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화 온천 마을의 환상의 공동 목욕탕 - 에필로그
"히히힛......"
오너가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냈다.
"손님, 무사히 벌칙 게임을 마쳤나보네?"
오너가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NTR좋아함], 연인들이 [배덕]스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오너는 알고 있었으니까.
"히힛......, 즐겼어?"
오너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듯이 관찰하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좋은 탕이였어. 근데 미끌거리는 온천수가 잘 안씻겨졌어."
나는 엷게 웃었다. 그래서 지금 연인들은 숙소의 욕실에서 다시 씻고 있었다.
"그래서 오너, 나에게 무슨 용무야?"
나는 온천에서 나오자마자, 오너에게 불러세워졌다. 그리고 안내된 곳이 이 방였다. 오너의 개인실인 것 같았다.
"손님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서...... 꼭 이 말이 하고 싶었어."
오너는 침대에 앉아있었다. 오른손에 투명한 액체가 든 잔을 들고 핥으며 말했다.
"요즘의 젊은 사람들은 버릇이 없어, 내기에서 져도, 납득하지 않거든."
오너는 얼굴을 찌푸렸다. 주름진 얼굴이 구겨졌다.
"사기라고 말하면서 말이야. 히히힛......"
그리고 나서 입을 크게 벌리며 웃었다. 앞니가 빠진 것이 몹시 눈에 띄었다.
"......"
나는 침묵한 채로 의자에 앉아있었다. 오너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들키지 않으면 범죄가 아니니까. 내기에서 지고난 후에는 아무리 불평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손님은 대단해, 불평도 안하고, 벌칙 게임도 깔끔하게 끝냈으니까."
오너은 잔을 든 오른손 검지를 쭉 뻗어 내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기는 신성한거야, 지면 얌전히 대가를 지불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행운의 신의 천벌이 내려져."
오너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
주인은 단지 이런 쓸데없는 말들을 하기 위해 나를 부른걸까? 내가 트릭을 쉽게 간파해서 그런걸까?
"오너의 말이 맞아."
내가 대답했다.
"내기에서 지면, 순순히 대가를 지불해야지. 그리고 내기를 번복하는 건 정당하지 않지."
"손님이랑, 마음이 맞네~"
내 대답에, 오너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
나는 엷게 웃었다.
"그나저나, 손님의 연인들에게도 좀 고마운걸...... 히히힛......"
주인은 화제를 바꿨다.
"들었어. 꽤나, 몸소 벌칙 게임에 임해줬다고 말이야.
오너가 다시 내 얼굴을 들여다보듯이 쳐다보았다. 현지인 멤버로부터 벌칙 게임 때 일을 들은 것 같았다. 누구지? 학자인가?
"앗, 오히려 들어간게 좋은거였을 수도 있었겠는걸? 히히힛......"
"......"
나는 오너가 입을 벌리고 웃는 것을 보면서 침묵했다.
"피곤해보이던데, 온천에서 빠지지는 않았을까 걱정되는걸...... 상황을 좀 살펴볼까......"
오너는 그렇게 말하면서 침대 머리맡에 손을 뻗었다.
(후아아......, 좋다아......)
"읏......!"
나는 깜짝 놀랐다. 방 어딘가에서 레이첼의 편안한 목소리가 들려왔으니까.
"......?"
나는 어찌 된 일이냐는 시선으로 오너를 응시했다.
"나는 조심성이 많거든. 탕에서 만일의 사고가 나도 바로 대처할 수 있도록, 이렇게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놨지."
오너는 손 안에서 탁구공만한 크기의 수정구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마법적인 장치로 여탕을 도청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방이 목욕탕 바로 옆에 있는것도, 그런 이유때문이고. 히힛......"
그러고보니 오너의 개인실은 여탕 옆에 있었다.
"굉장히 조심성이 많구나?"
내가 약간 화가 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손님, 걱정할 필요 없어. 여자 아이들의 대화를 들어봤자, 난 이제 안 서니까......"
"......아, 맞다."
당연한 행동을 했을 뿐인데도 뭔가 큰 잘못을 한 기분이 들었다.
.
.
.
(아아......, 피곤해......)
(......한심하군.)
레이첼과 유에라의 목소리였다.
(아무리 탕에 우리밖에 없다 해도, 너무 무방비한 것 아닌가?)
레이첼은 온천에서 축 늘어진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잖아.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걸......)
(그런 행동은 평소에도 똑같이 나올꺼다. 미움 받더라도 난 모르는 일이다.)
(이잇......)
첨벙 물소리가 들렸다.
(유에라는 용인이라서 체력이 좋은거잖아! 나는 유에라와는 다르게 섬세하거든!)
레이첼은 종족의 차이를 내세워 반박했다.
(틀렸다. 나도, 피곤하긴 마찬가지다.)
유에라는 용인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체력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뛰어난 것은 아니였다. 격렬하게 연속해서 가버리고 난 후에는 녹초가 되기도 하니까.
(나는 좋아하는 남자에게 칠칠치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나를 계속 좋아해주었으면 하니까. 평소에는 여자다운 행동에 신경쓰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나서 유에라는 기쁜 말을 했다. 유에라는 말투만 빼고는 정말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봐라. 케레브릴도,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나?)
케레브릴도 풀어지지 않은 것 같았다.
(우후후......)
케레브릴의 요염한 웃음소리는, 유에라보다도 조금 더 여유로워 보였다.
(나도 피곤하긴 하지만, 난 다크엘프니까.)
케레브릴의 목소리는 매우 어른스러웠다. 나와 만나기 전에도 다양한 경험을 한 것 같으니까. 나는 저런 야한 케레브릴을 매우 좋아했다.
(후훗......, 어떠냐. 이것이 우리와 꼴지인 너와의 차이다.)
유에라는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나에게 사랑받기 위해 항상 노력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 같았다.
(이잇....... 왠지 나만 카오루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 같잖아!)
(그렇다. 너가 예쁘다는 건 인정해주지. 하지만, 내가 최고다.)
유에라는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라, 유에라? 내가 제일이라고 하던데?)
(뭣......? 케레브릴......?)
(내가 다크엘프라는 것 자체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 우후후......, 내 피부색이라던지, 귀라던지, 항상 좋아해주거든.)
케레브릴이 말한건 사실이였다. 나는 케레브릴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흥분되었다. 솔직히 남라자면 누구나 그럴 것이라고 생각됐다.
(큿......, 나도 머리카락이 아름답다고 칭찬받았다......)
유에라의 말도 맞았다. 나는 긴 검은 머리카락을 좋아하니까.
(어라? 머리카락은 나도 마찬가진데? 은발이 아름답고 신기하다고 칭찬하는걸?)
(......케레브릴이 매력적이라는건 인정하지. 하지만 우린 운명적으로 만났다....... 양보할 순 없다.)
드물게도 유에라와 케레브릴이 말다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잇......)
레이첼은 불만스러운 듯 투덜거리고 있었다.
(알아냈어.)
(응......? 뭐를 말이지?)
(확실히 유에라와 케레브릴은, 나랑 다른 것 같아..)
(후훗......, 그렇지? 너도 이제야 깨달은 것 같군.)
(둘다 너무 음란해!)
(뭣......?)
(레이첼......?)
(유에라는, 자지를 세개나 물고 있었잖아......)
(읏, 시끄럽다......)
(『유에라의 보지도, 엉덩이도 더......, 찌걱찌걱 범해줘......』라고 말했으면서....... 듣는 내가 더 부끄러웠다고......)
(뭣......, 그건......)
(음란하고 귀엽게 졸라댔잖아!)
(그때는 어쩔 수 없지 않았나....... 나도 여자니까......)
(케레브릴도 마찬가지야!)
(나......?)
(......, 『내가 자지를 넣다 뺐다 하고 있는거, 보여......?』라고 물어보기까지 했으면서......)
(그건......, 그래도......)
(엉덩이도 흔들고......, 굉장히 에로했다고......)
(......)
(이제와서 부끄러워해도 늦었어. 정말, 유에라도 케레브릴도 너무 야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다는걸 믿을 수 없을 정도라고!)
(큿......)
(레이첼도......, 이미......)
(흥.......그렇게는 말하는, 레이첼 너도 즐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나?)
(에......?)
(맞아. 꽤, 즐겼던 것 같은데?)
(아니얏! 난 다르다고......)
(뭐가 다른거지? 너도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 다른 남자에게 범해지면서 가버렸잖나?)
(그래 맞아. 처음인데도 펠라치오에, 애널 섹스에, 3P까지 해버렸잖아?)
(말하지 마......)
(그리고, 레이첼. 피곤하다고 말했는데, 그건 너무 즐겨서 피곤한거잖아?)
(우......, 그건 그렇지만......)
(나도 보고 있었다. 네가 아버지한테 화려하게 가버리는거 말이다.)
(나......, 가지 않았어......)
(우후후....... 거짓말은 안돼, 레이첼. 전혀 그렇게 안보였는걸?)
(나......)
(레이첼......?)
(훌쩍....... 죄책감 때문에......, 죽을꺼같아......)
(읏......)
(읏......)
첨벙 첨벙 뜨거운 물을 헤치고 나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 그런 녀석들과 하면서도....... 카오루가 아닌데도......, 흑......, 느껴버려서......)
(미안해, 레이첼. 속이 풀릴 때까지 울어도 돼...... 우리가 함께 있어줄테니까......)
(케레브릴......, 으아앙......, 흐앙......)
(나도 미안하군.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함께할꺼다.)
(우우......, 유에라......)
(우리는 자매 그 이상이니까. 이 세상에서, 우리만이 이 감정을 공유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우웅......, 훌쩍......, 우......)
(어때......? 슬슬 진정이 돼가?)
(응......)
(그런가.)
(훌쩍, 근데......)
(왜?)
(둘 다......, 예전부터 이런 일을 계속 해온거야......?)
(......그렇다.)
(......맞아.)
(그렇구나....... 나, 괜찮을까......)
(레이첼, 나도 처음에는 엄청 고민했어.)
(케레브릴도?)
(응. 혹시 그 사람한테 미움받진 않을까......)
(그렇구나......)
(나 역시.)
(유에라도?)
(아아, 애인도 아닌 남자에게 몸을 허락해버리는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서 말이다......)
(유에라......)
(......하지만 말이다.)
(?)
(......! 그러고 보니, 레이첼. 약은 먹었나?)
(에......? 나, 아직......)
(안돼, 레이첼. 넌 인간이라고.)
(왜 그러는데......?)
(나는 용인이라 인간과 아이를 만드는게 불가능하진 않지만 쉽지 않다.)
(다크엘프는 수명 자체가 길어서 원래부터 쉽게 아이를 갖는게 어렵고.)
(그렇구나......)
(그래도 나는 아까 마셨다.)
(나도.)
(에에......? 너무해......, 나한테도 좀 말해주지......)
(너는 아까, 권유해도 안왔었다......)
(우리가 아까 식당에 음료를 가지러 갔었지?)
(아......)
(그 사람 앞에선 피임약을 먹는건 좀......, 그렇다......)
(끝난건 잊어야 하니까 말이야. 너도 여기서 나가면 바로 마셔.)
(응......)
(너는 인간이다. 운이 나쁘면, 아까 그걸로 임신해 버리니까 말이다. 가능한 피임약은 바로바로 먹어두는 편이 좋다.)
(그 사람이 아닌 다른 남자의 아기를 갖고 싶진 않을테니까 말이야.)
(응....... 나......, 꺄앗......?)
(후훗......, 무슨일이지? 아까 너무 해대서 허리가 빠진건가?)
(시끄러워, 그럴리 없잖아......)
(우후후......, 레이첼, 온천에서 미끌어졌잖아.)
(응......, 그러니까......)
(후훗......)
(유에라......)
(뭐지?)
(일으켜줘......)
(어쩔 수 없군....... 자, 잡아라.)
(고마워......)
(이제 됐나?)
(와....... 유에라가 용인이여서 다행이야. 힘이 센 사람이 있다는건 편리한걸.)
(귀찮은 놈이군......)
(어라? 케레브릴은 안나갈꺼야?)
(나? 나는 좀만 더 온천에 있으려고......)
(후응......?)
(그게......, 안쪽에서 흘러내리려고해서......)
(아......)
(이제 됐나? 자, 가지.)
(응....... 근데, 유에라.)
(왜지?)
(유에라는 괜찮아?)
(......당연하다. 괜찮으니까 너와 같이 나가는것 아니겠나......)
(후응......?)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지?)
(그게, 유에라가 제일 많이 했잖아? 거기다가 엉덩이에도......)
(......나는 괜찮다.)
(단지 좀 걱정되서. 유에라는 야하니까, 흥분하려고 카오루한테 일부러 보여주려나 싶어서......)
(......)
(유에라?)
(......너는 무례하군.)
(왜 얼굴이 빨개져?)
(읏, 시끄럽다......)
(우후후......, 유에라라면......)
(케레브릴까지....... 이제, 됐으니까 가지.)
(아, 잠깐만......)
.
.
.
"히히힛......, 사고가 나지 않아서 다행이네?"
"......그렇네."
오너는 유쾌하게 웃었다. 여자아이들의 비밀스런 대화 내용에 만족한 것 같았다.
"히힛......, 이건 생각했던 것보다......, 히히히힛......"
오너의 얼굴이 이상하게 일그러졌다
"실례했어, 손님. 오래 붙잡아놔서."
오너가 그러면서 일어섰다, 나를 배웅할 생각인 것 같았다.
"괜찮아."
나도 의자에서 일어났다.
"연인들이 걱정하면 안되니까 말이야, 빨리 방으로 돌아가는게 좋을거야."
왠지 오너는 나를 빨리 방으로 돌려보내고 싶은 것 같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나는 뭔가 예감이 들었다.
.
.
.
"......"
노크 소리였다. 그리고는 방문이 열리고 레이첼이 얼굴을 내보였다. 자연스레 나와 눈이 마주쳤다.
"다녀왔어?"
나는 예전에 유에라가 했던것처럼 말했다. 돌아왔을 때 누군가가 이렇게 말해주면 굉장한 안정감이 드니까.
"......다녀왔어."
레이첼은 약간 긴장이 풀린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기쁜 듯이 대답했다.
"카오루......, 나......"
"괜찮아, 레이첼."
레이첼이 뭔가 말하려 했지만, 나는 부드럽게 말을 끊었다.
"왜 그래? 들어와."
"응......"
레이첼은 문을 연 채로 고개만 내밀고 있었다, 내 재촉에 방으로 들어왔다.
"......"
나는 침대에 앉아 있었다. 레이첼도 내 옆에 앉았다. 젖은 촉촉한 금발이 내 어깨를 건드렸다.
"카오루......"
레이첼이 나를 불렀다. 다만, 평소와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뭘까?
"나 책임지고 신부로 맞아줄꺼지?"
"......"
나는 침묵했다. 레이첼이 갑자기 엄청난 말을 꺼냈다.
"왜 대답이 없어?
"......"
레이첼은 약간 화난 듯 말했지만, 나는 진짜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설마 이런식으로 여자아이한테 먼저 청혼을 받을줄은 몰랐으니까.
"......새치기는 안된다."
"......유에라."
유에라는 문을 열고서 약간 화난 얼굴로 레이첼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유에라는 볼을 확 붉혔다. 아까 벌칙 게임이 부끄러운 것 같았다.
"......"
하지만 금방 늘 그랬듯이 쿨한 얼굴로, 이쪽으로 터벅터벅 걸어왔다.
"나와 케레브릴도 없는데, 그런 얘기를 하는건 옳지 않다."
유에라도 내 옆에 앉아서 레이첼을 빤히 노려보았다. 분명히 레이첼의 행동이 치사하긴 했다.
"별 상관 없잖아, 카오루의 첫번째는 어짜피 나인데."
그러고 보니 레이첼은 벌칙 게임 때도 그런말을 했었다. 유에라와 케레브릴과 마찬가지로 NTR플레이를 하면 자기가 이제 첫번째라고. 이 미소녀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럴리가 없다. 그렇지 않나?"
유에라가 내 팔을 잡고 올려다보며 물었다. 위험한 질문이었다.
"유에라, 저번에도 말했지만, 확실하게 책임질게."
나는 진지하게 말했다. 다만 질문에는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기대하고 있겠다."
유에라는 강렬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너도 지금은 그걸로 됐나?"
"......뭐, 어느정도. 카오루가 어떤 말을 해줄지 기대하고 있을꺼니까."
일단 상황은 무사히 넘어간 것 같았다.
"그러고보니, 유에라. 오너랑 무슨 얘기했어?
레이첼이 유에라에게 물었다. 유에라가 늦게 온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인 것 같았다.
"응......? 아아......, 너에게 볼일이 있다고 방에 와 달라더군."
"나?"
오너가 나에게 개인실로 와달라고 부탁한 것 같았다. 아까 뭔갈 빼먹었나?
"후암....... 나, 피곤해......"
레이첼은 별로 흥미가 없는지, 하품을 하고 있었다.
"유에라, 고마워. 나 잠깐 다녀올게."
나는 유에라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일어섰다.
"그......"
유에라가 나를 불러 세웠다
"그......, 같이 가도 되겠나......?"
유에라가 제안했다.
"유에라도? 왜?"
레이첼이 의문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별 뜻은 없다. 그, 왠지......, 갑자기 그러고 싶었을 뿐이다....... 이유 같은건 딱히 없다."
유에라에게 분명한 이유는 없었다. 다만 유에라가 방 안의 한곳을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
"......"
나는 유에라의 시선을 따라갔따. 비치된 테이블 위였다. 마치 화장지 같은, 부드러운 종이뭉치가 나무 상자에 담겨있었다.
"그럼, 나도 갈래."
"뭣......, 너는 피곤하다고......"
레이첼의 말에, 유에라는 좀 당황한 것 같았다.
"하지만, 나만......"
"그냥 나도 여기 있겠다. 그러니까 너도, 그냥 쉬어라."
"에에......"
레이첼은 불만인 것 같았다.
"불평하지 마라, 피곤하다."
"그래도......"
"큿....... 나는 말이야, 너보다......"
"뭐......"
유에라와 레이첼은 같은 침대에서 자려는 것 같았다. 잠옷 차림의 두 사람이 같은 침대로 기어들어갔다. 왠지 흐뭇한 광경이었다.
"오너."
나는 오너의 개인실 문에 노크했다. 하지만 안쪽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오너, 없어?"
나는 두번, 세번 계속해서 문에 노크를 하며 오너를 불렀다.
"......"
나는 뭔가 예감이 들었다. 혹시나하고 문 손잡이를 돌렸더니 문은 시원하게 열렸다.
"오너?"
안에 오너는 없었다. 아까 내가 들어갔을 때와 같은 풍경의 방안. 나는 안쪽을 둘러보다가 아까 주인이 앉아있던 침대로 다가갔다.
"......"
침대 위에는 휴지 같은 부드러운 종이뭉치가 놓여져 있었다. 아까는 없던 것이였다. 그러고 보니 유에라가 아까 우리 방에서 같은 종이뭉치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읏......!"
어딘가선가 물 튀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온천을 도청하던 소리였다. 주위를 살펴보니 침대 머리맡에 수정구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
나는 오너가 나를 사실로 불러들인 이유를 알아챘다.
"......"
오너는 도박을 좋아하고, 도박꾼은 아무렇지도 않게 능숙한 거짓말을 한다. 오너, 거짓말한거지?
"하아아......"
케레브릴의 숨을 몰아쉬는 듯한 목소리다. 나는 의자를 끌어당기고 살짝 걸터앉았다.
"후-우"
얕은 한숨을 토해냈다. 눈앞의 침대 위에는 부드러워 보이는 종이 뭉치가 놓여 있었다. 분명히, 오너가 일부러 준비해 둔 것이였다.
"......"
유에라는 아까전에 오너의 부름을 전달 할 때, 주위를 살폈었다. 즉, 나를 서포트 해줄 생각이였던 것 같았다. 하지만 레이첼 때문에 무산됐지만.
그래서 아까 그렇게 종이뭉치를 쳐다보았지만 말을 꺼내진 못한 것 같았다.
역시 유에라는 최고의 연인이였다. 나는 그런 유에라를 사랑한다. 물론 오늘 벌칙 게임에 열심히 임해준 레이첼도. 그리고 아직 벌칙게임이 끝나지 않은 케레브릴도.
.
.
.
.
"안녕."
나는 엷게 웃었다.
"잘 왔어."
식당 의자에 깊숙이 앉아 멤버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괜찮아. 뭘 우리 사이에."
학자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나는 학자와 특별히 더 친해진 기억 같은 건 없었다. 아니면 구멍동서라는걸 말하고 싶은 걸까?
"아무튼, 유감인걸......"
"정말로......"
농부와 벌집이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유에라양들은 먼저 출발 했다고?"
"맞아."
벌집의 말이 맞았다. 내 연인들은 한발 먼저, 《공업의 나라》의 수도로 향했다. 오래 계속되던 비도 그쳤고.
그리고 연인들이 이녀석들에게 남긴 말도 없었다. 몸을 겹쳤는데도 말이다. 물론 난 그게 기쁘긴 하지만. 어쨌든 이녀석들이 어떻게 되든 더이상 관심없는 것 같았다.
"난 마지막으로 작별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오씨는 희미하게 눈물을 머금은 얼굴로 말했다. 이별을 슬퍼하는 듯 보였지만, 바지는 빵빵하게 부풀어있었다. 도데체 어떤 인사를 하려던걸까?
"이건, 이별 선물이야. 유에라양들에게 전해줘."
벌집은 그렇게 말하면서, 노란색의 작은 병들을 테이블에 놓았다. 대략 스무개 정도였다. 이건 분명 벌집의 특제 정력제였다. 마물 벌이 원료라던.
"......고마워, 잘 전해줄게."
감사 인사를 하면서 생각했다. 왜 정력제를 유에라들에게, 여자아이들에게 선물하는걸까?
"근데, 이거 여자아이한테도 효과 있는거야?"
나는 그냥 바로 물어보았다.
"아니, 여자한테는 하나도 효과 없어. 남자라면 바로 불끈불끈 하지만...... 케헤헷......"
"......그래."
이 녀석들은, 역시 이상했다.
"......어쨌든, 고마워."
그럼 내가 마시라는걸까? 아니면 다른 남자에게 마시게해서 더 즐기라는걸까?
"나도 가져왔어. 케레브릴양들에게 전해줬으면 좋겠어."
농부는 탁자 위에 거무스름하고 긴 뿌리를 올려 놓았다.
"내가 캐온, 산의 뿌리야."
농부는 팔짱을 끼고 콧김을 내뿜으며 말했다.
"오오......, 이건 굉장하네......"
"이렇게 큰걸....... 잘도 찾았네......"
벌집과 학자, 현지 멤버들은 감탄의 토해냈다. 어쩐지 귀한 것 같았다.
"내가, 몇 년 전부터 눈여겨 보던거야. 그러니까 꼭 받아줬으면 좋겠어. 이걸 먹으면 자지가 팔팔해서 밤엔 잠도 못잔다고."
"......고마워."
정력제와 마찬가지로, 감사 인사를 하면서 받았다. 여자아이에게 주는 선물치고는 무척 이상했지만 말이다.
"......우리는, 내일까지 이 마을에 머무를거야."
다음으로 말한 사람은 아버지였다.
"사실 하루빨리 돌아가고 싶지만, 비에 젖은 산길은 위험할 것 같아서."
이상한 구석이 많긴 하지만 아버지는 의외로 신중했다.
"곤란해, 곤란해."
단지 곤란하다고 말하면서도, 전혀 그래보이지 않는다는게 흠이랄까?
"카오루."
아들이 나를 불렀다. 여자를 알고난 뒤부터, 자신감에 찬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 수도에서 레이첼을 만나면 고백할꺼야."
아들이 웃으면서 말했다. 다만 이젠 자신감이 너무 큰게 문제였지만.
"그렇구나."
나는 엷게 웃었다.
"단지 내 앞에서만은 하지 않길 바래. 나도 내가 어떻게 할지 모르니까."
"에......"
내 경고에 아들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애인들을 완전히 뺏는 것만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뭐 레이첼이 아들한테 넘어갈 것 같지도 않지만.
"카오루."
아버지가 차분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카오루 덕분에 부자간의 유대관계가 깊어졌어. 고마워."
아버지는 아들의 어깨에 툭 손을 얹으며 말했다. 부자지간에 같은 여자를 공유했으니, 확실히 유대감은 깊어졌다. 변태적인 유대감이였지만.
"나는 수도 왕성에서 근무하고 있어. 최근에는 거유교의 소동도 있었고, 《공업의 나라》의 수도도 안전하진 않고. 수도에 머무는 동안 위병으로도 대처하지 못할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줘."
"......고마워."
아버지는 매우 친절하게 대해줬다. 수도 관리인 것 같았다. 근데 거유교는 뭐야.
"......크흠."
학자가 헛기침을 했다.
"......"
나는 학자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도 이제 슬슬 알아차렸다. 이 녀석들은 지금 그동안 좀 과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선물로 내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것이였다.
"저는 수도의 친구에게 소개장을 써 줄게. 이걸 들고 찾아가면, 분명 흔쾌히 맞아줄거야."
그러면서 학자는 긴 머리를 쓸어올렸다.
"......"
나는 침묵했다. 학자의 친구라니......, 똑같은 괴짜일게 분명했다. 만나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후후훗....... 자, 부담갖지 말고. 누구나 만나고 싶어하는 유명인이니까."
학자는 내가 침묵한 의미를 오해한 것 같았다. 소개장을 내 손에 쿡쿡 들이밀었다.
"......고마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소개장을 마지못해 받았다.
"히힛....... 작별인사는 다 했나?"
오너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응. 끝났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에게 선물도 받았고 말이야."
이들은 지금 내가 복수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오너."
나는 오너를 불렀다. 동시에 아무렇지도 않게 리볼버를 꺼냈다.
"카오루? 그게......, 뭐야?"
아들은 이 물체에 흥미가 생긴것 같았다.
"기다렸지? 약속대로 작별인사 대신 승부야."
나는 아들의 질문을 무시하고 오너에게 선언했다. 벌칙 게임 전에 분명 그런 약속을 했었다.
"히히힛......, 기대되는걸. 우리가 모르는 게임이라니?"
오너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도박꾼이라는 종족은 새로운 도박이라면 물불을 가지리 않는 것 같았다.
"맞아. 그리고 내가 있던 곳에서는 아주 유명한 스릴있는 게임이지."
나는 대답하면서 오른손으로 리볼버를 잡았다.
"모두 할꺼지? 내기. 설마 빼는건 아니겠지?"
나는 멤버들의 얼굴을 확인하며 말했다. 리볼버의 총구를 위로 향하고 실린더에서 장탄을 빼서 왼손으로 받아냈다.
"물론, 내기 좋지. 하고말고. 그리고 약속도 했었으니까."
멤버를 대표해 학자가 대답했다. 게임의 내용도 모르고 참여하긴. 멤버들은 내가 용서한 것으로 착각하고 안심한 듯, 느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럼 모두 참여하는걸로 알고 있을게."
나는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이 녀석들은 사기로 흥했으니 사기로 망하는 법도 배워야 할 것이다. 선물은 별개였다.
나는 단지 새로운 게임을 한다는 약속을 지킬뿐. 양심의 가책따윈 없었다. 원래 그런 게임인걸?
"오너."
나는 다시 한번 오너를 불렀다.
"난 오너한테 특별히 감사하고 있어."
모든 것의 시작은 [어둠의 여신의 저주]를 멤버들에게 이야기한 오너.
"히힛......, 그래?"
주인은 기분좋게 웃었다. 앞니가 빠진 부분이 몹시 눈에 띄었다. 나는 장탄 하나를 실린더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
"그래서 말이야, 오너만 따로 당첨 확률을 두 배로 하려는데 어때?"
나는 이어 한발을 더 밀어넣었다.
"괜찮겠어? 나쁘지 않네. 히히히힛......"
오너는 순순히 수락했다.
"괜찮아, 오너. 케레브릴의 몸도 깨끗하게 씻어준것 같고."
나는 세번째 장탄을 밀어넣었다.
"근데 오너, 학자들한테는 얼마나 받아?"
"힛......?"
오너의 웃는 얼굴이 얼어붙었다. 역시나. 오너는 멤버들에게 손님들의 정보를 팔아넘기고 있었다. 욕심이 많았다.
"......"
나는 내친김에 아드님의 얼굴도 보았다. 아드님의 얼굴은 아까보다 더 파랗게 되었다.
"그냥 오너의 당첨 확률은 다섯배로 할게. "
나는 네 발째, 다섯 발째를 밀어넣었다. 여섯발을 다 넣는다면, 그건 내기 아니였다. 하지만 다섯발도 충분했다.
"걱정할 필요 없어. 잘 못해도 내가 도와줄테니까."
뭐, 물론 도와줘 봤자, 방아쇠를 대신 당겨주는 것 밖에는 없지만.
"한명씩 돌아가면서 하는거야, 처음엔 오너부터야."
나는 리볼버의 실린더를 힘차게 돌렸다.
"혹시......"
"아니야, 오너."
오너가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내가 끊어버렸다.
"이미 한번 성립된 내기는 무르면 안되지."
"......"
나는 어제 오너와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기면 되는거야, 물론 내기에서 지면 패자는 말이 없어야하고."
"......"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모두 리볼버가 뭔지는 모르지만, 이상한 분위기를 포착한 것 같았다.
"자, 게임을 시작하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오너와 멤버들의 굳어진 표정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Good Luck."
나는 엷게 웃으며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