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화 〉LEVEL 1 (5) (13/87)



〈 13화 〉LEVEL 1 (5)

"누나. 엄청 예쁘다."

그는 예의가 없는 남자였다.
길거리 왈패를 연상케 하는 이딴 남자를 어째서 자신에게 맞긴 건지 이해하지 못해 몇 번씩이나 신전에 찾아가 따졌을 정도로 나는 그를 싫어했다.

그의 말투만이 문제였다면 과민반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훈련? 아...  저혈압이라서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요. 아, 누나가 깨워주실래요? 그러면 재깍재깍 일어날게요"

동네 양아치조차 이기는 게 불가능한 실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그는 대체  믿고 있는 것인지 늘 당당했다.


"다 때가 되면 각성하는 거죠. 주인공은 초반에는 약한  당연한 거예요. 아, 배고프네. 먼저 점심 먹으러 갑니다~ 야, 너. 그래 너. 뒷정리 좀 해줘"


참으려고 했었다.
고위 신관들과 왕국 가신들이 당부해주기도 했지만, 이런 남자와 실랑이를 벌일 시간에 단련하는 것이 이로우리라 판단했기에 그의 안하무인 격인 태도를 무시하고 넘어가려고 했다.

가르치는 스승인 나에 대한 호칭은 둘째치고, 훈련할 의지조차 없었으며.
왕국을 수호하는 기사단원을 수하처럼 부려먹었으며 자신의 사치를 위해 왕국의 국고를 사용하는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음에도 참으려 노력했다.

공주와 성녀님의 부탁에 참고 또 참았다.
하지만, 그 인내도 두 달을 넘어가게 되자 금세 한계가 찾아왔다.


"이제 그만하면 안 돼요?"

"방금... 뭐라 했지?"

"이제 지치니까 그만하고 싶은데. 대체 이런 걸 얼마나 더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이거 칼 깨작이는 걸 몇백  더한다고 실력이 늘겠어요? 아~  해 못해. 신전에 가서 원래 있던 곳으로 보내 달라고  거니까. 공주님이랑 재상한테는 알아서 말  해주세요"

"멈춰라"


그때는 공주님의 언질이나 성녀님의 부탁 같은 것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눈앞에 있는  남자를 때리지 않고서는 참을 수가 없었다.


"너... 이러고 무사할  아느냐?"

과거 그는 그런 남자였다.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고 침대 밖으로 나오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던 구제 할 도리가 없는 인간이었다.

"하버만...봐주...헤...오..."


그는 체벌을 시작한지 10분도 되지않고 항복을 선언했다.
체벌이라 하기보다는 일방적인 구타라는 느낌이었다. 평소 단원들에게 하던 버릇이 나와버렸던 것이다.
그가 무릎을 꿇고 손을 싹싹 비비며 용서를 빌고 있는 것을 보고 정신을 차렸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이것으로 징계를 받더라도 속 하나만큼은 시원해졌으니 달게 받을 생각이었다.

"용사님. 오늘 이후로 당신의 품위 유지에 사용하던 금들을 10분의 1로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여신님의 호출을 제외한 용사님의 신전 출입을 일절 금하도록 하겠어요"

하지만, 그에게 당하던 것이 나뿐만이 아니었던 것인지 용사를 폭행한 것에 대한 징계는커녕 오히려 잘했다고 하며 손뼉을 쳐주는 상황.
...솔직히 그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 며칠간 정신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그를  오래 훈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를 치료하기 위해 들어간 포션의 양이 꽤 됐기에 기사단을 위해 거의 무료로 지원해주는 신전에는 죄송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그를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최소한의 손속을 제외하고 최선의 교육을 진행했다.


"스승님. 저 이틀째 굶었는데, 좀...아무것도 아닙니다"


더는 훈련량을 채우지 못했음에도 자리를 이탈하는 양아치와 같은 행동을 하지 않게 되었다.


"....저는 아침잠이 없습니다"

아침훈련에도 빠지지 않게 되었다.

"저는 검을 휘두르는 것을 세상에서 제일 사랑합니다. 검은 제 애인이며 늘 잠이 들기 전 평생토록 검을 사랑할 것을 맹세하고 있습니다"

견습 기사의 올바른 정신 상태를 가지게 되었다.
가끔 야반도주하려고 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전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이제야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찾아왔다 생각했지만, 그것은 얼마가지 못했다.


"누나. 재상이  내쫓는다고 하는데. 말 좀 해주면 안 돼?"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무리 고된 훈련을 시켜도 그는 성장하지 않았다.
의욕이 없는 것은 둘째치고 그의 재능은 일반인을 뛰어넘지 못했고, 그것을 왕성과 신전이 알게 되자 용사를 잘못 소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왕국 기사단원  명.
아니, 그가 열 명이 되어 달려들어도 가장 실력이 낮다 평가되는 왕국의 기사 한 명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에이, 설마 진짜 내쫓겠어? 그치? 누나  좀 해봐"


왕국은 자선단체가 아니었기에 당연하게도 그는 버려졌다.
그를 원래 있던 곳으로 보내는데 들어가는 막대한 재화와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으니 그는 빈손으로 왕성에서 쫓겨났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이냐"

억지로 맡겨진 것이긴 하지만, 생전 처음 누군가를 가르쳐 본 나에게 있어 첫 제자였던 그에게 정이 들었던 것 같다.
내 가르침이 미숙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그를 가엽다 생각했다.


"그딴 새끼들도 버텼는데 뭔들 못하겠어? 누나야말로 나중에 기사단에 들어와달라고 애원하지나 마"

억지로 이곳에 멋대로 끌고 와 강제로 훈련해 전쟁에 투입하려고 했으며 재능이 없다는 이유로 버려진 것에 대해 분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마지막까지 웃으며 인사했다.


그때 그가 나에게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는  또한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를 잡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가 죽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곳에서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 나는 그가 나를 가장 필요하던 순간 그를 외면했다.
그를 다시 만난 것은 마족과의 전쟁이 격화되어 왕국에까지 마족이 침공할 때였다.

"누나는 오랜만에 봐도 이쁘네"

그를 그렇게 떠나보낸  얼마 지나지 않았다 생각했지만, 그는 그 얼마 안되는 시간만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너희 하는 꼬락서니를 도저히 못 보겠어서 친히 찾아온 거야. 씨발, 니들 때문에 내 친구들 다 뒤지는 꼬락서니 좀 인제 그만 보고 싶으니까. 이제부터  영지 병력은 내가 지휘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 반역? 반역 좋지. 씨발, 너희한테 죽나 저 성밖에 마족한테 죽나 별다른 거 없으니까. 꼬우면 죽여보던가?"

강해지기는 했지만, 그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낀건 무력이 아니었다.
강해졌다 해봐야 나와 비교도 안 되게 약했고, 그의 뒤에 있던 여자와 비교해도 그는 무척이나 나약했다.

달라진건... 그의 내면이었다.

겨우 그의 말 하나에 지휘권을 넘겨줄 귀족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태반이 죽은 변경백의 사병.
나를 포함한 중앙군도 그 숫자가 적었다.
다방면으로 쳐들어오는 마족들을 막기 위해 왕국 주변으로 넓게 파견되었고, 이곳에 온 전력은 나를 제외하고는 숫자가 미비했다.


그에 반해 그를 따르는 용병들의 숫자는 월등히 많았다.
정확하게는 그를 도와주는 여제 쪽이었지만 그녀 덕분에 그는 반란에 성공했다.

철혈여제.
대체 어떻게 구워삶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용병. 특히나 전쟁을 돈벌이로 삼는 용병들에게 여왕으로 군림하는 여자였다.
홀로 일만의 적을 상대한다고 들었을 때는 코웃음을 쳤지만, 막상 상대하고 나니 과장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그날 여제에게 패배했다.
수적으로 불리했다. 미리 반란을 도모하고 있었다. 등의 변명을 해보지만, 어떤 핑계가되건 나는 돈을 받고 잡일이나하던 야만적인 용병에게 패배해 붙잡혔다.


하지만, 성공한 건 반란 이었을  여전히 적은 건재 했다.
승기가 기울어 패배가 확실시되는 상황에 내부에서 지휘권을 두고 전투를  상황이었기에 나는 그때 전부 죽을 거라 예상했다.

패배.

이웃 영지  국가의 주요 거점이 뚫리고 있는 상황에 이곳이 뚫린다면 왕성까지는 순식간이었기에 이곳에서 패배한다면 전쟁의 패배였다.

"누나. 마족만 몰아내고 금방 풀어줄 거니까 얌전히 있어야 해"


"날 배제하고도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냐"

"응"

"그걸...확신하는 근거가 무엇이지? 이건 절대 불가능한 싸움이다"

"수십번이나 졌으니 이번에야말로 이기겠지. 좆같지만...누나가 죽는걸 볼수는 없잖아"


그는 너무나도 쉽게 자신의 말을 지켰다.
말도 안 되는 수적 불리함을 전략으로 이겨내었고, 변수를 기지로 해결했다.

나는 그의 말대로 그 전투에서 필요가 없는 존재였다.

그는 용사였다.
왕도에서 쫓겨나던 그 날의 그가 아닌 진짜 용사.


그날을 기점으로 전투에서 그와 만나는 것이 잦아졌다.
어째서인지  그를 보는 날은 내가 위험에 빠졌을 때였다.

"이 누나는 왜 자꾸 죽을 자리를 찾아서 들어가는 걸까"


"......"


"왕국 국민을 살리려고 하는 건 알겠는데, 누나가 죽으면 내가 곤란해져"

혹은 내가 정말 필요하던 순간.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 때마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 자리에 있었다.

아마... 나는 그때부터...


침공이 계속되면 계속될수록 나는 그에게 필요하지 않은 존재가 되어갔다.
재능이 없었음이 분명한 그는 볼 때마다 강해져 있었고 마족이 더는 왕국에 쳐들어오는 것을 포기했을 때 그는 나와 비등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후회했다.
그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절 거둬줄 수 있습니까?"


"갑자기 웬 존대야? 이 누나가 어색하게 왜 이래"

"언제 어디에 있던 당신의 뒤에 서 있는 기사가 되고 싶습니다. 절 받아주시겠습니까"

  번이라도 그에게 필요가 되고...
아니. 그저, 그의 옆에 있고 싶었다.

"누나. 그러면 나랑 약속 하나만 하자"
"내 명령 없이 절대 죽지 말기. 멋대로 사람 구하겠다고 뛰어들지도 말고, 죽을 것 같을 때는 기사도 같은 건 전부 버리고 도망쳐. 어때 쉽지?"

그때는 내가 가진 감정이 무엇인지 몰라. 핑계를 대었던 것뿐이었다.
은혜를 갚겠다는 핑계로 나는 그의 기사가 되어 왕국을 나섰다.

그런데...


"이제 그만해주면 안 돼?"

내 행동은 늘 그에게 민폐였다.
그를 위한다는 이유로... 그를 위험에서 지키겠다는 이유로 쓸데없는 행동을 하며 그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일을 저지르고 난 후 후회했다.
가만히 있었어야 했는데 나는  또다시 같은 실수를 해버린 것일까


자신을 수백 번이고 책망했고, 그에게 있어 나라는 존재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을 수천 번이고 깨달았다.

그런데도... 내 발로는 그를 떠날 수가 없었다.

기사로서 가져서는 안 될 감정을 가졌으며 알아서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감정에 휘둘려 자처해 그의 걸림돌이 되었다.
그의 주변에 있는 여자들과 비교해 정말 보잘것없는 주제에
그저 기사로써 그를 지키는 것조차 못하는 주제에 꿔서는 안  꿈을 꾸며 추하게 버텼다.


"미안해..."


결국 그가 나를 내쳤다.
그는 나에게 더는 따라오지 말아 달라고 고개 숙여 부탁했다.


자신의 추함이 너무나도 부끄러웠으며, 이제는 그의 등조차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셀 수도 없을 정도로 죽고자 했다.

그와 했던 약속만큼은 지켜야 했기에...
그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기에 더욱...

그가...죽어도 좋다고 말해줄 때까지...

그와 연결된 마지막 끈.
죽지 않는 한... 그가 언젠가 한 번은 돌아봐 줄 거라 믿었다.

그가 나에게 명령해줄 테니까.
쓸모없는 나라도 마지막 순간 그의 필요가 되어줄 테니까.


필요가 없었더라면. 나를 버리는 순간 약속을 파기했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죽지 못한 채 살아왔다.




***

"언제까지 이럴 거야?"


그런데 나의 알맹이는 아무것도 변한 게 없었다.
눈앞에 있는 그도...하나도 변한 게 없었다.


아니, 옛날 내가 처음 봤던 그때로 돌아간 것뿐...


어째서인지 외모도 목소리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알 수 있다.
내 앞에 있는 그는....모두에게 버림 받기 전.
포기하고 망가지는 것을 선택하기 전.
꿈에 그리던 과거의 그였다.


그런 그를 보고 꿈을 꿔버렸는지 모르겠다.
옛날... 그가 왕성에서 버려졌던 순간.


정말... 정말 후회했던 그때를... 돌이킬  있을 거라 생각해버리고 말았다.


똑같은 결말이 될 거란  알면서....

"알고 있잖아. 네가 이러는 거 내가 불편해한다는 거"

알고 있다.
내가 입을 열 때마다 그가 나를 표정이 더욱더 좋지 않아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늘 초조했고 그의 걸림돌이 된다.

나는...그때나 지금이나 그 무엇하나 변한  없다.


여전히 나는 그의 걸림돌이었으며, 여전히 필요가 없는 기사였다.


"주군. 주군의 보잘것없는 기사가... 비록 이룬 것은 없지만... 과거... 주군의 약속을 지키고자 합니다"


그의 필요가  적이 단 한 번도 없음에도 참 염치없는 기사다.
그의 소망을 이루어 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음에도 더는 버티지 못해 죽지 말라는 약속조차 지키지 못할 것 같아 추하게 부탁한다.

"이제는 필요 없다고.. 죽어도 된다고 말해주세요"


가끔... 아주 가끔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 쓸모없는 생각.

[주군이나같은거랑했던약속을기억할것같아?]

그렇기에 그동안 날 찾지 않았다고, 쓸모가 없어 방치 되어버린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망상에 사로잡힌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그동안 무엇을 위해 살아왔던 것일까.


두렵고 두려워 절대 그가 그럴 리 없다며 자신을 세뇌해왔다.

그런데 어째서 그의 표정은 내가 그토록 잊으려 애썼던 것을 떠오르게 만드는 것일까.

[어차피이루어지지않을거라면전부네마음대로하는건어떨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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