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2화 〉LEVEL 2 (5) (22/87)



〈 22화 〉LEVEL 2 (5)

그녀 앞에 나섰던 것은 멍청한 행동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말도  되는 고통을 겪게 만든 그녀의 앞에 서서 하지 말아달라 부탁했다.


보기 싫었으니까.
그외에 다른 이유는 없었다.


 번이나 죽어보고 죽는 것을 봐왔지만, 사람이 죽는 것을 보는 건 아직도 구역질이 난다.
사람의 내장이나 징그러운 무엇인가를 보는 것이 두렵다기보다는 그저 누군가가 내 앞에서 죽는다는  사실 자체가 내게 엿 같은 기분을 선사한다.


엘리제가 죽었을 때에도
벨라가 자살했을 때에도
또다시 벨라가 자신의 목을 찔렀을 때에도


누군가 내 앞에서 죽는다는 사실은 죽어간다는 현실은...형용할수 없는 무엇인가를 마주하는 느낌이 들게 한다.

그 순간의 나는 상상 속의 주인공되려 했을지도 모르겠다.


당장은 악당보다는 약할지도 모르겠지만, 절대 흔들리지 않고 언젠가는 이기겠다고 수도 없이 다짐하는 히어로.
자기가 세운 뜻을 끝까지 관철하며, 사람을 사랑하는 주인공.


타인을 대하는 게 서툴러 배척받았다.
다른 이와 친해지려 노력한 적도 없음에도 어차피 안될 거라 생각하며 나 홀로 벽을 쌓았다.


그 벽이 10년이나 쌓아 올려진 탓에 이제는 그것을 허무는 것조차 두려워져 버렸다.

나라고 왜 소외자가 되고 싶을까.
내가 싸이코도 아니고, 왜 사람을 싫어하겠는가.

시도 때도 없이 놀자고 전화해대는 게 귀찮아 무시했다.
그런데도 나는 왜 힘들 때 토로할 친구가 없는지 고민했다.

내가 별로 관심이 없는 주제의 이야기를 꺼내는 게 싫어 무시했다.
그런데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주제를 이야기할 친구가 없다는 게 불만이었다.


먹고 싶은 것이 달랐다. 놀고 싶은 것이 달랐다. 하고 싶은 것이 달랐다. 보고 싶은 것이 달랐다.
내가 친구가 만들지 않는 이유는 수백 수천까지였지만....

그런데도 나는 내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조금만 양보했으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타인과 어울리는 것을..... 나 자신이 바뀌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나는 판타지 소설에 빠졌다.
남들에게 그것은 짧든 길든 그저 쉬어가는 도피처였지만, 나에게는 전혀 아니게 다가왔다.


나만의 에덴동산.
내가 바라는 이상향.
그리고 내가 가장 되길 바라는 이상적인 주인공.


다소 억지스러운 전개나 설정이 있기는 했지만, 내가 그리고 싶은 주인공은 그런 남자였다.


여자 하나에 수도 없이 무너지는 그딴 새끼가 아닌 진짜 주인공


그의 기억을 보고 난  깨달은 것이다.

기억 속의  새끼는 몇 번이나 죽었을까?
수백 번? 수천 번? 수만 번?


그렇게 발악한 주제에 그는 결국 자신이 쓴 소설의 완결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들이 이곳에 온 것만 보더라도 알수있으며 내가 아무것도 기억을  했다는 것은 완결까지 도달하지 못했다는것을 증명한다.

나는....도망쳤다.

도망간 것이 분명하다.


보지 않아도 안다.

그렇기에 나는 절대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아니....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 내가 했던 행동을 후회한다.

***

"...이봐 학생! 정신 차려!"

상념을 일깨우는 시끄러운 아저씨의 목소리에 나는 그제야 내가 있는 곳이 생소한 장소임을 깨달았다.
여긴 대체...
라일라가 그녀를 죽인 이후로 정신이 가출이라도  것인지 기억이 드문드문하다.

"학생이 충격적인 장면을 보고 지금 정신적으로 힘들다는 건 알고 있는데. 학생이 협조를 해줘야. 범인을 찾고, 그 이지현 학생을 죽인 범인도 찾을 거 아니야"


고개를 둘러 주변을 살펴보자 범죄 드라마 속에서나 볼법한 밀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살면서  한 번도 여기  만한 나쁜 짓을 저지른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와보게 되네...

"이제 정신이 들....지금까지 누구랑 대화를 하고 있었던 건지..허 참..."


눈앞에 형사로 보이는 남자가 나를 향해 입을 열고 있었다.


"지금 저 취조 받는 건가요?"

"취조는 얼어 죽을.... 니가 죽였어? 참고인 조사야"


드라마에서 봤던 것처럼  욕하고 때리는 것일까?


"이제 정신을 차린 것 같으니 다시 물어보자. 그래서 그 여자 대체 누구지?"

"네?"

"거 있잖아. 파란 머리 여자"

라일라를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걸  저한테 물어보시는 거예요?"

"너랑 대화했다고 증언하는 학생들이 여럿 있어. 마치, 아는 사이처럼 대화했다고 하더라고"

어떻게 알았지? 라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라일라를 보겠다고 몰려든 사람이 그렇게나 많으니 아는 게 당연했다.
아까 토악질을 많이 해서일까?
솔직히, 지금도 정신이 몽롱하다.


"아는 사이는 아니에요"


"아는 사이는 아니다? 그럼 무슨 사이인데?"

"모르는 사이죠"

그와  사이에 있던 테이블에서 '쾅' 소리가 들리며 그가 일어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학생. 얼버무리려고 하지 말고 아는 사실 전부 말하게"

"정말, 모르는 사이에요"

"모르는 사이인데,  여기서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고 말했다고?"

"....."

"다른 장소에서 따로 이야기하자고도 말했다고 하던데.  여자는 네가 아니었더라면 죽였을 거라고 말했고. 이게 모르는 사람 사이에서 나오는 대화인가? 지금 내가 학생과 장난치는 거로 보이나?"

누군가 카메라로 찍고 있었던 것일까?
대화 내용까지 전부 알고 있을 줄 몰랐다.

"아저씨"

"그래, 말해봐"

"변호사를 선임하고 싶은데. 전화  할게요"

"....인공학생"


"묵비권을 행사하겠습니다"

드라마에서 보던 말인데, 내가 이것을 실제로 입에 담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런데, 내가 체포  것도 아닌데 굳이 이런 말을 할 필요도 없이 입만 다물고 있어도 되는 거 아닌가?

경찰서에 끌려와 봤어야 알지....
이래서 사람은 경험이 중요한가 보다.

나는 주머니에 있는 휴대폰을 꺼내서 누구에게 전화할지 고민했다.

[저를 사용하시면 돼요. 저는 얼마든 주인님을 위해 일할게요]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자가 있기는 하지만, 애써 머리에서 지우고 그나마 이럴 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
오랜만에 아버지한테 전화할까....
안부 물어볼 겸 전화해서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주실 것 같은데...

아들이 아버지에게 5년 만에 전화해서 한다는 소리가 현재 취조 비스름한걸 하고 있는데 이거 풀어줄 수 있어요? 라고 말하기에는  아니다 싶었다.


주소록을 켜서 누구에게 전화할지 고르고 있을 때 앞쪽에서 털썩 소리와 함께 형사님이 주저앉는  눈에 들어왔다.

"...인공학생"


"......"


"자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부 알고 있지?"

"....."

"부산이 흡혈귀인가 뭔가에 점령당했는데, 돌려받기는커녕 동원된 군대가 괴멸당했어. 무려 6만의 장정들이 시체가 되거나 같은 흡혈귀가 됐지. 거기다 경상도 곳곳에서 좀비 때가 출몰하지 않나 전라도 충청도를 포함해 다른 지역들도 마찬가지로.....쯧, 이게 불과 3개월도 안 돼서 일어난 일이고, 국가는 국토가 빼앗겼고 앞으로 더 빼앗길 게 예상되는  상황에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헛다리만 짚고 있어. 그런데 오늘 새로운 여자...그 괴물과 비슷한 게 서울에 나타났어. 이걸 어떻게 봐야 할까?"


그가 말해주지 않아도 온갖 매스컴에서 매일같이 떠들고 있었기에 아주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이해하게나"

"뭐요?"

"전부 들어와"

그의 말이 끝나자 그의  뒤에 있던 문이 열리며 검은색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등장했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갑작스럽게 들어온 남자들은 곧장  앞으로 와서는 내가 들고 있던 휴대폰을 빼앗았다.


"뭐 하는 거냐고!"

고개를 돌려 바로 전에까지 나와 대화를 하던 형사를 쳐다보았다.
아니, 형사라고 생각했던 남자를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겠네. 학교에 왔던 여자는 대체 누구인가? 아니지, 대체  괴물들은 전부 뭐고?"


말하는 건 상관없다.
그런데 내가 입을 연다고 해서 이들이 무엇을  수 있을까?
알려주면 오히려 나만 귀찮아질 것이다.
나처럼 아무것도 못 하는 주제에 자신들보다 약자라 여기는 나를 데리고 이거 해라 저거 알려달라 귀찮게 굴 게 뻔했다.


안 봐도 뻔하다.

"묵비권을 행사하겠습니다"


"...학생. 나는 분명 기회를 줬어."


그가 나를 노려보았지만, 나는 나름 그를 이해한다.
정확히는 그가 느끼는 무력감을 이해한다.

아마 형사는 아닐 거고, 국정원이나 그런 곳에서 나온 사람이겠지.
얼마 전이었다면 국정원 소속이라는 것만 그가 밝혀도 넙죽 엎드리고 있는 사실 없는 사실을 가져다 바쳤을 것이다.


문제는.... 눈앞에 있는 이 남자보다 내가 잘못 입을 놀려 내가 주인공일지 모른다는 사실이 퍼지게 된다면.....
사방에 퍼져있던 히로인들이  찾아올 것이다.

씨발, 상상만으로 눈앞이 캄캄하다.


나는 당장이라도 나를 제압해 고문이라도 할법한 남자를 눈앞에 두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을 전부 제압하고 이곳을 유유히 떠나는 게 제일 멋있어 보이겠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싸움을 전혀 해본 적이 없다.

"도와줘. 엘리제"

그래서, 필살기를 썼다.

"지금 무슨 말을...."


"네, 주인님"

등 뒤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계속 이 상황을 지켜봤다는 것이 떠올라 그녀가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 있었으면  하기 전에  도와줄 것이지...
 입에서 도와달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단정한 메이드 복을 입은 채 나를 보고 있는 그녀는 기분 좋은 일이 있는 것인지 미소가 활짝 펴져 있었다.

"지금..."


지금까지 구경 잘했어? 라는 말을 하려던 중 나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쇳소리에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권총을 들고서 나와 엘리제를 겨누고 있는 남자들.

"허공에서 사람이 나타났다는건 이 여자도  괴물들이랑 연관되어 있다고 보면 되는 거지?"

"총은  무섭네요. 아저씨"

"주인공. 대한민국 영등포 출생. 가족관계로는 부모가 이혼해 아버지는 서울. 어머니와 여동생은 지방으로 가서 따로 살고 있으며, 본인 또한 어머니와 같이 살다가 대학을 이유로 학교 근처 원룸에서 다시 살기 시작"


"참 일 잘하네요. 저 여기온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신상을 전부 까발리시네"

"일을 빠르게 하면  하는가. 정작 네가 입을 안 열면 말짱도루묵인데"

그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품에 있는 총을 꺼내어 내 머리를 향해 겨누었다.


"좀 부탁함세. 얌전히 말할 때 사실대로 전부 알려주게나"

총을 들이밀고 얌전히 말하고 있다는  흉포하게 말하는 건 뭐 전차라도 들이밀고 온다는 것일까?


말로는 총이 무섭다고 말했고, 실제로도 무섭기는 했지만, 문 밖에 서 있는 흰 티와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금발의 여자가 보이자 총이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저씨. 그냥 얌전히 있으세요"


"멈춰. 그 이상 움직이면 쏜다."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발걸음을 옮겨 방을 나섰다.

"벨라, 죽이면 안 돼"


"알겠습니다"


'탕'
방을 나오는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총성에 나는 순간 흠칫해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방안에는 벨라를 제외한 모두가 쓰러져있었다.

"주인님. 어서 가요"


"이렇게 가도 돼?"

그가 국정원에서 나왔는지는 몰라도, 국가기관에서 나온 사람들은 분명했다.

이걸 이렇게 놔두고 가도 되려나?


그녀가  어깨를 잡고서 억지로 밀었다.


"어서 가요"


"왜 이렇게 급해?"

"음...아무 이유 없이 혼나기 싫어서? 그러니까 어서 가요"


엘리제나 라일라나 제발 내가 이해할 수 있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벨라는  쉽게 쉽게 말 잘하는데, 이 두 여자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게 일부러 꼬아서 말하는 것 같다.

그녀에게 억지로 밀려 경찰서 밖으로 나오자 눈에 들어오는 모습에 눈쌀을 찌푸렸다.

"타세요. 주인님"


검은색 차로 걸어가 문을 열며 나에게 손짓하는 메이드 복을 입은 여자.

신분증도 없는 여자가 대체 이런 차를 어디서 구한 것일까?
돈은 대체 어디서 났는데?

멍청한 표정으로 차에 타자 그녀가 내 옆자리에 앉았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벨라가 운전석에 앉아있는  눈에 들어왔다.


"이게 뭐야?"

"차요. 주인님 편하려고 구한 거에요"


워낙 차알못이다보니  차의 이름은 모르지만, 무척이나 비싼 차라는 것은 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출발했음에도 출발한 지도 몰랐다.

"제일 좋은 거로 구하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아세요? 아무한테나  판다고 해서 이곳저곳 착한 분에게 얼마나 도움을 구했는지"

"착한 분?"


"....아, 나쁜 분이요. 말실수했네요"

아무리 생각해도 내 눈앞에 있는 여자가 제일 나쁜년인것같은데....


"왜, 그렇게  보세요?"


"아니, 잘했다고"

"그러면 집에 돌아갔을 때 상을....."

그녀는 그 말을 하더니 이내 표정을 찌푸렸다.


"...주시기 힘드시겠네요"


그녀의 말에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해 그녀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고, 곧이어 나는 차 앞을 막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군.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벨라가 급정거를 하고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고, 나 또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문을 열었지만, 이내 엘리제가 내 손을 붙잡았다.


"뭐야?"

"......아뇨. 아무 의미 없어요"

내가 밖을 나오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이상한 복장의 여자였다.
공공장소임에도 불구하고 낡은 헝겊과도 같은 것을 이용해 가슴과 중요 부위만을 가리고 있는 여자.
 여자는 손을 들어 올려 나를 검지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부군이다아~"

"........"


어떻게 다들 내가 있는 곳을 이렇게 잘 아는 것일까?


"부구우운~~~찾!!았!!다!!"


그녀는 순간이동을 하듯 시야에서 사라진 뒤 내 눈앞에서 나타나 소리를 질렀다.


이제야 나는 떠올릴 수 있었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우리 자기 더 맛있어 보인다]


라일라가 말했던 바퀴벌레가 무엇이었는지 이제야  수 있었다.


"뱀파이어...."

내가 나지막이 말을 내뱉었을 때  앞에  있던 정신이 이상한 여자가 무엇인가에 맞아 한쪽으로 빠르게 날아가 건물 벽에 처박혔다.
아니, 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뚫고 지나갔고 커다란 굉음을 내며 건물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내 앞으로 다가온 벨라가 손짓을 하자 내 쪽으로 빠르게 다가오던 흙먼지들이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졌다.


확실히 인외의 존재들이다.
이런 여자들이랑 싸운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야, 역시 왕국 제일의 검. 실력이 하나도  녹슬었어"

손뼉 치는 소리와 함께 나타나는 새로운 목소리.

"주군. 제가 막고 있는 동안 도망치십시오"


내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나보고 대체 어디로 도망치라는 말인 걸까?
나는 어디로 도망쳐야  수 있는데?


벨라는 이런 내 생각을 모르는 것인지 새로 등장하는 여자에게 칼을 겨눈 채 나에게 뒷모습만을 보여줄 뿐이었다.

"부군은 보내도 돼. 나도 너랑 일대일로 붙어보고 싶었거든. 인간 중에 제일 강하다고 하는 여자의 실력인지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거든"

"어서 가주십시오. 주군"

그녀의 말에 나는 몸을 돌려 발걸음을 땠지만, 이내 몇걸음 걷지도 못하고 도망가는 것을 포기했다.

이들은 대체 내가 주인공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아낸 것일까?


"부군 약해!"

"약해!"

쌍둥이 여자아이 둘이 내 옆에 다가와서  양손을 붙잡는 것을 느끼며 나는 도망가는 것을 완전히 포기했다.
고개를 돌려 두 여자와 싸우고 있는 벨라를 바라보았다.


이지를 상실한  파괴만을 반복하는 이아.
싸우는 것을 극도로 좋아하는 사라.

고개를 돌려 바로 전에까지 타고 있던 차를 바라보자 그곳에는 엘리제가 쓰러져 바닥에 붉은 핏물을 퍼트리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말을 잘하지 못하는 소심한 흡혈귀 프리시아.
그녀의 검에 묻어있는 피를 이제야 눈치챈다.


그리고 나를 붙잡고 있는 쌍둥이 자매 엘리와 엘린까지.
소설  샤를의 종복들이 모두 이곳에 있다는 것을 깨달자 나는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눈을 감았다.


전부 내가 만든 캐릭터.

샤를의 종복들이자 소설 극 후반에서 등장하는 악역 캐릭터.
인간이 아닌 뱀파이어들이며.. 내가 짠 설정이 맞았다면 그 한명 한명이  국가의 군사력과 비견될 무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대체 왜 이 여자들이 이곳에 있는 것일까?
히로인도 아닐 텐데...

그저 샤를의 종복일 뿐이며 등장한 화수조차도 얼마  되는 이 여자들이 왜....

"씨발, 이아 너도 붙어. 이년 좀 치네"

"부군. 이제 가자"


"여왕님한테 가자!"

수많은 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죽을까?

이 상황에 죽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목숨 하나 아까워 어디론가 도망쳐 숨어있겠다고 했는데...
지금은 자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참 웃기지만...
샤를에게 붙잡히게 되면 내가 어떻게 될지 알고 있기에

나는 죽어서라도 도망쳐야 한다.

그 여자는 진심으로 위험하다.
그녀에 대해서 세상 그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안다.
나는 샤를만큼은 절대로 만나서는 안 된다.

"....애써 떼어내 줬는데 또 달라붙은거.....에요?"

수많은 소리 중 유독 크게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분명, 이곳에 있을 리 없고, 있어서는 안 되는 여자의 목소리.

"언니가 왜 여기 있는 거야?"


"언니 나빠. 나  아파"


양손을 잡고 있던 쌍둥이 여자아이의 손의 감촉이 사라졌고, 아무것도 하지 못해 그저 현실만 부정하던 눈이 천천히 떠졌다.


"라일라"

내 주변에는 시리디 시린 얼음들이 솟아올라있었지만......의외로 차갑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역시 제가 옆에 없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시죠?"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절 용서해주세요. 선생님]

마치 그날을 재연하는 듯한 슬픈 눈을 한채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선생님"


[사랑해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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