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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화 〉020. 소녀들은 어른이 된다 (2) (63/125)



〈 63화 〉020. 소녀들은 어른이 된다 (2)

돌아가는 길, 일리냐는 허공을 향해 발길질을 가했다.

——어우 씨발 쪽팔려! 아오 부끄러워어어억!

무호흡 삼단회축을 펼치고 나서, 일리냐는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어떻게 보였을라나.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이미지 변신도 했다.
가령, 라면 국물 묻은 펑퍼짐한 후드티 대신 몸매가 드러나는 깔끔한 저지를 입는다거나. 발을 붓게 만드는 쪼리 대신 삼선슬리퍼를 착용한다거나.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좋아하는 오빠를 유혹하기 위해서는  더 여성스러운 복장이 필요한  아닐까?
코스프레라면 자신 있다. 남자가 좋아하는 옷차림도 빠삭하다.

기왕하는 거 제대로 해볼까. 야한 대사도  익혀서. 그런 거 많이 나오는 사이트도 알고 있다. 히토미라고 오타쿠 시청자들이 맨날 보는 그거.
좋아. 에로 코스프레와 음어로 오빠를 적극 유혹해서, 먼저 덮치게 만들어야지.

주먹을 불끈 쥐던 일리냐가 알아차렸다. 자신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는 사실을.

——사랑이라는  되게 좋네. 응응. 좋당.

소녀는 어른이 돼 간다.





***

일리냐가 돌아가고, 나는 캐비넷이 열리길 기다렸다.
그러나 5분이 지나도 렌나는 소식이 없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문득 바보 같은 상상이 끼쳤다. 이거 어쩌면 빈 캐비넷 아닐까. 렌나는 모종의 방법으로 이미 가게를 탈출했고, 나만 홀로 남아서 없는 렌나를 기다리는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하고 캐비넷을 열어 보았다.
구깃구깃한 상태의 렌나가 들어 있었다.

“나올래?”
“……넵.”

대답은 잘 했지만 혼자서는 못 나온다. 손을 붙잡고 당겨주니 비로소 빠져 나왔다.
잠시 서로 할말을 잃었다.

봤을까.
봤겠지.
보지는 못했더라도 소리는 들었을 것이다. 키스할 때의 쩝쩝거림이라든가.
엉덩이 후려치는 소음도 컸지. 찰싹찰싹.

“저, 저기.”

렌나가 품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과자였다.

“드…… 세요.”

왜 주는 거야. 그런 표정으로 쳐다보니 렌나가 알아서 해설해 주었다.

“숨겨, 주셨으니까요.”

그렇군.
합당한 보상이라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씹다가, 나는 알아차렸다.
화제를 돌릴 좋은 기회가 아닌가.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과자는 왜 들고 다녀?”
“그게, 광폭화를 유지하려면, 열랑이 많이 필요해서요. 기성 제품은,  비싸서…… 렌나가 직접 만들어요.”

아. 그런가.

“고생이네.”
“넵.”

정적이 있었다.

지금 서로 없는 일로 하자는 거 맞지?
그런 거지?

확신은 없다.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나는 렌나를 불렀다.

“렌나.”
“넵.”
“앞으로는 게이트 혼자 돌지 마. 전술학부에서 주의가 왔어. 나 아니면…… 일리냐하고.”

고인 침을 삼켰다. 꿀꺽 하고.

“아까 그 아이하고 같이 도는 거야.”
“넵.”

“다음에 혼자 돌면 장비제작 일정은 캔슬이야.”
“넵.”

“어려움이 있으면 바로바로 말해줘.”
“넵.”

“다른 질문?”
“없어요.”

그렇구나.

“돌아가도 좋아. 오늘 고생했다. 내일 수업에서 보자.”
“넵.”

마치 목각인형처럼 뻣뻣하게 렌나가 뒤를 돌아섰다.
세 걸음을 내딛은 직후, 우당탕탕 자빠졌다. 거의 파쿠르 수준으로 마룻바닥을 굴렀다.
자주 넘어지는 렌나였다만 방금은 이족보행하는 동물이 균형을 잃을 이유가 없는 장소였다. 어이를 상실한 내가 렌나에게 다가섰다.

“저기…….”
“갠차나욧!”

렌나가 소리치고는, 계단을 향해 미친듯이 달려 나갔다.
다시 우당탕탕 나자빠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따라가 보지 않았다.
그것이 내게 가능한 유일한 배려였다.



***




기숙사에 돌아가, 렌나는 일단 목욕물부터 받았다.
다라이를 개조한 허름한 욕조이지만 렌나는 기껍게 여겼다.
본가에서도 이것과 엇비슷한 크기의 욕조를 사용했다. 그나마도 아버지가 씻고 어머니가 씻은 다음에야 언니 손을 붙잡고 욕탕에 들어설  있었지. 그러는 내내 목욕물은 갈지 않았고.
유학 생활 덕분에 간신히 누릴  있게 된 깨끗한 목욕물에 렌나는 알몸으로 들어가, 우선 머리 끝까지 잠수하듯  속에 들어갔다. 동동 뜨는 가슴은 양손으로  눌러서 끌어 내렸다.

물속에서 다섯을 센 뒤 고개를 쳐들었다.
푸하, 하고 숨을 쉬어본다.

아직도 멍하다.

꿈인가 생시인가.

아니아니. 당연히 생시겠지. 현실부정하면 안 된다. 안 그래도 피폐한 렌나가 여기서 이상한 속성을 늘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째서. 사장님과 일리냐 씨는 어째서 알콩달콩 러브러브 꽁냥꽁냥을 해댔던 걸까.

그것도  거 없다. 서로 좋아하는 사이인 것이다.
아주 놀랍지도 않다. 두 사람이 원래부터 아는 사이라고 렌나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야, 교실 안팎에서 두 사람이 티키타카를 나누는 모습이 자주 펼쳐졌으므로.

설마 그 정도로 진전된 관계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어째서일까. 렌나는 그것마저도 쉽게 납득이 갔다.
꽤 좋은 조합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
눈매는 무섭지만 알고 보니 너무나 다정한 사람이었던, 여자아이를 못쓰게 만드는 사장님.
렌나와 같은 교실에 있지만, 그녀하고는 정 반대로 밝고 명랑하고 싹싹한 일리냐.
그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하지 않고서야 세상에 어떻게 커플이 있겠는가.

그러니까, 이상하지 않다.
그럼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픈 걸까. 따끔따끔. 답답한 걸까.

아. 그런가.
렌나가 이상한 건가.

렌나는 다시 물 속에 머리를 담가 보았다.

타인에게 곧잘 의존하는 게 렌나의 나쁜 버릇이다.
자각하고 있어도 고치기 어렵다. 타인과의 거리를 적당히 조절할 수 있을 만큼 렌나는 능숙하지 못하다.

의존성이 잘못이고 문제라면 사장님과의 관계는 문제 투성이였다.
사장님은 렌나를 엉망진창으로 친절하게 대해서, 렌나는 그와 함께 있을 때면 머릿속이  뜨곤 했다.

오늘은 특히나 정도가 심했지. 절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짓말을 흔쾌히 용서받은 것은 물론이고,  사이의 공통점도 찾아 버렸다. 동일 집단으로 묶이니 렌나의 의존 스택이 파바박 쌓였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사장님은 의존 욕구를 부추기는 온갖 달콤한 말씀을 다이렉트로 던져줬다.

포기해도 좋다.
책임지고 고용해주겠다.
도망친대도 이상한 녀석은 되지 않는다.

 목소리를 되새기고 있자니 렌나는 온몸 이곳저곳이 욱씬욱씬 오싹오싹하다.
발가락을  오므리고 어깨를 떨어도 가시지 않을 만큼의 전율이 몸을 달린다.

최고는 그 다음이었지.

나만큼은  이해해줄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 렌나는 이제 사장님밖에는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외간남자에게 의존하면 나쁘다느니 민폐라느니 하는 부모님 말씀은 아무래도 좋다.

어쩔  없는 것이다.
렌나는 사장님에게 다독여질 수만 있다면 나쁜 아이라도 괜찮았다.
사장님만큼은 절대로 렌나가 나쁘다고 하지 않으니까, 아무 문제 없다.

렌나가 들러붙으면 사장님께도 민폐가 된다는 지적만큼은 수용할 필요가 있을지도.
 부분에 대해서도 렌나는 대처법을 정했다. 사장님에게 짐이 되는 만큼 직원이자 제자로서 봉사하면 된다.
쓸모있는 아이가 되어서, 응석 좀 받아주면서까지 데려갈 가치가 있음을 입증하겠다.

……라고, 일리냐 씨의 존재 따위 상정해두지 못한 렌나는 제멋대로 결심하고 있었다.

전제 자체가 틀려먹은 건 아니다.
사장님만 있다면 렌나의 고민은 아무것도 아니다. B랭크 도달을 위한 장비제작을 도와주고 계시고, 결과적으로 연금학부로 전환하게 해줄 것이다.
설령 그렇지 못하더라도 렌나가 어엿한 연금술사로 성장할  있게 지원한다고 약속하셨다.

하지만 그건 사장님이 렌나에게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렌나의 걱정을 해결해주면, 그만큼의 노동력을 얻을  있다. 렌나라는 아이를 곁에 두고 써먹을 수 있다.
그렇게 판단해서 렌나를 돕는 것이다.

전제가 그렇게 깔린 와중에 사장님이 렌나에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면.
렌나의 자리를 일리냐 씨가 완전히 대체해 버린다면.

렌나의 유일한 희망은 완전히 꺼져 버린다.

무서워. 괴로워.
사장님의 곁에 계속 있고 싶은데.

아냐아냐아냐. 괜찮아. 그럴 일은 없어. 설령 일리냐 씨가 있더라도 렌나를 완전히 내치시지는 않을 거야.
일리냐 씨도 사장님께 그랬잖아. 다른 여자아이와 친하게 지내도 된다고.
두 번째라도, 아니 세 번째나 네 번째라도 렌나는 괜찮다.

바보에 소심한 렌나라면 그 자리라도 지켜낼 수 없겠지만.

“윽.”

또 무서워졌다.
렌나는 어떻게든 공포를 몰아내기 위해, 사장님의 친절함을 떠올렸다.
따스한 목소리.
손길.
캐비넷에 넣어주시는 도중, 렌나의 가슴을 어루만져 주셨다.

“햐아…….”

그 큼지막한 손.
까슬까슬한 손가락 끝.
좋았다. 넋을 잃고 안심해버릴 정도로 좋았다.

“아……♥”

알지 못하는 목소리가 욕실을 울렸다.
다름 아닌 렌나 자신의 신음이었다.

“이상해, 요…….”

목소리를 확인할 겸 렌나는 스스로에게 말해 보았다.
어떻게 된 걸까. 이번에도 다른 사람 같은, 하이톤에 질척질척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온몸에 열꽃이 피어나는 기분이다.
특히 아랫배. 아랫배가 쿡쿡 쑤신다.
하복부의 어떤 경로를 따라, 몸 안에 뭔가가 빠져 나오는 감각.

살짝 겁먹은 렌나가 가랑이 쪽으로 손을 뻗어 보았다.
끈끈한 액체가 망꼬(렌나는 이게 한국어로 무엇인지 모른다)에서 흘러 나오고 있었다.
설마 오줌인가 싶었다만…… 그건 아닌 것 같다. 양도 질감도 전혀 다르다.

그러면 이게 뭘까.
왜 이런 게, 렌나의 몸에서 쏟아져 나오는 걸까.

렌나는 기본적으로 성에 무지하다. 교과서에 기반한 건전하고 깨끗한 기초지식만 있다.
아이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올바른 남녀관계는 무엇인지.  정도.

지식의 부재와 별개로 렌나의 몸은 이미 여자로서 꽃을 피웠다. 번식기에 접어든 신체는 착실하게 성욕을 적체해 왔다.
유감스럽게도, 잔뜩 쌓인 성욕을 풀어낼 방법은 모른다. 그것은커녕 렌나는 자신에게 어떤 욕구가 불만됐는지도 정확히 짚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쯤에서 끝났다면 차라리 나았겠지. 사춘기 인간관계 형성에 대실패한 렌나는 인정욕구와 애정욕구도 충족되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의존성과 애정결핍은 타르처럼 질척질척하게 녹아들어 성욕에 뒤섞였다.
그것들이  덩어리가  현재로서는 뭐가 뭔지 구분 자체가 불가능하다.

종합적으로, 렌나의 몸 이곳저곳에는 마땅한 이름조차 없는 관계상의 욕망이 마구 스며들고 쌓인 상황.

“사장, 님.”

약간의 무서움과 산더미 같은 답답함에 렌나는 가장 듬직한 사람을 불러 보았다.
그게 실책이었다. 아랫배의 아림이 더욱 거세진 것이다.
후우후우 더운 숨결을 토해낸 렌나는 무의식적으로 양손을 들어 올렸다.

뭘 어떻게 해야.

알고 있다.
사장님이 렌나에게 해줬던 그거.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다시 해보면 나아질 것 같아.

손가락 끝을 유두에 얹는다. 꼬옥 붙잡고 당겨본다.

“히으……♥”

그래. 이거다.
줄곧 이걸 하고 싶었던 거야.
거짓말 같은 만족감이 몸을 감싸기도 잠시, 콤플렉스였던 함몰유두가 딱딱하게 섰다.
빙글빙글 돌린다.

“아하악……♥”

그날, 렌나는 처음으로 자위를 했다.
누구에게도 배우지 않고, 어떤 사전지식도 없이 스스로 터득했다.

“으햐으으으…….”

한 차례의 미숙한 절정 끝에 렌나는 몸을  늘어뜨렸다.
졸음이 쏟아진다.

“렌나는.”

좁은 욕실에 목소리가 울린다.
렌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다.

“렌나는 사장님을 좋아하는 걸까요.”

좋냐 싫냐만 따지면 당연히 좋다.
하지만 그게 정확히 어떤 마음인지는 모르겠다.
유일하게 이해해주고 다독여주는 사람을 향한 유아적인 애착인지.
간신히 발산할 대상을 찾아낸 성욕인지.
풋풋한 소녀로서의 달콤한 연애감정인지.

뚜렷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그때, 렌나의 액정이 깨진 스마트폰이 알람을 울렸다.
사장님이다.

——잘 들어갔어? 오늘 좀 놀랐지? 내일 수업 빠져도 괜찮아. 교수님께 적당히 얘기해 놨어. 출근도 쉬어도 되고. 일리냐하고 게이트 같이 돌아. 말해뒀어.

손에 묻은 물방울을 털어내고, 렌나는 회신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렇지만 수업 갈게요. 일리냐 씨하고 게이트 돌고 출근도 합니다.

——착한 아이네. 근데 힘들면 언제든지 말하기다?

——넵. 사장님에게는 전부 말씀 드릴게요.

그 이상 답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비로소 정신을 차린 렌나가 욕실을 나서, 매트리스에 몸을 뉘였다.
누운  라인을 켜서 사장님의 메시지를 다시 확인했다.

착한 아이.
힘들면 언제든지.

“아…….”

몸이  뜨거워졌다.
렌나는  번째로 젖꼭지 자위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기분 좋게 절정했다.

소녀는 어른이 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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