 수 없었다.
"흡......"
라이플을 바로 견착했다. 달빛에 의지해, 스코프에 도적풍의 남자의 가슴이 보이는 순간, 나는 망설이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어깨와 뺨에 강렬한 반동이 느껴짐과 동시에, 남자가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나는 이미 남자에 관한건 신경도 쓰지 않고 유에라를 생각하고 있었다.
"유에라......"
초조함을 안은 채, 나는 유에라가 있는 개울 쪽으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챙...... 챙......
뭔가 들렸다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개울에 가까워질수록, 또렷하게 들렸다. 남자들의 노성과, 금속이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였다.
"읏......!"
숲에서 빠져나온 순간, 물 속에 서 있는 유에라가 보였다. 칼을 뽑은 채, 리더격인 남자, 전사풍의 남자와 대치하고 있었다. 로브의 남자는 떨어진 곳에 있었다.
"......"
다행히 유에라는 무사한 것 같았다. 유에라가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안심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
리더격인 남자가 나를 돌아보았다. 보기 싫은 살인에 취한 것 같은, 흉악하고, 광기에 물든 듯한 새빨간 얼굴이였다.
"......야."
리더격인 남자가 명령하자, 로브의 남자가 무언가를 영창하기 시작했다. 마법사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놈들은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
유에라의 무사함을 확인하자 나는 침착했다. 로브의 남자와의 거리는 20m정도. 나는 무심하게 로브의 남자를 겨냥했다.
스코프 속에 로브의 남자의 상반신이 보였다. 십자형 레티클을 남자의 가슴팍에 맞춘 후 조용히 방아쇠를 당겼다.
강렬한 반동이 어깨를 덮치고, 로브의 남자가 뒤로 쓰러졌다. 총은 거리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강했다. 20m라면 별로 먼 거리도 아니였다. 스킬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
그리고 연이어 전사풍의 남자를 스코프 속에 담았다. 야생 동물을 쏠 때처럼, 냉정하고, 기계적으로. 전사풍의 남자는 경악한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방아쇠를 조용히 당기자, 한순간 시야가 암전된다. 시야가 돌아왔을때는 전사풍의 남자는 이미 물 속에 쓰러져 있었다.
"우아아아......"
리더격인 남자가 공포 때문인지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장검을 나에게 향했다.
"끄억......"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달빛에 유에라의 칼이 번쩍이더니, 남자의 목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동맥을 단숨에 끊은 것 같았다.
그리고 나서, 유에라는 칼을 칼집에 넣고, 첨벙첨벙 물소리를 내며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
몹시 끔찍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남자들의 피가 섞인 시냇물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사방에서 인간의 피비린내 진동하는 것 같았다.
나는 원래 세계에서, 사람이 죽는 것을 우연히 본적은 있었다. 하지만, 단연코 내가 사람을 죽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세상이였고, 나는 이곳에 맞출 필요가 있었다.
그럼에도 첫 살인에 머리가 어질했다. 심각하게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왜 그러지?"
정신을 차리자, 유에라가 눈앞에 서 있었다. 이런 상황이였음에도, 유에라는 아름다웠다. 여느 때처럼 늠름했다.
"......사람을 죽이는건 처음인가?"
"......응."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 유에라에게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
"읏......!"
유에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강하게 나를 껴안아 주었다. 유에라는 알고 있는걸까? 마음이 약해졌을 때, 누군가가 안아주는 것만으로 마음이 치유된다는 것을......
유에라의 향기에 휩싸이면서, 생각했다. 나는 유에라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