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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화 〉 033. (아직까지는) 건전한 뒤풀이 파티 (102/125)

〈 102화 〉 033. (아직까지는) 건전한 뒤풀이 파티

* * *

여기서부터는 다들 기다리고 있을 후일담이다.

어떻게 스타트를 끊으면 좋을까요.

일단, 혹시나 모를 우회전 드리프트를 걱정하는 이들을 위해 미리 선언해 두겠다. 렌나의 문제는 해결됐다. 안심하시라고.

더 구체적으로 말해볼까. 렌나는 무사히 학부를 옮길 수 있었다.

당일 현장에서 곧바로는 아니고. 돌아오는 주말에 처리가 완료됐다. 연구 장학생 신청과 허가도 주말이 끝나기 전에 완료됐고.

그날 있었던 특별한 성과를 꼽으라면, 나는 동메달을 찍은 렌나가 아니라 일리냐에게 일어난 일을 꼽겠다.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고? 좀 들어봐라.

그러니까, 3·4위 결정전이 끝난 직후의 상황이다.

무수한 함성과 박수갈채 속에서 렌나가 일리냐에게 손을 뻗었다.

여전히 대자로 누워 있던 일리냐가 김빠지게 피식 웃고는 렌나의 손을 탁 맞잡았다.

두 사람이 해후하는 사이, 연단에 학생회장이 재등장했다. 그때 새론은 메달함과 상장을 품 안에 소중히 안고 있었다.

이 대목에서 다른 졸업생들은 약간의 이상함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메달 시상식은 학생회장이 아니라 학원장의 몫인데, 라고.

굳이 새론이 남아서 진행하고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나만 알고 있는 이유.

아니지. 어쩌면 렌나도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아라가키 렌나.="" 단상으로="" 올라와="" 주시길.=""/>

의문에 잠기는 사이, 새론이 렌나를 호명했다. 렌나가 허겁지겁 연단에 오른다.

승자는 시상식을 위해 나아가고 패자는 대기실로 돌아가려 한다. 마치 정해진 수순처럼.

일리냐가 뒤를 돌아서는 그때, 새론이 낭랑한 목소리를 이어나갔다.

<일리냐 이바노브나="" 에른스카야.="" 마찬가지로="" 단상에="" 올라="" 주시길.=""/>

이때, 일리냐는 방송을 끄지 않고 있었다.

무슨 의도가 있어서 켜뒀다기보다는 그냥 경황이 없어서 카메라 동작 여부를 놓치고 있었을 것이다.

<일리냐 뭔="" 짓="" 했냐ㅋㅋㅋㅋ????=""/>

<근데 유새론좌="" 미모="" 실화냐="" 특히="" 순산형="" 골반과="" 궁둥이=""/>

<ㄴ 이새끼="" 유랑그룹="" 신변관리팀에게="" 긴급체포될="" 예정=""/>

<그래서 일리냐="" 먼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슨="" 일인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실 굴복="" 선언하는="" 거="" 아님???=""/>

<“잦은 팬티="" 노출로="" 풍기문란="" 벌점="" 10점="" 드립니다.”=""/>

<오 구독자="" 30만="" 넘겼네=""/>

채팅방은 평범하게 곱창나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일리냐는 어안이 벙벙해서, 주춤주춤 단상으로 올라간다.

분명 잘못 들었을 것이다. 아니면 정말로 풍기문란의 책임을 묻는지도 모른다. 일리냐는 그런 걱정에 잠긴 얼굴이었다.

걱정하기는 시즈카도 마찬가지였다. 일리냐가 갑자기 왜 단상에 올라가냐며, 상점주인 씨는 이유를 알고 있냐며 따져댔다.

“글쎄요. 나쁜 일은 아니어야 할 텐데.”

나는 짐짓 모르는 체했다.

그리고 그때, 나란히 선 렌나와 일리냐 앞에 새론이 한 발자국을 다가갔다.

<대인 토너먼트="" 종합="" 3위입니다.="" 축하합니다.=""/>

평범하게 메달을 달아주고 상장도 건넨다.

본래는 이대로 의식이 마무리되지만 이번은 특별히 승급식도 같이 진행하게 됐다. 제안자는 나였다. 경기 끝나자마자 새론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일본 관리국의 혹시 모를 방해공작을 대비해 곧바로 승급을 공인해두는 편이 좋겠다는 판단에서였고.

<학원도시 초상관리국을="" 대신해="" 아라가키="" 렌나="" 양의="" B랭크="" 승급을="" 공인합니다.="" 축하합니다.=""/>

다른 하나는…… 승급 대상이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리냐 양.=""/>

새론이 일리냐를 호명한다. 자연스럽게 렌나가 좌로 한 걸음을 물러나고, 일리냐가 새론의 맞은편에 선다.

공적인 자리에서 늘 그렇듯 새론은 차갑고 무심한, 그리고 조금은 비웃는 듯한 얼굴이다. 종합적으로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기 어렵다.

잘 모르는 사람은 갑자기 호통이 날아오지 않을까 움츠러들게 된다.

하지만 나는 안심하고 행사를 지켜볼 수 있었다.

유새론 십년지기 고인물의 명예를 걸고 장담하는데, 지금 새론은 좋은 소식을 전하러 나타난 게 분명했거든.

실제로도 그랬다.

<지금부터 학원도시="" 통합학생회="" 회장으로서="" 직권에="" 의한="" 재승급을="" 실시하겠습니다.=""/>

생중계 화면 기준으로 3초가 걸렸다.

일리냐가 반색하기까지. 얼굴을 화악 붉히며 그야말로 싱글벙글한다.

<관련 훈령에="" 의거,="" 강등자의="" 재승급은="" 학생회장이="" 직권으로="" 승인하되,="" 재승급이="" 필요한="" 사유="" 네="" 가지를="" 각각="" 조건에="" 맞추어="" 소명해야만="" 합니다.=""/>

<첫째, 「상위="" 랭크에="" 준하는="" 능력을="" 갖추었는가」입니다.=""/>

<경기 도중="" 일리냐="" 양의="" 실시간="" 스트리밍="" 구독자="" 수는="" 30만="" 명을="" 넘겼습니다.="" 스킬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재승급이="" 필요하다고="" 판단합니다.=""/>

<둘째, 「상위="" 랭크에="" 해당하는="" 성적을="" 갖추었는가」입니다.=""/>

<일리냐 양은="" 이번="" 대인="" 토너먼트="" 경기에서="" 종합="" 4위에="" 도달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승부에서="" 부족함="" 없는="" 경기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재승급하기에="" 모자람이="" 없다고="" 판단합니다.=""/>

<셋째, 「게이트="" 공략="" 실적을="" 갖추었는가」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공인상점의="" 운영자께서="" 그간의="" 게이트="" 공략="" 내역을="" 제출="" 및="" 보증했습니다.="" 재승급="" 요건에="" 해당한다고="" 판단합니다.=""/>

<넷째, 「각성자="" 활동="" 도중="" 영웅적="" 면모를="" 보였는가」입니다.=""/>

<렌나 양의="" 연설을="" 통해="" 영웅적=""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재승급="" 요건을="" 만족한다고="" 판단합니다.=""/>

크흠, 하고 새론이 헛기침한다.

<이에 학원도시="" 통합학생회를="" 대표해="" 선언합니다.=""/>

<일리냐 이바노브나="" 에른스카야="" 양의="" A랭크="" 재승급을="" 허가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연단에서 렌나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관람객들 다 지켜보는데. 방송도 안 끄고.

뭐. 가끔은 이런 내추럴한 모습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

「그래서그래서, A랭크가 됐다아 이 말씀이다냥.」

엣—헴! 하고 일리냐는 A랭크가 박힌 각성자 등록증을 카메라에 대고 바싹 내밀었다. 여간 뿌듯한 게 아닌 모양이지.

나로서도 좀 의외였다. 새론이에게 게이트 공략 내역을 근거로 들어 재승급 심사를 추진해 달라고 부탁한 건 사실이지만, 현장에서 곧바로 A랭크를 천명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대인 토너먼트 3위? 그딴 게 뭐가 중요하냥? 핫! 하핫! B랭크따리가 불쌍해서 성적을 양보해줬을 뿐이다냥. 꺄핫핫핫!」

민망하면 괜히 짓궂게 말하는 녀석이다.

그래봤자 렌나와 나를 얼싸안고 거마어어 거마어어어 거맙쯥니다아앗 하고 울부짖는 걸 모두 지켜본 뒤라서 별다른 효용이 없다.

그리고 이쯤에서 모두 깨달았겠지만 일리냐는 냥냥체를 구사하고 있다.

앞선 8강전에서 본인이 내건 공약 때문이었다. 까먹은 사람을 위해 설명해 주자면 고양이귀 장착하고 냥냥체 방송이다.

시청자와의 약속만큼은 철두철미한 일리냐답게 고양이귀까지 정말로 장착 상태.

「렌나도…… B랭크예요…… 냥.」

렌나도 빠질 수 없었다. 함께 공약 이행 중이다.

「드, 등록증…… 보여드려도 좋은 건가요냥……?」

이쪽은 아직 냥냥체에 익숙하지 못한 듯하다. 고양이귀는 잘 뒤집어 썼지만.

렌나, 아니 렌냥냥이 시청자들의 성원을 못 이겨 등록증을 공개했다. B랭크라는 문구가 자랑스럽게 찍혀 있다.

그런데 어랍쇼, 등록증 우상단의 증명사진이 그대로 드러났다.

방송에 익숙한 일리냐는 손가락으로 가렸지만 렌나는 그런 센스가 없다고 해야 할까.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그냥 만천하에 공개해 버렸다.

사진의 렌나는 지금보다 서너 살은 어려 보이고, 안경까지 착용한 상태였으며…… 무엇보다 헤어 스타일이 많이 달랐다.

<깻잎머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 가능가능=""/>

<뿔테안경음침거유는절대못참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리냐가 뒤늦게 수습에 나섰지만 소용 없었다. 채팅방은 그 뒤로도 5분 넘게 렌나의 매끄럽고 하얀 마빡 얘기를 떠들어댔다.

결국 매니저가 채팅을 얼려버렸다. 과금이 가능한 소수의 인원만 도네를 이용해 발언권을 행사하는 가운데, 렌나와 일리냐가 평소처럼 오타쿠 토크를 나눴다.

뭐랄까. 냥냥체만 빼놓고 보면 평범한 일상이로군. 바로 몇 시간 전까지 치열한 승부를 나눴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평온하다.

나는 흐뭇하게 방송을 시청하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두 사람에게 문자를 보냈다. 바베큐 세팅 거의 끝났다고.

참고로, 두 사람은 11공구의 개인공방이자 공인 상점인 「청혁」에 있었다. 가게 문은 닫아두고.

그리고 새삼스럽지만 우리 가게 앞에는 바다가 있다. 서해라서 모래사장까지는 없지만 널찍한 방파제는 도처에 널렸다.

거기에 바베큐 그릴과 간이 의자를 얹어 놓으면 짜잔, 그럴싸한 파티장 완성입니다.

방송이 끝나면 여기에서 자축파티를 벌일 예정이다.

파티 장소를 어째서 어둡고 센치멘탈하며 인적이 드문 바닷가로 골랐느냐 하면, 왜 나한테 묻냐. 장소 선정은 내가 안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근처 고깃집을 찾아가서 회식하자고 했다. 고기를 좋아하는 렌나도 적극 찬성했고.

그런데 일리냐가 극구 반대했다. 우리끼리 파티해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무조건, 진짜 무조건 셋이서만 파티하겠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불길한 기운이 스멀스멀 끼쳤다. 까닭에 나는 온갖 핑계를 대가며 공공장소의 회식을 추진했다.

필사적인 저항에 맞부딪힌 일리냐는 전략을 바꾸었다. 녀석은 나를 설득하는 대신, 렌나를 어디론가 끌고 갔다.

내가 절대 따라가지 못하는 장소. 여자화장실로.

한 5분 정도 지나서 두 사람이 함께 돌아왔다. 일리냐는 세뇌 작업이 끝났다는 듯 싱글벙글이었고, 렌나는 반대로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채 내 눈치만 흘깃흘깃 살피고 있었다.

어렴풋한 연기 같았던 불길함이 뚜렷하게 물질화하는 순간이었지만, 나는 예정조화를 막아낼 수 없었다. 그때부터는 렌나도 우리끼리의 회식을 주장했거든.

결국 식당 공략 작전은 수립되지 못했다. 타협책으로 내놓은 게 야외에서의 바베큐 파티였다.

아예 실내라면 모를까, 제아무리 발랑 까진 꼬맹이 일리냐라도 노상에서 바닷바람 맞으며 엄한 짓을 시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판단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그리고 첫 번째 타자가 파티장에 나타났을 때, 「야외 파티 = 건전함」 공식은 보기 좋게 파훼되었다.

“사장님.”

“어, 렌나 왔——”

일리냐는 어디에 팔아 먹었는지 홀로 등장한 렌나. 녀석은 무릎까지 덮는 새하얀 드레스 차림이었다.

시원스러운 가죽샌들에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밀짚모자까지 뒤집어 쓴 건 덤이다.

척 보는 순간 받은 인상은…… 이런 말하면 좀 씹덕 같아서 자제하고 싶은데, 그래도 굳이 말하자면 「여름휴가 도중 바다에서 만난 신비로운 소녀」였다.

가슴만큼은 신도시 초보맘이었지만 아무튼.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불건전하다고까지 평가할 게 뭐가 있겠나 싶을 테지.

사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파렴치한 복장은 아니었다. 오히려 풋풋하고 소녀스럽게 잘 꾸몄다.

다만 뭐랄까.

꾸밈이라는 개념 자체가 렌나답지 못하다고 해야 할까.

렌나 비하는 아닌데. 솔직히 말해서 렌나는 예쁘게 차려입고 다니지는 않는다.

우선, 출근할 때든 어딘가 놀러갈 때든 녀석은 항상 학원의 제복 차림이다. 아니면 아카데미 지정 체육복을 입고 있거나.

학원 내외에서 녀석을 두달 가까이 지켜봤지만 그 공식은 한 차례도 깨지지 않았을 정도.

미적인 센스가 모자라기 때문은 아니다. 미감이 떨어졌다면 지금처럼 보기 좋은 형태로 포션을 정제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흙수저라서도 아니다. 포션으로 수익이 생긴 뒤에도 계속 제복만 입고 다녔거든.

그럼 도대체 뭘까. 왜 이러는 거지. 하나 사달라는 묵언의 시위인가. 오랫동안 궁금해 하다가 최근에야 그 원인을 깨달았다.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거다.

렌나의 가슴은 수상할 정도로 큼지막하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몸매를 부각하는 복장을 입었다간 정말로 주변의 시선을 한몸에 흡수하고 만다.

남들의 성적인 시선을 은근히 즐기는 여성도 세상에는 존재하겠지만, 렌나는 그것과 정 반대 되는 타입이다. 성적인 시선은커녕 그냥 시선도 못 받아낸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극단책이 바로 펑퍼짐하고 수수한 제복이다.

좀 둔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저절로 꽂히는 눈길의 절반 정도는 예방할 수 있다.

말하자면 스스로의 매력에 일종의 제약을 가한 셈이다.

그랬던 렌나가 지금은? 몸태가 훤히 드러나는 하얀 드레스를 갖춰 입었다.

어떻게든 시선을 피하기 위해 꽁꽁 싸매고 감추었던 렌나이지만, 이번만큼은 다르다. 오히려 예뻐 보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서 스스로를 꾸민 것이다.

그 의도가, 어떻게든 사장님의 야한 시선을 받아보겠다는 마음씨가 그야말로 불건전하고 오만불손하다.

솔직히 좀 괘씸하기까지 하다. 어딜 어른을 유혹하려고 꽃단장을 했어! 하고 혼내주고 싶다.

“어, 어떤…… 가요? 파티라고 해서…… 일리냐 씨가 예쁜 옷을, 챙겨 나오래서…….”

물론, 열심히 떨리는 목소리로 감상을 요구하는 렌나에게 정말로 호통을 내리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솔직히 나빠 보이지도 않는다. 잘 어울린다.

괜히 심술이 샘솟은 이유는 혹여 다른 사람이 볼까봐.

아름답게 태어나서 야하게 자란 몸을, 내 렌나를 다른 남성이 알지 못하도록 꽁꽁 감싸매주고 싶다.

혹여라도 눈독 들이지 못하게 어딘가에 가둬놓고 나만 몰래몰래 아껴가면서 감상하고 싶다.

그런 바보 같은 독점욕을 느낄 정도로 렌나는 예쁘다.

물론, 정말로 이런 헛소리를 모두 쏟아내지는 않았다. 그랬다간 렌나가 창피함을 견디지 못하고 현장에서 부끄사해버릴 테니까.

그 대신 훨씬 순화된 감상을 돌려줬다.

“예쁘다. 잘 어울려.”

“에흐헤헤헷…….”

간단한 칭찬에 몸을 비비 꼬며 좋아하는 렌나. 이것만큼은 남에게 보여줘선 안 되겠다 싶어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없겠지. 11공구는 원래부터 유동인구가 적고, 이곳은 폐쇄역 인근의 밤바다이기까지 했으니까.

심지어 오늘은 평일이다. 바다 구경 오는 다른 커플들도 없다.

있더라도 방파제까지 올라오지는 않을 것이다. 눈치가 있으면 적당히 비켜주겠지.

“일리냐 씨는…… 방송 종료하고 천천히 온대요.”

“그럼 먼저 먹고 있을까? 익히려면 시간도 걸릴 테고?”

대답은 구하지 않고 불판에 고기부터 올렸다.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으려는데, 렌나는 앉지 않고 우물쭈물한다.

뭔가 싶어서 의자를 돌리니 렌나가 조심스럽게 고기를 걷어냈다.

“저기, 그게……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감사 인사라든가. 앞으로의 계획이라든가.”

렌나가 푸욱 고개를 숙였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뺨을 어떻게든 감추려고.

“칭찬도…… 아직 못 받았어요.”

내 옷깃을 꾸욱, 잡아 당긴다.

“그러니 잠깐만…… 아주 잠깐만 렌나하고 둘이서, 걸어주실 수 있을까요?”

멀리 뜨인 달이 뜬금없이 시야에 사로잡혔다가 렌나의 밀짚모자에 가려졌다.

그래서일까. 나는 홀린 듯이 렌나를 따라 바닷길을 걷기 시작했다.

꼬옥. 손을 맞잡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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