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2 (49/73)

"응, 이제 출항 시간이야."

케브릴은 바람에 나부끼는 긴 은발을 오른손으로 누르고 있었다. 나는 그 아름다운 광경을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너는 대하가 마음에 들었나봐?"

"압도적이잖아. 거의, 바다 같은걸?."

나는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자연의 큰 스케일은 인간을 감동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약간 흥분되어 있었다.

"물 색깔도 좋고, 이런 푸르고 넓은 강은 처음 봤어."

"그래?"

케레브릴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상냥한 표정이였다. 나는 코트를 벗으면서 케레브릴에게 다가갔다.

"데리러 와줘서 고마워. 바람, 차갑지 않아?"

나는 케레브릴의 어깨에 코트를 걸쳐주었다. 하얀 원피스 사이로 노출된 어깨에 손이 닿았다. 역시 켈레브릴의 갈색 피부는 바람 때문에 차가웠다.

"우후후, ......고마워."

케레브릴은 기뻐 보였다.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왼손으로 코트의 목 언저리를 꽉 끌어당기고 있었다.

"나는 행복해."

"어......?

당돌하게, 케레브릴이 말했다. 내손에 손가락을 휘감았다.

"이런 사소한 일로도 서로의 마음을 생각하고, 내가 앞으로도 몇백년을 살아가면서, 지금 같이 행복한 순간은 없을거야. 나는 너를 만날 수 있어서 행복해."

"케레브릴......"

케레브릴은 인간이 아니라 수명이 긴 다크엘프였다. 내가 죽은 후에도, 분명히 케레브릴은 계속해서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것이 괴롭고 쓸쓸했다.

"벌써부터, 그렇게 슬픈 얼굴은 하지마."

케브릴은 밝은 목소리로, 웃으면서 말했다. 나의 어두운 기분을 단숨에 날려버리는, 그런 밝은 목소리였다.

"앞으로 같이 살거잖아? 나는 널 사랑해 널 행복하게 해줄거야."

"나도 케레브릴을 행복하게 해줄게."

케레브릴의 길게 찢어진 눈이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나는 작은 손을 잡아챘다.

"자, 슬슬 가자고? 유에라가 기다릴거야."

"응, 가자."

대강의 물결을 등지고, 차가운 바람 속을 나와 케레브릴이 손을 잡고 걸어갔다.

"유에라."

"아아, 늦었군. 응......?"

긴 의자에 앉아 있던 유에라는 내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케레브릴의 어깨에 걸쳐진 코트를 눈치챈 것 같았다.

"자, 고마웠어."

"응."

여기는 배에 승선하는 사람들을 위한 대합실이였다. 실내에 들어가자, 케레브릴은 코트를 돌려주었다.

"......"

유에라는 그런 나와 케레브릴을 약간 부러운 듯이 보고 있었다.

"유에라, 뭘 보고 있던거야?

"아아......, 한가해서, 잠시 승선표를 보고 있었다."

유에라가 보고있던 것은 티켓 모양의 승선표였다. 나는 우리가 탈 배가 작은 페리라고 알고 있었다.

"......?"

옷을 잡아당겨진 것 같아서 아래를 보니, 유에라가 내 셔츠 자락을 잡고 있었다.

"나도 너를 데리러 갈걸 그랬다."

유에라는 조금 삐진 것 같았다.

"귀여운 유에라네."

"응, 케레브릴."

케레브릴은 그렇게 말하며 유에라의 옆에 앉았다, 유에라는 케레브릴을, 잠시 노려봤다.

"정말이다. 내가 혼자인줄 알고, 말을 걸어오는 놈이 많았다. 꽤 귀찮았다."

"어라, 그런거였어? 우후후, 우리를 질투하던건 아니고?"

케레브릴은 장난스럽게 웃고 있었다.

"큿......, 오늘따라 케레브릴이 심술궂군."

"유에라는 오늘따라 귀여워."

사랑스러움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케레브릴은 옆에서 유에라를 꽉 껴안았다.

"유에라, 날 질투할 필요 없어. 앞으로는 셋이서 같이 살거니까. 그치?"

"......아아. 그렇군. 《자유의 나라》에 가는 것이 기대되는군."

유에라도 웃고 있었다. 둘은 정말 친자매처럼 사이가 좋았다. 나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

그리고 나서 나는 대합실 안을 둘러보았다. 작은 홀 같은 곳으로, 대하 쪽을 향한 벽에 큰 창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 너머로 닻을 내리고 있는 범선이 보였다.

배는 꽤 커서, 많은 돛들이 복잡하게 걸려있었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훌륭한 배였다.

"읏......"

그때 왠지 희미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 것 같아, 대합실로 시선을 돌렸다. 많은 사람들로 붐벼서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배를 사용할 수 있어서 다행이군.

"그렇네. 타이밍이 좋았어."

유에라와 케레브릴은 나란히 앉아있다 둘의 말이 맞았다. 우리는 당장 배를 못 탈줄 알고 왔었는데, 용은 이미 보이지 않고 배는 운항하고 있었다.

"어떤 용이 날뛰고 있던걸까?

"글쎄, 어차피 수룡아니겠나?"

내 물음에, 유에라가 영혼없이 대답했다. 유에라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용에 흥미가 없는 것 같았다.

"자, 슬슬 출항이 아닌가 싶군."

"그런걸까?"

확실히 대기실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선원들과 짐꾼들이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출항 시간일지도 몰랐다.

"본 배를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곧 출항준비가 완료됩니다. 승선하실 여러분께서는 항구쪽으로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깔끔한 정장을 입은 남자가 앞으로 나와 큰소리로 출항 안내를 했다. 그 목소리에 많은 여행자들이 대기실에서 속속 빠져나갔다.

"우리도 가자."

"그렇군."

유에라와 케레브릴도 준비를 했다. 나는 첫 범선 탑승을 기대하고 있었다.

"우아아......, 우우......, 엄마아, 훌쩍......, 같이 가자......, 우아아아......"

"자, 진정해. 누나가 같이 있어줄테니까......"

대합실 문 앞에서 어린 남자아이가 울고 있었다. 누나인건가? 여자아이가 남자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래고 있었다.

"괜찮다, 무서워할거 없다. 아버지가 있잖나."

"우우우......, 엄마아......"

아버지로 여겨지는 남성이 쭈그리고 앉아 남자아이를 달래보지만,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어머니로 추정되는 여자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엄마는 다음 배로 따라갈테니까......."

여자는 남자아이를 자상하게 보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엄마만 다음 배에 타게 되는 상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유에라와 케레브릴도 걸음을 멈추고, 걱정스럽게 가족을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가 탈 예정인 배는 오늘의 첫 번째 배편. 오후에 두 번째 배편이 있었다. 나는 간단히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했다.

"괜찮다면, 배 표를 바꿔줄까?"

"에......?"

작은 선택이라 생각했다. 여자는 갑자스러운 내 말에 놀라고 있었다.

"엄마도 이 배를 타는거지, 나랑 순서를 바꿀래?"

"죄송합니다....... 괜찮으시겠어요?"

아버지가 유에라와 케레브릴을 보면서, 미안해하는 마음으로 말했다.

"미안해. 나는 다음 배로 갈테니까, 오늘은 미리 숙소를 잡아놓고 있어."

"어쩔 수 없군."

유에라는 나를 걱정하면서, 하지만 조금 자랑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괜찮겠어?"

"응, 괜찮아. 오늘 오후는 강 건너 도시에서 편히 쉬자고."

케레브릴도 나를 걱정해 주었다.

셋이서 배 여행을 즐기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대신 오늘은 강 건너편 도시에서 느긋하게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우린 괜찮아, 순서를 바꿔줄게."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는 어머니를 보며, 나는 직원을 불렀다.

"이 사람과 표를 바꾸고 싶은데 괜찮아?"

직원에게 승선표를 보여주었다.

"네, 확인했습니다. 문제 없습니다."

정장을 입은 직원은 웃으며 대답했다. 멀리서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걸지도 몰랐다.

"엄마와 함께라서 다행이네."

"응...... 고마워, 형."

남자아이는 케레브릴에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리고는 웃는 얼굴로 나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

태양의 햇살과 시원한 바람이 기분 좋았다. 오전 배를 타고 떠나고, 나는 사람이 빠진 도시의 벤치에 기분 좋게 누워 졸고 있었다.

"......?"

정신을 차려보니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일어나니, 직원들이 이리저리 항구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긴걸까?

정장을 입고 있던 직원이 창백한 얼굴로 대기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왠지 심상치 않아 보였다.

나도 벤치에서 일어나 대합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에는 많은, 적어도 백명 이상의 사람들이 있었고 무척 소란스러웠다.

"여러분, 진정하고 들어주십시오. 조금 전에 출항한 제1편 배가 다시 나타난 용에게 침몰당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읏......"

나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져버린듯한 착각을 느꼈다.

"......"

순간의 정적 후, 대기실 안은 수많은 사람들의 노성으로 터질듯이 변해 있었다. 승객들은 무사하냐, 책임은 어떻게하냐......

"모두......, 진정을......, 큿......, 그런......, 잠시......"

직원이 열심히 무언가를 외치고 있었지만, 소란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았다.

"......"

나는 큰 창문으로, 조용히 대하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푸른 수평선이 펼쳐져 있었다. 이번에는 나도 어쩔 방법이 없었다.

정보가 부족했다, 나는 일단 유에라와 케레브릴이 무사한지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주변이 너무 시끄러워 얘기를 들을 수가 없었다.

"......"

나는 조용히 아이템 창을 열어 샷건을 꺼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창문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굉음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유에창에 금이 가더니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

대합실 안의 모든 사람들이, 눈을 부릅뜨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그 어떤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일단 얘기는 끝까지 들어봐야지. 자, ......설명 계속 해줘."

나는 쥐어짜듯이 소리를 냈다. 쉰 목소리였다.

"......알겠습니다. 먼저 첫 보고는 인근 어선의 신고였습니다. 범선 부근에서 큰 물결이 일었고, 순간적으로 용의 신체 일부가 보였다고 합니다......"

대합실 안에, 웅성거림이 퍼졌다.

"그러다가 범선이 매우 크게 옆으로 흔들렸고, 이어서 배 후미부터 대하 속으로 가라앉아 갔다고 합니다. 들어올려진 배 밑부분에는 큰 구멍이 나 있었다고 합니다......"

직원은 새파란 얼굴로 끝까지 말했다. 이번에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정보는 확실해?

나는 총을 내린 채 물었다.

"여러 어선에서 동시에 목격했다고 합니다."

직원은 침통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 승객은?

"불명입니다. 어선은 거기까지 확인하고, 일제히 대피했다고 합니다. 용이 출몰해서 그 이상은 무리였습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물었다.

"그럼, 구조는 이제부터 시작인가......"

"그것에 대해서는, 수상경비대에서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직원 옆에 있던 갑옷 차림의 남자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저희 《공업의 나라》 수상경비대는 이번 용의 출몰을 국가의 중대한 위기로 받아들이고, 이 수역을 전면 봉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매우 긴요한 시일 내에, 군에 의한 용 토벌 작전이 개시될 예정입니다."

"......그럼 당장 구조선은 없다는거야?

"......"

내 질문에,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수상경비대원은 침묵하고 있었다.

"......"

"무슨 일이 있어도?"

"......군의 결정입니다."

수상경비대원이 힘겹게 대답했다.

"......"

"......"

해안경비대원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몸이 작게 떨리고 있었다.

"알겠어...... 좋은 정보 고마워."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대합실 출입문을 열었다. 뒤를 힐끔 돌아보자 모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

나는 그대로 대합실을 나와 걸으며 생각에 빠졌다.

몇 가지 선택이 있었다. 유에라와 케레브릴이 살아있다고 가정하고 이 도시에서 기다릴까? 아니면 어떻게든 대하를 건널까?

두 사람이 죽었을 경우는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읏......"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였다. 나는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만약 후회할 때가 있더라도, 절대로 남탓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오늘만큼은 후회를 하고 남탓을 하고 싶었다. 그 가족에게 죄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고, 그들도 피해자였다.

갑판 위에서 유에라와 케레브릴이 손을 흔들었을 때를 기억했다. 두 사람의 미소. 그때는 몇 시간 후면 두 사람을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다.

"기다려주세요, 거너님!"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보았다. 아까 그 수상경비대원이 쫓아오고 있었다

"후하......, 후하......"

숨이 차 보였다. 꽤나 뛰어 온 것 같았다.

"왜?"

엷게 웃으면서 물었다. 나는 볼일이 없었다.

"이 도시의 동쪽에, 수상경비대 기지가 있는 도시가 있습니다. 그 기지에서라면, 배를 타고 대하를 건널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네, 그리고 승객분들의 신원을 확인했는데, 거너님의 일행분 중에 정령술사가 계시더군요. 물의 정령의 힘을 빌렸다면 무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

확실히 여태 자각은 하지 못했지만, 케레브릴의 직업은 정령술사였다. 정령술사가 물에 빠져 죽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리고, 용인 분도 존재하시더군요. 용과 직접 조우했다고 해도, 용인분이 계신다면......"

"......응."

그러고 보니 유에라의 스킬중에는 [용언]이 있었다. 용에게 습격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였다. 확실히 두 사람이 죽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이 도시에서 동쪽으로 가면 되는거지?"

"네, 먼저 이 도시에서 동쪽으로 향하는 가도를 따라 한번 내륙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마을을 하나 넘으면 중간 규모의 도시에 도착합니다. 거기서 바로 남하하는 가도를 따라가면 수상경비대의 도시입니다."

"알겠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승객들이, 이 도시로 돌아올 가능성도 있으니까......"

"네, 그럴 경우 수상경비대가 책임지고 보호하겠습니다. 가능한 한 거너님께도 연락을 취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응."

"경비대 기지에서는, 제 이름을 대면 기지의 대원들이 협조해 줄 것입니다."

"......고마워."

나는 수상경비대 대원에게 진심어린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럼 이만 나는 가볼게. 정말 고마워."

"네, 조심해서 가세요."

"대원들도, 용 토벌작전, 조심해."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대원의 이름을 듣고는, 작별을 하고나서, 나는 동쪽 성문을 향해 뛰듯이 걸었다.

"거너님!"

멀리서 수상경비대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문스러운 마음에 뒤돌았다.

"거너님에 대해서는, 국경경비대로부터 편지로 보고를 받았습니다! 저희 나라는, 우수한 인재들을 언제나 환영하고 있습니다!"

"아......"

아마도 이 배려들은 그 국경경비대장 덕분일 것이였다.

"안녕히 가세요, 거너님! 연인분들의 무사를 기원합니다!"

"안녕!"

수상경비대원에게 손을 흔들며, 나는 이번에야말로 동쪽을 목표로 나아갔다. 왠지 마음이 조금 따뜻해졌다.

.

.

.

"흐응. 그 국경경비대장, 좋은 사람이네."

"......응, 당연하지. 멋있는 사람이였어."

나는 레이첼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가지 의미로, 그 국경경비대장님은 대단한 사람이였다.

물론, 그 '조사'에 대한 이야기는 말하지 않았다. 연인들의 몸 속까지 조사했다는 것은 절대 말하지 못할 것이였다.

"하지만, 너는 최저야!"

"......어째서?

"애인이 둘씩이나 있다니! 불성실하고 최저한 남자잖아!"

"......"

레이첼이 나를 노려보았다. 솔직히 괜한 참견 같았다.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 하지만 너랑은 상관 없잖아? 우리 문제라고."

"안돼! 둘 중에 한명은 놓아줘! 불쌍하잖아!"

레이첼이 제멋대로 말했다

"싫어. 난 둘 다 사랑하는걸. 절대 헤어지지 않을 거야".

"음~......"

레이첼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면 너, 근육을 더 키워. 그걸로는 좋아하는 사람을 지키지 못해."

그렇게 말하면서 내 팔을 세게 때렸다.

"됐어....... 레이첼은 근육질 남자를 좋아해?

"딱히 그런건 아니지만...... 나 같은 미소녀는, 역시 좋아하는 남자가 지켜주는걸 원한다고. 사랑받고 있다는걸 느끼고 싶다고."

나는 레이첼에게, 총에 관한 것만은 빼고 이야기를 했었다. 《마법의 나라》 출신도 아니면서 들키면 여러가지로 귀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가느다랗고 긴 손은 여자아이 같잖아."

"......그건 내 탓이 아니라고."

나는 선천적으로 그랬다. 외모 자체가 여성스러웠고, 손가락도 길었다.

"저기, 이건 뭐야? 어라......? 뭐가 달려있어."

"앗......"

목에 걸고 있던 이어폰을 레이첼에게 빼앗겼다. 자연스럽게 이어폰에 연결되어 있던 스마트폰이 레이첼의 손안에 들어갔다. 예상치 못했다.

"이건 뭐야?"

"......비밀이야, 돌려줘."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레이첼에게 돌려달라고 손을 뻗었다. RPG세계에서 스마트폰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와, 뭔가 나왔어!"

레이첼은 내가 다른 세계에서 소환됐다는 중요한 증거를 열심히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게 너 여자친구야? 캬하핫......, 못생겼는걸?"

화면에는, 맥주잔을 들고 행복해 하는 케이코가 찍혀 있었다. 케이코는 그다지 예쁘지 않았다.

"아니, 그건 내 여자친구가 아니야, 자, 돌려줘"

"어라......? 저기, 봐봐!"

레이첼은 내 뒤를 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뭐지?

"마차야! 저기 우리 좀 태워다 줘! 어~이......"

레이첼은 멀리 있는 마차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럴때는 영락없는 순진한 여고생 같았다.

.

.

.

"아저씨, 고마워 도시에 도착하면 사례를 할게, 이 사람이."

"......"

나는 이미 반응하기도 귀찮았다.

"그래, 옥수수를 출하하고 돌아가던 길이였는데, 마침 좋은 일거리가 생겼군."

"응, 만족할 만큼 사례할게."

나는 흔들거리는 마차의 짐칸에서 아저씨에게 말했다. 확실히 마차를 타고가는 대가는 필요했다. 레이첼에게도 치르게 할거지만 말이다.

"귀여운 아가씨. 오빠를 꽉 잡으렴, 언덕을 오를테니까."

"응, 아저씨. 힘내."

"뭐, 실제로 힘든건 말뿐이지만. 나중에 사료를 듬뿍 주면 괜찮아."

아저씨와 레이첼은 태평하게 대화하고 있었다.

"있잖아, 너 조금 밝아졌는걸?"

"그런가?"

사실 레이첼의 말이 맞았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기분이 풀렸다.

"......발은 어때, 아프지 않아?"

"응~ 괜찮아 너도 천천히 걸음을 맞춰줬엇고."

레이첼은 입을 벌리고 웃었다.

"와, 예쁘네."

"응, 확실히 예뻐."

언덕 꼭대기에 올라서자, 옥수수밭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져 있었다.

옥수수밭 사이의 곧게 뻗어진 외길을, 마차는 바람을 가르며 쭉쭉 내려갔다. 그 끝에는 다음 도시가 보였다.

이 길을 설계한 녀석은 감각이 뛰어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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