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8화
녹음문제 때문에 ‘겨울꽃’의 스케줄이 일부 변경되었다. 그래서 이제 은지도 밤늦게 대본을 연습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점심시간 이후에 잠깐의 휴식 시간을 이용해서 연습을 하기로 했다.
내가 TL엔터테인먼트의 지하 연습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바닥에 앉아서 쉬고 있던 ‘겨울꽃’ 멤버들이 아주 격하게 반겨준다.
“간식이 왔다!”
“늦었어요!”
“마실 것도 있죠?”
“생크림 케이크...”
이것들이 이제 나를 간식 배달하는 사람으로 보는구나. 은지마저 내 가방을 뒤적거리며 생크림 케이크를 찾고 있다. 그래 많이 먹어라.
나는 양손에 들고 있던 비닐봉지와 가방에 있는 것까지 털어서 바닥에 쏟아냈다. 얼른 생크림 케이크를 선점한 은지가 내 옆에 앉아서 숟가락으로 야무지게 퍼먹기 시작한다.
매번 이렇게 올 때마다 간식을 사오다 보니 ‘겨울꽃’ 멤버들과 제법 많이 친해졌다. 그리고 은지에게만 말을 편하게 하면 자기들이 나이 들어 보인다는 임세희의 이상한 논리에 설득되어 나는 다른 멤버들에게도 그냥 반말을 하기로 했다.
나는 생크림 케이크를 먹느라고 정신없는 은지의 모습을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일어나서 임세희에게 다가갔다.
“세희야, 뭐 하나 물어보자.”
“살살 물어요.”
“혹시 너희들 도서연 씨와 사이가 안 좋니?”
“엥? 서연 언니랑 완전 친한데요?”
“그럼 은지는 왜...”
“으힉! 혹시 은지 앞에서 서연 언니 이야기 했어요?”
“어쩌다 보니까...”
“아, 이거 말하자면좀 복잡한데, 웃기기도 하고.”
세희가 은지의 눈치를 잠시 보더니 귓속말로 둘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너무 어이없어서 헛웃음이 나온다.
“둘 다 대단하네...”
“그러니까요. 우리가 보기에는 진짜 유치하기 짝이 없는데 두 사람에게는 그게 아닌가 봐요.”
그러니까, 작년에 TL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연예인들이 다 같이 해외에 있는 휴양지로 여행을 갔었는데 바닷가가 잘 보이는 룸을 두고 두 사람이 서로 양보를 못하겠다고 신경전을 벌였고, 그 이후로 계속 이러고 있다는 거잖아?
아이고, 머리야...
정신을 차리고 다시 은지에게로 시선을 돌렸는데 눈이 딱 마주쳤다. 나와 세희가 서로 귓속말을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고 당황한 것 같다. 잠시 상황을 지켜보던 세희의 입가에 장난기 어린 미소가 걸렸다.
“그럼, 작가님 약속은 꼭 지키셔야 해요~”
“....뭔 약속?”
“아잉~그걸 제 입으로 어떻게 말해요. 부끄럽게~”
얘가 갑자기 뭔 헛소리야? 콧소리까지 내면서...
나는 이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은지의 모습을 보고 세희가 일부러 장난쳤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세희가 벌떡 일어나더니 후다닥 도망을 가고 있다.
“자, 작가님 도망가세요! 은지 진짜 화난 거 같아요! 야, 이은지! 장난이야 장난. 근데 너 진짜 작가님이랑 뭐 있는 거 같다?”
야, 너 혼자 도망가면 어떡하냐...
은지는 다시 내 옆자리에서 조용히 생크림 케이크를 숟가락으로 퍼먹기 시작했고 세희도 살금살금 곁으로 다가와서 은지에게 빨리 사실을 말하라면서 쉴 새 없이 떠들어대고 있다.
“잔소리. 잔소리. 잔소리. 귀 아파.”
“작가님! 은지 얘, 언니한테 말버릇 좀 봐요. 내가 잘 못 키웠어. 흑흑.”
...진짜 정신이 하나도 없다.
***
오늘 회의실 분위기는 지난번과는 사뭇 다른느낌이다. 테이블 곳곳에 다과가 준비되어 있고 황은진 작가님을 비롯해서 대표님, 감독님 모두의 표정에 미소가 걸려있다.
“정말 다행입니다. 황 작가님이 수고 많았어요.”
“오히려 잘 된 일인지도 몰라요. 도서연 씨가 해외에서 인기도 좋으니 수출로 벌어들이는 수익도 더 클 겁니다.”
“도서연 씨의 캐스팅이 조금만 늦었어도 진짜 편성 날아갔을지 모릅니다. 원래국장님이 다른 프로그램 넣겠다는 걸 제가 겨우겨우 설득해서 버텼거든요.”
황은진 작가가 개인적인 친분으로 도서연 캐스팅을 확정지은 모양이다. 나는 인터넷에서 도서연을 검색해보고 황은진 작가와의 관계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황은진 작가의 작품으로 데뷔를 한 도서연은 매력 있는 조연으로 눈도장을 찍고 점점 인지도를 쌓아 나갔다. 그러다가 몇 년 후, 황은진 작가의 새로운 작품에서 도서연이 주연을 맡으면서 대박이 터졌고 한류스타로 성장했다.
그래, 나도 은지를 도서연처럼 키워보자.
회의가 끝나고 나와 황은진 작가는 따로 이야기를 좀 더 나누기로 했다. 다음 주에 있을 배우들의 대본 리딩에 관한 내용이었다. 드라마의 홍보를 위해서 리딩 현장의 메이킹 영상이 방송에 나갈 예정인데 은지를 참석시키고 싶다는 것이다.
“퀸카, 신예진은 중반 이후에나 등장하잖아요?”
“그 문제 때문에 제가 대표님이나 감독님보다 먼저 박성우 씨와 상의를 하려는 거예요.”
“네...?”
내가 알기로 대본 리딩은 첫 촬영이 있기 전에 주연과 조연배우가 모여서 초반부 편수의 대사를 주고받으며 호흡을 맞춰보는 것이다. 그런데 중반 이후에 등장하는 은지가 대본 리딩에 왜 참석한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메이킹 영상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 서연이와 은지 씨가 대립하는 대사 몇 줄 정도를 보여주면 재밌을 것 같아서요. 드라마의 인물 소개에도 퀸카, 신예진에 대한 정보는 안 넣을 생각이에요.”
“아, 그러면 은지에 대한 궁금증과 더불어 과연 몇 회에서 등장할 것인지 시청자들의 기대감이 올라갈 수 있겠네요.”
“그렇죠. 특히 처음 보는 신인 여배우의 미모가 서연이와의 투샷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으니 얼마나 궁금하겠어요. 그래서 말인데 오늘 안으로 대본 리딩 현장에서 보여줄 신예진의 강렬한 대사 몇 개만 좀 뽑아 줄 수 있어요?”
“1시간 안으로 가능해요.”
“좋아요. 그럼, 제가 김 대표, 박 감독이랑 상의 해보고 결과를 알려줄게요. 만약, 진행하게 되면 은지 씨에게도 준비 시켜주세요.”
“그렇게 할게요.”
나는 대본에서 신예진과 여주인공이 가장 긴장감 있게 신경전을 벌이는 대사 몇 개를 황은진 작가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황은진 작가도 도서연의 대본을 보면서 나와 같은 부분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서로의 의견이 일치했으니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대표님은 훌륭한 홍보 전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적극적으로 찬성했고 감독님도 시청자들의 반응이 궁금하다면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대본 리딩에 참석해서 은지가 하게 될 대사를 알려주기 위해 회의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TL엔터테인먼트로 향했다.
정문에 도착한 나는출입증을 찍고 들어가려다가 다시 돌아서 나왔다.
젠장, 애들 간식거리를 깜빡했다.
예전에 바빠서 그냥 갔던 적이 있었는데 얼마나 볶아 대던지.
간식을 사들고 연습실 앞에 도착하자 다이어리에 뭔가를 적고 있던 박수한이 나를 보고 반가워한다.
“형, 제 햄버거...으하핫 감사합니다!”
나는 햄버거 하나를 박수한의 면상에 던져주었다. 요즘 자주 보면서 친해졌더니 나를 형이라고 부르는데, 그 뒤로는 이 자식도 나만 보면 간식 타령이다.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바닥에 드러누워 있던 ‘겨울꽃’ 멤버들이 벌떡 일어나서 나를, 아니 내가 사온 간식을 환영하며 달려들었다.
내 옆에서 생크림 케이크를 먹고 있는 은지에게 대본 하나를 내밀었다.
“분량 추가 됐어요?”
“추가 분량 대본은 아직 안 나왔고 이건 다음 주에 있을 대본 리딩에 참석해서 여주인공과 대사 맞춰봐야 할 부분 체크한 거.”
“....대본 리딩 참석이요?”
“메이킹 영상의 마지막 부분에 짧게 나갈 거 같은데 홍보팀에서 작정하고 준비하고 있으니까 파급력은 제법 클 거야. 잘 할 수 있겠지?”
“열심히 할게요. 그래야 작가님이 안 혼나잖아요. 좋은 기회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은지가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며 생크림 케이크를 한 숟가락 크게 퍼서 내 입에 푹 집어넣었다.
음, 맛은 있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임세희가 또 호들갑을 떨며 다가오고 있다.
“으허억! 은지 너, 지금 생크림 케이크 준 거 맞지? 세상에...나도 한 입 줘봐.”
“싫어.”
“왜 작가님은 주고 난 안 줘!?”
“그냥.”
“너, 아주 수상해.”
“언니 춤이 더 수상해.”
“이게 진짜! 너보다 내가 더 잘 추거든! 그리고 너 녹음 할 때 가성 완전 이상해.”
“언니 가성은 귀신 나오는 거 같아.”
“우어어어!”
이제 이 두 사람의 대화는 익숙해져서 자연스럽게 무시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 것 같다. 그리고 항상 세희가 먼저 시작하는데 한 번도 은지에게 이기는 걸 본적이 없다.
다들 즐겁게 간식을 먹고 난 뒤에 나와 은지는 본격적으로대본 리딩을 준비하기 위해 비어 있는 녹음실로 이동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다들 그저 신기하게만 바라보더니 은지가 대본 리딩 현장에 참석하고 메이킹 영상까지 촬영한다는 말에 진짜 여배우가 된 것 같다면서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 중에서도 단짝인 세희가 가장 기뻐하는 모습인데 괜히 표현을 다르게 한다.
“작가님, 혹시 대본 연습 중에 은지가 막 덮치려고 하면 소리 지르세요. 몽둥이 들고 대기하고 있다가 달려가서 구해드릴게요.”
들어오긴 뭘 들어와.
아무도 못 들어오게 몽둥이 들고 지키고 있어야지.
나와 은지는 비어 있는 녹음실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은지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주춤거렸다.
“먼저 들어가세요. 저는 화장실 좀...”
“그래, 천천히 다녀와.”
은지는 30분이 지났는데 아직도 안 오고 있다. 혹시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전화를 하려는 그 때, 녹음실의 문이 열리면서 30분 전과는 전혀 다른 은지가 들어오고 있었다.
화장실을 간다고 하더니 사실은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고 온 것이었다.
나는 그냥 모른척하며 대본을 펼쳤다.
***
“몸에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다시 해보자.”
“죄송해요...”
“아니야, 갑자기 대본 리딩에 참석한다는 것 때문에 긴장해서 그런 거니까 금방 좋아질 거야.”
평소에는 완벽한 신예진의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내뱉던 대사였는데 오늘따라 너무 연기가 어색했다. 겨우 한 줄짜리 대사를 30분 째 반복하고 있는데 계속 같은 실수를 하고 있다.
“저 응원 한 번만 해주면 안 돼요?”
“화 이 팅!”
“그런 거 말고 다른 응원이요.”
“어떤 거?”
“안아주세요.”
내가 응원을 받는 기분이다. 고맙다.
나는 은지를 끌어당겨서 꼭 안아주었다. 머리도 쓰다듬어주고.
그런데 가슴은 왜 만지고 있는 건지 나도 모르겠다. 그냥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내 손이 은지의 셔츠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은지의 셔츠를 살짝 걷어 올리고 브래지어를 풀어서 밖으로 빼내었다. 연습실에서 같이 잤을 때는 어둠 속에서 휴대폰 조명에 의지하며 봤었는데 이렇게 밝은 곳에서 가슴을 보고 있으니 더 탐스럽게 느껴진다. 적당히 볼륨감이 있으면서도 모양이 정말 예쁘다.
만지는 걸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가 없다!
나는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서 은지의 핑크빛 젖꼭지를 혀로 핥았다. 혀끝에 달콤한 맛이 느껴지는 것 같다.
“아앗...”
은지의 입에서 흘러나온 얕은 신음소리가 나를 더 흥분시켰다.
쪽쪽!
새하얀 은지의 젖가슴을 입에 물고 정신없이 빨았더니 젖꼭지 주변이 새빨개져 있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슬쩍 고개를 들었다가 눈이 마주쳤는데 은지가 내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몸을 일으켜 새웠다.
“저 이제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다시 대본 연습...”
자리에서 일어선 은지의 뽀얀 허벅지를 보고 흥분한 나는 핫팬츠를 무릎까지 쑥 내려버렸다.
은지의 팬티에 그려진 귀여운 곰돌이가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귀여운 팬티네...”
“자, 작가님!”
은지가 다급하게 바지를 올렸다. 갑작스런 그녀의 반응에 당황한 나는 눈치를 살피며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생각했다.
내가 진도를 너무 급하게 나가서 놀란 건가?
아니면...
“그 곰돌이 팬티...”
“서, 선물 받은 건데 버릴 수는없잖아요.”
팬티의 취향을 나에게 들킨 것이 부끄러운 모양이다. 은지의 이미지와는 좀 거리가 먼 것 같아서 의외이긴 하네.
“엇, 바지 끈은 왜 묶어...?”
“작가님이 다시 벗길 거 같아서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 이런 거였구나.
내 어깨가 축 쳐지고 고개가 푹 숙여졌다.
은지가 그런 나를 안아주며 등을 토닥거렸다. 그리고 내 귀에 작게 속삭였다.
“우리 대본 연습 해야죠. 만약 저 이거 망치면 죄송해서 작가님 얼굴 못 볼 거 같아요. 대본 리딩 다음 날, 저 스케줄 없거든요. 그 날, 작가님 집에 놀러 가고 싶어요.”
“빨리 대본 연습하자. 이은지, 이제부터 틀리면 혼낼 테니까 정신 바짝 차려.”
“네.”
은지의 귓속말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면서 기운이 넘쳐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