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화 〉LEVEL 0 (2) (3/87)



〈 3화 〉LEVEL 0 (2)

[주인공입니다. 현재 상황을 해결하고 싶습니다. 지금 학살 및 테러를 하는 그녀들이 모두 볼 수 있도록 추천 부탁드립니다]

나 튜브에 올린 영상의 제목이다.


두 번 다시 죽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피시방에 가서 가짜 전화번호를 생성해 나 튜브 계정을 생성했고 구매한 공기계를 여관에서 퀵 배달받은  영상을 만들어 집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편의점 와이파이를 사용해 영상을 업로드했다.
그리고 공기계를 한강에 버렸다.
마지막으로 내가 주인공이라 거짓말까지 해가며 제목을 달았다.


그렇게까지 해서 올린  음성조차도 나오지 않는 자막뿐인 영상이었다.

[그만 죽여]

주인공의 히로인 모두가 이 세계에 와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 소설은 히로인 숫자가 열명이 넘는 하렘 소설이다.


[두 번은 없어. 이제 그만해]

이 영상은 아마 효과가 없을 것이다.
주인공이 올린 영상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각지에서 파괴 활동을 하는 히로인들을 이름을 자막에 써놓기는 했지만 아마 의미 없는 행동이겠지.

부산을 뱀파이어 소굴로 만든 샤를.
울산을 좀비 아포칼립스로 만든 흑마법사 미아.
그냥 닥치는 대로 미국을 부순 드래곤 하이네스

 셋을 제외하고도 수많은 히로인들


라일라에게 죽임당하지 않았더라도 과거로 돌아와 다시 생을 이어가는  나는 언젠간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게  개인의 죽음이 되었든 국가가 멸망하든 세계가 멸망하던 미래의 내가 죽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한번 죽음을 경험하고 어떻게 해야 그녀들을 막을  있는지 고민하고 또 고민한 결과  하나가 나튜브에 이렇게 영상을 올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영상이 나오는 컴퓨터를 끄고 나갈 채비를 했다.
마스크를 쓰고 밖을 나가 라이스 북에서 확인한 그녀가 있던 곳을 향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홍대 xx 카페 미녀]
라이스 북에 나온 얼굴만 보고 그녀를 떠올리기는 힘들었지만, 현실에 존재할 리 없는 완벽한 외모는 분명 이쪽 세계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고 사진에 나와 있는 차림으로 종일 책을 보고 있다는 글 내용을 보자마자 내가 생각하는 그녀임을 확신했다.

SNS 나온 카페 앞에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갈 수조차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많은 인파에 나는 카페 밖에서 멍청하게 그것을 바라보기만 했다.

'씨발, 존나 예쁘네'

수많은 인파에서 나오는 말들은 한결같이 이런 느낌이었다.


말도 안되는 외모라는 것은 알았지만, 실제로 보니 예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긴 검은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채 핫팬츠에 배꼽을 드러내고 다리를 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남자라면  번쯤 실제로 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을 지닌 여자였다.

물론 그녀가 예쁘기는 하지만 그녀가 소설 속에서 했던 업적을 생각하면 그녀 또한 기피 대상이다.
하지만, 당장 그녀를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하는 입장이었기에 떨리는 심장을 붙잡고 수많은 인파 사이를 뚫고 나갔다.


이곳저곳에서 '새치기하지 마'라는 소리가 들리기는 했지만 애써 철판을 깔고 카페 안을 들어간다.
카페 내부도 밖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붐볐기에 그곳을 향해 다시 한번 몸을 뒤틀며 들어갔다.

마치, 그녀의 주변이 성역이라도 되는 듯 그녀로부터 5m 주변으로는 그 누구도 밟지 않은 신성불가침영역이었고 나는 금세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사진 그대로의 옷을 입은  다리를 꼬고 책을 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이곳에 오기  수도 없이 연습했던 말을 꺼내는 것이었지만, 그런데도 말실수 한 번에 목숨이 날아갈지도 몰랐다.

과거로 돌아오기  라일라의 손에 죽었던 것처럼 죽게 될 것이다.


살고 싶었다. 죽어도 죽기 싫다.
그러니 나는 성격도 외모도 힘도 전혀 다른 주인공을 연기할 것이다.

"여기서 뭐 하고 있냐?"


책을 보고 있던 그녀의 얼굴이 나를 향했고 등 뒤에서는 사람들의 수많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입에 침이고이고 등줄기가 서늘했지만 태연한 척 연기한다.

그녀의 입이 열렸다.


"오셨어요. 주인님"

주위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귀를 찌른다.


애초에 나는 사람들 사이에 잘 섞이지도 못하고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아싸다.
이렇게 사람 많은 장소에서 그것도 인싸 of 인싸로 보이는 여자에게 말을 건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또다시 그때의 고통을 겪을까 두렵다.

무력 자체만 놓고 보자면 얼마 전에 만난 라일라와 비교해서 한참이나 약한 그녀였지만 아마 나는 이 최약체 히로인의 손짓  번이면 원자 단위로 분해될 것이다.

존나 도망가고 싶다.


"여기서 뭐 하고 있냐고 묻잖아"


"주인님이 오시는 걸 기다리고 있었어요"

"네년 따위 보려고 내가 직접 찾아와야 해?"


내 말에 그녀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다가왔다.
발걸음이 가까워질수록 미칠 듯이 심장이 떨리고 복부의 고통이 올라온다.
도망치자는 생각이 들었지만 두려움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죽는 걸까?


"죄송합니다. 주인님"

내 바로 앞까지 다가온 그녀는 몸을 낮춰 바닥에 주저앉았고  무릎을 땅에 붙인 뒤 머리를 숙였다.

이렇게 쉽게?
왜?


그녀가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모습에 순간  정지가 올뻔했지만, 어깨를 펴고서 아무렇지 않은 듯 행세했다.


"자..잘 아네. 따라와"


나 연기에 재능이 있는 건가?


***



엘리제
그녀는 공주로써 소설 맨 처음 등장했다.
주인공이 용사로서 마왕토벌을 준비할 시기 왕도에서 수많은 어린아이의 살인사건을 목격하게 되고 그걸 계기로 여차여차 의욕을 내는 스토리인데 그때 처음 받은 댓글이 [용사인데 옆에 공주가 있는 건 당연한  아닌가요?]였다.


문제는 이 여자가 초반부 챕터의 최종 보스였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고심의 고심을 하며 설정을 짰던 것이기에 공주의 흑막스토리는 포기를  하겠고 그렇다고 아예 안 이어지게 하자니, Que 123의 [공주는 진리지!]라는 말도 맞는 것 같기에 일단 히로인 플래그를 세워보았다.


[어째서 당신이!  공주라는 신분이면서 왜 암흑가 따위와 손잡은 겁니까!]


[따분했으니까요]

[겨우 그딴 이유로...]


[제가 만약 죽는다면 당신은 우리나라의 공적이 될 텐데 찌를 수 있겠어요?]

[너는 쓰레기다. 나는 너를 절대 죽이지 않을 거다. 네가 죽을 때까지 후회하게 해주마]

대충 이런 느낌으로 썼던 기억이 있다.
주인공이 그녀라는 존재를 혐오하며 그녀를 인간 취급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주인공의 혐오 어린 시선에 점점...

정말 소설 초반부부터 팔랑귀였다.


그녀를 이끌고 간 곳은 다름 아닌 내 집이었다.
여러 장소를 생각해보긴 했지만, 그녀의 외모를 고려해 사람들의 이목을 완전히 피할  있는 곳은 거의 없었다.

사실 돈이 없었다.


부모님에게 손을 벌려야 하는 대학생에 남들 아르바이트할 시간에 무료소설이나 연재하던 놈이 대체 무슨 돈이 있겠는가.
남아있던 여분의 용돈마저도 공기계 구매하는데 다 써버렸다.


"어서 오세요. 주인님"

바로 전에만 해도  뒤를 졸졸 따라왔었는데 원룸 문을 열자 어째서인지 그녀가 나를 맞아주고 있다.
집 주소를 알려준 적도 없고 그저 따라오라는 말만 했을 뿐인데 어떻게 알고 미리 와 있는걸까?


"먼저 와있었네"


"새 주인님의 냄새가 진하게 났거든요. 여기가 새로운 보금자리군요?"

꼭 말을 해도 냄새라니...


"그 주인님이라는 소리 그만 좀 해"

나를 걱정하면서 말하는 '주인님'의 말에 나는 애써 부끄러움을 이겨내며 주인공을 연기했다.


그녀가 나를 주인님이라고 부르든 노예라고 부르든 바보라고 부르든 아무 상관 없지만
내가 만든 주인공이라는 인물은 그녀의 주인님이라는 발언을 껄끄러워했고, 매번 그녀의 '주인님'이라는 말을 그만하라고 했기에 일부로 말한 것이었다.

"주인님에게 주인님 말고 따로 부를 호칭은 없지 않나요? 아, 새 주인님은 다른 호칭을 불러주시길 원하시는 건가요?"

그녀가 아까부터 날 보며 새 주인님이라 말하는 것을 알고 있긴하지만 애써 무시했다.
좁고 냄새나는 원룸으로 들어가 최대한 거만하게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꼰다.


그녀는 아까와 같이 앉아있는 내 앞에 와서는 무릎을 꿇어 보인다.
아직은 괜찮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를 어떻게 보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아직 살아있다.


"엘리제"


"네, 저의 새로운 주인님"

책상 위에 있는 쪽지를 그녀에게 던지듯 건넨다.

"거기에 나와 있는  흔적 전부 지워"

그녀에게 건네준 것은 공기계를 받았던 여관과 나튜브 계정을 생성한 피시방 그리고 나 튜브 영상을 올린 편의점 주소였다.
그곳에 내가 갔다는 CCTV 영상들을 없애는 것은 내 영역 밖의 일이었기에 그녀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곳에 떨어진  한 달도 채 안  그녀였지만 은밀함과 정보에 능통한 그녀라면 내가 시키는 것을 분명해 낼 것이다.


"네, 주인님"

"그리고 쓸만한 집도 구해놔"


주민등록번호도 존재하지 않는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범죄를 저지르라고 시키는 것이었지만 그런데도 이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이곳에  있다가는 정신병 걸릴 것 같다.
한순간에 집이 무너져 잔해에 깔리고 이곳에서 죽임당한 기억이 매일같이 떠올랐기에 더는 정상적으로 사고가 불가능할 지경이다.


"뺏을거면... 나쁜놈들 위주로 뺏어"

남의 돈을 빼앗고 불법적인 일을 자행하라고 하는  무척이나 양심에 찔렸기에 애써 뒷말을 내뱉는다.
그녀는 나의 모습이 재미있는 장난감인 양 바라보고 있었고 이내 입을 열었다.


"주인님이 무슨 말 하는지 알겠어요. 그런데..."

"......"


"제가 왜 그걸 해야 하는 거에요?"


그녀는 무릎을 꿇은 채 나를 올려다보며 이유를 물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과는 다르게 눈꼬리가 휘어있었다.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 아닌 그저 보상을 바라는 강아지와 같은 얼굴이었지만 나에게는 당장이라도 물어뜯을 것 같은 하이에나처럼 비친다.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는 듯 커다란 검은색 눈동자가 나를 향해 고정돼있었고 그런 그녀의 얼굴에 나는 손을 가져가 턱을 잡아 올렸다.


[짝]

얼얼한 손바닥과 함께 돌아가 있는 그녀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생애 처음으로 여자를 때렸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죄악감이 밀려 올라오지만, 그것과는 대비되게 그녀는 자신의 뺨을 때린 내 오른손을 붙잡아 빨개진 볼로 가져간다.

"약한 주인님에게 사랑받는  새로운 감각이네요. 좋은 걸 알게 됐어요"


"꺼져"

"아쉬운데... 부탁 들어주면 또 보상을 주시는 건가요?"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긍정으로 알아들은 것인지 그녀는 자신의 뺨에 가져갔던 내 손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떨리는 심장이 아직 진정되지 않았지만, 그녀가 나갈 때까지는 내색해서는 안 되었기에 참고 또 참는다.


하지만, 그런 나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려는 것인지 바로 전에까지의 즐거움 가득한 목소리가 아닌 소름 끼치게 낮은 음성이 방을 울린다.


"그런데 여기 주인님 말고 다른 냄새가 나네요?"


라일라


한 달 정도 전에 내 방에 와서 문을 부쉈던 그녀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한번 죽였던 여자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지?"

"냄새가 옅은 거 보니 그년은 모르나 봐요?"

순간 나와 마주친 그녀의 눈동자가 무척이나 소름 끼쳤지만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밝게 웃어 보였다.

"모른다고 하면... 새 주인님은 제가  번째네요."

세상을 다 가진듯한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는 이내 내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졌고 나는 그동안 쌓였던 긴장이  번에 터져버려 의자에 앉은 채로 몸이 무너져 내렸다.

죽고 싶지 않다. 더는 그녀들과 연관되고 싶지 않다.


그저 냄새만으로 내 집을 찾아내며 냄새로 다른 여자가 이곳에 먼저 왔다는 것을 아는 변태 같은 능력은 둘째 치더라도.
조금 전 그녀의 소름 끼치는 눈동자에서는 분명...

'죽이면 안 됐는데 실수했네'

그 여자가 나를 죽일 때의 그것과 같은 종류의 것이었다.

[얀데레!!! 얀데레!! 얀얀얀얀얀얀데레!!!]
-얀데레다이스키

나의 소중한 독자 2와의 소중한 추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대체 앞으로 이런 걸 어떻게 버텨야 하는 건지 감이 안 잡힌다.

연재하면서 욕을 수도 없이 먹어 오래 살 거로 생각했는데...
바로 전에 엘리제와의 잠깐의 만남만으로 이득 봤던 수명을 전부 잃었다.

쓸데없는 소리.

고개를 흔들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고민한다.
그녀들은 서울에 주인공이 살고 있을 거라고 알고 있었기에 서울에 꽤 많은 숫자의 온건파 히로인이 숨어서 나튜브 영상을 올린 사람을 애타게 찾고 있을 것이다.

온건파...는 아니구나. 미국을 부수고 부산을 점거하며 중국에 역병을 퍼트리는 애들보다는 비교적 온건파다.

자랑은 아니지만 내 소설 히로인 중에 정상인은 없다.
그렇기에 만약 이대로 영원히 주인공이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면 평범한 학살극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생각을 하자.
살기 위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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