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1화 〉LEVEL 2 (4) (21/87)



〈 21화 〉LEVEL 2 (4)

나는 어렸을 적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사고였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건너편에서 중앙선을 이탈한 트럭이 나를 덮쳤으니  사고일수밖에 없었을것이다.

초등학교를 들어갔을 무렵이었던 나는  트럭에 부딪쳐 죽을뻔고, 고마우신 분의 도움으로 나는 빠른 응급조치 후 수술 할수있었다.


워낙 어렸을 때다 보니  번이나 수술을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의 내가 무척이나 괴로워했었던 기억만큼은 있다.


내가 괴로워하는 것을 보며 나보다 더 아픈 것처럼 우셨던 부모님의 얼굴은 아직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너무나도 강렬했던 기억 탓인지 그때부터 나는 트럭만 보면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발작을 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후로 1~2년 정신병원을 꾸준히 다녔던 탓인지 아니면, 나이가 들어 머리가 커졌던 것인지 나는 어느 날부터인가 트럭을 봐도 아무렇지 않게 지나다닐 수 있었다.


....그러면 나는 이제 그날 겪었던 고통과 공포를 깔끔하게 잊어버린 것일까?
아니. 나는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가끔 트럭을 보면 사고가 났던  날이 떠올라 흠칫할 때가 존재한다.

왜?

이미 치료했잖아.
이미 잊어버렸잖아.


인간이란 그런 동물이다.
아무리 치료했다 하더라도 자신이 겪은 최악의 고통은 기억을 할 때마다 자신을 괴롭히며, 설령 기억을 잃었다 할지라도 무의식으로 남아 끊임없이 괴롭힌다.

그래 아무리 치료했다고 하더라도 무의식이든 기억이든 뇌에 트라우마로 남아있다면.....
인간은 언제 어디서 건 그날로 돌아갈 수 있다.


"아... 너였어?"


[용서.....해주세요]


[제가...제가 제가 전부 잘못....했어요]

[그만....그만해...주세요...]

살려달라고 수도 없이 빌었던 기억이


[그만하라고 개년아!!!]


[...하지 말라고...하지마....하지마!!!!]


그녀를 죽이는 상상을 수도 없이 했었든 그때의 기억이
마치,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의 트럭을 마주한 것처럼 그녀와 있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표정이  그래?"


그녀의 하늘색 눈이 마주치자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여긴 웬일이에요?"


...그녀는 모른다.
그녀가 나에게 반말을 하는 것은 분명.. 나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그러니... 괜찮다.

"괜찮아? 안색이  좋아 보이는데"

그녀는  말을 하고서 내가 앉아있는 벤치 옆자리로 가서는 풀썩 주저앉았다.
제발 가달라고 말하고 싶은 입을 꾹 참고 '괜찮아요'라는 말을 애써 내뱉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스스로 몇 번을 되뇌며 고개를 들었다.
  마디만 하면 돼.
그만 가달라고... 한마디만...


"저기..."

"그럼 됐고, 너 나랑 헤어지고 난 후 선생님...아니지. 주인공이라는 남자 본  없어? 들어본 적이라도"

"......없어요"

"그래?"


익숙해 진 것일까?
고개를 숙이고 있어 그녀의 표정을 볼 수는 없었기에 그녀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까만큼은 두렵다는 생각이 덜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어디를 가야 선생님을 찾을 수 있을까?"


".....저는 잘 모르겠네요"


혼잣말인 게 분명하지만, 그런데도 나는 그녀의 말에 대답해주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 제발 여기서 사라져달라는 뜻에서 말한 것이었지만...


"혹시 너 사람 찾는 곳 알아? 막 흥신소 같은 곳 있잖아"

"그건 그쪽...이  잘하지 않을까요?"


"응? 내가?"

그녀를 뭐라 불러야 할지 몰라 그쪽이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호칭에 대해서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듯해 보였다.


"그 마법도 쓰고 그러셨잖아요. 처음...만났을때"

"아~ 맞네. 그랬었지"


타이밍을 놓쳤다.
정중하게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하려 했지만, 그녀가 자꾸만 말을 걸어  말을 막는다.
분명 나는 온몸으로 제발  옆에서 꺼져달라고 부탁하고 또 부탁하고 있는데 그녀는 눈치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이러는 것인지....하...

"...저는 이만 가볼게요"

"응? 어디 갈 건데?"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집에 가려 하자 그녀의 말이 나를 붙잡았다.


"집에... 바쁜 일이 생각나서요"


현재 그녀의 행동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주인공도 아닌 일반인 남자를 잡아다 놓고 말을 건다는 것부터가 말이  된다.

...아는 것일까?

아니다. 절대 그녀가  리가 없다.
벨라와 엘리제 두 사람은 내가 동영상사이트에 주인공이라 말했던 것을 알고 있기도 했으니 의심할 수 있었고, 주인공이 초반에 만난 히로인이었으니 그나마 주인공이 나와 분위기가 비슷하다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여자는?
나에게 말을 걸 이유가 없다.
기껏 해봐야   정도 전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나를 봤다는 것 외에는 나와 접점이 하나도 없었는데, 갑자기 친한 척을 한다?
그것도 극도로 타인을 싫어하는 라일라가?


"알았어. 그만 가봐"

그녀가 그 말을 하고 나자 나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수 있었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당시에 봤던 그녀의 얼굴

[나보고 변상하라는 거야?]


그때의 판타지 세계의 마법사 복장이 아닌 흰색 와이셔츠와 가디건을 걸치고 하늘하늘한 치마를 입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무척이나 이곳 생활에 잘 적응해 보인 듯했다.
문득 그녀 특유의 푸른색 머리카락과 무척이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는  오신 거에요?"

그녀가 보내줄 때 곧장 집으로 가버려야 했다.
그런데도 어째서인지 나는 몸을 일으킨  그녀를 보며 입을 열고 있다.

"아, 쥐새끼가 있어서"


"쥐.....요?"


"요즘 내 구역에 누가 쥐새끼들을 많이 풀어놔서 잡으러 다니고 있거든."


엘리제를...말하는건가?


"쥐...사람 말씀하시는 건가요? 대체 누가..."


"사람 아니야. 있어. 짜증 나는 년. 가만히 냅두면 바퀴벌레처럼 늘어나서 귀찮아도 꾸준히 잡아놔야돼"

히로인에 관련된 것이다 보니, 나도 상관있는 것이었기에 사람이 아니라는 말에 나는 엘리제일 가능성을 없애고서 잠깐 머리를 굴렸지만, 인외의 히로인도 꽤 그 숫자가 많아 누구 한 명을 특정할 수가 없었다.


하긴, 주인공이 서울에 사는 것은 공공연하게 아는 사실이니 히로인 한 명이 더 이곳에 있다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긴 하다.
....하루라도 빨리 서울을 벗어나는 게 상책일지도 모르겠다.

"너, 바쁘다고 하지 않았어?"


"아....."


나는 가만히 서서 딴생각을 하고 있던 중 그녀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고, 곧이어 미소를 짓고 있는 라일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평범하게 대화를 하는 그녀의 모습도 신기하지만...
 번이고 죽이고 고문했던 그녀와 대화를 하는 내가 더 신기하다.

[저를 용서해주세요]


.....아니다.
나는 절대 동정심 같은 안일한 생각으로 이러는 것이 아니다.


"서서 그러지 말고 앉지?"


"....아뇨. 지금 갈 거예요"

그저....나는...

"고마워"


"네...네???"

"말동무 해줘서 고맙다고. 여기 오기 전까지 엄청 짜증 났었거든. 그래서 쥐새끼를 치워버리는 김에 스트레스라도 풀려고 했는데.... 너랑 이야기하니까 이상하게 편해지네"


그녀를 마주하고 있는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심장이 아플 정도로 뛰고 있음에도 한편으로는 만약, 내가 그녀와 관계하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생각을 한다.
참 바보 같고 병신같지만...

선생님을 자신의 손으로 망가트렸다며 수도 없이 용서를 빌며 자해하던 그녀에게 조금이나마 ......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기... 저 힘들 때 자주 오는 곳이거든요. 그쪽도 짜증 나는 일이 생기면 와보세요."

그녀는  말에 희미한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



"너는 저번 학기 때도 그렇고 왜 학교를 안나와?"


학교는 더는  오려고 했다.
어차피  한국 초토화는 물론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구 멸망할 건데 뭐 한다고 공부를 하겠는가.
그런데 어제 집을 들어가고 난 뒤 생각이 바뀌었다.


[주인님. 어디 갔다가 이제 오셨어요? 누구랑 만나셨나요?]


그녀는 이미 내가 라일라와 만난 것을 알고 있음이 분명함에도 굳이 내가 집에 들어가자마자 질문을 했다.
불과 몇 시간 전 날 가지고 놀았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거는 그녀의 모습이 조금 짜증이 나서 한마디도 대꾸해주지 않으려 했지만, 그녀는 그것이 상관없는지 시도 때도 없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거기다 벨라라도 있으면 모르겠는데 그녀는 분명 집에 있을 게 분명함에도 어제부터 오늘까지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있잖아요. 주인님. 이 옷이 이뻐요? 아님 이 옷이? 그냥 저번처럼 메이드 복 입을까요?]


[골라주시면 여기서 갈아입을 건데~ 아 참, 참고로 저 오늘 속옷  입었어요.]

결국 나는 옆에서 쫑알거리는 그녀와 둘만이 있는 게 불편해 밖으로 나왔는데....

"등록금 따박따박내고 학고 맞은 다음 5학년 다녀봐야 정신 차릴래?"


친구 없는 내가  곳이 어디 있겠는가... 학교나 와야지 뭐...
그건 그렇고  교수님은 대체 왜


"아니 교수님. 제가  수업을 얼마나 빼먹었다고 그러십니까. 겨우 어제 하루 빠졌습니다"

"너는 그걸 자랑이라고... 너, 저번 학기는 얼마나 빼먹었는데?"


"........"


"너 저번 학기 학점이 몇 점인지는 알아?"


"....알...죠...."

아직 살날이 많으신 분이 화병이라도 난 것인지 자신의 가슴을 통통 쳐 보인다.

"이제  학기 시작했어. 좀 제발 나와라 좀!! 등록금이 아깝지도 않냐?"

진짜 이번에는 나오려고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히로인이 나타나서는 세계 개박살 날 예정이 되어버렸는데 학교가 나가고 싶어지겠어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머리한대 맞을 것 같았기에 입을  다물었다.

"...착실하게 출석하겠습니다"

"됐다. 내가 뭔 말을 하겠냐"

"말 다 해놓고서는"

"나가!"


쫓겨났다.

착한 교수님이었다.
손버릇은 나쁘지만,  같은 아싸 챙겨주는걸 좋아하다 보니 강의실에서 혼자서 왕따처럼 앉아있을 때마다 자주  찾으셨다.


연구실 뒷정리도 시키고 과자 하나 던져주기도 했고, 점심 먹고 싶으니까 밖에 나가서 햄버거  오라고 카드 던져준 적도 있다.
학교와 가까운 원룸에 살다 보니 새벽에 집필하고 있던 나를 불러 술을 먹인....사준적도 있고  취직자리를 알아봐 주겠다고도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완전히 아싸가  게 걱정돼 대학원생 선배들도 소개시켜준적도 있다.
가끔 대학원의 장점을 말씀해주시기도 했고...


때리는 것만 빼면 참 좋은 교수님이다.


"예비 노예 오랜만이네. 교수님 방에서 나온 거야?"

"네. 그런데, 형은 어디 가세요?"

"노예가 어디를 가겠어. 주인님한테 가야지...씨발"

"아...네..."

선배는 그렇게 말을 하고서는 내가 나온 문을 다시 열고서 들어갔다.
신입생으로 이곳에 왔을 때에는 순하고 착하던 학회장 선배님이었던 것 같은데, 군대를 갔다 와 다시 보게 되니 사회의 풍파를 못 이긴 것인지 폭삭 늙어 입에 욕을 달고 사시는 분이 되었다.

참, 세월이 야속할 따름이다.


솔직히 대충 시간만 보내다가 현우나 대리고 피시방이나 갈까 해서 온 것이었지만, 그래도 교수님 얼굴은 봐서라도 수업은 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휴대폰을 꺼내 오늘 수업을 찾아봤다.


강의실이....

"선배. 여기서 뭐 하세요?"

등 뒤에서 들려오는 여자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익숙한 얼굴에 곰곰이 머리를 굴린다.

[그럼 저 밥 사주실  있으세요?]


아....그 히로인인지 의심했던 일반인 여자애.

"그런데 신입생? 누구?  나 알아?"

저번 학기 수업도 안 나갔는데 알고 나한테 말을 걸지?


"저번에 저 보셨잖아요. MT 때"

"사람 착각한  같은데?"

나는 아싸여서 그런 인싸 행사는 가지 않는다.


"....아닌가? 그럼 체육대회  선배를 봤나 봐요"


"...그것도 아닐 텐데?"

수업은커녕 시험도 안 나와 방금까지 교수님에게 소리 듣고  내가 체육대회에 참석했다?
그럴 수가 있나?

"........"

"너... 아니지?"

"뭐가요?"

동글동글한 얼굴을 살짝 기울이며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혼자서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외모의 히로인은 만든 기억이 없다.

모습을 바꾼 히로인.....

"선배 이름이 주인공 아니에요?"


"어, 그런데?"


"강의 시작할 때 부르는 출석 때 이름이 엄청 특이해서 기억에 남았나 봐요"

....오늘부터라도 개명해야겠다.
동 사무서 같은 곳에 가면 개명할 수 있으려나.

강의실에 들어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개명에 대해서 검색해보니 3개월까지도 걸린다는 말을 보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일찍 바꾼다 쳐도 이미 출력된 학교 출석부부터 중, 고등학교 종이 기록들과 인터넷까지 등록된 이름들이 전부 주인공이라 쓰여 있을 것이기에  주인공이라는 이름을 세상에서 없애는데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 곧바로 포기했다.

대체  내 이름이 주인공이냐고....
왜 원래 이름이 뭔지 기억  하냐고...

"선배"

따라 들어온 것일까.
히로인으로 99퍼센트까지 의심이 가는 여자아이가 내 옆자리에 앉아 말을 걸었다.

"왜?"

"강의 끝나고 점심에  사주세요"


히로인이 99.99퍼센트 의심 가는 여자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어줄 수 없어 무시했다.
0.01퍼센트의 확률로 나를 보자마자 관심이 생겼을 가능성이....있....


"선배니임~"

을리가 없다. 죽어도 없다.
이 여자 100퍼센트 히로인이다.


대체 어떻게  것일까?
나라고 확신하고 이러는 것일까?
아니면 떠보기?

그건 둘째치고 대체 누구지?


그녀가 어떤 히로인인지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자꾸만 그녀가 팔을 콕콕 찔러 방해를 했다.


"....왜"

"무슨 생각을 하세요?"

관심 없으니까 저리 꺼지라고 말할까?
자꾸만 히로인인걸 티를 내는 것을 보니 좀 멍청한 것 같으니까 이용해볼까?


"이름이 뭐야?"

"이지현이요"

사실대로 말해줄 리가 없다.
이 여자는 정말 한참을 잘못 생각했다.
대체 대한민국 어느 여자가  같은 놈한테 먼저 말을 걸겠으며, 무시를 하고 있음에도 계속해서 관심을 표하겠는가....

벌칙 게임이라면...모를까....
아, 그러고 보니 학창 시절 나한테 말 거는 게 여자애들 벌칙이었을 때가 있었지.


[야야, 네가 졌으니까 쟤한테 말 걸어]

[진짜? 진짜 해야 해? 현지야... 한 번만 봐주면 안 돼? 나  진짜 진짜 싫은데....]


일반인일 가능성이 있을지도...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울고 싶어졌다.

"선배? 왜 갑자기 코가 빨개지셨어요? 혹시 추우세요?"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코가 찡한 느낌에 강의 시간 내내 손으로 코를 막고 있었다.
다음 강의를 듣는 것보다 얌전히 현우나 꼬셔서 피시방을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강의실을 나왔다.

"선배! 서어어언배!"


"왜, 또?"


"밥 사주시기로 했잖아요"


"내가 언제?"


어이가 없네?

"아까요"

"그런 적 없어"

이 정도로 들러붙는 정도면 제발 히로인이 아니길 바라는 심정이다.


"서어어언~배~~님!"


내가 너무 거절하자 이제는 내 팔을 잡고서 늘어진다.


"놔라"

"싫어요! 밥 먹으러 가요!"


"아니, 대체 왜 이렇게까지 나랑 밥 먹으려고 하는데? 이유라도  묻자"

"밥 먹는데 이유가 왜 필요해요! 가요!"


내 팔을 붙잡고 드러눕다시피 버티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히로인이라는 것을 뻔히 알지만, 사람들의 이목이 너무 집중되어버렸다.


"알았어. 가자 가"


"아자"

바보 같다는 생각이  정도로 히로인 티가 나게 거짓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한 번쯤 걸린 척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나는 그녀에게 무엇을 먹을지 물어보며 건물 밖으로 나왔다.
아니, 나오려고 했다.


"선배...?"

문 앞에서 서 있는 여자를 발견하고서 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어제 봤던 여자. 푸른색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트린 채 걸어오는 라일라의 모습.


어제 처음 봤을 때와 똑같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맺히고 머릿속에서 경고등이 울린다.

"쥐새끼가 여기 있었네"

그녀가 그저 한마디 내뱉었을 뿐임에도 기온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에 나는 파르르 떨리는 입꼬리를 애써 올리며 그녀를 마주 봤다.

"어제 봤는데, 또 보네요"

"...아, 너도 있었구나?"


나를 찾으러 온 게 아니라는 생각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쥐새끼를 찾으러 왔다고 말을 하며 나를 바라봤기에.....

"뭐 하는 거야? 비켜"

"....죽이려는거에요?"

그녀가 말한 쥐새끼라는 게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게 되자 나는 그녀의 앞으로 걸어가 라일라를 막았다.
....내 의지대로 한 행동이었다.


"여기서는 사람을 죽이면  돼요"

내가 다니던 학교다.

"비키라고 말했어."

친구가 없다고 하더라도... 수업을 들으러 나오지 않았더라도 이곳은 내 일상이었다.
내가 아는 사람이 있는 곳이며 조금이나마 친한 사람도 있다.

이름만 아는 사람도 있으며, 싫어하지만 나에게 아는 척하는 사람도 있었다.


"....여기가 아닌 장소에서...따로 이야기하는 게 어떨까요?"

"........"


그녀가 나를 마주 본다.

[아니다. 쉽게 말하지 마. 어차피 들을 이야기도 많으니까. 네가 오래 버텨줬으면 좋겠어. 진심으로]


마치... 그때처럼....차가운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으면 죽였을 거야"

"......고마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등을 돌려 건물 밖으로 나갔고 곧이어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심장을 부여잡은 채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들려오는 귀를 때리는 비명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꺄악!!!!!!!!!!!!"

라일라를 보기 위해 사방에서 몰려온 학생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게 눈에 들어온다.


따뜻하다.
등이 무척이나... 따뜻하다.


고개를 돌려 바로 전에 지현이라는 이름의 여자 후배가 있던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나는 심장을 부여잡고 있던 손을 더욱더 강하게 쥐었다.

"우에엑...."


상반신과 하반신이 따로 분리되어있는 시체
그리고 내 발밑에는 그녀의  안에 있던 내용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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