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LEVEL 2 (1)
새벽 일찍 일어나 찜질방을 나와 엘리제가 구해놓은 집으로 들어왔다.
어차피 다른 집으로 옮기자고 해도 엘리제가 내 말을 들을 여자는 아니었기에 이제는 그러려니 하며 들어오기로 한 것이다.
"엘리제는 어디 갔어?"
"잠시 볼일을 보러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볼일?"
"그건 저도 잘...다른말 없이 중요한 일이라고 하셨기에 따로 물어보지는 않았습니다"
중요한 일?
엘리제가 돌아오면 한번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드러누운 채 피곤함을 달랜다.
찜질방에서 잠을 제대로 못 잔 것 때문인지 피곤하다.
잠자리가 불편하다거나 그런 이유가 아니라...
"불편하게 왜 서 있어. 앉아"
"이게 더 편합니다"
이 여자 때문이었다.
앉는 것보다 서 있는 게 편하다고 말하는 모습에 나는 한숨을 나오려는 것을 애써 참아내었다.
그녀의 이런 모습은 그의 기억 속에서 몇 번이나 봤기에 잘 알고 있다.
주인공의 옆자리를 어떻게 해서는 지키려고 하는 의지.
찜질방에서 잠을 자지 않았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한번 버려졌던 기억과 누군가가 내 옆자리를 뺏어갈지도 모른다는 압박이 그녀를 계속해서 짓누르고 있을 것이다.
"이곳에 온 이후로 뭐 하고 지냈어?"
"주군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니까. 어디? 아무 생각 없이 막 서울 전부를 닥치는 대로 다 뒤진 건 아닐 거 아냐?"
"가진 건 두 다리뿐이라....전부 찾아다녔습니다"
이렇게 숨이 탁 막히는 대화는 어머니가 아버지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 이후로 처음이다.
아버지의 불륜 사실을 어머니 입에서 들을 때의 그 숨 막힘을 다시 경험하는 듯한 느낌.
그때는 충격적이라 숨이 막힌 것이었다면, 지금은....
"혹시 추워? 왜 그렇게 떨어?"
"아닙니다"
보는 내가 숨이 막힐 정도로 긴장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대화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시답잖은 것이나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도저히 대화가 불가능할 거 같았기에 나는 티브이를 켰다.
뉴스를 볼까 하다가 문득 안 그래도 분위기 씹창인데 더 씹창낼것 같아 티브이를 조작해 눈에 들어오는 아무 드라마나 틀었다.
드라마를 즐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뭐든 틀어놓으면 이 조용함이 사라지겠다 싶어 한 거였지만...이 드라마는 보면 볼수록 재미없었다.
전형적인 한국드라마.
티브이를 끌까 싶었지만, 티브이를 처음 보는 것인지 아니면 이 막장 아침 드라마가 재밌는 것인지 그녀가 유심히 보고 있었기에 나는 리모컨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아직 그녀는 안정적이다.
언제 어느 때 자신을 죽게 해달라고 말할지는 모르지만, 그런데도 아직은 정상이다.
그의 기억을 보며 느낀 것은 그녀는 답이 없다는 것이다.
해결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그녀를 위해 수십 또는 수백 번을 죽어가며 노력했음에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을 가두는 이유를 마지막까지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그가 발악하고 발악한 뒤 선택한 것이 그녀를 버리는 것이었다.
히로인이 죽으면 멋대로 회귀해버리는 나와는 다르게 그는 자기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었다.
회귀하는 시간까지 정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그는 히로인의 죽음과 동시에 멋대로 회귀해버리는 나와 다르게 벨라를 버리는 선택지가 있었음에도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가 수십번을 죽는 동안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그녀에 대한 감정이었다.
그런데 주인공인 그가 대체 왜 그녀에게 그런 감정을 가지게 된 것일까?
내가 보지 못한 기억.
그녀가 주인공의 기사가 되기 전의 기억.
아니, 마족침공 이전 시나리오인 왕성에서의 초반 튜토리얼을 나는 보지 못했다.
그녀를 어떤 식으로 대해야 할지는 이미 머릿속에 결론이 난 상태였기에 이것은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어째서 그는 그녀를 버리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내가 주인공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고 생각하기에 더욱 그녀를 버리지 않았던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주인공은 그렇게까지 헌신적인 남자가 아니다.
그것은 세상 그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안다.
그런데....과거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는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일까.
대체 내가 왜...씨발.
고개를 저으며 주인공에 관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애써 지워냈다.
쓸데없는 생각 그만하고 잠이나 자자고 생각하며 의식이 흐릿해질 무렵 귓가에 들리는 자극적인 소리에 나는 살며시 눈을 떴다.
소리가 나오는 티브이로 살며시 고개를 틀자 배우들이 서로 키스를 하고 있었다.
섹스하기 직전의 키스인지 너무나도 음란한 키스였다.
공중파 드라마? 드라마가 아니라 영화였나?
뭐든 간에 저걸 보느니 차라리 야동 한 편을 보는 게 100배는 나았기에 티브이를 끌까 했지만, 곧이어 아까도 벨라 때문에 못 껐다는 것을 떠올렸다.
드라마에 정신이 팔린 것인지 꿀꺽 소리를 내며 침을 삼키고 있다.
완전히 빠졌는데?
"뭐해?"
"아...네!"
내가 부르는 소리에 그녀가 대답하며 나를 마주 봤지만, 어째서인지 그녀의 정신이 나를 향한 것 같지 않은 기분이었다.
한국 드라마가 이렇게 유해하다.
이 여자가 나와 대화를 하는 중에 정신을 팔게 할 정도로 유해한 한국 드라마.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야"
"주,주군 저기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추,추잡하게 입맞춤을 하는 것입니까? 오,옷도 벗고..."
"왜, 그렇게 말을 떨..."
대답을 하려다 나는 방금 들은 게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해 입을 다물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당황하는 모습에 묘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누나"
"네...?"
"혹시, 아기가 어떻게 태어나는지 알아?"
"네...??????"
이상한 질문이기는 하지만, 정말 그녀가 모를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물어본 것이다.
소설 전개가 비틀린 것뿐이지 그녀에 대한 설정은 아마 그대로일 것이다.
중세유럽을 배경으로 한 세계관 속에서 기사 집안에서의 교육을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받아왔으며 거기에 왕국 최고의 기사로써 타인의 표본이 된 여자.
"주군은... 저를 어린애라 생각하십니까?"
내 예상이 맞는다면 그녀는 아마....
"남녀가 사랑해서..."
"해서?"
"손잡고 신전에 찾아가면 여신님께서 여성의 몸에 아기를 내려주는 거잖습니까. 저도 다 압니다"
이 여자. 나이가 몇이였더라.
하긴 그러니, 전 회차에서 몇 주 동안이나 기회가 있었음에도 섹스는 고사하고 마지막에 와서야 뽀뽀해달라는 한마디 내뱉은 게 다였겠지.
아니, 그전에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생각해보면 그는 무엇인가가 결여되있었다.
어제 봤던 기억 속에서 그는 단 한 번도 히로인들에게 스킨쉽을 했던 적이 없다.
섹스? 아니, 키스는커녕 제대로 몸을 맞는 것조차도 하지 않았었다.
대체 왜?
무엇인가가 많이 빠졌다.
"...주군.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하긴,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겠지.
그녀가 그 말을 하고 발걸음을 옮기는 것을 보고 나는 느긋하게 소파에서 일어나 한쪽 다리를 들어 올려 반대쪽 발 위에 올렸다.
"누나"
"주군. 저를...그런 식으로 부르시면 안 됩니다."
"이리 와서 앉아봐"
내 말에 그녀는 쫄래쫄래 나에게 걸어와 내가 손으로 치는 곳을 마냥 바라본다.
나와 소파를 번갈아 가며 눈치를 보던 그녀는 곧이어 나와 조금 떨어진 곳에 엉덩이를 붙였다.
주인공의 기억을 영화를 보듯 제삼자의 측면에서 봤기에 문제가 무엇인지 무척이나 잘 보였다.
이유는 모르지만, 그녀는 너무나도 자신을 몰아붙였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좋아할 거라고는 상상조차도 못했고, 그나마 가지고 있다 여겼던 무력도 주인공이 그녀를 과보호한 덕분에 그녀의 존재 의의가 줄어들어 버렸다.
그녀가 활약한 적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런데도, 어느 순간 보면 이미 없던 일이 돼 있는 것이다.
주인공은 생각보다 허약하고, 무모한 행동을 벌였으며, 머리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늘 죽고, 또 죽고.
그렇게 어느새 보면,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주인공 옆자리나 지키고 있었다.
"아까 왜 추잡하게 입맞춤을 하냐고 물어봤지?"
"아...네...아니, 이제 궁금하지 않습니다."
"한번 해보면 알지 않을까?"
"......"
내 말에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지만, 그녀의 커다란 눈동자와 얼어붙은 표정이 그녀가 무슨 대답을 하고 있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상상했던 그대로의 반응에 나는 예상하는 게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진심으로 처녀일지 모른다는 예상.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수십번이고 죽으면서 구해주었던 여자인데, 어떻게...
"그...그...그...그..."
"그?"
"그러면 안됩니닷!"
그는 이 방법을 왜 사용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녀는 자신이 필요 없다고 수십 수백 번이고 그에게 말했지만, 그는 아주 쉬운 길을 택하지 않고, 늘 뺑뺑 돌아가기만을 했다.
그녀의 몸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될 텐데...
사랑한다는 말 자체가 무척이나 쉬울 수 있다.
하렘이라는 것은 그의 입에서 나오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퇴색되기 충분한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육체관계는 아니다.
손을 들어 올려 그녀의 볼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녀가 마치 전기라도 통한 것마냥 볼을 부르르 떨어 보였다.
의욕이 사라지는 듯한 반응이기는 했지만, 나름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보였기에 재밌긴 했다.
나는 살며시 고개를 틀어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그저 단순히 입술만을 대었다 뗀 것뿐이었지만, 그녀는 완전히 혼이 빠진 것인지 입을 살짝 벌린 상태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나는 그녀가 정신이 돌아올 틈을 주지 않기 위해 다시 한번 입을 맞추었다.
그녀의 입안을 유린하기 위해 살짝 벌려진 틈으로 혀를 집어넣었고, 곧이어 그녀의 정신이 나간 틈을 타 물고기라도 빙의한 듯 그녀의 팔이 팔딱거리는 게 느껴졌다.
"츄룹....."
입술을 떼자.
눈물이 고인 푸른색 눈망울과 마주했다.
그녀는 참 이상하다. 기사단장이었다면 남자들을 자주 접했을 텐데, 이렇게 면역이 없을 수 있을까?
"이,이,이,이러시면 안 됩니다."
"원하던 거 아니었어?"
"하지만 이,입을 맞추는 건....저는 천박한 여자가 아닙니다!"
천박...?
"왜, 천박해?"
"그...그렇지만, 키,키스는 겨, 결혼을 해야지...하는..."
대한민국 초등학생도 이런 말은 안 할 것 같다.
솔직히, 그녀는 너무 딱딱하고, 고지식해 내 취향이 아니긴 했다.
하지만, 그녀의 외모와 얼굴. 그리고 아직 보지는 않았지만, 몸은 분명 내 이상형 그 자체일 것이다.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 수 있는 백지라고 생각하면 무척 마음이 동한다.
"주군도 인제 그만...읏..."
생각할 시간을 준 게 잘못이었다.
그녀가 나와 떨어지기 위해 몸을 뒤로 빼었지만, 나는 양손으로 그녀의 목덜미를 잡고서 나에게 당겼다.
나 같은 놈이야 힘으로 제압하면, 1초도 되지 않고 나가떨어지겠지만, 그녀는 혹여 내가 다칠까 싶은 것인지 내가 하는 대로 그대로 따랐다.
실수로 먹어버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의 입은 무척이나 작아 혀가 비집고 들어가기 힘들었지만, 코로 숨을 쉬는 법을 잊어버린 것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크게 입이 벌려져 혀와 혀가 엉키기 시작했다.
"하으...츕...츕...하....."
자연스럽게 그녀의 어깨에 둘려진 팔이 스르르 내려가 그녀의 커다란 봉우리에 닿았고, 살며시 그것을 움켜쥐었다.
"하...읏..."
이건....
가슴을 한번 움켜쥐자마자 느껴지는지 생각지도 못한 감촉에 나는 그녀의 입술을 유린하며 몇 번씩이고 가슴을 움켜쥔다.
너무 탱탱하다.
쥘 때는 푹 들어가지만, 손의 힘을 풀자마자 원상태로 어서 빨리 돌아가고 싶다는 듯한 느낌.
살며시 입술을 떼자 내 입과 그녀의 사이에 음란한 실이 이어졌다.
"누나, 이번엔 누나가....."
"주,주군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하시는 겁니까!!"
그녀가 자신의 가슴을 가리고서 소리를 질렀다.
"어,어떻게 가슴을... 이곳은 만지시면 안 됩니다!"
"왜?"
"아,아이가 먹어야 하는 젖이 나오는 곳인데. 어떻게 그런 곳을 자,장난감처럼..."
가슴을 만졌다고 화를 낼 수는 있기는 하지만 이런 반응은 설마 한 번도 자위를 안 해본 건가.
그녀의 실제 나이는 둘째 치더라도 주인공이랑 같이 있었던 시간이 나름 많았을 텐데. 그동안 한 번도...
"그래서 싫어?"
"싫습니다. 이,이건 옳지 못한 행동입니다. 아,아무리 주군이라도... 수치만을 주는 이런 행위는 거...거..."
"거?"
"거,거부하겠습니다!"
그녀의 반응은 정말 예상외였다. 그녀가 거부한다는 건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뭔가...나지막히 남아있는 내 도덕심이 그녀를 망가트리는 것을 방해하는 것인지 용솟음치던 욕구가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하고 싶잖아"
대답을 하지 못하고 힐끔 나를 바라보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모습에 나는 방법을 바꾸어 최대한 사람 착해 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누나"
"...."
"누나. 나봐"
통하지 않는 것일까?
"아... 누나. 나... 싫어하는구나?"
"아,아니... 그런 게 아닌 거 아시지 않습니까! 옳지 못한 행위입니다. 아무리 주군이라 해도, 지...지킬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주군의 잘못된 행동에 거부하는 것이지. 주군을 싫어하는 것이 아닙니다!"
격한 부정.
그녀는 양팔로 자신의 가슴을 가린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
"그,그렇게 보시면..."
"....."
"저, 절 그렇게 보지 마십시오!"
"알았어. 무슨 뜻인지 이해했어."
나는 고개를 몇 번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놔두고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가시는 겁니까?"
"하기 싫다며 그러니까, 하지 말자고"
더는 볼 필요도 없었기에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고, 곧이어 문고리를 살며시 쥐었다.
문을 열기 직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잡히는 팔목과 함께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애써 참아낸다.
"하, 하기 싫은 거...하기 싫습니다."
"그런데 왜 잡아?"
"그...런 못된 행동...못합니다."
"아니, 그러니까 그만한다니까? 손 놔 빨리"
"하...하지만...주...군이..."
"응? 안 들려 크게 말해줘"
내 손을 붙잡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귀를 빨갛게 물들이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입가에 미소를 지우기 위해 애를 썼다.
"주군이...원하신...다면...정말...저...저,저,정말 원하신다고 하시면...차...참아보겠습니다"
"응? 난 이제 그만하고 싶은데? 네가 하기 싫은 건 나도 하기 싫어"
놀랜 것인지 곧장 고개를 들고서 나와 눈을 맞춘 그녀는 곧이어 새빨개진 얼굴이 급속도로 창백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오가길래 이런 반응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오늘은 확인만 하려고 했었다.
그녀가 처녀인지 아닌지.
주인공이 그녀에게 손을 댔는지 안댔는지.
그런데, 반응을 보니...
"누나. 그럼 나랑 하고 싶어?"
"...어떤걸...말씀하시는건지..."
"아기 만들기. 하고 싶냐고 묻는 거야"
"아...아기라뇨!!!!"
귀아퍼...
이 건물 전체가 떠나가도록 소리를 지르는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한 손으로 귀를 때리며 고막이 나간 것인지 체크했지만, 다행히 그녀의 굉음에 귀가 나간 것은 아니었다.
"아니, 상식적으로 신전에서 어떻게 아기를 물어다 주냐? 그럼 신전이 없는 외딴 마을사람들은 평생 아이를 못가져? 다른 나라 사람들은? 여기 사람들은 대체 어디 신전이 있는데?"
"...아니...아니아니...그게..."
이미 아기만들기라는 말에 꽂혀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게 된 것인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어버버대는 모습에 나는 그녀의 손에 붙잡힌 팔을 빼기 위해 힘을 주었다.
"일단 놓고 이야기하자"
여러 번 손을 빼려 노력했지만, 그녀의 손에 붙잡힌 이상 팔을 자르지 않고서는 탈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말을 해보지만, 그녀는 내 말을 듣고 있지 않은 것인지 눈에 초점을 잃은 채 붕어처럼 입을 뻐끔뻐끔하고 있었다.
상식과 주군의 말 둘 중에 무엇이 맞는 말인지에 대한 고뇌 중인 것인지 겉으로 보이는 그녀의 반응이 무척이나 신선해서, 이렇게 마냥 보고 싶긴 했다.
"누나"
"네...주군..."
"팔 아퍼"
"......"
"아프다니까? 안놔줘?"
"......"
누가 봐도 이건 시위였다.
강자가 약자에게 하는 폭력이며, 강압이었다.
나를 놔주지 않겠다는 그녀의 몸짓과 다시금 돌아온 그녀의 눈빛에는 내가 입으로 내뱉은 아기 만들기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고 있었다.
"궁금해?"
"주...주군은...거...거짓말쟁이십니다"
"정말?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럼 놔. 이제 안 할게"
"주군이 아무리 거짓말쟁이라도...기사는 따를 의무가 있습니다"
아까는 아무리 주군이라 해도 잘못된 행동은 기사로써 거부해야만한다 하지 않았었나?
"누나. 사실대로 말하면 용서해줄게. 하고 싶지?"
"가...가슴을 붙잡는 파...파렴치한 행위는 옳지 않습니다...하...하지만, 주군의 기사로써 주군께서 명령하신다면..."
"하고 싶어. 하기 싫어.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해"
내 말에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그런 그녀의 눈에 손을 올려 천천히 쓰다듬었다.
"하...고..."
"응? 안 들려"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입 모양을 한 채 들리지도 않는 소리로 싶다는 입 모양을 보여주었다.
뭐...그녀의 노력이 가상해 이 정도에서 그쳐줄 용의는 있다.
"이제부터 중간에 그만두거나 망설이면 하기 싫은 거로 생각할 거야. 알았지?"
그녀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타인이 무슨 생각하는지에 대해 궁금한 적이 있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궁금한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그녀는 생전 처음 보는 신선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울면 하기 싫은 거라고 생각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