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화-1 (70/73)

제37화《공업의 나라》의 수도 - 아침

"......"

두꺼운 문이 소리없이 열렸다. 나는 의자에 앉아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복도의 빛이 깜깜한 방 안을 비추며 서서히 방 입구 쪽을 밝혀나갔다.

"후-응"

방 입구에는 덩치가 큰 남자가 들어서 있었다. 다만 복도의 빛이 역광을 만들어서 시커먼 실루엣 밖에 보이지 않았다.

"후응 흥 후ー응"

이 녀석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문을 닫고 있었다. 내가 있다는 것은 전혀 알아채지 못한 눈치였다. 이제 슬슬 말을 걸어볼까?

"......"

나는 책상위에 양다리를 올린 채 거만하게 앉아있었다. 오른쪽 다리를 번쩍 들어올리고 기세 좋게 내려쳤다. 부츠 뒤꿈치가 나무 책상에 부딛히며 띵하고 큰소리가 들렸다.

"끼ー욧!"

"읏......"

저 녀석이 크게 괴상한 비명을 질렀다. 여전히 겁쟁이였다.

"아아아아......"

저 녀석은 천장을 바라보며 신음하고 있었다. 마치 복종한 개처럼 누워있는 자세였다. 꽤나 추한 모습이었다.

"......"

나는 피식 웃었다. 놀래킨게 잘못이긴 하지만 그래도 리액션이 과했다.

"누구야? 누구 있어......?"

내 웃음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저 녀석은 몸을 비틀거리며 양손을 바닥에 대고는 상반신을 일으켰다.

"......"

순간 내 얼굴에 빛이 비춰졌다.

"읏......"

동시에 저 녀석이 숨을 죽인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이야. 칸타로우."

나는 엷게 웃으면서 인사했다.

"거너씨......, 거너씨야......?"

칸타로우가 나를 불렀다. 놀라움 그리고 반가움이 섞인 목소리였다.

"그래, 칸타로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왜......너무해, 거너씨."

"미안, 칸타로우."

칸타로우의 볼멘소리에 나는 순순히 사과했다. 솔직히 그렇게까지 놀랄 줄은 몰랐었다.

"이제 괜찮아......"

칸타로우가 천천히 일어섰다.

"칸타로우, 근데 이제 슬슬 불을 켜줬으면 좋겠어. 이 방, 램프가 없던데?"

모처럼 칸타로우와 오랜만에 만났는데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 하고 싶었다.

"......거너씨, 그래ㅐ서 계속 이런 어두운 방에서 날 기다린거야?

"응."

칸타로우가 어이없다는 투로 물었지만, 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나는 설마 거너씨가 날 놀래키려고 숨어있었나 싶었어."

"......"

"『Light』"

"읏......"

칸타로우의 목소리와 동시에 방안이 확 밝아지자, 나는 무심코 얼굴을 찡그렸다.

"거너씨 정말 오랜만이야."

이마에 손을 얹고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칸타로우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시커먼 복장에 그리운 얼굴이 반가운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머리가 많이 자랐네."

"그래?"

나도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이거 굉장하네."

나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천장에는 밝게 빛나는 수정구 여러개가 박혀있었다. 마치 전구처럼.

"요즘 수도에는 이걸 설치하는게 유행이거든. 최신 발명품이라고."

"이것도 마법적인 장치야?"

"응. 마력을 소비하는 형태라 다 쓰면 갈아줘야 하지만."

"흐음......"

에너지원은 내장되어 있는 것 같았다. 단순히 일회용일까? 아니면 재활용이 되는걸까?

"아까 그게 시동어?"

"응, 고대어라 일상에서는 사용하지 않아서 오작동의 걱정도 없어서 좋지."

"흐음......"

"올해의 국왕 은사 발명상은 이게 제일 유력하대."

"그게 뭔데ㅐ?"

칸타로우에게서 흥미로운 주제가 나왔다.

"《공업의 나라》는 창조의 신을 모시는 기술개발국이야. 왕실에서 발명이나 새로운 기술의 개발을 장려하고 있지. 국왕 은사 발명상은 그 일환으로 그 해의 최고의 발명품을 국왕이 직접 표창해 주는거고."

칸타로우가 주먹을 꽉 쥐었다.

"상금이랑 기념품도 주고, 《공업의 나라》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동경하는, 아주 명예로운 상이지!"

칸타로우가 열변을 토했다. 《공업의 나라》의 기술자들의 인생 목표 중 하나인 것 같았다.

"오, 좋네. 근데 영상에는 안주지 않아?"

거기다가 만약 준다고 해도 칸타로우의 영상 작품들은 너무 외설스러워서, 전형 대상으로 선택될 리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칸타로우와는 평생 무관한 상이였다.

"그건 그렇지......"

칸타로우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나저나, 칸타로우의 공방, 훌륭한걸? 대단해."

"뭐 별거 아니야, 거너씨......"

내 말에, 칸타로우가 쑥쓰러워하며 대답했다. 나는 좀 더 어둡고 우중중하면서 음침한, 비좁은 공방을 상상하고 있었으니까.

"......"

나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책상 위에는 난잡하게 물건들이 널부러져 있었지만, 다른 곳은 청소가 잘 되어있었다. 시꺼먼 칸타로우의 이미지와는 달리 매우 청결했다.

"칸타로우 겸손해 할 필요 없어. 일국의 수도에 3층짜리 공방을 가지고 있는건 충분히 자랑할만한 일이니까."

칸타로우에게는 재능이 있었다. 이 녀석은 좋은 영상들을 찍으면서, 그것을 이세계의 외로운 남자들에게 직접 팔아주는 열정도 가지고 있었다. 열심히 일해서 벌은 것이니, 자랑해도 좋았다.

"아니, 나 혼자만의 힘도 아닌걸......"

칸타로의 뺨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칭찬을 받은 것이 상당히 기쁜 것 같았다.

"맞다. 칸타로우, 결혼했었어? 예쁜 부인이라 놀랐어."

놀랍게도 칸타로우는 유부남이였다. 성인 영상을 촬영하고 그것을 판매하는데도 이해해주는 부인이라서 다행이였다.

"그렇지? 내 아내지만 참 예쁘다고."

칸타로우가 눈꼬리를 내리면서 말했다. 칸타로우는 애처가였구나.

"미인이고 재능도 있지. 지금의 사업의 절반은 아내 덕분이야. 안심하고......, 자리를 비울 수도 있고......"

"어? 거너씨, 근데 그건 어떻게 알았어? 그리고 아내는?

칸타로우는 이제서야 공방에 부인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묘하고 둔감하네.

"부인은, 찻집에서 유에라들과 차를 마시고 있어. 나는 공방에 남아서 칸타로우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렇구나......"

나는 부인의 얼굴을 떠올렸다. 솔직히 칸타로우에게는 아까웠다. 예쁜 부인. 나는 오늘 아침, 부인을 처음 만났을 때의 , 《공업의 나라》의 수도에 도착했을 때를 상기했다.

.

.

.

사랑의 여신의 날 아침, 우리는 《공업의 나라》의 수도에 도착했다. 이것으로 [어둠의 여신의 저주]를 풀기 위한 여행이 절반쯤 진행됐다. 연인들도 기뻐하는 것 같았다.

수도에서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쭉 가면 《자유의 나라》에 도착한다. 하지만 우리는 수도에서 조금 머무를 생각이였다. 조금 지쳤기도 했고, 칸타로우의 공방에도 들러야 하니까.

이 나라의 수도는 천도된지 수십년밖에 안된, 아직도 새로운 수도였다. 그래서인지 이 도시는 다른 도시와는 좀 달랐다. 왕성을 중심으로, 도시가 나선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도 흐르고 있었다. 강은 근처 커다란 호수에서 시작되는 것이였다.

호수에는 모래사장도 있는, 시민들의 휴식처였다. 시간이 된다면 가볼까 생각 중이였다. 연인들이랑 모래사장에서 수영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수영복 차림도 볼 수 있고 말이다.

《공업의 나라》의 수도는 지금도 성벽을 연장하면서 새로운 구획을 건설하고 있었다. 나선형이기 때문에, 무한히 커져나갈 수 있으니까. 아무튼 우리는 수도로 들어섰다.

"......"

나는 멀리 보이는 왕성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 도시에서는 어디에 있든, 왕성을 올려다볼 수 있었다.

"어때? 예쁜 성이지?"

레이첼이 마치 소개하듯이 말했다. 이 아이는 《공업의 나라》의 수도에서 모험자 등록을 한 만큼 수도를 잘 아는 것 같았다.

"응, 예쁘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첼의 말대로 새하얗고 예쁜 성이였다.

"그런데, 조금 기대와는 다른걸?"

나는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왜? 나는 마음에 드는걸?"

레이첼은 내 대답에 약간 토라진 표정을 지었다. 커다란 눈이 찌릿 나를 째려보았다.

"《공업의 나라》니까. 뭔가 좀 더 기계식같은걸 생각했거든."

뭐 여기가 RPG풍의 이세계라고 해도 진짜 게임 속 세계는 아니니까 말도 안된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뭔 소리야, 바보 같아."

"......"

레이첼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이 아이는 애인인 나한테도 말에 자비가 없었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응."

케레브릴의 목소리였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기다려줘."

케레브릴은 성문을 빠져 나와 이쪽으로 걸어왔다. 방금 전까지 케레브릴과 대화하고 있던건 성문 위병인 것 같았다.

"늦었네?"

통행자들은 《공업의 나라》의 수도 성문에서 통행세를 내야하는데, 그때 유에라와 케레브릴은 따로 불려갔었다. 이야기를 들어야 할게 있다면서.

"벌써......, 아무튼 유에라는 요령이 없다니까......."

케레브릴은 성문쪽을 보며,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유에라는?"

둘은 같이 들어갔는데도 나온 것은 케레브릴 뿐이였다.

"유에라는......아마, 좀 더 걸리지 않을까 싶은데......"

케레브릴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없었다.

"근데, 케레브릴. 무슨 얘기 했어?

레이첼도 의아했는지, 바로 물어봤다.

"대하에서의 일이였어."

"에엣......... 또 물어본거야?"

레이첼이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였다. 유에라와 케레브릴은 이미 해안경비대장에게 자세히 보고했었으니까.

"근데, 어떻게 성문 위병들은, 유에라와 케레브릴을 알아본거지?

레이첼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통행세를 내려고 줄을 서 있었을 때, 성문의 위병들이 망설임 없이 유에라와 케레브릴에게 다가왔었다.

"둘 다 눈에 너무 띄니까."

둘 다 굉장한 미인에다가 각각 다크 엘프와 《동쪽 끝 섬》의 옷차림이라는 한눈에 구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 그렇구나......"

레이첼도 금새 이해했다.

"그리고, 울리가 묵을 숙소를 알려달래."

"그걸......, 왜? 위병들한테 말해?

레이첼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나도 의문이 들었다.

"왕실에서 나와 유에라한테 답례를 하고 싶은 것 같아."

"와아......케레브릴, 정말 굉장한 일이네."

"하지만......, 나도, 유에라도 그럴 의도는 아니였는데......"

케레브릴은 별로 기뻐하지 않았다.

"괜찮아, 케레브릴, 케레브릴은 그만한 공로를 했으니까."

수많은 승객들의 목숨을 구한다는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였다.

"그런가?"

케레브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후후......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케레브릴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

.

.

.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아."

유에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야 끝난 것 같았다.

"오. 유에라 나왔어."

레이첼의 말대로였다.

"부디, 이 도시에서......"

"시끄럽다."

젊은 위병이 뭔가 기계적인 인사를 하려 했지만, 유에라가 가로막았다. 왠지 유에라는 약간 화가 난 것 같았다.

"......유에라씨, 나중에 연락드리죠."

젊은 위병은 굴하지 않고 끝까지 할말을 다 했다. 우리는 아직 어디에 머무를지 정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연락한다는걸까?

"흥......"

유에라는 젊은 위병에게 대답도 하지 않았다. 콧방귀를 뀌고는 터벅터벅 이쪽으로 걸어왔다.

"기다리게 했군."

유에라는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말했다. 약간 땀이 나는 것 같았다.

"유에라, 왜 그래? 화났어?"

"흥......어느 나라든, 성문위병이란 놈들은 최악이군."

레이첼은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지만, 유에라는 제대로 대답하지 않았다. 왜 그런걸까? 혹시 위병에게 성추행이라도 당한걸까?

"유에라, 어땠어?"

"......"

케레브릴이 왠지 걱정스럽다는 듯이 물었지만, 이번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어땠어'라는건 무슨 뜻이지?

"......"

유에라는 눈을 크게 뜨고 가만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유에라?"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이름을 부르자, 유에라는 홱 고개를 돌렸다.

"아무튼 움직이지. 더이상 이런 곳에 있고 싶지 않다."

유에라는 그렇게 말하며, 자연스럽게 내 팔을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강한 힘으로 나를 잡아당기듯이 나아갔다.

"아앗...... 유에라, 치사해......"

"레이첼, 지금은 유에라가 하고 싶은대로 하게 두자."

레이첼의 불평은 케레브릴이 달래는 것 같았다.

"......"

나는 성문을 돌아보았다. 젊은 위병은 아직도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얼굴을 머리에 새겼다.

"저기, 봐. 귀여운 공원이 있어."

"정말이네."

레이첼이 가리킨 끝에 작은 공원이 있었다. 뭔지 잘 모르는 가게들이 즐비한 가운데에 존재하고 있었다.

"......?"

하지만 나는 뭔가 부자연스러움을 느꼈다. 이 공원은, 잘 관리된 관목들 덕분에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정말 이쪽 맞아?

레이첼은 공원에 관한 것은 잊어버린 것처럼 나에게 새로운 질문을 했다.

"응. 이 길 따라서 쭉 가면 될 것 같아."

우리는 지금 칸타로우의 공방을 향하고 있었다. 아직 시간이 일러서, 얼른 볼일을 끝내 버릴 생각이였다.

"왠지...... 거리 분위기가 이상해."

레이첼은 주위를 휙휙 둘러보고 있었다. 이 근처는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응, 나도 알아. 그냥 환락가라고 생각해."

나는 태평하게 대답했다. 우리는 술집과 의심스러운 가게들로 난립한 거리를 걷고 있었다.

"이 근처까지 온건 처음이야?

"당연하지, 바보야!"

레이첼은 얼굴을 붉히며 화를 냈다.

"모험가 길드는 11 지구에 있다고......"

레이첼은 그렇게 말하면서 주변을 살폈다.

"여긴 7지구니까."

유에라가 말했다.

"7지구는, 처음부터 환락가로 설계된 곳이야."

케레브릴은 뒤에서 가르쳐 주었다. 나와 유에라는 나란히 앞에서, 케레브릴과 레이첼은 뒤에서 걷고 있었다. 레이첼은 약간 불만스러워 했지만.

"둘다, 수도를 잘 알아?"

나는 궁금해서 물어봤다. 왠지 둘다, 처음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두번째다."

"나는 세번째."

역시 두 사람 모두 수도가 처음이 아니었다. 그리고 유흥가도 포함해서. 적어도 레이첼보다는 수도를 잘 아는 것 같았다.

"이잇......"

레이첼은 불만스러운 듯 툴툴거렸다.

"나는 유흥가따위에 관심 없다고, 대신 상업지구는 잘 알거든?"

그리고 나서, 조금 삐진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후훗......, 너는 어린애 같은 구석이 있군."

유에라는 레이첼을 되돌아보며 도발적인 어조로 말했다. 나는 분위기를 파악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다음에, 나와 술 한잔 하러 가지."

그리고는 유에라는 과시하듯이 몸을 나에게 기댔다. 사랑스러운 얼굴을 가까이 대고는 속삭이듯 말했다. 어른스러운 몸짓이었다.

"응, 가자."

물론 나는 즉답했다.

"아앗......, 카오루 바보!"

레이첼이 또 투덜거렸다. 하지만 별 걱정은 하지 않았다.

"후훗...... 어쩔 수 없는 놈이군. 너도 같이 데려가 주지."

"흥...... 뭐, 유에라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같이 가줘도 되지만......"

유에라와 레이첼은 매번 티격태격하는 주제에 사이가 나쁘지 않으니까 말이다.

"저기, 봐봐."

레이첼은 무언가를 발견한 것 같았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한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분홍색 가게야."

분명 레이첼의 말대로 분홍색 도료로 칠해진 2층짜리 가게가 있었다.

"꺄아핫......, 『장난감 가게』래. 귀여운 것들도 많이 있을까?"

"......"

레이첼은 천진난만하게 말했지만, 나는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환락가에 있는 장난감 가게라니, 안봐도 훤했다.

"......"

"......"

유에라도 케레브릴도 우물쭈물거리면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 둘 다 저기가 뭘 파는 곳인지 아는 것 같았다

.

.

.

"......여긴가 보네."

케레브릴이 멋들어진 3층짜리 석조 건물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면에는, 『closed』라고 쓰인 팻말이 걸려있었다.

"너무 훌륭한거 아닐까? 정말 칸타로우의 공방이야?

나는 의문이 들었다. 크고, 아름다운 왠지 칸타로우의 공방이라는 이미지는 아니였다.

"자, 저거 봐."

케레브릴이 건물 한 곳을 가리켰다, 동으로 된 작은 간판에, 'Video'라는 글자가 각인되어 있었다. 내가 예전에 칸타로우에게 알려준 단어였다.

"......정말이네."

아무래도 칸타로우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잘나가는 것 같았다.

"너희들 이 공방에 볼일이 있는거지? 안에 사람이 있을수도 있잖아? 두드려보는게 어때?

아무것도 모르는 레이첼은 순진하게 그렇게 말하면서 닫힌 문을 가리켰다. 아직 유에라와 케레브릴에게, 칸타로우에 대해 듣지 못한 것 같았다. 물론 나도 말하지 않았고.

"그럴까?"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노크를 해보았다.

"......"

잠시 기다리면서, 그동안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칸타로우의 공방은 유흥가 한복판, 수상한 호텔과 싸구려 창관 사이에 끼어있었다.

"......네~"

공방 안에서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문이 열리고 안에서 나온 것이....

"사실 나도 놀랐어. 칸타로우가 그렇게까지 놀랄줄은 몰랐거든."

"나는 거유교 녀석들인줄 알았다고......"

칸타로우가 의외의 말을 했다. 그러고 보니 온천마을에서도 그 단어를 들었었다. 도데체 거유교라는게 뭔데.

"거유교가 뭐야?"

이상한 곳일게 틀림없었지만, 나는 물어봤다.

"가슴을 좋아하는 녀석들이야."

"......그렇구나"

칸타로우의 설명은 간단했다. 그러면 나도 거유교 신자인가?

"정확히는, 거유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큰 가슴을 좋아하는 녀석들이야."

"응......"

그냥 이름 그대로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그런 그냥 거유를 좋아하는 모임이었던 것 같은데...... 점점 사람이 늘어나더니 파벌이 생겨난거야. 미유파라던가, 폭유파라던가."

"응......"

나는 적당히 맞장구를 쳤다.

"그것까지는 좋았는데, 거유가 아니면 여자도 아니라는, 과격한 사상으로 빠져버렸어......"

칸타로우가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이 녀석은 거유든 빈유든, 상대가 여자라면 OK인 녀석이였다.

"그래서 거유교라고 부르는거고?"

"그렇지."

그렇게까지 과격한 생각이라면, 일종의 종교가 되는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거유가 아니면 여자가 아니라......

"미친 녀석들이네."

"제대로."

내 감상에, 칸타로우가 분개하며 덧붙였다. 거유교에게 화가 많은 것 같았다. 왜 그러지?

"여자아이의 가치는 커다란 가슴만 있는게 아니라고. 얼굴이라던지, 성격이라던지, 테크닉이라던지, 보지 상태라던지 등등 모두 중요하다고."

칸타로우는 역시 칸타로우였다.

"그래서, 그 거유교 녀석들, 건물에 불법 침입하기도 해?

거유교는 소란을 피웠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응."

내 질문에, 칸타로우가 불안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 과격한 놈들이......거유인 여자아이를 납치, 감금하는 사건이 벌어졌거든."

"흐음."

"내 아내도 거유라서. 걱정되지."

"응."

"거유를 사랑하는 온건파는 좋은 편이지. 단지 거유의 훌륭함을 억지로 퍼뜨리려 하거나, 빈유를 거유로 키우려고 하는 교도파 패거리들이......"

"칸타로우, 잠깐만."

나는 재잘재잘 떠벌리는 칸타로우를 말렸다. 왜, 이렇게 거유교에 대해 잘 아는 거야?

"거유교 이야기는 그만하고, 다른 이야기를 하자고. 오랜만에 봤는데 그 얘기만 할 순 없잖아."

"그럴까?"

 나는 거유교 이야기를 중단했다. 거유교 같은 건 이제 아무래도 괜찮았다.

"이제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할까?"

드디어 《공업의 나라》의 수도에 왔다. 이제 이곳에 온 주요 목적을 달성해야 했다.

"자, 칸타로우. 약속의 때야."

나는 칸타로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예의 그 물건을 받기 위해서였다.

"......"

"칸타로우."

칸타로우가 침묵했지만, 나는 이름을 부르며 재촉했다. 이 곳은 그것을 받기 위해 일부러 들른 것이였다. 시치미를 떼도 소용이 없었다.

"알겠어, 거너씨......"

칸타로우가 오른손에 들고 있던, 큰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벽쪽의 사이드 테이블 서랍에서 작은 수정구를 꺼냈다. 이것이 칸타로우의 영상수정이였다.

"......자."

"고마워."

나는 수정구를 받았다. 그리고 손안의 수정구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 안에는 나와 유에라가 처음 H했을 때의 모습과, 유에라가 칸타로우에게 박히는 모습이 담겨져 있었다.

무사히 전달받아서 다행이었다.

"칸타로우, 뭐해? 앉아."

"응......"

칸타로우는 멍하고 기운이 없어보였다. 힘없이 의자에 주저 앉았다. 칸타로우는 항상 자신이 촬영한 영상에 몹시 집착했다. 이런 점이 장인을 만드는 걸까?

"기운 내. 그래서 어때? 내 아이디어, 도움 좀 됐어?"

"그게 말이야. "

칸타로우는 얼굴을 번쩍 들었다. 하여간 종잡을 수 없었다.

"거너씨, 이걸 봐줘."

칸타로우가 커다란 가방을 열고 내용물을 꺼냈다.

"오늘은 아침부터 다른 공방에 이것을 가지러 갔었어. 공들인거야......

칸타로우가 가방 안에서 꺼낸 것은 카메라였다. 이전의 카메라와 달리, 양손으로 들고 있는 네모난 모양의 카메라였다.

"이게 새 카메라?"

"맞아, 근데 영상이 아니라 정지된 장면을 찍는 카메라야."

칸타로우는 새 카메라를 펼쳤다.

"패키지에 넣을 사진을 더 좋게 만들고 싶어서 말이야......

"그렇구나. 이걸로 뭐 찍은건 있어?"

"있어, 가장 최근에 찍은건......"

내 질문에, 칸타로우가 가방 안을 들쑤시더니 세 장의 사진을 꺼냈다.

"자, 거너씨......"

.

.

.

"......놀라운걸. 칸타로우, 재능이 있어."

앞의 두 장은 퇴폐적이고 성숙해보이는 여자 사진과 예쁜 여자아이의 사진이었다.

"그래?

칸타로우는 기쁜 듯이 웃었다. 영상을 촬영하는걸 업으로 삼고 있는 만큼, 칸타로우에게 사진가로서의 재능도 있는 것 같았다.

"그래, 좋은 사진인것 같아."

칸타로우가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하지만 이 녀석은 지금 자신이 한 것의 대단함을 아직 깨닫지 못한 것 같았다.

"이 카메라, 아무나 촬영할 수 있어?

"어? 아니. 나밖에 못쓰는데?"

나는 칸타로우에게 제안했다.

"칸타로우, 누구나 촬영할 수 있도록 개량해. 그리고 칸타로우는 사진가로 활동하면서 개량한 카메라를 판매하는거야 우선 부업으로라도."

내게는 칸타로우를 설득할 근거가 있었다.

"분명히, 엄청 팔릴거야 생산이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나는 칸타로우의 카메라가 불티나게 팔리는 것을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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