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레이첼도 내 옆에 붙어서 약간 수줍게 스테이터스를 열었다.
"음......"
아저씨는 숙박부에 지저분한 글씨로 우리의 스테이터스를 쭉 적어내려갔다.
"......"
나는 아저씨의 발밑에 있는 강아지를 내려다보았다
"......"
이 강아지는 들개인지 품종이 명확하지 않아보였고, 아직 어려서 목줄도 하지 않고 있었다.
"카오루, 4층이래."
레이첼이 어느새 방 열쇠를 받았다. 또 멍 때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고마워, 레이첼"
나는 레이첼이 가진, 금속제 열쇠를 보면서 고맙다고 말했다.
내 마음이 지금 여기에 없다고나 할까, 마음에 불편함이 느껴졌다.
"뭘."
레이첼은 입술을 초승달 모양으로 만들며 기분 좋은 듯 씩 웃으며 말했다. 미소녀의 밝은 미소였다.
"자, 자."
그리고 나서 나에게 딱 붙어서, 기쁜 듯이 내 손을 붙잡았다.
"응."
나도 레이첼의 손을 잡았다.
"와아...... 넓은 방이야."
"정말이네."
방은 넓고 청결했다. 의외였다. 이 호텔은 상인이나 비즈니스용 호텔이라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레이첼은 창가에 다가가 커튼을 열었다. 오후의 따스한 햇빛이 방을 밝혔다. 창문이 열리자 부드러운 바람이 방 안에 들이쳤다.
"카오루, 오후에는 어떻게 할꺼야?
"글쎄, 어떻게 할까......"
레이첼의 질문에 나는 애매하게 대답했다. 예정이나 계획 따위는 없었다.
"난, 모험가 길드에 가고 싶어."
"아아......"
나는 레이첼의 말에 바로 납득했다. 그러고 보니, 레이첼은 《공업의 나라》의 수도에서 모험가 등록을 했다고 했었다. 레이첼은 모험가이기도 했다.
"그래 나중에."
나는 짧게 대답했다. 뭘 하든 일단 나가는게 좋을 것 같았다.
"너희들도 모험가 길드에 등록하는게 어때?"
레이첼은 부담없이 말했다. 흠? 우리는 《자유의 나라》를 향해 여행을 하는것 뿐이지, 모험을 하는 건 아니였다.
"관심 없는걸."
나는 엷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모험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잇...... 등록 정도는 상관 없잖아......"
레이첼은 내 대답이 못마땅한 것 같았다. 분명 모험가에 좋은 이미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등록하는 것 정도는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였지만, 중요한건 지금 유에라와 케레브릴이 없었다.
"......"
유에라와 케레브릴은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칸타로우가 데리고 간 것이였다. 처음에는 둘 다 마음이 내키지 않는 모양이였다. 왜냐하면 둘 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약속을 한 것이 아니였으니까.
"......"
하지만 부인이 두 사람을 설득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나를 위해 영상을 촬영하는 것이고, 어떤 형태로든, 인생의 젊고 아름다울 때의 모습을 기록해 두는 것은 중요하다고.
그리고 부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유에라와 케레브릴의 귀에 대고 무언가 속삭였었다. 부인이 무언가를 말하자, 둘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졌었다.
"뭣......?"
"난, 그런건......"
두 사람은 가끔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부인의 설득에 넘어가버렸다. 나는 동시에 두 사람의 [배덕] 스킬이 발동된 것을 알아챘다. 부인이 대체 뭐라고 속삭인걸까?
"......"
두 사람을 다른 남자에게 안기는 건 늘 그래왔긴 했지만, 이번에는 유난히 가슴이 설렜다.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촬영을 해서 그런듯 싶었다. 이번 촬영은 견학금지였다. 즐거움은 뒤에 두는 것이라고 부인이 말했었다. 그런걸 보면 칸타로우의 아내도 정말 변태적이였다.
"......"
유에라와 케레브릴은 지금쯤 뭐하고 있을까. 벌써, 촬영이 시작됐을까......?
"카오루!"
"읏......"
레이첼이 강하게 부르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하아......"
레이첼은 한숨을 내쉬고는 비취색의 큰 눈동자로 나를 처다보았다. 뭐랄까, 말 안듣는 동생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미안, 레이첼."
나는 사과했다.
"이제 됐으니까, 얼른 준비하고 가자."
다행히 레이첼은 별로 화내지 않았다.
"앗, 강아지다......"
레이첼은 로비에서 강아지를 발견하고는 환호성을 질렀다. 강아지에게 다가가 무릎을 바닥에 대고 양손으로 강아지를 끌어안고 있었다.
"콩같이 귀엽네."
나도 다가가 허리를 굽히고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강아지는 파르르거리고 있었다.
"풋......, 그게 뭐야......"
"난 강아지를 그렇게 표현해."
내 말에 레이첼이 웃었다. 콩같이 작고 귀여우니까 말이다.
"너 강아지 키워본적이 있어?
"응, 키웠지."
물론 애완견이라기보다 사냥개이긴 하지만.
"아저씨, 이 아이, 이름이 뭐야?
레이첼은 강아지를 안은 채 일어서서 아저씨에게 강아지 이름을 물어보고 있었다.
"......그 녀석은 강아지다."
"......"
"......"
아저씨의 대답에 나와 레이첼은 침묵했다. 강아지에게 너무했다.
"그럼, 헥토르는 어때?"
내가 멋대로 대답했다.
"헥토르가 뭐지?"
"......신화에 나오는 영웅의 이름이야."
아저씨가 물어보자, 나는 아차 싶었지만 대답했다.
"흐음......"
레이첼은 말똥말똥 강아지를 쳐다보았다.
"아저씨, 얘 헥토르라는 이름으로 불러도 괜찮아?"
"아아......"
레이첼의 질문에, 아저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 같은 건 아무거나 붙여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는게 분명했다.
"꺄하핫...... 너 헥토르래. 강해보이는 이름이야."
레이첼은 해맑게 웃으면서 강아지에게 말했다. 물론 어린 강아지라 별로 강해보이지는 않았다.
"......"
바깥은 매우 맑았다. 햇빛이 눈부시게 내리쬐고 있었다.
강아지 헥토르와 놀았더니, 복잡했던 마음이 한결 편해진 것 같았다. 역시 애완동물은 사랑스러웠다.
물론 완전히 안절부절한 마음이 없어진 건 아니지만.
.
.
.
"카오루......?"
레이첼이 호텔에서 나와 내 이름을 불렀다. 여태 강아지 헥토르와 로비에서 놀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이쪽이야."
나는 정면으로 가면서 레이첼을 불렀다.
"그렇게 마사지가 받고 싶어? 피곤해?"
레이첼은 나에게 다가오더니 나에게 정체불명의 의미모를 말을 쏟아냈다.
"뭔 소리야?"
"자, 봐"
나의 내 의문섞인 목소리에, 레이첼이 오른손을 들어 근처 건물을 가리켰다. 나는 그것을 시선으로 쫓았다.
"......"
나는 침묵했다. 레이첼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끝에는 분홍색 간판이 있었고, "MASSAGE FOOT&BODY"라고 써져 있었다. 일반적인 마사지 샵이라기보다는 성감 마사지 같은 가게인 것 같았다.
이 호텔은 7지구, 즉 환락가 한복판에 있었다. 정면에 야한 마사지 가게가 있는것도 무리는 아니였다.
"......이번에는, 레이첼과 단 둘이서만 가보려고."
나는 적당히 둘러댔다.
"둘이서?"
"응."
레이첼의 질문에 나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하지만 이 간판에는 "연인코스"라고 써있었다.
"애인하고 가는것도 즐겁지 않을까? 더 자극적이잖아."
이웃한 곳에서 마사지를 받으면 즐거울거야. 예전에 갔던 숙소처럼 커튼 칸막이 너머에서.
"에헤헤 ......, 그런가......?
레이첼은 즐거워하며 해맑게 웃었다.
.
.
.
"오늘은 정장이네?"
"정장이 뭐야?"
내 목소리에 레이첼은 이상하다는 듯이 반문했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날처럼 오늘 레이첼은 검은색 망토와 고깔모자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게 마술사의 정장 아니야?
"아니? 그냥 멋있으니까 입은건데?"
"......그렇구나."
나는 왠지 기대에 배신당한 기분이였다.
"어때? 잘 어울려?"
레이첼은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검은 망토 밑에는 흰색 바탕에 빨간 장미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전부 비쌀 것 같은 옷들이었다.
"완전 잘 어울려. 귀여워."
내 머리가 어떻게 된 것 같았다. 미소녀가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 너무 에로해 보였다.
"그렇지? 고마워."
레이첼은 입술을 초승달 모양으로 만들면서 웃었다.
.
.
.
"와아......"
레이첼은 환호성을 질렀다. 눈앞의 큰 거리에서, 네 마리의 말이 짐마차를 끌고 있었다. 짐칸에는 거대한 광대 같은 인형이 타고 있었다.
"어때? 《공업의 나라》의 수도는 대단하지?"
"응, 정말 대단하네."
레이첼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인형이라든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거리에 넘쳐났다. 이제서야 《공업의 나라》의 수도에 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많은 어린 발명가들이 자재가 담긴 상자들을 들고 희망찬 얼굴로 걸어다녔다.
좋은 나라, 좋은 도시 같았다.
.
.
.
"도착했다."
커다란 돌로 지은 건물 앞에 섰다. 문 위에는 서양식 검과 마술사의 지팡이가 비스듬히 교차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모험가 길드의 의장이였다.
"크지?"
"응, 굉장히 훌륭한 건물인걸."
모험가 길드는 굉장히 컸다. 마치 백화점 같은 거대한 건물이었다.
"......"
그때 나는 뭔가 예감이 들었다. 홀스터에서 리볼버를 빼내, 코트 안쪽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
.
.
"레이첼?"
모험가 길드에 들어서자마자, 누군가가 레이첼의 이름 불렀다. 여자 목소리였다.
"앗, 다들......"
레이첼도 즉각 반응했다. 목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여자아이 세명이, 테이블석에 앉아 있었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레이첼이 여자아이들에게 달려갔다. 아무래도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레이첼, 무사했구나, 다행이야......"
가장 연장자 같은 여자아이가 일어나서 레이첼을 껴안았다. 다른 여자아이들도 레이첼에게 달려왔다
"미안해, 얘들아. 걱정시켜서......"
레이첼도 친근하게 말을 주고 받고 있었다.
"......레이첼, 저쪽 오빠는?"
가장 어려보이는 여자아이가 나를 보며 말한다.
"아......, 카오루......"
레이첼은 나를 보고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난 괜찮아. 레이첼, 오랜만에 만난거지?"
"......그렇지."
저 여자아이들은 레이첼이 모험가 시절 때 만난 동료들 같았다. 오랜만에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게 해야겠지.
"그럼 카오루, 저기서 모험가 등록하고 와. 우린 저쪽에서 기다릴게."
"......그래."
레이첼은 그렇게 말하며 길드의 카운터를 가리켰다. 모험가 길드 안에서 거절하기 힘든 말을 해버렸다. 모험가를 좋아하지 않는데......
"이것으로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뭔가 질문 있습니까?"
"없어, 고마워."
나는 접수하는 아가씨에게 고맙다고 말하고는 일어섰다. 어려운 설명 따위는 없었다. 길드는 그저 일을 알선해 주는 곳일 뿐이였다.
"후우......"
나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보니 모험가가 되어버렸다. 손 안에는 길드에 소속됐다는 증거인 카드가 있었다.
"......"
일단 레이첼들에게 가자.
"......"
길드 안은 굉장히 넓었다. 레이첼들은 로비가 아닌, 술집 같은 식당 공간에 있었다. 귀여운 여자애들이라 그런지, 눈에 굉장히 잘 띄였다.
그렇다 치더라도 모험가 길드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었다. 수인이라든지, 용병이라든지, 드워프라든지.
"요즘, 꼬추가 간지러워서 그래."
"이봐, 덜렁이. 그럴땐 더 써줘야지."
방금 지나간 테이블석 아저씨들의 대화가 들렸다
테이블에는, 작은 아저씨와 마른 아저씨가 앉아 있다. 둘 다 용병같은 외모를 하고 있었다.
"젊은 여자한테?"
"맞아, 빡빡한 보지로 닦지 못하니까 가려워지는 거지."
저질스런 대화였다.
.
.
.
"아, 카오루. 자, 앉아."
레이첼은 나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말했다.
"......"
여자아이들은 조심스러운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아마 레이첼의 연인으로 취급되고 있는 것 같았다.
"응."
나는 태연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오빠가 그 거너야?"
제일 어려보이는 여자아이가 직접적으로 물었다. 이 아이의 직업은 도적일까? 왠지 그런 느낌이 들렀다.
"나를 알아?"
"......여자애들이라면 다 알지."
도적은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유에라와는 다른 느낌의 쿨한 여자아이인 것 같았다. 예쁘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짧은 금발머리와 파란 눈동자가 귀여웠다.
"......멋진 결투였으니까."
"......그래."
나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옥수수밭의 도시에서의 결투 이야기가 벌써 수도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레이첼이 무사해서 다행이야."
가장 나이 많아보이는, 갈색머리 여자아이가 웃으면서 말했다. 직업은 아마 전사가 아닐까? 조금 덜렁거리는 듯한 인상을 받긴 했지만, 움직임에 절도가 있었다.
"당신이 그 스토커 자식을 쫒아냈다고? 우리 레이첼 걱정을 많이 했어."
"나도 그 녀석이 싫었으니까."
전사에게 대답하면서 생각했다. 이 아이는 내 타입이였다. 나는 왠지 기가 센 여자를 좋아했다.
"싫다고?"
전사는 테이블로 몸을 내밀었다. 얇은 천의 캐미솔 안으로, 큰 가슴골이 보였다. 분명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었다.
"왠지 첫인상부터 짜증났었거든."
"아하핫......, 동감......"
전사는 가슴을 출렁이며 호쾌하게 웃었다.
.
.
.
"레이첼씨, 정말 그만둘건가요......?
"미안해, 나는 카오루랑 여행 중이여서 ......"
나는 레이첼과 이야기하고 있는 여자아이를 쳐다보았다. 이 아이는 금발에 수녀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어딘가의 신관인 것 같았다.
"외로워져요......"
"우리, 아직 한달 정도는 수도에 있을거야......"
신관이는 느긋한 성격에 가장 큰 가슴을 가진 여자였다. 하지만 내 타입은 아니였다.
"......"
여전사도, 신관도, 도적도 모두 귀여웠다. 개성은 각각 다르지만 모두 뛰어났다.
"......"
나는 옆에서 입을 벌리고 웃는 미소녀를 바라보았다. 모험가 여자아이들도 귀엽지만 역시 이 아이가 제일 귀엽다고 생각했다.
"왜 웃고 있는거야? 그렇게 실실 웃지마 내가 다 부끄럽다고."
"......그런가."
레이첼은 언제나처럼 분명하게 말했다.
.
.
.
"후우......"
지금 레이첼은 결투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내 모습이 레이첼의 눈에 어떻게 비쳤다던지, 도와주러 와서 너무 기뻤던 일이라던지.
나는 말없이 그것을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듣고 있었다.
"......?"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리는 것 같았다.
"읏......!"
나는 심장이 멈춰버리는 것 같았다. 점점 시야에서 색이 사라지고 새하얗게 변해갔다. 나는 이 감각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
공포에 잠식되며 필사적으로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신체의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
치지직거리는 아날로그 TV의 잡음같은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이윽고 점점 색이 나타나더니 뭔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유리 너머로 경치를 보는 듯한 신기한 감각이었다.
"......"
전혀 꾸밈이 없는 재미없는 방이었다. 노란색 바탕의 벽지와 노란색 털의 융단이 깔려 있었다. 가운데에는 고급스러운 갈색 가죽 소파가 놓여 있었다.
"읏......"
나는 숨을 죽였다. 고요한 방안에 누군가가 문을 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 방인가......?"
"읏......!"
나는 놀라서 말문이 막혀버렸다. 잘못 들었을 리가 없었다. 이 사랑스러운 허스키한 목소리는, 내가 너무 좋아하는 유에라의 것이였다.
"맞아, 유에라. 좋은 방이지?"
이어서 칸타로우의 목소리도 들렸다. 두 사람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만 들릴 뿐, 내게 보이는 것은 벽과 바닥과 소파뿐이였다.
"흥...... 재미없는 방이군."
유에라가 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와 같은 인상을 가진 것 같았다.
"이 정도가 딱 좋은거야."
"응......?"
왠지 느껴졌다. 칸타로우의 목소리가, 점점 유에라에게 다가갔다.
"그래야 유에라가 비춰지니까 말이야."
"아앗......? 이 바보가......, 날 만지지마라......"
칸타로우의 목소리와 함께 옷 스치는 소리가 났다. 칸타로우는 유에라의 몸을 만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앞으로 할 일에, 쓸데없는 것은 필요없어. 유에라도 그렇게 생각하지?"
"크읏......, 어째서......"
"어째서냐니......? 아, 왜 침대가 아니라, 소파냐는 거야?"
"치, 다르다......, 흐앗......"
"소파 쪽이, 보지를 여러 각도에서 담을 수 있으니까."
"뭣......?"
아아. 이해했다. 이건 지금 유에라가 겪고 있는 상황이였다.
"오늘 촬영은 화면 너머에 말을 거는 시리즈라서 말이야. 유에라 대본은 읽었어?"
"읏......, 너, 나에게 정말로 그런 말을......"
"유에라, 왠지 기뻐보이네......?"
"바보......, 나는 싫어하고 있다......"
"그런가......? 그런데, 유에라의 여기는 기뻐하는 것 같은데?
"시, 시끄럽다......"
둘의 대화로 지금이 촬영 시작 직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시야에는 가죽 소파만 크게 보이고 있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내가 유에라를 서포트 할테니까 말이야."
"흣......, 아......"
"소파니까, 마주보는 것처럼 카메라 건너편으로 말을 걸 수 있지. 유에라의 부끄러운 얼굴이 가득 찍히는 거야."
"......"
"아내가 생각해냈어, 좋은 아이디어지?"
"큿......, 그 사람은 쓸데없는 것을......"
칸타로우에게 재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부인도 재능이 있는 것 같았다.
"자, 유에라. 거너씨를 위한 메챠쿠챠 영상이야."
"흥......"
칸타로우의 손이 유에라의 손에 닿았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것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소파로 다가왔다.
"......"
그리고 동시에 내 시야도 다시 하얗게 물들었다.
"카오루!"
"읏......!"
레이첼의 큰 목소리였다. 나는 문득 정신을 차렸다.
"카오루, 왜 그래?
레이첼은 내 바로 옆에 있었다. 큰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걱정하게 만들어버렸다.
"......"
나는 조금 전 내 심장이 쥐어짜진 듯한 공포를 느꼈다.
"......이제 괜찮아, 레이첼 걱정하게 만들었네."
나는 허세를 부렸다, 사실은 몹시 불안했다.
"미안해."
"카오루......"
나는 가능한 한 평범한 목소리로,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레이첼은 두 팔을 내 목에 감고,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부드러운 감촉과 체온이 안심시켜준다.
"......"
나는 이마의 땀을 닦았다. 온몸이 차가운 땀으로 흠뻑 젖어서, 옷도 조금 차갑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