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화-1 (43/73)

제 21화 합숙 - 박사와 호문쿨루스 - 유에라

빛의 신의 날 저녁, 우리는 역관 도시에 도착했다. 가도 옆에 석조 건물이 들어서 있는 작은 도시였다. 건물의 수는 대략 20채...... 모두 여행객들을 위한 숙소와 잡화상 등이였다.

《공업의 나라》의 수도로 향하는 길인 이 가도는 원래 통행량이 많았다. 그래서 이런 도시도 생긴 것이고. 하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더 붐비는 것 같았다.

"......봐. 엄청난 숫자야."

케레브릴이 상상만 해도 피곤하다는 기색을 내비쳤다.

"......응."

나는 대답을 하면서, 옆의 케레브릴을 보았다. 오늘은 치마 부분이 반짝반짝한 흰색 미니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뾰족한 귀에는 빨간 루비 피어스가 빛나고 있었다. 지난번에 내가 선물한 것이였다.

"......뭔 일 있나?"

그렇게 말하면서 장신구들을 만지작거렸다. 케레브릴은 오늘 아침부터 텐션이 높았다. 아마도, 함께 살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기쁜 듯이 귀에 매만지거나, 커플링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아아. 그런거 같군."

유에라도 눈썹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렇게 말하며 긴 검은 머리를 쓸어올리는 유에라의 귀에도, 사파이어 피어스가 빛나고 있었다. 케레브릴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 유에라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누군가에게 물어볼까?

거리에는 많은 여행자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 일까? 상당히 부자연스러운 광경이었다.

"......실례하지만,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나?"

"아아......"

유에라는 길가에 서 있던 장사꾼 차림의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도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가씨도 저쪽 항구 도시에서 대하를 건널 생각이십니까?"

"아아. 그럴 생각이다."

이 도시에서 조금 더 남하하면, 이 세계에서 가장 큰 강이 있었다. 《법의 나라》에서 출발한 이 강은, 《상업의 나라》, 《공업의 나라》, 《전쟁의 나라》, 《자유의 나라》를 거쳐, 동쪽 바다로 흘러드는 엄청난 강이였다. 그 강은 대하라고 불렸다.

" 배가 없습니다. 항구 도시 근처의 대하에서 용이 날뛰고 있다더군요. 지나가는 배를 가라앉힌답니다."

"......그런가."

유에라는 순순히 납득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나는 굉장히 놀랐다. 이세상에는 용이라는게 평범한 것 같았다. 그리고 날뛰고 있는 것도 평범한 것 같았다.

"거리의 사람들은 항구 도시에서 되돌아온 여행자입니다. 당연히, 숙소는 모두 만원이고요."

"......그런것 같군."

장사꾼 차림의 아저씨는 좌우로 고개를 흔들며 탄식하고 있었다. 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듣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도시에 왔는데도 노숙 확정이였다. 물론 노숙을 하지 못한다는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침대가 그립지 않은 것도 아니였다.

"......저기, 케레브릴. 이런 일이 흔해?"

나는 옆에 있는 케레브릴에게 살며시 물어보았다.

"......모르겠어. 적어도 나는 처음이야."

"......그렇구나."

케레브릴은 약간 곤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고맙군."

"아닙니다, 아가씨들도 조심하세요."

유에라는 아저씨에게 감사의 말을 하고 나서 한숨을 내쉬며 우리를 돌아보았다.

"......그렇다는군."

"......응."

유에라도 조금 실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숙소에 묵지 않아도, 식사 정도는 하고 가는게 어떻겠나?"

"그래, 유에라."

케레브릴은 유에라의 제안에 기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케레브릴은 맛있는 음식을 아주 좋아했다.

"오늘은 기쁜일이 있었으니까, 저녁은 사먹자고."

"아아. 그렇게 하지."

케레브릴에게는 오늘이 특별히 의미 있는 날인것 같았다. 유에라도 웃고 있었다.

"어느 가게가 좋겠나......?"

"그러게......"

유에라와 케레브릴은 나란히 거리를 걸으며, 음식점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두 사람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저기, 너는 뭐 먹고 싶어?"

케레브릴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돌아보고는 의견을 물었다.

"난 뭐든 상관없어. 모처럼의 외식이니까, 케레브릴이랑 유에라가 먹고 싶은 걸로 골라."

"......그래?"

유에라와 케레브릴은 즐거운 듯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잠시 후, 이번에는 유에라가 약간 기쁜 듯한 표정으로 뒤돌아보았다.

"저 가게 어떤가?"

"좋아."

나는 그 건물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둘이 선택한 곳은, 작은 레스토랑이였다. 하지만 이 도시에서 가장 큰 호텔안에 있는 레스토랑이었다.

"어서오세요."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트리스 아가씨가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아가씨는 앳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엄청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이쪽 테이블로......"

역시 가게 안은 혼잡했지만, 딱 한 테이블이 비어 있었다. 원탁 테이블이였고, 유에라와 케레브릴은 당연하다는 듯이 내 양 옆에 의자를 가까이 붙여 앉았다.

"......주문 받겠습니다."

.

.

.

"아아. 그걸로 하지."

주문을 마치고 유에라는 웨이트리스 아가씨에게 다정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가씨도 미소를 지으며 주방으로 향했다.

"......좋은 분위기의 가게군."

"그렇네."

유에라가 말한 대로였다. 가게의 인테리어는 모두 나무로 되어있어, 안락한 느낌이였다. 도시에서 제일 큰 호텔이라고 해도, 특별히 고급스러운 것은 아니였다.

"......"

그때 케레브릴이 옆 테이블을 신경쓰는 것이 보였다. 조용히 힐끔힐끔 옆모습을 엿보고 있었다. 뭘까?

"읏......"

놀랐다. 옆 테이블에는 한눈에 봐도 근사해 보이는 신사가 앉아 있었고, 그 뒤에 집사같은 사람이 서 있었다.

5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신사는 치분하고 고풍스러운 표정으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집사도 비슷한 나이로 보였지만, 이쪽은 좀 딱딱한 분위기였다. 가면을 쓴 것처럼 표정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무튼 좀 이상한 광경이었다.

"......"

케레브릴의 길게 찢어진 눈이 조금 웃고 있었다.

"음......? 무슨 일이지?""

유에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사와 집사의 테이블은 유에라의 등 쪽에 있었다.

"유에라, 저기......"

케레브릴은 테이블 위로 몸을 내밀어 유에라의 귀에 입을 가까이 가져갔다. 내 눈앞에, 흰 원피스 안에서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것 같은 밀크 커피색 거유가 출렁출렁 흔들리고 있었다. 오늘이 암흑의 신의 날이 아닌 것이 유감이였다.

"......아아, 신기하군."

유에라도 뒤를 살짝 바라보고는, 조금 웃고 있었다.

"저기, 유에라. 뭐 좀 물어봐도 될까?"

"응......? 뭐지?"

"대하에서 용이 날뛰고 있다던데......"

"아아. 나와 관계는 없다."

"......그렇구나."

유에라는 쿨하게 대답했다. 유에라의 대답에, 케레브릴도 약간 맥이 빠진 것 같았다.

"용이 날뛰는 이유가 뭘까?"

"......흠. 기분이 안좋아서 그런거겠지."

유에라는 대하에서 날뛰는 용에게는 전혀 흥미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쭉 도시에서 살아왔다. 용인이라고 해서, 다 용들과 친하지는 않다."

"......그렇구나."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그때 웨이트리스 아가씨가 주문한 요리를 가져다 주었다.

"유에라는 《전쟁의 나라》 출신이였지?"

"......기억하고 있었군."

유에라는 조금 기쁜 표정을 지었다. 유에라와 친해지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우리는 서로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태어난 나라가 《전쟁의 나라》는 아니다. 《전쟁의 나라》와 《평화의 나라》, 《자유의 나라》 사이에 끼인, 지금은 사라진 나라다....... 만약 지금까지 있었다면, 나는 공주로 살고 있었겠지......"

"......유에라, 공주였구나......"

유에라는 망한 나라의 왕족이였던 것 같았다. 이건 나도 처음듣는 이야기였다.

"아버지께서 그렇게 가르쳐 주셨다...... 후훗, 신경 쓰지마라. 이미 100년도 전에 망한 나라니까."

유에라는 내 얼굴을 보더니 작게 웃었다.

"나에겐 너 뿐이니까. 태생따위 상관없는 것이다......"

"고마워."

"아아."

유에라는 기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훗. 게다가 공주님이라면 한 명 더 있다."

그리고 나서, 유에라는 미소를 지으며 케레브릴을 응시했다. 유에라와 케레브릴은 진짜 친자매처럼 친하니까, 분명 내가 모르는 이야기도 나누고 있을 것이였다.

"그렇네...... 나도 공주야."

케레브릴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케레브릴은 《마법의 나라》의 출신이였지?"

케레브릴과도,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었다. 하지만, 이 세계 나라는 모두 인간이 다스리고 있었다. 당연히 《마법의 나라》의 왕족도 인간일 터였다

"맞아."

케레브릴의 길쭉한 눈이, 야생 동물처럼 날카로워졌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강렬하고 매력적인 눈이였다.

"정확히는 《마법의 나라》에 병합되서 사라진, 다크 엘프 왕국 출신이야. 만약 그 나라가 아직까지 있었다면, 나도 진짜 공주야."

역시 몰랐던 이야기였다. 케레브릴도 옛 왕족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 경우에는, 정말로 공주 생활을 했었을지도 몰랐다. 다크엘프는 장수하니까 말이다.

그러고보니 나는 케레브릴에게 나이를 물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 태어난건 관계없어."

케레브릴은 내 팔을 부드럽게 만졌다.

"나는 너를 아주 좋아해. 종족이 달라도, 상관없어. 계속, 언제까지라도, 어디에서 뭘 하고 있더라도, 너를 사랑해."

그리고 나서,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케레브릴을 아주 좋아해."

"......"

케레브릴은 눈을 감고 내 뺨에 키스를 해 주었다.

"아가씨."

혼잡한 가게의 소음 속에서, 신사의 큰 목소리가 들렸다. 왼손을 들고, 웨이트리스 아가씨를 부르고 있었다.

"와인 부탁합니다."

"네~."

신사는 빈 잔을 오른손으로 흔들며, 직접 웨이트리스 아가씨에게 주문을 하고 있었다. 아가씨가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집사는 그것을 선 채로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확실히 뭔가 이상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주방 쪽에서 웨이트리스 아가씨가 쟁반에 레드 와인을 가져왔다. 이 가게는 잔으로 주문하는 것 같았다. 아가씨는 허리를 굽혀 와인잔을 테이블에 놓으려 했다.

"여기서......, 흐아아읏......"

웨이트리스 아가씨가 갑자기 달콤한 신음를 지르며 주저앉자, 와인이 든 잔이 신사에게 쫙 쏟아졌다. 신사의 하얀 셔츠가 빨갛게 물들었다. 나는 보았다. 옆에 대기하고 있던 집사가 돌연 웨이트리스 아가씨의 엉덩이를 주무르는 것을 말이다.

"......하 하, 비싼 셔츠가 마치 생리대 처럼 붉게 물들었군요. 못된 아가씨군요."

"......"

"......"

"......"

우리의 음식을 먹던 손이 딱 멈추었다. 옆 테이블이라 아무래도 대화가 자연스럽게 귀에 들어오게 된다.

"이건 아가씨 때문이니, 벌로 아가씨를 하룻밤 안겠습니다."

신사는 지적인 얼굴을 하고 있지만, 상당한 괴짜였다. 변태라고 해도 좋을지도 몰랐다. 아무튼 이미지와는 다르게 확 깨는 기분이였다.

"무슨 소리야. 그쪽 집사가 멋대로 남에 몸에 손댔잖아."

"......"

웨이트리스 아가씨는 쟁반로 엉덩이를 가리고 화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쪽도 아까와는 분위기가 확 달랐다. 이 사건의 원인인 집사는 지금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가씨, 절묘한 손놀림이였죠?"

"무, 무슨 소리를......"

신사의 말에, 웨이트리스 아가씨의 뺨이 약간 빨개졌다. 확실히 아가씨는 단 한번의 손짓에 달콤한 목소리를 냈었다.

"이 몸의 집사는 그쪽으로는 마스터한 사람이니까요. 아가씨는 아시겠죠? 일반적인 남자들이 만지는 방법이 아니었잖아요?"

"그건......"

아가씨는 우물쭈물 거렸다.

"자, 아가씨. 하룻밤. 하실꺼죠?"

"뭐야......, 그쪽의 집사님한테 안기는 거면 몰라도......"

아가씨는 나약하게 대답했다.

"핫 핫 핫. 아가씨, 이 몸과 집사는 한 몸입니다. 자, 아가씨. 이 몸의 방으로 오시죠. 좀 더 기분 좋게 쓰다듬어 드리죠."

"......"

웨이트리스 아가씨는 침묵하고 있었다. 신사의 유혹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자, 아가씨......"

신사의 손이 살금 살금 웨이트리스 아가씨의 풍만한 가슴으로 뻗어지고 있었다. 그제서야 아가씨는 제정신이 된 것 같았다.

"역시 그건 안됏......!"

"아앗, 아가씨......"

웨이트리스 아가씨는 벌건 얼굴로 황급히 달아났다. 신사는 안타깝다는 듯이 아가씨가 떠난 쪽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박사님, 너무 급했습니다."

뒤에 서있던 집사가 말했다. 신사를 박사라고 부르고 있었다.

"무슨 말이냐? 네가 그 아가씨의 짜릿한 엉덩이를 한번만 더 쓰다듬었으면......"

"저는 쭉 손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중간에 가슴에 뻗으려한 박사님이 잘못하신 겁니다."

"아아......, 이 몸의 아가씨가......"

박사는 슬픈 목소리로 주방 쪽을 바라보았다.

"그, 술 마실건가?"

"그렇지, 유에라. 오늘은 특별한 날이잖아."

케레브릴은 귀에 있는 루비 피어스를 만지며, 나를 바라보았다. 물론, 나도 찬성했다.

"......주문을 부탁하지."

"......네."

유에라가 손을 들어 웨이트리스 아가씨를 부르자, 아가씨는 옆 테이블을 경계하며 다가왔다. 우리는 각자 마실 것을 주문했다.

"저기, 이 호텔도 손님이 꽉 찼어?"

케레브릴이 아가씨에게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아직 이 호텔을 확인하지 않았었다.

"음~, 저는 레스토랑 직원이라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그래. 실례했어."

케레브릴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침대에서 잘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고맙군."

바로 주문한 음료수가 왔다.

"저주를 풀고 나면 어디서 살 거야?"

케레브릴은 나와 유에라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직 결정된 것은 없어. 하지만 아마도 《공업의 나라》가 아닐까? 내가 건스미의 제자가 됐으니까 말이야."

나는 술을 마시며 대답했다. 목에서 화끈한 느낌이 들면서, 배에서부터 온 몸에 열이 퍼져갔다.

"......그렇군."

유에라는 조금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유에라는 건스미스의 시험 때, 건스미스한테 대여된 적이 있었던 것이 마음에 걸리는 것 같았다. 가짜 배란유발제를 먹은 후, 질내사정을 받았던 기억도 있엇고 말이다.

"그럼 유에라, 《자유의 나라》에 잠깐 사는건 어때? 나중에 《공업의 나라》에서 살고."

"......알겠다, 케레브릴."

유에라와 케레브릴은 나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자유의 나라》에서는 여러가지가 자유일 것이다....... 그, 세명이서, 라든지......"

유에라는 머뭇거리면서 애매한 말을 했다. 하지만 나는 유에라와 케레브릴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금방 알아챘다. 담배 마을 촌장님이, 《자유의 나라》에서는 중혼을 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렇구나. 그럼 《자유의 나라》에서 셋이서 살다가, 건스미스의 도시로 가자."

"......그런가."

내 말을 듣고 유에라는 뺨을 붉혔다.

"기뻐."

상냥하고 천진난만한 목소리였다. 케레브릴은 내 목에 팔을 감으며 볼을 비벼댔다. 오늘따라 케레브릴이 평소보다도 더 적극적인 느낌이 들었다.

"......뭐 좀 물어봐도 될까요?"

옆 테이블에서 갑자기 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우리에게 말을 걸은건가?

"......"

옆 테이블을 보자, 박사는 정색을 하고 똑바로 나를 쳐다보았다. 틀림없었다.

"방금 당신이 말씀하신 건스미스가 《마법의 나라》에서 망명한 거너를 말하는 건가요?"

"......그런데?"

나는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조금 경계하고 있었다.

"실례했군요. 옆 테이블에서 왠지 아는 사람의 이야기가 들리는 것 같아서, 그만 말을 걸어 버렸습니다."

"......그래."

아무래도 이 박사는 건스미스와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변태 동료일까?

"너는 건스미스랑 아는 사이야?"

케레브릴이 나를 껴안은 채 박사에게 물었다.

"아가씨, 이 몸과 건스미스는 둘도 없는 친구이자 라이벌입니다. 때론 다투기도 하고, 협력하기도 하고. 그가 《마법의 나라》를 떠나기 전까지 항상 함께 있었지요."

"......흐음."

케레브릴은 순순히, 납득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 의아하게 생각했다. 박사는 건스미스와 무엇을 다투고, 무엇을 협력했다는 것일까?

"......너는 건스미스의 친구인가?"

 유에라는 박사를 약간 경계하는 것 같았다. 직접 건스미스에게 범해진 만큼 유에라는 케레브릴보다 건스미스의 괴짜성을 이해하고 있었다.

"......당신은 그의 제자지요?"

"그래."

오히려 박사는 나를 의심스럽게 여겼다.

"이 몸이 아는 한, 그가 실제로 제자를 받은 것은 당신이 처음이에요."

"......사실이야. 나는 얼마 전에 건스미스의 제자가 됐으니까. 다만, 사정이 있어서 지금은《자유의 나라》를 향하고 있어. 볼일을 끝내고 나면, 머지않아 건스미스가 있는 곳으로 돌아갈 생각이고."

"아아, 그는 결국 포기했군요. 거너도 아닌 사람을 제자로 받다니......"

박사는 안타까운 듯이 고개를 저었다.

"......나도 거너야."

"《마법의 나라》이외에 거너는 없습니다."

박사는 엷게 웃었다.

"......잠시만, 케레브릴."

케레브릴에게 말하자, 케레브릴은 몸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홀스터에서 리볼버를 뽑았다. 그리고는 장전을 풀었다.

"그 총은......"

"총은 내꺼지만, 건스미스가 정비해 준 거야."

나는 일어서서 옆 테이블까지 가서 박사 앞에 리볼버를 놓았다.

"......아아, 멋진 손잡이군요. 확실히 그의 작품입니다."

박사는 총을 확인하더니, 건스미스가 만들어 준 그립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건스미스의 친구인 만큼, 총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실례했습니다. 당신은 정말 그의 제자군요."

박사는 믿어 준 것 같았다.

"아가씨."

박사는 왼손을 들어 웨이트리스 아가씨를 불렀다.

"옆 테이블 분들께 같은 음료로 한잔 더 세팅해 주시죠."

"......"

웨이트리스의 아가씨는 부른 사람이 박사인 것을 확인하더니, 홱 고개를 돌렸다. 완전히 박사를 무시하고 있었다.

"......너, 바텐데로 가서, 저 분들께 음료를 가져다 줘."

"......알겠습니다, 박사님."

박사는 얼굴을 붉혔다. 약간 창피한듯, 뒤에 있는 집사에게 명령했다.

"자, 여러분."

"......고마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박사가 술을 사주었다. 나도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 집사가 가져온 술을 고맙게 마셨다.

"아가씨들은 젊은 거너씨의 애인입니까?"

우리의 커플링를 보더니, 박사가 물었다.

"......그렇다."

"그래."

유에라와 케레브릴도 술을 마시면서 대답했다.

"......은발의 아가씨, 그 피어스가 잘 어울리시는 군요."

"그래?"

케레브릴은 기쁜 듯이 루비 피어스를 만졌다.

"......선물받은거야."

케레브릴은 볼을 붉히며 부끄러워했다. 케레브릴이 쑥스러워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 왜 처음 만난 우리에게 술을 사주는 거야?"

"핫 핫 핫, 은발의 아가씨. 이 몸과 건스미스는 형제나 마찬가지에요. 그의 제자와 연인분들이라면 이 몸에게도 남이 아닙니다."

케레브릴의 질문에 박사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실제로 이 몸과 그는 구멍 형제이기도 합니다. 핫 핫 핫......"

"......"

케레브릴은 침묵했다. 역시 다른 것은 없었다. 웨이트리스 아가씨와 얘기 했듯이, 박사는 변태였다.

"젊은 거너씨. 그는 잘 지내나요?"

박사는 그리운 듯, 하지만 그 안에 걱정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박사와 건스미스는 절친한 친구 같았다.

"걱정하지마, 박사."

나는 편히 박사라고 부르기로 했다.

"건스미스는 잘 지내고 있어. 생활에 불편한 것도 없는 것 같고, 꿈을 향해 노력하고 있어."

"그렇습니까?"

아마 건스미스는 지금도 그 지하실에서 작업에 몰두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남자는 괴팍해서요. 분명, 주위 사람들과는 잘 못지낼 겁니다."

박사는 조금 암울한 표정을 지었다. 박사는 건스미스를 상당히 좋게 보는 것 같았다.

"건스미스는 좋은 마을에 살고 있어. 건스미스를 은인으로 따르는 사람들도 있어."

"호오, 그렇습니까?"

나는 온천 여관을 떠올렸다. 건스미스는 주변에 잘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번에야 말로, 박사는 안심한 얼굴을 했다.

"......이봐. 너,들었나?"

박사는 돌아서서 웃으며 집사에게 말을 걸었다.

"네, 듣고 있었습니다."

"그는 잘 지내는 것 같다."

집사는 여전히 가면 같은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저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박사님은 그분을 너무 생각하십니다."

"......"

박사는 침묵했다. 뭔가 이상한 집사였다

"그, 박사. 당신과 집사는 이상한 관계네?"

케레브릴도 신사를 박사라고 불렀다.

"핫 핫 핫. 아가씨, 이건 집사가 아닙니다."

박사는 기쁜 듯이 웃었다.

"......이건 호문쿨루스입니다."

"......음, 그래."

박사가 충분히 뜸을 들이며 자랑하듯이 말했지만, 케레브릴은 아무런 감정도 내비치지 않았다. 박사는 약간 슬픈 것 같았다.

"윽......"

"......그런가."

박사는 유에라도 쳐다보았지만, 유에라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마도, 모두 호문쿨루스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았다.

"......"

박사는 나를 마지막으로 보았다. 마지막까지 기대하는 표정이였다.

"......굉장하네, 박사. 호문쿨루스라는거, 인공 생명체지?"

"......그렇습니다. 이 호문쿨루스는 마법에 의해 만들어진 인조인간입니다."

박사는 다행이라는 얼굴로, 조금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내가 알고 있는, 연금술의 호문쿨루스와는 조금 다른 것 같았다.

"박사가 만든거야?"

"......아니요, 고대 문명의 유산입니다. 이 세상에 호문쿨루스를 만들 수 있는 마법사는 아직 없습니다."

박사는 좀 풀이 죽어 있었다.

"박사님은 잠들어 있던 저를 기동시켜 주었습니다. 박사님은 유일한 호문클루스 전문가입니다."

"그렇구나."

호문쿨루스가 절묘한 타이밍에 박사를 어시했다.

"박사님은 《마법의 사라에서》, 아니, 이 세계에서 최고의 마법사입니다."

"핫 핫 핫......"

"......"

박사님은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우리는 박사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고보니 젊은 거너씨, 당신도 그의 시험을 치렀습니까?"

"......응. 시험을 치고, 합격했어."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그것은 이상한 시험이었다.

"하, 멋지군요. 그래서, 시험은 렌탈이였나요?""

박사의 음색은, 질문을 한다기보다는 확인을 하는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아, 맞다."

유에라가 눈썹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핫 핫 핫, 흑발의 아가씨. 당신이 함께 시험을 본건가요? 그는 언제나 같은 시험을 치르게 합니다. 그 시험으로 인간의 모든 것을 알아 낼 수 있다는게 그의 지론이지요."

"......흥."

유에라는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남아있던 술을 들이켰다.

"후아......"

왠지 갑자기 졸음이 왔다. 너무 술을 많이 마신 것 때문인지 절로 하품이 나왔다. 호텔을 나가서 야영 준비를 해야한다는 것이 조금 우울했다.

"......아아, 슬슬 가야겠군."

"그래. 이제 쉬자."

유에라와 케레브릴은 내 모습을 보더니 돌아갈 채비를 했다.

"그러고보니, 아까 잠깐 듣긴 했지만. 숙소를 찾고 있는 것 아니였나요?"

"......오늘은 이미 포기했어."

우리가 레스토랑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할 때쯤, 박사가 불렀다.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이 몸은 이 호텔에 가장 큰 방을 잡고 있습니다. 같은 방이라도 괜찮다면 묵고 가셔도 됩니다만?"

박사도 집사도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괜찮아?"

꽤나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그렇다면 밖에 나가서 야영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됐다.

"물론입니다. 다름아닌 이 몸의 친구의 제자와, 그 애인분들이니까요......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응, 조건?"

나는 뭔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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