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화 〉LEVEL 0 (3) (4/87)



〈 4화 〉LEVEL 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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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다시 날 찾아온 것은 이주가 지난 뒤였다.
너무나도 오랜 시간 그녀가 오지 않았기에 그동안 언제 부서질지 모를 집안에서 바들바들 떨었다.


"엘리제..."

"네, 주인님"

"집이 너무 큰  아니야?"


더럽게 크다.
쓸만한 집을 구해놓으라고 했기에 대충 아무 집이나 구해올 거라 생각했다.
서울 집값이 비싸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죄송하다고 하고 나중에 벌 달게 받겠다고 기도했었지만, 이건 정도를 넘어섰다.


"주인님과 제가 오순도순 살만한 쓸만한 집을 구하려니 딱히 보이지가 않더라고요. 그래도 여기라면 참고 살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구해봤어요"


그럭저럭 참고?
여기 시가가 얼마였더라.

"여기를 구할 때 도와준 분한테 대충 300억 정도 한다고 듣기는 했는데... 별로 마음에 안 드시나요?"

"바꿔"

도와주신 분이 누군지는 몰라도 적어도 그녀가 '도와줄래요?'라고 얌전히 말한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의 머기업 회장의 목에 칼을 들이밀어도 이런 집은 구하지 못할 것이다.


아마 목에 칼을 밀어넣는 정도는 귀여운 수준.
내가 소설 속에서 몇 번 썼던 고문들이 머릿속에서 재생된다.

죽어도 여기서는 잠  잔다.
나에겐 300억은커녕 30억 아니 3억도 버겁다.
내 마음을 그대로 나타내듯 나는 현관문에서 들어가지도 못한  멍청하니 내부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곳보다  좋은 집은 아직 매물이 없대요"


"여기에 100분의 1 가격으로 구해와"

"싫어요"

명백한 거부였다.
보상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싫다는 뜻이다.


"여기서 주인님하고 오순도순 신혼생활 할 거예요"

"나도 싫은데? 그럼 혼자 살던가?"


그녀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면 절대  되었기에 떨리는 발로 현관문에 손을 올렸지만 갑작스럽게 몸이 붕 뜨는 감각과 함께 시야가 빠르게 이동했다.
소파에 내팽개쳐진 것일까?
그녀에게 내동댕이쳐졌다는 것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등이 푹신푹신했다.


"무슨 짓이야."


"주인님은 여기서 못 나가요. 먼저 저에게 찾아오신 주인님이 잘못한 거에요. 다른 년들을 제치고 제일 먼저 저를 찾아와준 주인님이 나쁜 거에요"


눈이 맛이 갔다.
누워있는 내 위에 올라타 나를 내려다보는 그녀는 무척이나 광기 어린 눈을 하고 있었다.


"내려와"

"전  수 있어요. 주인님은 주인님인걸요? 다른 년들도 주인님을 보면 금방 눈치채버릴 거에요. 그러니까, 제품 밖으로 나가시면 안 돼요."


소설에서도 이런 장면을 무척이나 많이 연출한 적이 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침은 발라놔야 하겠죠?"

무척이나 탐욕스러운 짐승처럼 그녀는 입맛을 다시지만 내 소설은 '무료'웹소설이다.

전체이용가
 쳐줘 봐야 15세 이용가
500화나 무료로 그것도 전체연령으로 연재했기에 히로인들의 이런 갑작스러운 행동을 제재하는 방법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비켜. 당장 안 떨어지면..."


"......"


광기 어린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어떻게 하실 건데요?"

"궁금하면 하던 거 계속하던가"


이내 서서히 풀이 죽는다.
아마 토끼 귀가 달려있었더라면 완전히 주눅 들어 귀가 눈까지 내려왔을 것이다.

"치사해"


"알았으면 비켜"


애초에 극도의 M 성향인 그녀가 나를 덮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그다지 긴장한 것은 아니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그 혹시나 하는 일로 인해 '주인공'의 순정이 빼앗기게 된다면 그리고 그것을 히로인들 중 한 명이라도 알게 된다면....


"그러면 입술이라도..."

"적당히 해"


모르긴 몰라도 지구멸망은 기본일 것이다.

"키스  번이면 다른  알아봐 드릴  있는데"


무시하고 소파에서 일어나기 위해 그녀의 팔을 잡아 들어 올리자 그녀는 순순히 나를 풀어주었다.


"키스 안 해줬으니까. 여기서 같이 사는 거예요"

삐진 것인지 표정이 무척이나 뾰로통하다. 무척이나 귀엽긴 하지만 그녀가 소설 속에서 했던 업적이나 설정한 성격을 생각해보면 두렵게 느껴진다.

사망했던 추억이 있는 원룸으로 다시 기어들어 가서 잠을 청할 자신은 없었기에 그녀의 바람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 해맑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밖에 나갈 건데 같이 갈래?"

"넹~"

태세변환이 빠르다.

문밖으로 나가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 고개를 돌려 뒤를 보자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그녀가 이 안에 있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엘리베이터 CCTV의 붉은 불이 사라졌고 그녀의 모습이 허공에서 천천히 나타났다.


"짜잔"


정보와 은신 그리고 은폐 관련으로는 세계관 최강자
그녀를 첫 번째로 고른 것은 이게 제일 컸다.
일반인에게 나의 존재를 들킬 확률을 0으로 만든다.


히로인의 경우에는 거리가 조금이라도 좁혀지면 바로 들키긴 하겠지만, 이 넓은 지구에서 히로인들과 우연히 마주칠 확률이 얼마나 될까?

"문 열린다"


"귀여운 반응 해주면 덧나요?"

덧난다.

1층으로 도착하자 그녀의 모습이 사라졌고 나는 태연하게 라운지를 걷는다.
몇백억짜리 펜트하우스가 있는 건물이다 보니 복도도 말도 안 되는 인테리어를 하고 있어 넋이 나갈 것 같다.


시골 촌놈이 이런 기분일까?
나름 서울 토박이라고 생각했지만, 서울에 이런 곳이 있다는걸 처음 알았다.

추리닝 입고 있다고 뭐라고 하지는 않겠지?

같은 생각을 하며 라운지를 걸었는데 딱히 나에게 말 거는 사람은 없었다.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도 나를 본채만 체 하는 게, 마치 나를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듯했다.

[사람들이 주인님을 인식 못 하게 했어요. 잘했죠?]


눈치가 빠르다.
그녀의 도움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받지 않은 채 밖으로 나온 나는 곧장 생각해놓은 장소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이번에도 편의점.
저번 영상을 올릴 때 사용했던 편의점과 완전 정반대  방향이었다.

생각해놓은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그녀를 불러 편의점으로 가서 영상을 올리라고 시켰다.

"칭찬해주세요"


그녀의 핸드폰을 빼앗은 뒤 생각해놓은 다른 장소를 향해 출발한다.

"보상 주세요"


이제 휴대폰을 강에 던지면 끝.

 아깝다.
부모님에게 새롭게 받은 용돈을 또 이런 일회용에 써서 죄송한 마음뿐이다.
하지만, 부모님도 아들 목숨이 달려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잘했다 칭찬하실 게 분명하기에....

"보상!!!"

"시끄럽다"

"NO 보상 NO 봉사"

한강에 휴대폰을 던지자마자 그녀가 항의하듯 나에게 외쳤고 나는 한숨을 내쉬며 대충 주변을 둘러본다.


"엎드려"

"네!"

조금은 짧은 치마를 입고 있는 그녀였지만 나의 말에 주저 없이 엎드린 그녀의 모습에 나는 주변 눈치를 보며 그녀의 허리에 엉덩이를 붙인다.

공원이라 사람이 많기는 했지만, 어차피 그녀 덕분에 주변 사람이 나를 인식하지 못했기에 그렇게까지 부담스러운 행위는 아니었다.

나름대로 여유 있게 내 핸드폰을 꺼내서 조금  그녀가 올린 영상을 확인해본다.


[내 부탁을 들어줘서 고마워]


검은색 화면.
그리고 음성만이 나오는 영상.
저번처럼 자막을 사용하지 않고, 내 음성을 넣은 것은 그저 단순히 내 변덕이었다.

단순히 글자만 나오는 것보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편이 더 진정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미리 녹음해놨던 것이었다.


그건 그렇고.
겨우 하나를 영상을 인터넷에 업로드 한 것밖에 없었음에도 그녀들이 곧바로 영상을 확인하고 멈출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이상하게도 시끄럽던 뉴스들이 잠잠해졌다.


좋은  좋은 거지 뭐.

[조용히 있어 줘. 너희도 내가 이곳에 다시 돌아온 이유를 알잖아]


[평온하게 살고 싶어]


진심으로 평화롭고 행복한 생활을 했으면 한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학교에 다니던 선량한 청년이었던 내가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지 아직 이해가  된다.


[그렇다고 너희들의 바람을 모르는  아니야. 천천히. 어느 정도 이쪽 세상을 즐기고  다음  뒤에 내가 직접 너희를 만나러 갈게]

그럴 일은 죽어도 없을 것이다.
내가 미쳤다고 미친년들을 제 발로 찾아갈까.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평생.
내 수명이 다 할 때까지만 기다려.

음성만이 나오는 짧은 영상이 끝날  즈음 내 귀를 통해 '찰칵' 소리가 들렸다.

곧장 고개를 들어 그쪽을 쳐다보자 나를 찍고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그 외에도 많은 사람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나는 왜 나를 쳐다보고 있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본다.

"아흑..."

엉덩이 밑에서 야릇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그제야 상황을 눈치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뭐 하고 있어 당장 일어나!"

"다리에 힘이 풀려서  일어날 것 같아요"


엎드린 상태로 나를 올려다보며 말하는 그녀는 말과는 다르게 무척이나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기에 그녀의 팔을 붙잡아 일으킨다.

"꺅"


나에게 억지로 끌려가듯 그녀는 연약한 비명을 내었고, 주변의 수군거림 소리가 더욱더 커진다.


대체 언제부터 인식저해가 풀린 거지?
설마 이 여자가 일부로 푼 것일까?

사람들이  보이는 곳까지 도망치듯 빠른 걸음으로 와서 그녀를 던지듯 팔을 내팽개쳤다.


"무슨 짓이야."


"그치만 사람들이 봐줘야 흥분되는걸요"


"미쳤어? 사진이 올라가면 어떻게 되는 줄..."


당황했다.
흥분했다.
그것을 깨달은 나는 순간 하던 말을 멈추었고, 곧이어 그녀의 가늘게  눈동자와 미소 띤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왜요? 하던 이야기 계속하셔야죠. 새.주.인.님"

"......"

그녀에게서 몸을 돌렸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라일라에게서 봤던 그때의 그 공포가 그대로 재현된다.

"너도 영상 봐서 알잖아. 나 여기서는 조용하게 살고 싶다는 거..."


"흐음"

주인공답지 않았다.


"집에 가자"

나지막이 내뱉으며 몸을 돌리자 나의 어깨에 그녀의 손이 올라왔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이듯 귓가에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사진을 찍던 핸드폰들은 전부 부숴버렸어요."

"......"

"주인님"


"짐만 챙겨서 돌아갈 거니까. 너 먼저 들어가"

어깨에 올려진 손을 치우고 골목 밖으로 나왔다.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자 이미 펜트하우스로 돌아간 듯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소설 속 주인공은 감정변화가 별로 없는 존재였다.

초반부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저 이러저러한 사건을 겪고 감정이 무뎌진 것으로 설정했다.
애초에 셀 수도 없이 많은 마족을 죽이고, 수만의 유사 인종들을 죽였던 그리고 인간을 죽였던 주인공이 남의 눈치를 본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행동이다.

거기다 이렇게 타인들의 시선에 흥분하고 히로인인 그녀를 나무라는 것은 주인공다운 행동이 아니었다.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내 행동에 어떤 문제가 있었나 되돌아본다.

차라리 이대로 도망칠까?

다시 한번 고개를 젓는다. 아까 포기를 했음에도 내 안의 찐따 기질이 자꾸 도망치자고 속삭이지만 불가능한 건 불가능한 것이다.
죽음을 경험했던 장소에 도착했다.
그때는 폐허가  상태였기에 지금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긴 했지만, 그런데도 기억이 난다.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오늘 짐 싸서 다시는 이곳에 안 와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원룸 문을 열었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느껴지는 싸늘한 한기

나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우읍..."


허리에서 창자가 튀어 오르던 그때가... 배에서부터 장기 하나하나가 밖으로 튀어나오는 고통스러운 그 순간이 생생하게 머릿속에서 재생된다.
토악질이 나오는 것을 손으로 막고  압도적인 공포 속에서 도망치기 위해 고개를 돌려 현관문을 보았지만, 그곳에는 이미 푸른 머리카락의 여자가 서 있었다.


"또 보네... 아니, 또 보네요"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다.

"왜 말을 안 하세요?"

죽기 전과는 달리 존댓말을 하는 그녀였지만 그것조차도 차갑게 느껴진다.
공포 속에서 입조차도 열지 못한 채로 고개를 양옆으로 젓는다.

"제가 알아보지 못해서 서운하셨나 봐요"

손으로 입을 막은  구역질을 참아낸다.
나를 죽인 상대를 눈앞에 두고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선생님의 얼굴이랑 목소리가 기억이 나지 않아서... 그래서 못 알아봤던 거에요. 하나도 몰라서...절 가르칠 때 어떤 얼굴이었는지 부족한 제자라서... 그래서... 환멸을 느끼신 건가요? 그래서 알려주지 않으신 건가요?"

한 걸음씩 나를 향해 다가오며 말을 내뱉을 때마다 나는 뒷걸음질 쳤다.


제발 앞으로 오지 마.


그녀가 다가올 때마다 숨이 막힌다.
내 마음속 소망을 들은 것일까? 그녀는 제자리에서 멈추고는  입꼬리를 올렸고, 곧 한쪽 팔을 휘젓는다.

그녀의 가벼운 손짓과는 정반대로 손짓한 방향에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엘리제가 양손과 발이 얼려진 채로 벽에 붙어있었다.

"......"


"창녀 주제에 먼저 선생님의 옆자리를 자리 잡았다고 그게 영원히 갈 거라 믿었나?"


"못 알아본 주제에 말이 많네"

"닥쳐"

조그마한 얼음이 엘리제의 복부에 박혔지만 조그마한 비명조차도 지르지 않았다.

"못 알아봐서 죄송해요. 선생님..."

갑작스럽게 말투를 변하며 나를 향해 애써 웃음 지어 보이는 게 무척이나 두렵다.

아...
[웃어보렴. 무표정한 것보다는 웃는 게 제일 이쁘니까]


그런 식의 내용을 썼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 창녀는 아니지 않나요?"

"......"


"제가 아무리 부족한 여자라도 선생님의 옆자리는 제 것인데... 저쪽에 있을 때도  선생님이 바라시는 건 모든 다해왔는데. 선생님의 관심 한번 받으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저는 모른척하시고 저 여자를 선택하신건... 너무해요"


어떻게 라일라는 나라는 것을 안 것일까?
아니 애초에 내가 주인공이 아닌데,  그녀는 내가 주인공이라 착각하는 것일까?


"그쵸? 너무 하잖아요.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금방이라도 토악질이 나올 것 같은 입을 막은 손을 천천히 내리며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다.


"그만해"


"네. 그게 선생님이 바라는 거라면 얼마든지 그럴게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엘리제의 몸을 속박하고 있던 얼음들이 사라졌다.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
소설 설정상 무력 부분에서 인간  그녀보다 강한 히로인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에 반에 엘리제는 히로인 중 최약체였으니까.


"돌아가"

"죄송해요. 선생님."

"나가라는 말 안 들려?"

그녀의 차가운 눈과 마주치자 겨우 진정시켰던 심장이 다시금 튀어 오른다.


"처음으로 선생님을 만났음에도 알아보지 못한 게 억울해 죽을 것 같은데 다시 떨어지라고 하시는 건 너무해요."

"라일라. 내 말안..."


"저 창년이!!!  자리를!!! 뺏었다고요!!! 왜 저한테 화를 내시는 거예요!! 아...."

원래라면 나를 주인공으로 인식하고 있다면, 내 말을 무조건 들어야 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녀에게 내 목소리가 닿지 않는다.

"저년이 유혹한 건가요? 맞네요. 그게 맞을 거에요. 그게 맞는 거야"


어째서?
왜?


"선생님이 사라지는 동안 수도 없이 생각했어요. 버려졌다고... 이제 쓸모가 없어져서 버려진 거라고..."

"그런 거 아니야. 봤을지는 모르겠지만, 아까 내가..."


"방금도!!! 선생님은 절 버리려고 하셨잖아요! 저 창년... 저 창년을 옆에 두고서!!! 아,아시고 계시잖아요...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워,원래 선생님이 신경도 안 쓰던 그런 하찮은 창녀였잖아요? 그런데... 저보다 저 창년을 신경 쓰시네요. 지금도..."


"그렇게 처음부터 알아보지 그랬어. 나는 바로 알아봤는데"

"넌  열지 마!!!!"

엘리제의 도발에 나는 그녀를 막기 위해 입을 열려고 했지만, 그것보다 라일라의 얼음덩어리가 더 빨랐다.
'푹''푹' 소리를 내며 엘리제의 몸을 뚫는 수많은 얼음의 모습과 내 얼굴에 튀는 엘리제의 피


온몸에 얼음 가시에 찔린 채로 나를 보며 그녀는 눈을 감았고 바닥에 쓰러졌다.
얼음이 바닥에 부딪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나는 멍청하게 그곳으로 걸어간다.

죽었다.
이렇게 쉽게?

"서,선생님? 저런 더러운 창년 만지지..."

그녀의 심장이 뛰지 않는다.
죽었다.

"선생님?"

엘리제와 그다지 오랜 시간 같이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죽었다.


사람이...
방금까지 살아있던 사람이 죽었다.

"선생님"


"좀 닥치고..."


그녀를 제지하기 위해 뒤를 돌아 말을 꺼내던 나는 어느새 내 등 뒤에까지 와있는 라일라를  수 있었다.


"진즉에 죽여버릴 걸 그랬어요. 참 조용해졌어요. 그렇죠? 선생님"

[웃어보렴. 무표정한 것보다는 웃는 게 제일 이쁘니까]

어째서인지 그녀는 무척이나 해맑은 미소 있었다.


"라일라..."

"이제 둘뿐이에요. 선생님을 처음 만난 그날 이후 처음으로 저희 둘만..."

그리고 나의 시야가 새까맣게 변했다.

[BAD END] - 엘리제 DEAD (35일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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