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LEVEL 0 (1)
나는 멍청하게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미국 원자력 발전소]
[원자력 발전소]
[핵]
[미녀]
[CCTV]
여느 때와 같이 자고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댓글을 확인하기 위해 인터넷 창을 열었는데...
실시간 검색어에 이상한 것들이 떠 있었다.
[美 텍사스. 사망자 3,000명 이상 추정... 원자력 발전소의 폐해]
[원자력 발전소 파괴. CCTV에 찍힌 여자는 누구?]
[美대통령 토람프 아직 공식적 입장 없어]
[발전소 폭파. 인재라는 목격자 증언]
검색어를 누르자마자 뜨는 뉴스 제목.
마우스를 잡고 있는 손이 떨린다.
뉴스 홈페이지 한쪽에 있는 영상을 클릭했다.
-이번 사건이 인재 때문에 발생했다기보다는 원자력 발전소 그 자체가 문제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 대한민국만 봐도...
-그 말씀도 일리가 있...잠시만요.
-긴급 속보입니다. 바로 전에 미국 원자력 발전소 CCTV 영상에 나왔던 것으로 추정되는 여성이 나 튜브라는 동영상 사이트에 영상을 올린 게 확인되었습니다. 영상 보시죠.
침을 삼킨다.
손발이 부들부들 떨린다.
나 튜브로 화면이 바뀌며 밝게 미소짓는 미모의 여성이 화면에 들어왔다.
머리에 뿔이 달린 여자였다.
-여기다가 말하면 되는 거지?
-아아, 인공아. 어디 있어? 너무 보고 싶으니까. 이거 보면 꼭 나한테 와야 해. 한 번 더 나 버리면 가만 안 있겠다고 했지? 우리 인공이 착하니까 나 혼내주러 올 거지? 기다리고 있을게
아직 꿈이 안 깬 것이다.
분명 그런 것이다.
그렇잖아...
내가 대체 뭐라고 내가 쓴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현실에 나오겠어?
누구나 쓸 수 있는 판타지 소설에 흔한 용사라는 소재로 마왕을 무찌르고 대륙을 구하는 이야기를 그저 평범한 사람이 인터넷 연재사이트에 올린 것뿐이다.
많은 사람이 본 것도 아니고 꾸준히 본 사람을 꼽아봐도 열 사람이 채 되지 않았다.
만약 아주 만약 이것이 현실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내가 만든 등장인물이 미국의 일반인 3,000명을 학살했다고 해도 나와는 전혀 관련 없는 것이다.
나는 소설을 썼을 뿐이었다.
그저 취미생활을 했던 것뿐이다.
"후우..."
심호흡을 한번 하고서 인터넷 창을 껐다.
나는 저 붉은 머리 여자를 모른다.
그렇게 현실을 외면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속보입니다. 미국 텍사스주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80%가...
-국내에서 발생한 실종사건은 점차 커졌고, 그에 대한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전부 뱀파이어를...
-설악산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이것은 대체 무슨 일인 걸까요? 현장에 나가 있는...
이주가 지났다.
- 미국 텍사스주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학살한 붉은 머리 여자가 또다시 영상을 올렸습니다. 내용은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주인공'이라는 남자가 내일까지 나타나지 않는다면....
- 부산은 완전히 뱀파이어들의 소굴이 되어 진입을 못 하게 군인들이 막아놓은 상태....
- 여수 앞바다에 새로운 섬이 생겼습니다. 그 크기가...
- 울산광역시에 좀비가 나타나 사람을 물고 있다는 속보입니다. 그 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군사력이 부산에 전부 동원된 지금 울산의 피해자가 확산하는 것을 막을 수단이....
삼 주가...지났다.
- 현 대한민국 정부는 부산을 완전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에게 넘겨주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청와대에 나가 있는 박 기자 연결하겠습니다.
- 네 저는 현재 청와대에 나와 있는...
누군가에게 마이크를 빼앗긴 듯 화면에는 기자가 아닌 아름다운 여성이 나타났다.
붉은색 긴 생머리가 찰랑거리며 무척이나 아름다운 여성이었지만, 나는 그녀의 모습에 아름답다는 생각보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 우리 자기. 지금 보고 있어? 우리들의 보금자리 만들어놨으니까. 빨리 와줘. 부산? 이라고 하니까. 빨리 와야 해? 나 얼마든지 기다릴수있으...
생방송이 급하게 종료되었다.
멍청하게 모니터를 쳐다보던 나는 목에 힘이 빠진 것인지 고개가 떨어진다.
금방 해결될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마 나는 진즉에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한둘이 넘어와도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가 위협받을 것을 알고 있음에도 어떻게든 해결되겠지 세계의 과학 문명은 위대하니 중화기로 해결하면 될 거야 같은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설정했기에 잘 알고 있다.
터무니없이 성장하는 주인공의 파워인플레이션에 히로인이 마네킹 화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에 준하는 레벨로 올렸었다.
3주가 지났을 뿐인데 그 피해자의 숫자가 이미 정도를 넘어섰다.
대충 기사로만 확인한 피해자 숫자만 수천만 명.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일본 중국 그 밖에 여러나라들.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이제 그 스케일이 너무 커져 버렸다.
"대체 왜 안 나오는 건데..."
그녀들이 나타난 후 일주일 만에 미국에 있는 하나의 주가 붕괴하였을 때 나는 주인공을 애타게 기다렸다.
그만 나타난다면 모든 게 해결되었으니까.
히로인들은 주인공만 있다면 모든 욕망과 정신적 스트레스가 억제되는 설정이었으니까.
아무리 기다려도 주인공은 나타나지 않았고, 나는 그가 대한민국 어디에 살았는지 확인해보기 위해 내가 썼던 소설들을 확인해보았다.
하지만 모든 글이 사라졌다.
내가 그동안 써왔던 소설 전부가 사라졌었다.
웹소설 사이트에 있던 내 연재 기록부터 내 컴퓨터 안에 txt로 남아있는 글들 전부...
마치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그렇게 포기하기에는 죽은 사람들의 숫자가 셀 수도 없이 많았기에 내 글을 읽었던 사람들에게 물어보기 위해 그들의 아이디를 검색해보았지만 그들의 아이디는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았다.
3주밖에 지나지 않았다.
이대로 그녀들을 가만히 내버려 둔 채 한 달, 1년, 10년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
'내 잘못 아니야'
눈을 질끈 감는다.
시간이 계속해서 흘렀다.
[中. 베이징에서부터 시작된 명칭 ASRM-R1의 확진자 수 2천만 명]
[유럽 전체가 아이의 손에 농락? EU. 미상의 금발 여자에게 핵미사일을 발사하겠다 엄포]
- 미국-멕시코의 접경 지역인 마타모로스가 완전히 지구상에서 사라졌습니다. 이에 대하여 미정부 측에서는 예의 붉은 머리 여자의 소행인 것으로 추정 중이라는 공식 입장을 내비쳤는데. 이 상황에 우리 한국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전문가분을 모셔서 함께...
- 현재 중국인 2천만 명 이상이 감염된 병원균에 대한 전문가들의 추측으로는 이 바이러스는 타인과의 접촉으로 감염되며 감염확률은 99퍼센트에 육박한다고 하며 치사율은 70퍼센트...
손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나는 고통의 시작점을 바라보았다.
손톱을 너무 물어뜯어 살갗까지 같이 물어뜯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제발... 아무나.. 아무나 막아주세요.
누구든 좋으니 제발 막아주세요.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습관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 뉴스를 틀어본다.
10월 31일 그녀가 나타난 지 92일 만에 이제는 사망자를 세는 것조차 불가능해졌다.
...92일.
애초부터 내 소설 속 히로인들이 주인공을 못 찾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쓴 소설 속 설정이 맞았다면, 그녀들은 그가 어디에 있든 찾아낼 수 있었다.
92일? 만약 주인공이 실제로 이 지구에 존재하는 인물이었더라면, 하루 채 되지 않고 찾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주인공의 외모를 설정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히로인들은 수십 또는 수백 수천 번이고 서술하며 상상했지만, 주인공의 외모는 단 한 번도 글에 쓴 적이 없었다.
그의 머리색 목소리 피부색 같은 것을 넘어 단 한 번도 언급 자체를 하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주인공의 얼굴을 그녀들이 알고 있을까?
주인공은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기에 그녀들이 폭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뉴스탭을 누른다.
내가 만들고 하나하나 설정한 상상 속의 그녀들이 오늘은 대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확인한다.
[속보. 영등포 부근 신원 미상 2명. 4층 상가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현재 경찰 당국 주변 시민 대피...]
익숙한 지역구 뉴스를 차근차근 읽어보기 위해 클릭을 하던 도중 창밖에서 커다란 굉음이 울렸다.
그리고 공중에 붕 뜨는 느낌.
너무나도 뜬금없이 사물들이 느리게 눈에 들어온다.
컴퓨터, 옷, 이불, 책상, 냉장고 등도 같이 공중에 뜬 것을 볼 수 있었고, 곧이어 나는 건물 전체가 무엇엔가 맞아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느리게 움직이던 시야가 다시금 빠르게 움직이며 나는 추락했고 시야가 새까맣게 변했다.
"끄아악!!!!"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기에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비명을 지르는 것 외에는 없었다.
"끄아......"
얼마나 소리를 쳤을까?
"놓친 건가? 운이 좋군"
"아아...아...살려주세요. 여기...사람 있어요. 살려주세요"
사람의 목소리였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여자의 목소리다.
"너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제발 구해주세요.
이 고통에서 해방해달라고 그녀를 향해 수도 없이 부탁했지만, 어째서인지 그녀의 발소리가 점차 멀어진다.
왜...!!!!
건물의 잔해에 가려져 빛조차 거의 없는 공간 속에서 조그맣게 들어오는 빛을 향해 가지 말아 달라고. 구해달라고 악을 쓰며 목숨을 구걸했다.
필사적으로 살려달라고 외치지만 조그마한 빛을 통해 보이는 하늘색 머리카락을 흔들며 멀어지는 여자의 뒷모습.
"제발...살려줘요...살려달라고...! 라일라!"
조그마한 구멍을 통해 보이는 분명 뒤를 돌고 있었다.
미칠 듯이 고통스럽지만, 그것보다 더욱더 나를 지배하는 것은 살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약속했잖아...아픈...사람을 보면...구해주기로 약속했잖아...."
살고 싶다는 욕망 하나로 흐릿해지는 시야 속에서 말을 내뱉었고, 곧 조그맣게 들어오던 빛의 크기가 점차 커지며 나의 몸을 짓누르던 무엇인가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햇빛과는 조금 다른 흰색의 빛이 나를 감싸며 수도 없이 나를 괴롭혔던 고통이 사라졌다.
"너는 누구지?"
내가 설정한 등장인물이었으니 잘 알고 있다.
사랑해 마지않는 주인공과 수도 없이 약속했지만, 그녀는 절대 사람을 구해주는 착한 여자가 아니다.
다중인격에 싸이코 살인마
그런 그녀가 나를 구한 이유는 단 한 가지다.
혹시나 나라는 사람이 주인공일지도 몰랐다는 이유로 나를 구한 것이다.
"아시잖아요..."
자연스럽게 주인공인 척을 하며 팔팔해진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본다.
어느 정도 층수가 있는 건물들이 도미노처럼 넘어져 있었고 지진이라도 난 것인지 아스팔트들이 전부 금이 가 벌어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일단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본다.
"일단 여길 벗어... 왜 웃고 계세요?"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그녀의 얼굴
비웃음이다.
웃어 보였을 뿐임에도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싸늘한 느낌이다.
비웃음조차도 차갑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나는 일어서있는 몸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아아...악!!!!!!!"
'털썩'하는 소리와 함께 피 분수를 뿜는 하체가 보임과 동시에 등이 땅바닥에 닿았다.
완전히 나와 별개의 육체가 된 하체가 바닥에 넘어지고 복부에서 올라오는 극도에 고통에 아까와 같이 비명을 지른다.
아까 고통은 장난이었다고 말하는 듯 미친듯한 고통이 뇌를 때려 비명을 내지르지만, 폐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 비명조차도 잘 나오지 않는다.
"아,아...아악......"
"어떻게 나에 대해 아는지는 몰라도"
비명을 지르는 나의 귓가에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선생님은 다른 사람에게 존댓말을 안 쓴단다"
속삭이듯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나의 눈앞에는 무엇인가 나타났고 그것을 확인하기도 전에 나의 시야는 완전히 검게 변했다.
[BAD END] - 주인공 DEAD (92일 생존)
"아...실수했네. 죽이면 안됐는데"
***
"으아악!!!!"
죽었다.
인식할 새도 없이 몸이 반 토막 나서 죽었다.
"우에엑..."
내 몸이 반으로 갈라지는 감각과 함께 극한의 고통이...
"어......?"
느껴지지 않았다.
누워있는 상태에서 손을 들어 옆구리로 가져간다.
허리를 손대보고 허벅지와 종아리를 손대본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사후세계로 넘어온 것인가 싶었지만, 고개를 돌려보니 익숙한 풍경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무너졌다고 생각한 조그마한 원룸의 1년간 쭉 살아왔던 익숙한 냄새가 나는 내 방이었다.
꿈...이었나?
그렇다고 하기에는 건물이 무너졌을 때 느꼈던 고통과 라일라로 인해 반 토막이 난...
거기까지 생각하자 곧바로 올라오는 구토감에 화장실로 달려갔고, 변기를 붙잡고 토악질을 한다.
하체에서 피 분수를 뿜으며 튀어 오르던 창자 줄기들이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다.
그 고통이 꿈일 리가...
몇 번의 토악질을 하고서 나른해진 몸으로 화장실을 나오자마자 죽자마자 바닥에 토악질해놓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것을 치울 생각조차도 하지 않고 책상 위에 있는 휴대폰을 잡았다.
'8월 21일'
죽기 직전의 날짜는 분명 10월 30일.
나는... 71일을 회귀했다.
"......"
웃음이 나온다.
- 아~ 갑자기 방해꾼이 들어왔네. 자기야. 갑자기 이야기 끊어서 미안해. 구더기들이 자꾸 방해해서
고개를 돌리니 모니터에서는 검은 머리의 긴 생머리를 가진 여자가 해맑게 말하고 있었다.
그날 갑작스럽게 생방송이 종료됐기에 끝난 줄 알고 껐는데 뒤가 있었나 보다.
- 부산으로 오면 돼! 자기랑 나의 보금자리를 만들었으니까. 꼭 와야 해! 나 기다리고 있을게!
누가 이딴 짓을 했는지.
왜 내가 이런 죄책감을 가져야 되는지.
왜 다시 살아나서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껴야 하는지.
그런건 나중에 생각하자.
다시는 그딴 고통 겪고 싶지도 않았고 두 번 다시 죽고 싶지 않다.
누군가는 막아야 한다.
하지만, 40일이 지난 후에도 주인공은커녕 그녀들을 막을 사람이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는다.
아무도 날 구해주지 않는다면 내가 알아서 살아남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