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화 〉Level 0 (4) (5/87)



〈 5화 〉Level 0 (4)

시계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보니 내  시계가 째깍째깍 소리를 내는  눈에 들어왔다.


컴퓨터 화면에서 가리키는 날짜는 2주 전인 8월 26일
엘리제를 처음 만나고 그녀에게 CCTV 영상을 지워주고 살 공간을 구해달라고 말한 직후의 시간이었다.

"대체 나보고 어쩌라고"

내가 죽는 것만이 아니라 히로인이 죽어도 과거로 돌아온다.
나는....내가 죽는 것만이 아닌 히로인의 목숨까지 고려해야 한다.

거기에 시간도 바뀌었다.
저번의 죽음에서는 8월 21일로 되돌아갔던 반면 이번에는 그보다 5일 후인 26일.

"씨발"


 나한테 이러는 건데...
대체 내가  그리 잘못했다는 건데?


엘리제가 눈앞에서 죽는 게 생생히 기억에 남아있다.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얼음으로 이루어진 투명한 가시들이 솟아나 피를 뿜어내는 장면이 머릿속에 각인된 채 나를 괴롭힌다.


 마디 대화도 별로 인한 여자였다. 오히려 언제 그녀에게 죽임을 당할까 전전긍긍하며 주인공을 연기했을 뿐 그다지 정도 안 가는 여자였다.


[짐만 챙겨서 돌아갈 거니까.  먼저 들어가]


엘리제는 어째서 그곳에 있었던 걸까.
그리고 라일라는 대체 어떻게 나를 알아챈 것일까.


나는 소설 속에서 주인공의 외모를 묘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있다고 한다면 '그는 무척이나 평범한 외모였다'라는 식의 문장밖에 없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주인공의 외모묘사를 한 적이나 그러한 상상을  적이 단  번도 없다.


엘리제 그리고 라일라가 나를 주인공일지 모른다는 의심을 하는 것도 이런 이유였다.
작가인 나도 모르는 주인공의 외모와 목소리를 등장인물인 그녀들이 알 리가 없다.
주인공 같은 느낌만 든다면 일단 그녀들은 설마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대체 어디서 눈치를 챈거... 아...

라일라를 처음 만난 것은 8월 1일.
그녀는 1달이 넘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었고, 영상 속의 목소리와 매치해 나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어느 순간 확신하였다.

그러면 자막으로 내보내면 된다.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다.

이번에는 내가 죽은 것도 아니고 고통받지도 않았다.
왜 죽은 것인지 알 뿐만 아니라 조금만 방법을 바꾸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일 뿐.

그런데 나는  이렇게 불안한 것일까?

[아...아시고 계시잖아요... 저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이제 둘뿐이에요. 선생님을 처음 만난 그날 이후 처음으로 저희 둘만...]


애써 고개를 젓는다.
영상을 만들자.
이번에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영상을 만들어 절대 들키지 않게 하면 해결된다.


다시 2주를 보낸다.

"생각보다 집이 너무 크군"

"주인님과 제가 오순도순 살만한 집을 구하려니 딱히 보이지가 않더라고요. 그래도 여기라면 참고 살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구해봤어요"


한번 했던 것을 똑같이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반복한다.

"여기를 구할 때 도와준 분한테 대충 300억 정도 한다고 듣기는 했는데... 별로 마음에 안 드시나요?"

"바꿔"

내 기억력이 이렇게 좋았나?


"비키지 않으면 앞으로 네 몸에 손대는 일은 없을 거다"


"치사해"

바꿔야  영상도 자막으로 대체했다.

"NO 보상 NO 봉사"

이번에는 그녀에게 의심받는 상황을 만들지 않게 하려고 보상을 외치는 것을 무시하고 그녀가 구해온 펜트하우스로 돌아왔다.


"치..."

무척이나 삐진 티가 역력하다.
이곳에 들어온 뒤 나에게 삐졌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별의별 행동을 다 하는  눈에 띈다.

"다시는 부탁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말하지만, 그녀가 절대 그럴 일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커피"

"네~ 주인님"

소파에 앉아서 커피를 주문하자마자 쪼르르 주방으로 달려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를 따라왔던 걸까?
나는 분명 돌아가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뒤를 쫓아 내가 살았던 원룸으로 들어왔고 결국 라일라를 도발해 죽임당했다.


라일라도 마찬가지다. 원래라면 절대 주인공으로 위장한 내 말을 거스르지 못할 것이다.
나는 뭔가 잘못 생각하고...

"주문하신 커피 나왔어요. 주인님"

자기가 메이드인 양 말하며 책상 위에 커피를 올려놓았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것을 집어 들어 입에 가져다 댄다.
커피를 별로 안 좋아하는 나였지만 입이 건조해 그냥 마신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괜찮ㄱ...푸흡..."


"어머"


메이드가 된듯한 게 아니고 메이드였다.
커피 타러 간 잠깐의 시간 만에 어떻게 메이드 복으로 갈아입은 것인지 그녀를 보자 당황한 나머지 입에 들어간 커피를 뱉어버렸다.
그녀는 이럴 줄 알았다는 것인지 손수건을 꺼내 나의 몸을 닦기 시작했다.


"비켜"


"그렇지만, 옷이 더러워졌는걸요. 옷을 벗어주시면 제가 빨아 드릴 수 있을 텐데"


빨아준다고 하면서 입맛 다시는  대체 무슨 뜻인 걸까? 전혀 모르겠다.


"이런 면에서는 정말 주인님다우시네요."

무척이나 나라는 사람을 잘 안다는 듯이 말하는  좀 웃기다.
주인공이라는 가상의 존재와 나는 엄연히 다른 존재다.

취미도 성격도 취향도 습관도 뭐 하나 같은 게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 여자는 나를 주인공이라고 확신...

확신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녀의 입에서 늘 나오는 [새 주인님]이라는 말이 스쳐 지나간다.
그녀는 얼마만큼 나를 의심하고 있는 걸까?

"그렇게 수많은 여자를 거느리고 다니셨으면서. 주인님 혹시 고..."

그녀가 나를 얼마나 의심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던 중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그녀의 망언에 나는 순간 어처구니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어머, 실수. 이건 금기어였죠?"

진짜 실수했다는 것처럼 입을 가리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모습을 한다.
하지만, 손 틈 사이에서 보이는 휘어진 입꼬리가 전혀 실수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는 했지만 미녀... 그것도 내 뇌내  망상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미녀에게 화를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저런 장난스러운 성격도 내가 좋아해 소설 속에서 자주 보여주는 것이었으니.

"적당히 하고, 내가 살던 곳으로 가서  가져와"

"제가요?"

"갈아입을 옷이라도 있어야지"


"제가요?"


"장난치지 마"

"보상도  주셨으면서"


풀이 죽은 게 눈에 들어왔지만 애써 외면한다.


"떨어지기 싫은데..."

"......"


"히잉..."

"갔다오면 생각해볼게"


"네! 금방 다녀올게요!"


감정변화가 무척이나 빠르다.
순식간에 기운을 차린 그녀는 곧장 몸이 사라졌고 그녀에게 속은 것을 알지만, 그런 모습도 귀엽다고 생각하며 소파에 드러누운 채 TV를 켰다.

- 2주 만에 다시 시작된 미국을 향한 테러 행위 대체 이 지옥은 언제까지일까요. 미국 현지에 나가 있는 안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지금 보이는 곳은 멕시코와 미국의 접경 지역에 있는 마타모로스입니다. 보시다시피 마치 핵폭탄을 맞은 듯 아무것도 남지 않은 크레이터가 되어버렸습니다. 총인구 50만 명에 달하는 곳은 완전히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인근에 있던 미국의 국토였던 브라운즈빌 또한 그 여파로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라고 합니다.

전투 흔적처럼 보이는 무수한 구덩이들과 완전히 무너져버린 건물들이 TV에 나타났다.

내 영상을 보지 못한 것일까?
그래도 미국이면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다.


네. 요즘 쟁점이 되는 '주인공'이라는 남자의 신상이 아직 파악되고 있지 않습니다.


-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필사적으로 찾는다고 말만  뿐  빠른 대응을 못 하고 있습니다. 몇몇 누리꾼들이 인터넷상에 올린 영상이 화제입니다. 피시방과 여관 CCTV를 확인하는 영상이었는데 함께 보시죠.


뉴스 화면이 바뀌고 모자이크를 한 일반인이 내가 나튜브 계정을 생성한 피시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잡혔다.

- 안돼. 나도 보여주고 싶은데 완전히 부서져 버렸어.

복구 요청은 해보셨나요?


- 마! 나도  해봤겠나? 그 뭣이냐 페프비아기인가 그놈의 외국인들도 와서 싹 다 확인해봤는데 절대 복구 불가능하더라


휴대폰을 열어 뉴스를 보자 수많은 뉴스가 나를 언급하고 있었다.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주인공'이라는 남자는 대체 언제쯤?]


[나튜브 계정 '주인공'이 대한민국 서울 한 피시방에서 생성됐다는 FBI...美 정부 당장 그를 내놓아라  정부를 향해 압박]


[나튜브측. '주인공' 계정에 올라온 동영상에 사용된 IP주소와 관련 기기의 기록 전부 공개할 의사가 있다]


['주인공' IP주소 추적 결과 서울 한강 인근 편의점으로 나타나...]

[국정원이 찾은 휴대폰 주인은 '자신은 공기계를 팔았을뿐...]


[여관 주인...]

모두가 나를 찾는다.
수천만 명의 수억 명의 사람들이 나를 찾는다. 어서 빨리 나타나서 해결하라고 한다.

수많은 댓글이 나를 욕한다.
수많은 기사에서 나를 저격하고 하나 올린 나튜브 영상 댓글은 왜 나보고 아직도 안 나오냐고 어머니부터 시작해 증조부까지 욕을 하며 얼굴도 모르는 주제에 외모 비하까지 한다.
나를 부모님의 원수라 여기는 듯 삿대질하고 온갖 매체에서 조리돌림. 한다.
애초부터 나튜브에 영상을 올리지 않았더라면 100일도 버티지 못하고 끝났을 것이다.


나는 그저 아무도 나서지 않았기에 나선 것뿐인데
마치 내가 잘못한 것처럼....


[빠각]


휴대폰을 바닥에 던지고 바닥을 바라본다.

나보고 어쩌라고.
세계가 멸망하는 거랑 나랑 무슨 상관인데.
니들도 나랑 같은 상황이면 똑같은 선택을 할 거면서 왜 나한테만 지랄들이냐고.

기사를 쓴 기자들이  상황을 알 리가 없었다. 댓글을  일반인도 모를 것이고, 나를 욕하는 수많은 사람도 전부 똑같다.
나와 같은 상황이 되면 나와 똑같은 선택. 아니, 나보다 더한 놈들이 수두룩하게 있을 것이다.
자기만 살겠다고 온갖 방법을 생각해낼 것이다.

그래도 나는 뭐라도 했다.
영상을 올려 나름 피해를 줄이려고 노력했고, 주인공을 찾는답시고 파괴 활동을 하는 것을 그만해달라고 권고까지 했다.


 정도면 충분하다.
나는 충분히 노력했고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엘리제를 이용해 최대한 히로인들의 눈을 피해 조용하고 행복하며 안전한 생활을 영위하다가 수명을 다해 죽을 것이다.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하고서 고개를 돌려 시간을 확인해본다.

 늦은 시간.

뉴스 기사나 댓글을 보다가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나 보다.
대충 씻고 자야겠다고 생각하며 욕실 쪽으로 몸을 움직이려는데 순간 엘리제가 아직 안 들어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라면 집에서 여기까지 10분도  걸릴 텐데 무척이나 늦는다.

그녀가 출발한  2시간이 훌쩍 넘긴 시간
주인님을 끔찍이도 좋아하는 그녀가 나를 내버려 두고 다른 곳으로 샛을리는 절대 없었다.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떠올랐고 금방이라도 그녀가 들어올 거라 믿었지만, 그런 내 생각과는 다르게 나의 몸은 이미 현관문에 와있었고 이미 신발을 신은 직후였다.

어디로?

정신없이 그녀가 구해준 펜트하우스를 나와 택시를 부르고 나는 내가 어제까지 잠을 잤던 곳의 주소를 부른다.

왜?


 잠깐의 시간 만에 그녀에게 정이 들어서?
혼자 있는 게 편해 방구석에 처박혀서 친구조차도 없는 내가?
나는 그렇게 사람한테 정을 주는 성격은 아니었다.

세상에서 혼자 사는 게 가장 행복하며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않고 피해받지 않는 것을 올바른 삶의 표본이라고 여기는 사람이다.
그저 최악의 가정이 머릿속에 떠올랐을 뿐이다.

내 평온한 삶에 있어 엘리제라는 존재는 필수 불가결한 존재였다.
어디엔가 숨어 사는 데 있어서 그녀만  조력자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토악질 나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그녀를 데려왔다.


택시에서 내려 달리듯 원룸 계단을 올라간다.
이제  가을로 넘어가는 날씨임에도 입에서 김이 나올 정도로 춥다.

이곳에 그녀가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달려서 방문 앞에 섰다.


'끼이익'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내 방 안에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누구야?"

맨 처음 보이는 사람은 라일라였다.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신발을 신은 채로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그녀가 만들어놓은 처참한 광경을 바라본다.


양손과 다리가 잘려 나가고  눈이 뽑혀 한쪽에 쓰러져있는 엘리제의 모습이 보인다.
피를 뿜어 죽는 것조차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듯 단면에는 얼음들이 매워져 그녀의 죽음을 허락하지 않는다.


"아... 이 집 주인?"


"왜... 네가 여기있어?"


고개를 들어 라일라를 쳐다본다.
미치도록 공포스러운 그녀의 표정 없는 얼굴을 마주한다.

"네가 어떻게 여기 있냐고!!!!"


당황하는 그녀의 표정에 나는 고개를 돌려 현실 같지도 않은 처참한 모습을 하는 엘리제에게로 걸어가 주저앉았다.


아직... 숨을 쉬고 있다.
금방이라도 멎을 것처럼 희미한 숨소리이기는 했지만... 그런데도 아직 살아있다.

파랗게 질린 엘리제의 입술이 달싹인다.

"왜 왔어요...."

'괜히   했네요'라고 힘겹게 말을 잇는다.
그녀의 볼에 손을 올려본다.
아직은 따뜻한.... 하지만, 점차 식어가는 그녀의 체온에 나는 눈을 감는다.

그녀가 또 죽는다.

"선...생님?"

"왜 그랬어?"

"선생님 인가요?"


고개를 돌리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양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라일라의 모습이 보였다.


"아니... 대체 왜 네가 여기 있는 거야?"


"저와 선생님은 영혼으로 묶여있으니. 이곳에서도 저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겠다 싶었거든요"


"......"

"이곳은 제가 처음 이 세계에 떨어진 장소다 보니 특별했거든요. 그래서 자주자주 들렸어요. 그러던 중에 저 창년을... 그건됐고 역시 틀리지 않았던 거에요!"


그녀의 목소리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엘리제의 숨소리가 사라져간다.

"라일라"


"선생님도 이제 아시겠죠?"


"살려"

"있잖아요. 선생님. 제가 선생님을 만나면 하고 싶었던 말이 정말정말 많은데..."

누군가가 내 앞에서 죽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기분이 더러운 것이다.
이성적으로는 그녀를 그냥 죽게 만들어 회귀해서 없었던 일로 만드는  베스트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손끝을 통해 실시간으로 느껴지는 죽음은 나에게 감당할  없는 죄책감을 지어준다.


[제가요? 히잉... 떨어지기 싫은데]

내가 이곳에 오는 게 너무나도 귀찮아서 그녀를 시켰다.
어차피 그녀는 초인이다 보니 순식간에 이곳을 왔다 갔다  거라 생각해 그냥 시킨 것이었다.
바닥에 뿌려져 있는 붉은색의 피 웅덩이가 자꾸만 그런 과거의 나를 질책한다.


'네가 죽인 거야'


"닥치고!! 살리라고!!! 너 살릴 수 있잖아! 이제 날 찾았으니 됐잖아! 이제 살..."


"왜요?"

"왜...라니?"

이상하다.
소설 속 그녀는 분명 시키면 하는 캐릭터였다.

"죽게 내버려 두세요. 선생님. 아까 이 여자가 얼마나 나쁜 짓 했는지 아세요? 주제도 모르고 선생님을 독점하겠다고 입하나 뻥끗 안 하는 거 있죠?"


"......"


"그러고 보니 이곳에 왔을 때 이곳에 있던 옷들을 들고 냄새를 맡던데... 병신같이 나약한 주제에 선생님의 내음을 탐하던 거였네요. 숨는 것밖에 할  모르면서 제가 이곳에 올 때까지 눈치를 못 챈 거면 냄새만 맡은 게 아닌 것 같네요."

방 한쪽에 널브러진 옷가지들이 눈에 들어온다.

"주제도 모르는 년은 죽어도 싸요"

나는 대체...무엇을 만든걸까?
정말 내 등 뒤에 있는 이 여자는 내가 만들어낸 캐릭터가 맞는 걸까?
너무나도 사람 같으며, 비인간적인 여자의 목소리가 점차 가까워진다.


"이제야 죽었네요"

내  뒤까지 다가온 그녀는  귓가에 대고 속삭인다.

"이제야 둘만 남게 되었어요"

악마 같은 속삭임에 나는 멍청하게 싸늘하게 식어버린 엘리제의 시신을 내려다본다.


"사랑해요. 선생님"


어째서 엘리제가 죽었음에도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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