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화 〉LEVEL 1 (6) (14/87)



〈 14화 〉LEVEL 1 (6)

약속

나와 무슨 약속을 했냐고 물어보려던 중 그녀의 표정과 마주하자 열리던 입을 다물었다.
이것은 정말... 좋지 않다.
그녀의 눈동자. 표정. 분위기가  말만큼은 입 밖으로 꺼내서는 안 된다며 뇌가 경종을 울린다.


"안돼"

그렇기에 내가 할  있는 최선의 대답을 내뱉었다.
하지만, 내 최선의 대답은 정답이 아니었던 것인지 나를 마주 보는 그녀의 눈에는 절망만이 가득했다.


"부탁드립니다."

그녀가 죽으면 나는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12시간 전으로...

"안된다면 안돼"


"어째서입니까"

그녀의 말에 순간 말문이 막혔지만, 애써 입을 열었다.


"네가...필요하니까"

사실 필요하지 않았다.
그녀의 존재감은 무척이나 거대해 엘리제의 능력으로도 그녀의 힘을 숨기는 데에는 한계가 존재할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내 옆에 없는  나에게 훨씬 도움  것이다.

"부탁 드립니다"


이내 무릎을 꿇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까지 자신을 몰아붙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니, 그건 중요하지 않다.

"못 들은 거로 할게"


중요한 건 나는 그녀의 부탁을 절대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한 말로 누군가 죽는 것을 볼 수 없었고, 만약 내가 그녀에게 죽어도 된다고 말하더라도 지금과 똑같은 상황을 마주해야 했다.
그럼 다람쥐가 쳇바퀴 돌 듯이 회귀를 할 때마다 그녀에게 죽으라고 말해야 할까?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겨 그녀를 지나치려 했지만, 그녀가 손을 잡아 날 멈춰 세운다.
그녀를 때어보려 했지만, 이 자리에서 당장 죽기 위함인지 내 손을 양손으로 꼭 잡은  놔주지 않았다.


"아직 저를 원망하시는 겁니까"


"원망이라니... 그게 무슨 말..."


"원망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제가 미우신 거잖습니까! 왜... 어째서 저를 그렇게 보시는 겁니까"


"원망 같은 거  해"

모르겠다.
어째서 그녀가 이러는 것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나는 무엇을 빠트리고 있는 것일까?
나는 내가 쓴 소설에 대해 무엇을 잊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저는 대체 왜 죽지 못하는 것입니까? 충성을 맹세한 주군에게 버림받고 제가 왜 살아있는 것입니까. 진즉에 죽었어야 할 망령이 대체 왜 지금까지 살아서..."


"벌을 받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당신을 외면했던 그 날에 대한 벌을... 받는 것이라며... 죽는 것조차 당신을 배신하는 것이라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언제까지 벌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까?"

"수십번이고 죽으려 시도했습니다. 주군에게 더는 따라오지 말아달라 부탁받았을 때. 제 목숨은 이미 없는 거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죽으라는 명령이 아니었다는 이유만으로 당신이 제게 찾아오는 것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주군은 저를... 기억하시긴 하는 것입니까?"

"서...설령 저 같은 것을 이미 잊어버린 후라 할지라도... 이제 죽어도 좋다는 그 한마디 하는 게 그렇게 어려우십니까?"

그녀가 소리를 지르며 울분을 토해낸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약속.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관계.

나는 그녀가 짝사랑하는 것으로 서술했지, 버려졌다고 해서 죽음을 택하는 캐릭터로 만든 적이 없다.
따라오지 말라고 부탁받았다고 말하지만, 그저 그녀는 자연스럽게 잊힌 것이었다.

정말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게 맞는 걸까?
애초에 그녀가  소설 속 히로인은 맞는 것일까?

그녀의 말에는 이해할  없는 것투성이였지만, 하나는 이해할  있었다.

"겨우 그런  때문에 죽겠다고 하는 거야?"

그녀의 눈동자가 내 말에 놀란 듯 동그랗게 변했다.

"죽지 말라고 하는 게 왜? 뭐가 문젠데?"


"주...군..."

"살라고 하는 게 어때서... 겨우 기사로써 필요가 없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그딴 게 어디 있어!!"


인간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는다.
그저 버림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살고 싶지 않다니.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럼 나는?  뒤지라고 말하고 나서 발 뻗고 잘도 자겠다."

 번이고 죽으려고 노력해봤기에 잘 알고 있다.
인간의 정신력은 그렇게 나약하지 않다.


"너도 바라는 게 있을  아니야..."

"허락..."


"왜!!  죽으려고 하는 건데... 나한테 필요가 없으면 필요하도록 하면 되잖아. 노력하면 되잖아"

"노...력..."

비웃는 것일까?
그녀는 나의 말에 웃음을 띄워 보였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저 웃음은 대체 무엇일까?


"주군은 잔인한 분이십니다."

그녀가 내 손을 놓은 것인지 손이 아래를 향해 떨어지는 것을 느꼈지만, 도저히 그녀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주군. 제가 무엇을 바라는지 아십니까?"


"......."


그녀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대답해야만 했지만, 몸을 일으키며 그녀의 한쪽 손에 든 금빛의 빛을 내뿜는 검을 본 순간 도저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평생 당신의 기억 속에 저라는 존재가 남는 것이 제 마지막 남은 소망입니다"

나는 막지 못했다.
막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그녀의 목을 통해 흩뿌려지는 핏줄기가
내 얼굴에 튀어 바닥을 적시고
그녀의 육체가 바닥에 쓰러질 때까지....

그리고... 그녀의 아름다웠던 얼굴이 붉은색으로 변한 바닥을 구르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아무것도...하지 못했다.




[BAD END] - 벨라트릭스 DEAD (33일 생존)




***




"야, 강의 끝난 지가 언젠데 혼자 뭐하냐?"


죽었다.


"너... 왜 그래? 정신 차려 새끼야"

눈앞에서 그녀가 죽었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온통 지배한다.

"너...지금 우냐?"


이상하다.
저번에 그녀가 죽었을 때는 이렇게까지 힘들지 않았는데...

왜 지금은 이렇게 힘든 것일까...
하루 채 보지 못한 사이일 텐데... 나는 왜 이렇게....


 잠깐 사이에 정이 든 것일까?

잘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진짜 하나도 모르겠는데...
미치도록 힘들다.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 기억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곧 그녀가 이곳에 들어올 텐데...
그만하고 일어나야 하는데... 왜 나는 이러고 있는 걸까....


마지막 남은 소망이라고 말했으면서...
왜 그녀는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일까?


어째서 죽은 거냐고...
왜... 그런 거냐고...
당장이라도 그녀에게 가서 그렇게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앞에서 죽었고, 내 앞에 있는 여자는  앞에서 죽었던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나는 고개를 돌려 그곳을 바라보자 금빛으로 빛나는 이국적인 얼굴의 여성과 눈이 마주친다.
무척이나 밝은 푸른색의 눈동자.
커다랗게 반짝거려 멀리서도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정도로...
그리고  반짝이던 눈동자는 내 쪽으로 걸어오면 걸어올수록 바뀐다.

나는 그녀의  눈동자를  번씩이나   있다.

"주군? 무,무슨 일..."


내가 그녀에게 필요 없다고 말했을 때도 그녀는 이런 표정을 했다.
이런 눈을 하고서 죽음을 택했다.


[주군께서는 제가 필요하십니까?]


[평생 당신의 기억 속에 저라는 존재가 남는 것이 마지막 남은 소망입니다]


나를 보고 어쩔 줄을 몰라 당황했고, 곧이어  손을 들어,  쪽으로 가져오려다 주저한다.
몇번을 망설이는 것인지 몇 번을 내 앞으로 가져온 손을 쥐었다 폈다 하던  좋은 생각이  것인지 빠르게 자신의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내 앞으로 가져다 놓는다.


"사용하시면 됩니다"

"......"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녀는  이런 모습이었다.
왜 몰랐던 걸까?
그녀가 입을  때도 입을 열지 않을 때도 보이지 않을 때도 보일 때에도 그녀는 꾸준히 이런 모습이었다.

[주군의 보잘것없는 기사가 비록 이룬 것은 없지만 과거 주군의 약속을 지키고자 합니다]


이 여자의 머릿속에 들어가있는 것은 온통 나에 대한 걱정 뿐이었다.


가만히 그녀를 바라만 보고 있자 그녀는 또다시 안절부절 못하기 시작했고, 곧이어 자신이 책상 위에 놓아둔 손수건을 집어 들어 내 앞으로 가져왔다.


"실...례하겠습니다"


그녀는  말을 하고서 조심스럽게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았다.
소중하다는 듯...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그녀의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손길 하나하나 감정이 느껴질 정도로 그녀는  눈물을 닦아낸다.

눈을 찌르지 않을까?
혹시 화내지 않을까?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닐까?
그런데도...
고작 해봐야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는 것일 뿐임에도 그녀는 무척이나 나를 걱정하고, 또 이 상황에 기뻐하고 있었다.


나는 손을 들어 얼굴을 닦고 있던 그녀의 손을 잡았다.


"벨라"


"네, 주...히익..."

얼굴이 생각보다 가까웠던 탓인지 아니면 내가 갑자기 손을 잡아서 그런 것인지 그녀는 깜짝 놀라 뒤로 빠지려고 했지만, 잡혀있는 팔에 의해 그리 멀리 도망칠 수는 없었다.


묻고 싶다.
정말 원했던 게 무엇인지.
어째서 죽은 것인지...
그런데 지금 그것을 물어보면, 아까와 전혀 다를 바 없는 결말을 맞을 것이다.

"오랜만이야"


나는 아직도 아무것도 모른다.

그나마 하나 알 수 있는 것은  눈앞에 있는 이 여자가 자신은 기사라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지금까지 받아본 사랑이라고는 어머니에게서 받은 사랑 밖에 없다는 냥 우리 어머니보다도 나를 걱정하는 이 오지랖 넓은 여자


나는 더는 이 바보 같고 오지랖 넓은 여자가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