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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화 〉008. 의료행위는 어쩔 수 없지;;; (3) (24/125)



〈 24화 〉008. 의료행위는 어쩔 수 없지;;; (3)

“그러다가 방송 켜지면.”
“흐읏, 캠 돌리면 되자나. 그리고 옷을 뭐 서너 시간 동안 벗길 것도…… 아니구. 으크흐흣.”


말문이 막혔다.

“아님 뭐어야. 오빠, 설마 여자 알몸 보는 게 부끄러워서 그래?  정도 저항력도 없어?”
“아니라니까.”


후읍, 하고 일리냐가 숨을 길게 삼킨다.

“거어짓말. 으흥흥. 가슴 쳐다보는 주제에 동정 찐따였구나. 하긴. 동정 찐따니깐 시선이 꽂혔겠지. 이럴 때 말고는, 으흐흣, 여자 가슴 볼 기회 없는 거자너.”
“인마. 아니라고 그러잖아.”


나는 언성을 살짝 높이면서 일리냐를 돌아봤다. 이전까지는 속옷 상태인 녀석을 배려해서 아예 등을 돌린 채 앉아 있었다.

순간적으로 일리냐와 시선이 맞아 떨어졌다.
먼저 피하는  일리냐. 근육이 마비되어 고개를 좌우로 회전시키지도 못하는 그녀가 눈동자만을 우측으로 살짝 굴렸다.

그때 나는 두 가지 사실을 알아차렸다.
우선 하나는 일리냐가 평소보다 훨씬 아름답고, 사랑스럽다는 사실.
녀석이 예쁘장하게 생겼다는 점에는 세상 누구도 이견이 없겠지. 나는 다만 일리냐의 색다른 매력을 알아버린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땀에 번들거리는 일리냐의 맨 다리라든가. 그 밑으로 통통하게 살이 오른 엉덩이라든가.

남성의 시선을 이끄는, 말하자면 페로몬을 흘려보내는 유혹기관.
평소에도 충분히 야릇했다. 그러나 동시에 어딘가 미숙하다는 인상이 있어서 간신히 간신히 직접적인 성욕이 떠오르는 것은 억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색채가 달라졌다. 우유처럼 하얗기만 하던 피부에 연분홍의 테가 감돌았다. 마치 복숭하 껍질을 짓뭉개서 섞은 듯한, 자극적인 빛깔.


특유의 향취도 훨씬 강해졌다. 평소에도 달달한 복숭아 냄새를 뿌리고 다녔지.
하지만 지금은…… 그 복숭아가 햇빛을 너무 많이 받아서, 달달하게 물러버린 듯한 냄새?


어딘가 톡 쏘는, 이대로 뒀다간 술이 돼 버릴지도 모르겠다 싶은, 그래서 지금 당장 먹어두지 않으면  되겠다고 저절로 다짐하게 되는, 복잡미묘하고 상큼한 향이다.

“흣.”

노골적인 시선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대놓고 쳐다봤다.
당연하게도 일리냐는 내 시선강간을 파악했다. 파악했다지만 저항할 방도가 없다.
몸은 완전히 마비돼서 팔을 들어 가린다든가 다리 사이를 살짝 오므린다든가, 그런 최소한의 방어 동작조차 불가능.
오로지 가능한 것은 이전처럼 계속해서 천장을 향해 누워서, 잘 여문 여체를 드러내주고, 눈앞에 존재하는 남성을 분별없이 꼬셔버리는 것뿐.


내가 알아차린 두 번째 사실이 거기서 기인한다.
일리냐는 말로는 나를 동정 찐따라고 매도하고 있었다. 치료 목적으로 알몸을 보여주는 일 따위 아무렇지도 않다고 우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은 전에 없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호흡도 무지하게 거칠어서 입김으로 하얗게 드러날 정도. 어질어질한 눈동자는 이쪽을 흘겼다 저쪽을 흘겼다, 팽팽 돌아가기 바쁘다.
종합적으로 일리냐는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다. 자신이야말로 창피해서 죽을 지경이다.

그렇구나.

제작 일정을 제대로 진행하려면 어떻게든 빨리 회복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꺼풀이라도 더 벗기는 것이 현명하다.


문제는 내가 느끼는 죄책감.
일리냐에게 손을 대선  된다는 내 안의 원칙을 무너뜨리기 위해…… 일리냐는 일부러 조롱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게 변명거리를 제공한다. 일리냐가 먼저 자극했으니까 어쩔  없어. 일리냐가 전적으로 나빠.

말하자면 의도적인 도발인 것이다.
어차피 벗겨야만 한다면 맘 편하게, 일리냐가 나쁜 걸로 치고 벗겨라.
그런 상황을 일리냐는 수치심을  참고 세팅해주고 있었다.

진짜.
진짜로 괘씸한 녀석.
내가 못된 사람이면 어떡했을 거야?
얼마나 혼쭐이 나야 정신을 차릴 거냐고.
세상엔 늑대같은 남자들도 진짜 많단 말이야! 기회 주면 덥썩 물어버리는 그런 놈들 천지라고! 누구보다  알면서!


나는 속으로 분개하고는, 이윽고 홀린듯이 부정했다.


“안 된다니까.”

그래. 상황극이다.
일리냐가 도발하면 내가 튕긴다.
그러면 일리냐가 심한 말을 하고 나는 결국 못 이기는 척, 분한 척하면서 일리냐를 벗긴다.
 패턴으로 가자. 우리는 그렇게 약속한 것처럼 물 흐르듯 티키타카를 주고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좀전까지 수치감에 몸을 떨던 일리냐가, 흐흣, 하고 웃어버린다.

“아니— 이건 어디까지나 게이트 공략을 위한? 그런 거라구? 뭘 자꾸 의미부여 하고 있는 거야. 으흐흣. 흐읏. 진짜 동정같아. 대충 하면 되는데. 쫄? 쫄?”
“안 쫄았어. 그리고 자꾸 동정동정. 넌  경험 있냐?”
“흐응. 처녀랑 동정은 값어치가 다르다구. 비처녀 논란이 왜 생기는지 몰라?”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맞는 말이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일리냐가 예상했던 것보다 이른 타이밍에 공격을 개시했다.

“너 자꾸 그러면 진짜 벗기는 수가 있다?”

어떻게 나올까.
솔직히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여기서 일리냐가 부끄러움 맥스에 도달해서 튕겨내 버릴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헤에엥.”


아냐.
그럴 리가 없지.


이 음란한 암컷 꼬맹이가 그러겠냐고.

“해…… 보시든가? 나는, 안 쫄거든? 오빠하고는 달리.”
“그러셔.”

꿀꺽. 침을 삼키고 일리냐에게 다가간다. 한 걸음씩.
장비제작실이 운동장처럼 넓은 것도 아니다. 내가 있던 의자에서 일리냐가 누워 있는 소파까지는 고작 열 걸음.
  것 아닌 거리가 마치 항성간 비행처럼 머나멀게 느껴졌다.

세상에서 가장   걸음, 10초가 지나고.
소파 앞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편안한 실내복 차림의 신체가 고작 시선으로부터 30센티 정도 거리에서, 훤히 드러나 있다.


그러는 도중에도 일리냐는 흐읏, 하흣, 하면서 앓는 소리를 흘린다.
그게 큰 잘못이었다. 수컷 입장에서 일리냐의 울음소리는 꼭 ‘싱싱한 암컷이 여기 있답니다~’ 하고 꼬시는 것처럼 들릴 뿐이다.

물론 간지럼증 탓에 흘리는 신음일 뿐이었다.
이성은 그렇게 알고 있고.
본능은 자기 좋을대로 편집 왜곡한다.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는 체 일리냐 앞에 그냥 앉아만 있는다.
그것을 누워 있던 일리냐는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으로 발견하고는, 답답함인지 안타까움인지 모를 감정이 듬뿍 묻어나는 목소리로 재촉했다.

“아 진짜, 별 것도 아닌데 질질 끌지 말고오. 변태색골.”


너도 목소리 좀 끌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까지도 귀엽게 들린단 말이지.


후우, 하고 들리지 않게 심호흡한다.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서…… 민소매 셔츠 허리 부분에 얹는다.

체구가 작은 일리냐에게  맞는, 쫄쫄이에 가까운 상의였다. 옷을 붙잡으려고 손가락을 걸치면 자연스럽게 허릿살을 매만지게 된다.
최대한 접촉을 줄이기 위해 나는 허리 좌우 부분의 원단을 꼬집듯이 붙잡아서 위로 당기려고 하지만…… 되겠냐고. 일리냐는 누워 있다.


어쩔 수 없이 허락 아닌 허락을 구한다.

“허리 밑에 손 집어 넣을게. 들어 올리려고.”
“마, 맘대루?”

좋았어. 시공해도 된답니다.


괜히 질질 끌지 않고 왼손을  모양으로 펼쳐서 쑥 집어 넣는다.
엄청 뜨끈뜨끈하다. 여기에 체열이 이렇게 쌓였으니 간지럽지 않고 배기겠냐고.
땀까지 잔뜩 흘러서 축축해.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들어 올리고…… 남은 한손으로 원단을 걷어 올린다.

간신히 배꼽이 드러났다. 움푹 들어간 예쁜 배꼽이다.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공방에서 수다 떨면서 배꼽 정도는 자주 노출됐었는데 말이지.
미묘하게 살집이 있는 아랫배도 귀여워. 쪘다기보다는 뭐랄까, 건강하다는 느낌이다.  찔러보고 싶은  억지로 참는다.

“아—아—진짜! 겁나 쳐다보네. 내가 그렇게 꼴려? 변태 자식아.”

넋이 나간 나를 일리냐가 좀 어긋난 방식으로 일깨워줬다.

뭐라고 대답하지 않고 작업을 재개한다.
꼬집은 원단을 잡고 주욱 올린다.

실제로는 뜨문뜨문 올라가는 것에 가깝다. 원래도 달라붙어 있던 상의가 땀에 젖어서 훨씬 찰싹 달라 붙은 데다가, 이쪽은 살에 닿지 않게 천자락을 붙잡아 끌어 올리는 꼴이니까.
그것도 한손으로.


 분의 작업 끝에 상의가 브래지어가 있는 높이까지 도달했다.
여길 넘겨버리면 진짜로 상반신은 속옷 차림이 된다.


신경쓰지 말자. 어차피 아까부터 훤히 보이던 속옷이야. 달라지는  아무것도 없…… 다고 생각할 수 있겠냐고.

“넘긴다?”
“이, 일일이 물어보지 좀 말라고 동정아!”

좋아. 분노가 충전됐다.
괘씸한 녀석이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옷감을 끌어 당긴다.
그러나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그마해도 가슴은 가슴이어서, 언덕 형태로 돼 있다. 옷감을 꼬집어서 당기는 정도의 힘으로는 넘어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아랫가슴에 천자락을 문질러가며 자극하게 될 뿐이야.


“햐앗?! 후읏. 히읏♥”

재차 강조하겠다.
일리냐에게는 소리내어 말한 것을 그대로 시각화 시켜 풍선 내지 연무처럼 띄워내는 이상한 스킬이 있다. 방금의 하트는 녀석이 스킬을 통해 허공에 작성한 문자를 그대로 표기했을 뿐이다.


“이상한 소리 내지 마.”
“오빠가 아다새끼 티 내면서 찌찌를 만져대니까 그렇잖아…….”


찌찌라니. 그렇게 표현하냐고.
직접 만지지도 않았다.

“안에  좀 집어 넣을게. 그래야 금방 끝날  같아.”
“처음부터 그렇게 하라구. 의미부여하지 말구.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인데 가, 가슴 쫌 만져버렸다고 내가 뭐라 하겠어? 어?”

내가 잘못했다. 인정하고  끄트머리 밑으로 손가락을 집어 넣었다.
브래지어에 쌓인 밑가슴이 손등에 닿는다.
생각보다 물컹하네. 워낙 작아서 대흉근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그대로 상의를 잡아 당긴다. 이에 따라 일리냐의 가슴이 마구잡이로 뭉그러지지만…… 참아야지 뭘 어떡하겠어.


“하읏, 하, 아흐♥”

하트  그만 날리라고.

둥둥 떠다니는 하트를 치워내자, 그곳에는 브래지어 차림의 일리냐가 있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어이를 상실하게 만들 정도로 예쁜 몸이었다.
아주아주 희미하게 비치는 혈관이 도드라진, 약간은 창백한 느낌.


그래도 생각보단  거 없네. 아까부터 보여지던 브래지어여서 그런가.
일단 가슴 부위가 드러나자 다음은 어렵지 않았다. 양팔을 올려서 만세를 하게 만든 뒤, 그대로 겨드랑이를 거쳐 옷을 끌어내 벗긴다.


“됐다.”
“빨리도 한다.”


일리냐가 툴툴거렸다.
아무래도 그녀는 자신이 하트를 날렸는지 모르는 듯하다. 목이 고정된 탓에 녀석의 시야 바깥에서만 글자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본인 대사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았다면 이미 수치심이 폭발해서 상황극이 종료됐을 것이다.


이렇게 말해주지도 못했을 거고.


“내친김에 아래도 바로 해.”
“이거 벗기면 팬티 보이는데.”
“뭐 어쩌라구 허접송사리동정아. 일리냐 팬티 보면 뭐, 뭐, 어떻게 되냐?”

될 것 같단 말이지.
하지만 허접송사리동정이라는 말을 들으니 딱히 내 잘못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극 최고다.

네가 시켜서 벌인 일이야. 일단 제 탓은 아닌 듯함.

그렇게 확신한 뒤, 이번에도 시키는 대로 일리냐의 돌핀팬츠 위에 손을 얹는다.
신체부위로 표현하자면 허리 바로 아래 장골이었다.

“아읏?!”
“아파?”
“아, 응, 아파서, 낸 소리.”

일리냐가 그런 상황을 부여해 주었다.
그래. 아파서 낸 소리야. 일리냐는 아가야. 피부가 연약한 아가. 이상한 소리를 내면 전부 아파서 내는 소리.
그렇게 인식하고 팬츠의 허리매무새 안쪽으로 손가락을 살짝, 걸쳐서 집어 넣는다.
잡아 당겨서 품을 넓힌 뒤 바지를 통째로 끌어 내린다. 그게 본래의 목적이었다만.


끈이 있네.
끈이 있어.

그렇구나. 돌핀팬츠도 남성용 체육복처럼 끈으로 허리를 고정하는 거였어.
손을 슬그머니 앞으로 향해서, 끈이 묶여 있는 부분을 더듬는다.

그럴 때마다 손등 부위에는 바지가 아닌 다른 천자락이 닿는다.
실크 특유의 부드러운 감촉. 이게 뭘까.
뭐긴 뭐야. 팬티지.


최대한 누르는 힘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끈을 찾는다. 이거 왜 이렇게 안 잡혀.
끈. 끈.
끈?
아, 여기 있다.
잡았다.
쑥, 하고 당긴다.


“후아아앗?! 하읏♥ 지금 뭐하는……?!”
“무슨 문제 있어?”

나는 아무렇지 않게 되물었다.
일리냐는 어리둥절해 있었다. 뭔가가 이상하다고, 어딘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느낀 모양이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5초  일리냐의 얼굴이 전에 없을 정도로 새빨갛게 변했다. 스팀이 뿜어져 나오는 착시까지 보일 정도였다.


“씨발.”


일리냐가 욕설과 함께 탄식했다.
다음 반응은 울먹울먹이다.

“으흐, 으흣, 멍청아아— 변태새끼야아—”


상황극 따위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수치심이 일리냐를 강타했다.


“팬티 끈을 풀면 어떡해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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