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화 〉프롤로그 (1/87)



〈 1화 〉프롤로그

다들 고마웠어

이제 정말 가볼 게

그렇게, 그는 그토록 기다려왔던 자신이 원래 살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

마지막 편을 올리고 나자 이제서야 전부 끝났다는 해방감에 나는 기지개를 켰다.

정말 오랜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재미 삼아 시작된 웹소설이었지만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의무가 되어버렸고 그날 연재를 하지 않으면 하루 일이 안 풀릴 정도로 연재에 대한 강박에 시달리던 일상이었다.

그것이 오늘을 기점으로 끝난 것이다.

그다지 글을 잘 쓰는 편이 아니라 유료연재는 커녕 최신편을 봐주는 독자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연재를 하라고 닦달하는 사람도 한둘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약속도 있고....
꾸준히 글을 업로드 할 때마다 재밌다고 하면서 댓글 남겨주던 몇몇의 독자분에게 죄송했기에 후반부를 쓸 때는 반 정도는 의무감에 연재했다.
매일 3시간씩 쓰고 어떨 때는 주말을 통째로 갈아 넣어가며 글을 썼던 적도 있었다.

그렇게 총 500화
보는 사람도 거의 없는 무료소설에 일 년을 갈아 넣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리자 자괴감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대충 글을 올리고 10분 정도 지났기에 혹시 본 사람이 있나 확인해보기 위해 새로 고침을 누르자 얼마 없는 독자 중  명이 글을 본 것인지 조회 수가 1로 바뀌어있었다.
조회  1의 주인공이 바로 댓글을  것인지 댓글 창에 new가  있었다.

[작가님 이대로 끝나는 거예요? 그럼 다른 히로인들은 어떻게 되나요?]
-qwe123

내 얼마 없는 독자 중 한 명
글을 업데이트하자마자 칼같이 와서 매번  번째로 댓글을 달아주시지만, 이 사람이 썼던 댓글들은 대부분 쓸데없는 소리뿐이다.

 글을 읽는 독자들은 다들 특성이 대단히 튀었는데 그중 qwe123은 하렘에 목을 매는 독자였다.
[용사인데 옆에 공주가 있는 건 당연한  아닌가요?]
[용사물에 드래곤 히로인은 진리죠]
[여기사는 대체 언제 다시 나오는 건가요. 기다리고 있습니다]
[작가님... 수인좀...]
[여신님은 처음에 등장해서 왜 아직 나오지 않는 거죠? 어서 빨리 등장시켜서 하렘원으로 넣죠] .....

아예 고민할 필요도 없는 슬라임 켄타로우스 언데드 등등 하렘 매니아를 넘어서 하렘에 미친 게 분명한 독자였다.
qwe123과의 1년간의 추억을 되새기며 새로 고침을 하니  댓글이 달려있었다.

[얀데레....더 못 보는 건가요? 빼애애액 얀데레!!!!!]
-얀데레다이스키

[??? 벌써 끝났다고요? 뭐임? 장난이죠? 아직 교황이랑  죽이지도 않았는데 벌써 끝? 와 고구마만 먹다 끝났네. 하차함ㅅㄱ]
-하차좌

[하차좌닠ㅋㅋㅋㅋㅋㅋㅋ1편부터하차하더니 결국 완결편까지하차하셨넼ㅋㅋㅋㅋㅋㅋ]
-캬쿄캬키큐

내 얼마 없는 독자들은 대부분 이 모양이다.

그리고, 나는 무척이나 줏대 없는 작가였기에 그들의 소망을 대부분 이루어주었다.
글을 올리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빠르게 올라오는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의 마음은 무척이나 감사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줏대 없는 작가와 미쳐버린 독자님들의 돌아버린 콜라보 덕분에 500화나 되는 작품 에필로그에 조회 수가 6에서 더 안 올라가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글 써야겠지?
500화를 쓰면서 힘들기만 했던  아니었다.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그것을 재밌다고 하며 웃어주는 독자가 있었기에 무척이나 즐거운 시간이기도 했다.

물론, 내가 근본부터 아싸라서 그런 것도 있다.

다음 작품에 어떤 소재를 쓸까 고민하던 중 갑작스러운 굉음에 정신이 깼다.

[쾅!]

가난한 대학생 신분이었기에 내가 사는 곳은 조그마한 원룸이었다.
그런 조그마한 원룸 화장실에서 난 커다란 소음에 혹시 공사 중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현재 시각 새벽 2시
공사하기에는 매우 많이 이른 시간이다.

그러면 혹시 위층이나 아래층에 사는 사람이 넘어졌던 걸까? 라고 하기에도 가까운 곳에서 소리가 났기에 절대 아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진다.

강도?
우리 집에 컴퓨터 뻬고 훔쳐갈게 없는데?

"저...저기 누구 있어요?"

 말에 반응하듯 자잘한 소리가 들렸고 화장실에 있는 게 사람인 것을 확신하자 곧장 책상 위에 있는 휴대폰을 들고서 112를 누른다.

[쿵]

'겨,경찰을...'

"이 문은 대체 어떻게 여는 거지?"

112통화 버튼을 누르기 직전 들려오는 여자 목소리에 나는 순간 전화를 거는 것을 멈추고 화장실 문을 쳐다보았다.

너무나도 소변이 마려워 잠시 우리 집에 들른 거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럴 리가...

소변 때문에 온 것이 맞다고 하더라도 나는 완결을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서 5시간을 앉아있었다.
그러니, 5시간 넘게 화장실 변기에 앉아있던 게 아니고서는 내 가정이 맞을 수가 없다.

사람이 지나다닐 수 없는 구조의 창문이 하나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들어갈 출입구가 없는 곳에 어떻게 사람이 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당장 경찰에 신고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나는 휴대폰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아니, 누르려 했다.

[쾅!]

다시 한번 들려오는 굉음과 함께 바로 앞에 있던 화장실 문짝이 나를 향해 덮쳤고, 그와 함께 코가 짓뭉개지는 듯한 느낌.

"꾸엑"

"사람이 있었구나"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오기는 했지만, 코에서 느껴지는 극한의 고통이 뇌를 지배한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데?'

112가 아니라 119가 시급한 상황이었기에 나는 젖먹던 힘을 다해 손에 있는 핸드폰을 찾았지만 아까 문짝을 얻어맞고 휴대폰을 떨어트린 것인지 왼팔에 휴대폰의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다.

"끄악!!!"

방금 전 극한의 고통은 그저 장난이었다는  뒤이어 코에서 찾아오는 고통은 말로 표현할수 없는 것이었다.
생애 이런 고통은 부모님에게 독서실 간다고 거짓말하고 피시방갔던  아버지에게 개 패듯이 두들겨 맞았을 때를 제외하고는 인생 최고의 고통이었다.
그렇게 고통에 악을 지르던 중 눈앞에서 환한 빛이 났다.

"아악!!! 아...아...아?"

고통 속에서 부여잡고있던 코가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괜찮지?"

바로 앞에 있었던 것인지 그녀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파란 머리카락이었다.

하늘색?
그것보다는 연한듯한 느낌의 색이었고,  다음 보인 것은 무척이나 차가운 푸른색 눈동자와 조그마한 얼굴이었다.
마치, 그림 속에서 나온듯한 신기한 외모를 하고있었다.

"고맙다는 말은 됐어."

"괜...찮긴한데 누구세요?"

사람이 물어봤으면 대답을 해야하는게 인지상정이거늘.
얼굴만 예쁘면 다인가?

"여긴 어디야?"

"아니, 그래서 누구시냐고요"

그리고 예쁘더라도 무단 가택 출입은 범죄다.
그리고 타인의 기물 파괴는 더더욱 용서 못 할 죄악이다.

아무리 예뻐도 죄는 죄다.

"여기가 어디냐고 묻잖아"

"저도 그쪽이 누구신지 물어봤는데요?"

 그래도 차갑던 눈이 더욱더 차가워졌고 왜인지 소름이 끼치게 무섭다.
말투에 마치, 가시가 있는듯한...
하지만, 나에게는 그녀에 대한 공포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저기요. 그쪽이 어떻게 여기 들어왔는지 모르겠고 들어온  전혀 상관없기는 한데. 가실 땐 가더라도 화장실 문은 변상해주셔야죠"

가뜩이나 가난한 학식충인데 원룸 문짝을 뜯는 것으로 모자라 반 토막을 내버린 참담한 상황을 내버려 두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

그녀는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처참한 광경을 한번 보더니 아무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보고 변상하라는 거야?"

"이제야 알았으니 다행이네요. 적당히 10만 원만 주세요"

대충 용돈 벌이를 하겠다고 노가다나 인테리어 알바를 뛴 적이 있기에 직접 시공할 생각으로 10만 원만 받을 생각이다.
무서워서 15만 원 부르려다가 깎은건 아니었다.

"현금이 없으시면 계좌 적어드릴게요"

물론 얇은 그녀의 팔로 화장실 문짝을 날리고 이상한 빛으로 내 코를 치유해준 것은 기억하고 있었고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판타지 같은 것보다 돈이 더 중요한 문제였다.

그딴 판타지는 일단 돈 먼저 받고 물어보면 된다.
그렇게 나는 종이에 계좌를 적고 그녀에게 건넨다.
하지만, 그녀는 멀뚱히 내가 내민 종이를 쳐다볼 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돈?"

"그렇죠"

"금화는?"

"물론. 땡큐입니다"

무료에 보는 사람도 없기는 해도 나름 웹소설을 쓰기도 했고 학창 시절부터 수많은 판타지 소설들을 섭렵해왔기에 현재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어느 정도 깨닫고 있었다.
그녀가 벌인 일이나 마법 같은 것은 둘째치고 생김새나 옷차림까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란 것을 누가 봐도 알 정도였다.

하지만, 돈이 먼저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판타지보다 돈이 우선이다.
이게 현실인지 아닌지도 돈 먼저 받고  다음부터 생각할 것이다.

그녀는 마법사가 입는 로브의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금화  개를 꺼내 내가 내민 손 위에 올렸다.

"아유, 감사합니다"

"이곳은 어디지?"

결제가 끝나자마자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볼을 꼬집는다.
'아...아픈걸보니 현실이구나'
코를 얻어맞았을 때 극한의 고통을 느끼기는 했지만, 금세 나아버렸기에 다시 한번 현실 확인을 할 필요성이 있었다.

"대한민..."

말을 하다가 어떻게 대답을 해야 그녀가 이해를 할 수 있을까 다시 한번 고민을 해본다.
애니메이션이나 라노벨을 많이 봤는데 이럴 때 주인공이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떠올려보자 금세 답이 ....안나온다.

"한국? 서울?"

"아? 한국에 오신  아세요? 그럼 이야기하기 편하네. 그러니까 여기가 서울이라는 곳..."

"강남? 강북?"

이세계에서 온 것치고 너무 잘 안다.

"영등포..."

"그럼 주인공이라는 남자에 대해 알아?"

멍청하게 그녀를 쳐다본다.

'주인공?'

"설마 성이 주고 이름이 인공인가요?"

"그런데?"

왠지 모를 불안감이 온몸을 엄습한다.
 소설 속 주인공 이름이 주인공인 것도 불안감의 원인이기는 했지만, 내 앞의 여자를 보면  수록 떠오르는 이름이 있던 것도 있었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그 사람은 어떻게 생긴 분인가요?"

"......"

눈살을 찌푸리며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아닐 거야'라는 생각을 하며 애써 입을 열었다.

"당신은 어디서 오셨나요?"

"판테아"

머릿속에 수많은 물음표가 박혔다.
그녀의 눈동자의 푸르디푸른 색이 무척이나 소름 끼치게 느껴진다.

인터넷 텍스트상에서 그리고 내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여자
인형과도 같은 외모와 성숙한 가슴과는 달리 작은 키 거기에 그냥 말만 하는데도 사람을 얼려 죽일 것 같은 말투

 글을 보는 독자들이 감정이입을 잘할 수 있도록 주인공에게 '나름' 착한 역할만 부여했고, 그것을 메꾸기 위한  좋은 역할을 전부 그녀에게 몰아주었던 것이 떠오른다.

주인공 앞에서는 바퀴벌레 죽이는 것도  하는 소심 소녀인 것에 반에 그가 없는 장소에 가면 사람 죽이는 것을 서슴없이 하는 다중인격
주인공을 위해서 그가 안 보이는 곳에서 마을 하나를 완전히 없애는 살인마
인간의 팔다리를 잘라  채로 실험하는 싸이코 같은 얀데레녀

"잘... 모르겠네요"

거짓말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여자의 입에서 나온 판테아라는 말이 어째서인지 내 머릿속에 있는 싸이코녀와 동일하게 보이자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절대 그럴 리가 없는데... 절대 그럴 리가...

죽어도 그럴 일 없다고 머릿속으로는 생각하고 있지만, 혹시 모를 만의 하나의 가능성이 머릿속에서 맴돌며 내 입을 틀어막는다.
다행히  말을 믿어준 것인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찾아야 하려나"

"조,조심히 들어가세요"

문을 여는 방법을 모르는  때문인지 창문을 통해서 밖으로 나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솔직히 사실대로 '제가 당신을 만든 창조주입니다'라고 말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다시 생각해도 숨기는 것은 옳은 행동이다.

아까 볼을 꼬집었지만, 다시 한번 시도해본다.

"꿈 아니네..."

요즘은 최신 트렌드에 맞춰서 꿈속에서 고통도 느끼나 보다.
인간의 진화가 이토록 위대하다.

'잠이나 자자'

내일부터 1년 만에 생길 자유를 생각하며 나는 부서진 문을 대충 옆에 치우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다음 날 지구의 종말이 시작됐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