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0화 〉 039. 데덴찌 (2) (120/125)

〈 120화 〉 039. 데덴찌 (2)

* * *

“소등하겠습니다.”

짧게 선언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아랑곳않고 조명을 꺼뜨렸다.

어둠에 파묻혀 침침해진 눈을 가늘게 뜨고 이부자리를 찾았다. 바닥이다.

그렇다고 비참하게 맨바닥은 아니다. 프론트에서 빌려온 깔개와 담요를 이용해 침대 못지않은 잠자리를 만들어냈다.

……암만 그래도 불편하지만.

뒤척이는 순간 옆방, 2호실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일리냐와 시즈카.

정확한 대화 내용은 알아듣기 어렵다. 대강 들뜬 시즈카와 실망한 일리냐가 자기 할말만 주절거리는 느낌.

뭘까 싶어서 귀를 기울이기도 잠시. 더 가까이에서 「코로로롱…… 피유— 코로로로로롱…… 피유—」하는 숨소리가 들려온다.

누군가 하면…… 묻는 의미가 없지. 코골이까지 자유분방한 인간은 지구상에 청아 사장뿐일 텐데.

정리하자면 일리냐와 시즈카가 2호실을 함께 쓰고, 자연스레 나와 청아 사장이 2호실을 사용하게 됐다.

인원 구성이 지금처럼 잡힌 이유는…… 물론 데덴찌 때문은 아니다. 그런 건 애초에 실시하지도 않았다.

더 깊게 따지자면 손바닥 편가르기 자체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모두의 수요에 만족하는 이상적인 조합이 이미 존재했었거든.

우선, 일리냐는 나하고의 동침을 선호했다. 강력하게 선호했다. 반면 시즈카는 외간남자와의 문란한 합방은 곤란하다는 입장이었고.

추가로, 청아 사장은 의견 개진이고 나발이고 이미 코까지 골며 잠들어버린 뒤였다.

시즈카가 깨워서 물어보겠다는 걸 내가 만류했다. 그럴 가치가 없었다. 성격상 너희들 꼴리는 대로 하라며, 오히려 내 선택을 흥미진진하게 구경해댈 게 뻔했으니까.

이러쿵저러쿵해서 딱히 분쟁도 없이 나와 일리냐가 동침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좀전까지 경쟁자를 몰아내려 각오를 다지는 일리냐였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합방이 추진되자 역으로 부끄러워졌던 모양이다. 녀석이 어느 순간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는…… 또또 그놈의 전진에 전진으로 대응하는 버릇을 드러냈다. 렌나한테 자랑해야징— 하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지껄였던 것이다.

딱 그 타이밍이었다.

내가 청아 사장하고 자겠다고 밝힌 건.

……아니아니, 일리냐보다 청아 사장이 좋다는 의미는 결단코 아니다. 두 사람 가운데 함께 방을 쓰기 좋은 사람은 당연히 다루기 쉬운 일리냐였다.

일리냐와 대놓고 합방하기가 부끄러워서도 아니다. 어차피 누구하고는 같이 자야 하는 상황이니까.

게다가 합방 사실을 알려지는 상대는 청아 사장과 시즈카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와 일리냐의 관계를 대강 짐작하는 두 사람에게까지 내숭 떨 이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지금의 객실 배치를 선택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로, 시즈카와 청아 사장을 따로 떨어뜨려 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둘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냥 둘이 안 친해서 붙여놓을 이유가 없었다고나 할까.

아니, 친하지 않다는 표현도 별로 적절하지는 못하겠네. 실제로는 서로 거의 모르는 사이에 가깝다.

그야, 시즈카가 우리 공방의 단속 관리 임무를 맡아 면식이 텄을 무렵에는 이미 청아 사장이 공방을 떠난 뒤였으니까.

물론 시즈카는 그 이전에도 11과의 견습 선도부원으로 활동헀다. 덕분에 두 사람이 몇 번 스쳐 만나기도 했었다는 흐릿한 기억이 있지만…… 눈치를 보아하니 두 사람은 서로 얼굴만 간신히 알고 있는 분위기이다.

이번 여정을 계기로 친해지자! 라는 프로젝트는 우리 계획에 없다. 게다가 두 사람이 급속도로 가까워질 만큼 성향이 들어맞는 것 같지도 않았고.

괜히 어색하고 데면데면한 사람과 숙식을 함께하게 만드느니, 친구인 일리냐와 시즈카를 같은 방에 넣어두는 편이 낫다는 판단이다.

시즈카로서는 친구(심지어 현지인)와 함께 잔다는 선택지가 걸려서 기쁜 듯하다.

이어서 일리냐와의 동침을 피한 두 번째 이유를 밝히자면…… 좀 민망한데, 일리냐가 여행 짐을 꾸리면서 야한 속옷을 잔뜩 챙기는 걸 봤기 때문이다.

아니아니. 일리냐가 좀 막가파에 전진 미치광이이기는 해도 분별력이 있는 녀석이다. 그렇기에 설마 청아 사장(동경하는 마녀님이자 어린시절의 은인)과 시즈카(학원도시 1호 절친)이 목소리가 다 통하는 옆방에 있는 마당에 성행위를 시도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닌가? 시도 정도는 할려나?

뭐가 됐든, 일리냐라면 티나지 않는 선에서 장난질을 가할 게 분명했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나 자신의 음란마귀를 완전히 주체할 자신이 없다. 다른 여자라면 모를까. 일리냐하고는 볼장 다 본 사이라서, 명백히 이성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까닭에 일리냐와의 동침은 그 자체로도 나의 뇌 용적을 행복한 의미에서 갉아먹고, 그렇기에 곤란하다. 이건 놀고 즐기기 위한 여행이 아니니까.

호문쿨루스가 통제를 벗어나 날뛰고 있다. 어쩌면 많은 사람이 다치거나 죽을지도 모른다.

놈에게 대항하기 위해, 그 과정에서 헌터가 되느냐 마느냐를 결정짓기 위해 나는 이곳에 있다.

그러니까,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으로 무장한 일리냐는 잠깐동안 독성 물질이다.

요약하자면 일리냐가 너무 귀여운 죄로 합방은 불가능.

……당연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일리냐는 실망했다.

실망한 건 둘째 치고 삐졌다. 내일 게이트 공략에서 내 말을 제대로 들어줄지나 모르겠다.

뭘로 풀어주지. 평소처럼 뽀뽀해서 풀어주자니 기회가 될지 모르겠다. 후한 상점을 약속해봤자 들어먹지도 않을 테고.

고민하고 있는 그때, 나는 문득 코고는 소리가 줄어 들었다고 알아차렸다.

문득 시계를 보니 10시였다. 한국 기준으로는 새벽 4시. 지금까지 잠들지 않고 버틴 내게 감탄했다가, 그렇다고 바로 잠들지도 못하겠다 싶어서 한숨.

“저기요.”

정적.

“백청아 씨.”

이번에도 정적.

그러다가 청아 사장도 자각이 있었는지 황급히 코 고는 소리를 흘린다.

코로로로롱…… 피유, 하고.

듣고 있던 나는 투덜거린다.

“당신은 생체리듬이 러시아 시간대에 있었잖아. 아직은 그렇게 푹 잠들 때가 아니라고.”

무엇보다도, 라며 나는 덧붙인다.

“그쪽 진짜로 잠들면 그것보다 더 크게 골거든.”

초반 30분은 지금처럼 골지만, 그 이후에는 쿠루루루루룽…… 휘용—— 하는 느낌이다.

이걸 이렇게 자세하게 아는 내가 싫다. 싫지만, 뭐 어쩌겠냐.

이 사람은 내 부모와 다를 바가 없는데.

지금의 나를 만들어낸, 어떤 의미에서의 제작자.

스승.

“청아야.”

“어허. 건방진 애새끼로고.”

지는 성장도 멈췄다면서.

투덜거림을 속으로 삼키는 한편 청아가 되묻는다.

“……무슨 일이냐, 제자야.”

“뭐 걱정하는 일 있는 것 같아서요.”

그래. 이게 일리냐 대신 청아와 방을 함께 쓰기로 결정한 세 번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청아 사장이 신경 쓰여서.

“그거 알아요? 예전에도 당신은 무슨 문제가 생기면,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아서 답답하면 잠든 척하곤 했어요.”

공방 2층의 소파에 드러 누워서. 양말까지 훌러덩 벗어서 아무데나 내팽개치고 쿨쿨. 그야말로 세상만사 관심 없다는 듯이 자버린다.

나는 그게 그녀가 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청아 사장은 어떤 문제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세다. 그래서 다가올 미래에 두려움 따위 느끼지 않고 편안히 잠들 수 있노라고, 보이는 부분만 취합해 결론을 내렸다.

지금으로서는 그때의 답안이 옳았는지 잘 모르겠다.

공방의 사장으로 일해보니, 그리고 어른이 되어보니 온갖 문제를 홀로 감당하게 되었다. 그중에는 도저히 맞서 싸울 엄두도 나지 않는 문제도 있었다.

수많은 사람의 관심에 시달리는 소녀가 책임감 없는 악의에 망가졌을 때라든가. 타고난 운명에 겨우겨우 저항하던 여자아이가 몇 안 되는 버팀목에게 납치됐을 때라든가.

그때 드러눕는 모습이, 눈을 감고 잠든 시늉이, 당당한 철인의 대처가 맞는 건가.

오히려 불안을 직시하지 못하고 자기 안으로 파고드는 행위가 아니었나.

가끔은 그런 의문을 가졌다.

“난 당신이 아무 고민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냥 어마어마한 재능을 타고 나서, 유유자적하면서 쇼핑하고 먹고 싶은 거 먹고…… 사연이 있다면 무슨 천 년 묵은 들개가 수련해서 사람이 됐다든가, 그런 우스꽝스러운 전개였을 줄 알았어요.”

하지만 아니었다. 어쩌다 정착한 야생동물처럼 제멋대로 살아가던 그녀에게도 나름의 굴레가 있었다.

내게는 필사적으로 드러내지 않았지만, 몇 년을 용케도 감추고 있었지만 결국에는 드러났다. 그것도 제자까지 덤터기로 말려들게 만드는 꼴사나운 방식으로.

감히 추측컨대, 그게 청아 사장이 근심하고 있는 이유였다.

“제자에게 짐을 씌웠구나.”

거 보라니까.

우리는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고, 동시에 전혀 모른다.

“짐 좀 씌우면 어때요. 민폐 끼치면 또 어떻고.”

망할, 하고 나는 꼭 중등부 시절처럼 지각없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 사람 앞에서는 자꾸만 그렇게 행동하게 된다. 어린애처럼 무책임하고 충동적이게.

그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나는 횡설수설 덧붙인다.

“공방에서 당신 밑에서 일하는 내내, 솔직히 좀 엿같았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난 내 편이 있다고 느꼈어요. 뭔가 엉망진창으로 박살 나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도 청아 사장님한테 가서 징징거리면 어느 정도 수습이 되겠거니, 그따구로 생각했던 거예요. 그런데 그거 알아요? 지금은 내가 당신보다 훨씬 어른이에요. 덩치는 애진작에 따라잡았고 최근에는 멘탈에서도 추월했다고.”

이 대목에서 나는 대답할 타이밍을 주지 않았다.

일부러 그랬다. 청아 사장이 언제나처럼 반박할 수 없는 반박을 내놓을 것 같아서.

“청아 사장님이든, 사장놈이든, 스승님이든, 그냥 청아든 누군간에…… 나도 당신 편이에요. 그것만 알아둬요.”

“그러냐.”

청아 사장이 열없는 숨을 흘렸다. 그러자 소금기 서린 바다내음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익숙한 냄새였다. 우리 가게에서 저절로 느껴지는 냄새. 나는 지금껏 그것이 해안도로의 자연향이라고 느꼈다.

그렇지만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이제야, 바닷가를 벗어나서야 깨달길 이건 청아 사장의 향기였다.

“세혁아.”

“왜요.”

“스승님을 꼬시려 들면 쓰겠느냐.”

청아 사장이 이죽이죽 웃는다.

그리고 조금 짓궂게, 혹은 쓰디쓰게 덧붙인다.

“……하마터면 침대 위로 올라오라고 권할 뻔했다.”

“불러도 안 가요.”

“그랬다면 이쪽에서 내려갔지. 각오를 끝마친 미소녀를 얕보지 말도록.”

아주 한마디를 안 져요. 한마디를.

“하여간에 사람이 말이야. 도대체가 뭘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에 몸짓에…….”

내가 그렇게 느꼈던 건 청아 사장의 덕분이겠지. 내가 그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실컷 의지할 수 있도록, 청아 사장은 일부러 뻔뻔하고 태연자약한 모습만 보였다.

그런 청아 사장의 의도에 알맞게 길러졌다는 사실이 분해서, 지금 이 순간까지도 속깊은 어른으로 남으려 하는 저 여자가 짜증나서, 그럼에도 여전히 동경하고 좋아한다는 나 자신에게 열받아서.

그래서 나는 말꼬리를 흐렸다.

어쨌거나 청아 사장의 기분이 풀렸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그렇다면 굳이 신체 말단 부위를 오그라뜨리는 다독임을 보내줄 이유도 없었고.

자연스럽게 두 사람 모두 잠드는 가운데, 흐릿해진 의식 속에서 이런 속삭임을 들었다.

아니, 들었던 것만 같은 기억이 든다.

고맙구나, 이제는 나보다 커버린 나의 아이야.

라고.

***

사람은 일반적으로 밤에 부끄러운 짓을 저지르고 다음날 아침에 후회한다. 지금 내가 그렇다.

현지 시각 7시에 기상했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고 멍때리기 5분.

고개를 돌리다가 문득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청아 사장은 없다. 침실에 연결된 샤워룸에서 물소리가 들려온다. 먼저 일어나서 씻는 중인가.

늘어지게 하품하다가 멈칫.

근데 잠깐만. 나 어제 청아 사장한테 뭔 소리 했더라.

자문할 필요는 없었다. 다 기억하고 있는 탓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그게 오히려 괴롭다. 어젯밤 내뱉은 대사들이 스윗한 에코 효과를 뒤집어쓴 채 머릿속에서 울리기 시작했거든.

나도 당신 편이에요~ 그것만 알아둬요~ 그거 알아요~? 지금은 내가 당신보다 훨씬 어른이에요~

묘하게 청소년 드라마의 반항아 캐릭터 같은 톤이다. 그 있잖아. 선생님에게 저항하지만 결국엔 스승의 은혜를 깨닫고 올바른 학생으로 변모하는 전형적인 인물.

그게 무슨 상관이냐. 반항아 톤이건 모범생 톤이건 내용이 부끄럽기는 매한가지인데.

설마 청아 사장은 똑바로 기억하지 못하겠지.

슬그머니 일어나 화장실로 향하니 방금 씻어서 뽀송뽀송해진 청아 사장이 튀어나오고 있다.

“여어. 힘세고 강한 아침이다.”

말끝마다 키읔이 하나씩 붙어 있는 조롱조였다. 여어ㅋ 힘세고 강한 아침이다ㅋ

설마 어제 일을 기억하고 있나. 어디까지 기억하고 있지. 나는 수치심에 몸부림치듯 제자리에서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청아 사장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러면서 이번에도 역시나 키읔을 동반한 농담을 던져댔다.

“뭐냐. 오줌 싸고 싶은데 팬티 벗는 법을 모르는 게냐. 어른이 돼도 어쩔 수 없구먼.”

청아 사장이 하늘빛 머리카락을 털어대던 수건을 목에 걸치고, 내 바지를 향해 손을 뻗는다.

탁 쳐냈더니 낄낄거리며 침실로 돌아간다. 울화가 치밀었지만 나는 얌전히 샤워룸으로 향했다.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 저항해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학습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리냐와 시즈카가 있는 데서 저러지는 않겠지. 가라앉아 있는 청아 사장을 쳐다보고 있느니 이게 낫다.

“어이어이. 사랑스러운 「내 편」아, 아침은 내가 쏠 테니 실컷 먹어라.”

……라고 좋게좋게 넘어가려던 내가 어리석었다.

“무슨 편? 내 편?”

맞은 편에서 조식을 먹던 일리냐가 눈을 가늘게 떴다.

청아 사장이 침실 파트너로 간택되면서 안 그래도 기분이 우중충해 보였던 녀석이다. 이상한 어휘 선정까지 들려줬다간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황급히 말을 돌리는 의미에서, 소비에트식 호텔 조식에 신나 있던 시즈카를 돌아봤다.

“저기, 시즈카?”

“넷? 아라가키 시즈카, 입니다?”

그렇겠지. 당신이 렌나일 수는 없잖아.

와중에 입가에 블린(러시아식 팬케이크?)의 크림치즈가 묻어 있지만 나중에 알려주자.

“게이트 공략은 이거 먹고 바로 개시하는 거잖아요? 슬슬 공략 자료를 봐둬야죠?”

“앗, 앗, 그렇습니다!”

시즈카가 주섬주섬 자료집을 꺼내들다가, 히요오오옷 하는 국적불명의 감탄을 흘렸다.

“시즈카, 지금 뭔가 굉장히 전문적입니다……! 가슴이 웅장해집니다……!”

얼른 꺼내라고 재촉하려다가 말았다.

신학기 직전까지만 해도 관할 구역 가게 재고털이를 특별임무라고 인식한 시즈카였다. 밀정을 겸한 안내역이라는 중책을 맡았으니 들뜨는 마음도 이해가 간다.

그 긍정 에너지의 영향을 받아버린 덕분일까. 죽은 눈으로 내 편? 내 편? 누가 내 편이야? 하고 중얼거리던 일리냐도 일단은 시즈카에게 집중했다.

한 뼘 떨어져서 일리냐와 내 반응을 구경하던 청아 사장도 시즈카를 돌아봤다. 비릿한 웃음은 그대로였지만.

“엣—헴! 지금부터 A­1번 게이트, 가칭 「짭청아를 찾아라」의 공략 작전을 개시, 합니다!”

아직 개시한 건 아닌데요.

뭐어. 그냥 내버려 두자. 분위기에 취해 있으면 다루기 쉬워서 편하잖아.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