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 이상〉
짧은 기간 연인으로 지낸 이형과 주희. 이형에게 주희는 첫사랑이자 삶의 이유를 알려준 연인이었지만, 주희에게 이형은 그저 단숨에 타오른 불꽃에 불과했다. ‘주변을 정리하고, 48시간 이내로 랭글리로 복귀할 것. 블랙 사이트(Black Site) 관련.’ 본부 소환 명령으로 그에게 무례한 이별을 건넨 주희, 본명 루나 송. 세계를 주름잡는 유대계 거부인 카를하인츠 로젠쉴트의 정부로 위장 잠입하기 위해 그의 저택으로 향하는데. 무례한 이별의 벌을 받는 것처럼 신기루 같은 남자가 눈앞에 서 있었다. 너는 대체 누구냐고 묻는 듯한 눈빛으로. 발췌문 그의 입술이 루나의 입술에 닿을락 말락 했다. “내가 당신을 정부로 선택해야 하는 이유가.” 다정하고 상냥했던 지금까지와는 다른 오만하고, 고압적인 목소리였다. “고작 이 몸뚱이 하나라는 뜻입니까?” 그는 자존심을 짓밟으려는 듯 입을 놀렸지만, 이까짓 말에 상처받을 성격도 아니다. “카를하인츠 로젠쉴트 씨. 우리 솔직해질까요? 지금 이 몸뚱이에 발정 난 게 누구죠?” 그는 루나의 뺨을 어루만지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입술을 멀리 떼어 내지도 않고 아슬아슬한 거리를 계속 유지했다. “유산을 물려받은 후에, 마뜩잖은 빌미가 될 정부가 필요했던 건가요? 그래서 정부를 구하는 일에 흥미가 동하지 않는 모양이죠? 만약 그게 아니라면 발정기 수컷처럼 하루에 두세 명씩은 끼고 잤을 텐데요.” 루나가 천진하고 무구한 얼굴로 떠들어 댔다. “눈을 병아리처럼 까맣게 뜨는 건 귀여운 척할 때 버릇입니까?” 약간은 어이가 없어져서 따지려는데, 그가 더 빨랐다. “계속해 봐요. 귀여우니까.” 카를이 한쪽 입꼬리를 비스듬히 들어 올리며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