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LEVEL 2 (6)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는 게 내 유일한 장점이었다.
부모도 형제도 집도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던 시절
나는 쓰레기를 뒤져 헝겊으로 몸을 덮고, 아무 장소에서나 잠을 잤다.
언제부터인지 잘 모르겠다.
무척이나 어렸을 때부터 나는 그렇게 살아남았다.
그렇게 어린 나이의 여자아이가 몇 날 며칠을...아니, 몇 달을 먹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길바닥에서 잠을 청했음에도 살아남았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한 일이었다.
그래도 나이가 어린 걸 이용하기 시작했을 때부터는 무척이나 편했다.
배가 고프거나 비가 올 때마다 고민했다.
어떻게 꾸며야 동정을 받을 수 있을까
어떤 사람에게 가야 동정을 받을 수 있을까
일부러 진흙탕에 드러누운 적도 있었으며, 얼굴에 상처를 낸 적도 있었다.
거짓말도 한 적이 있다.
부모의 얼굴도 모르는 주제에 버림받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거짓말이 아니었지만, 그때의 나는 거짓말이라 생각했다.
.....버림받았다는 것조차도 몰랐으니까.
곧...돌아올거라 믿었으니까.
나도 남들처럼 부모가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 이후로 나는 어떻게 해야 더 불쌍하다 여겨지는지.
어떻게 해야 그들의 식사를 조금이라도 더 가져올 수 있는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행복한 나날이 이어졌다.
비꼬는 것이 아닌 그때의 나는 진심으로 행복하다 생각다.
그들에게는 그저 작은 동정심이었을 뿐이었지만 나에게 있어 그들이 주는 한 줌의 식량은 신이 주신 식량 같이 느껴졌으며, 아주 잠깐이지만 잠시 비를 피할 수 있는 잠자리에서 몸을 누울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진심으로 나는 그것으로 만족했고 행복하다 느꼈다.
하지만, 그 조그맣지만 커다란 행복은 마을을 찾아온 마법사의 한마디에 끝이 났다.
[너 재능이 있구나. 따라오거라]
재능이 있다고 따라오라고 말하는 그의 말을 나는 단칼에 거절했다.
싫다고 말했다.
이제부터 따뜻한 식사를 먹을 수 있다고 말하는 그의 입에서 나오는 썩은 냄새가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웠으며, 따뜻한 집에서 잘 수 있다는 말에 귀가 썩어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거짓말
그 마법사는 지금까지 봐왔던 어떤 어른보다 역겨운 남자였다.
제대로 먹지 못해 뼈밖에 없던 내 몸을 음흉하게 바라보던 어른보다 더 역겨운 남자였다.
내 거절을 이미 예상했던 것일까?
그는 나를 강제로 데려가려 했고, 나는 살려달라 빌었다.
구해달라며 마을 사람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정신을 차린 건 이미 마법사의 공방에 들어오고 난 이후였고, 그렇게 나는 그의 실험체가 되었다.
마법사의 실험.
그때는 무슨 실험이었는지 몰랐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이 얼마나 허황한 실험이었는지 알 수 있다.
대륙에 나보다 뛰어난 마법사가 없는 지금에 와서도 절대 성공시킬 수 없는 실험을 그는 하고 있었다.
나는 몇 년 동안을 그저 살려 달라 부르짖었다.
욕을 하는 법을 몰라 그를 저주할 줄도 몰랐기에 그저 살려달라고 빌기만을 반복했다.
배운 거라고는...남들의 동정을 구걸하는 것밖에 없었기에
그저 나는 매일 같이 눈을 뜨면 살려달라 빌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잃었다.
시끄럽다고 말하며 입을 찢었다.
발버둥을 친다는 이유로 팔과 다리를 잘라내었다.
수도 없이 살려달라 빌었던 것 때문일까?
아니...그는 나라는 존재가 살려둘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에 절대 죽이는 일은 없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그에게 죽여달라 부탁했다.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음에도 수도 없이 죽여달라 부탁했다.
목소리를 낼 때마다 피를 토하는 고통보다 실험이 계속될수록 늘 새로워지는 고통이 또다시 시작될 것을 알기에 수도 없이 그에게 죽여달라 부탁했다.
어째서 나는 죽지 못하는 것일까?
이 정도 했으면 죽을만했는데...
왜 나는 또다시 눈을 뜨고 있는 것일까?
왜 나는 살아있는 것일까?
왜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일까?
그저 타인의 눈치만을 보며 감사한다고 입에 붙이고 살던 과거의 내가 처음으로 저주한 사람은 고통을 주는 마법사도 버린 부모도 외면한 마을 주민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며 그저 남에게 빌붙는 것만을 하는 나 자신이 너무나도 증오스러웠다.
그가 내 앞에 나타난 것은...그때즈음 일 것이다.
[최대한 빨리 왔다고 생각했는데.....그래도 늦었나보네......]
나는 아직도 그날의 선생님의 눈을 잊을 수 없다.
나를 구해줬을 때의 선생님의 눈에는 늘 갈구하며 원하던 동정심이 아닌 다른 것이 들어가 있었다.
죄악감.
수도 없이 미안하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던 그의 눈에 비친 것은 그저 자책만이 가득했다.
나처럼 그는 자신을 저주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약한 자신을 저주하며 이렇게 된 게 자신의 탓인 양 그는 자신을 저주했다.
마치 그에게 구원받기 전의 나처럼.
지금도 나는 그날 선생님이 어째서 나에게 사죄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그의 호의가 달갑지 않았다.
그때의 나에게 동정심도...욕망도... 그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는 그저 죄책감만이 가득한 이해할 수 없는 선생님의 호의를 선뜻 받아들이는 건 불가능했다.
그나마 그에게 부탁했던 것이 나를 죽여달라 부탁했지만, 그는 단칼에 거절했다.
처음에는 분명 죽고 싶었다.
살아있다는 것이 너무 두려웠고, 사는 것이 죄악이라 여겼다.
그런 나를... 선생님은 억지로 살게 하셨다.
그는 잘려 나간 내 팔다리를 고쳐주었고...지금의 나도 실현하기 불가능한 내 육신도 선생님은 단박에 고쳐주었다.
내가 어떤 실험을 당하고 있었던 것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그리고 마치,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고 있다는 듯이 그는 내가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음에도 어떻게 안 것인지 내가 수도 없이 바라던 것을 물어보았고, 또 이루어주었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새 옷을 입었다.
처음으로 타인과 같은 식사를 하게 되었다.
나만 홀로 자는 방이 생겼다.
나를 보며 아침마다 인사해주는 사람이 생겼다.
슬플 때 안아줄 사람이 생겼다.
나 대신 화를 내주는 사람이 생겼다.
.....욕심이 생겼다.
적당히 해야 했었지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행복에 나는 빠져버렸다.
그가 내 말에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나는 그의 호의를 이용했다.
몇 번이고...몇번이고....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그는 진지하게 받아들여 주었으니까....
늘 부러워하던 그들처럼....
나는 선생님을
그 마을에 있던 아이들처럼 부모에게 떼를 쓰던 그 아이들처럼 나는....
나와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 남자에게...나는 늘 부러워하던 그 아이들이 부모에게 하던 것처럼 몇 번이고 떼를 썼다.
이거 해줘요.
저거 해줘요.
해줘요.
해줘요.
해줘요.
선생님은 내 입에서 부탁이 나올 때마다 그게 어떤 것이든 내 말을 들어주었다.
그것이 그의 능력 밖의 것이라면 늘 나에게 미안하다 사죄했다.
들어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다른 건 안 되겠냐며...
그는 나에게 친오빠였고 엄마였으며 아빠였다.
기억조차도 없는 가족.
늘 가지고 싶었던. 늘 부러워하기만 했던 가족.
.....그런 내가 선생님을 선생님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은 그 욕심이 더욱더 커졌을 때부터였다.
사랑받고 싶다.
이유 모를 죄책감이 아닌.
이해할 수 없는 죄악감이 아닌.
그의 사랑을 받고 싶다.
그것을 깨달을 때부터 나는 그를 선생님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의 사랑을 받고 싶어 짐 덩어리가 될 것을 알고 있음에도 억지를 부렸다.
선생님은 나를 버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떼를 써도 그는 나를 사랑해주지 않았고, 그제야 그의 옆에 있는 여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저 이런 짐 덩어리로는 절대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의 영문 모를 죄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죽도록 싫었던 마법에 손을 대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가 언제쯤 나에게 죄책감으로 바라보지 않을까 매일같이 확인했다.
선생님을 위해서라면 뭐든 했다.
선생님에게 사랑받을 수만 있다면... 조금이나마 다른 눈으로 나를 바라볼 수만 있다면...
그가 내뱉는 말에 더는 죄책감이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그를 위해 전부 죽였다.
...소유욕 같은 건....과한 욕심이라 여겼다.
선생님이 누구를 사랑하든 상관없다.
그저 아주 조금이면 됐다.
아주 조금 아주 아주 조금만 다른 눈으로 나를 바라봐주길 바랐다.
하지만 늘 알아버린다.
그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아무리 달라지더라도 느껴버리고 만다.
늘 대화를 할 때마다 나는 선생님에게 그저 실수와도 같은 존재임을 깨달아버린다.
절대 나는 그의 옆자리에 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뒤부터 나는 그 여자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전부터였을 것이다.
엘리제
아무짝에도 쓸모도 없는 여자임에도 늘 선생님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 여자가 미치도록 부러웠었다.
그 여자의 말투를 따라 하고, 그 여자가 할 수 있는 건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선생님에게 보여주기 위해 뭐든 따라 하려 했다.
하지만 뭘 어떻게 하더라도.....알아버린다.
나는 나를 몇 번이고 살려준 이 능력이 죽도록 미워지기 시작했다.
타인의 기분을 알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게 해주었던 이 능력이 없었더라면... 차라리 없었더라면... 아무것도 몰랐을 텐데...
이 능력이 없었더라면... 그날 그곳에서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에도....알아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저도 그쪽이 누구신지 물어봤는데요?]
[가실 땐 가더라도 화장실 문은 변상해주셔야죠]
그를 의심했다.
무엇인가 알고 있다 생각해 그의 주변을 감시했다.
선생님일 거라고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 여자들과는 달리... 늦게 만났으니까....
선생님이 이런 어쭙잖은 남자일 거라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선생님이 나를 이런 식으로 바라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잘..... 모르겠네요]
나에 대해 알려주는 순간 그가 보여준 것은 두려움이었다.
나를 무서워한다.
나에 대해서 알고 있다.
이것만으로 나는 그를 조사했지만, 이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만두었다.
집 밖으로 나가지 않으며 늘 모니터만 쳐다보며 떨던 한심한 남자라 여기며...나는....
그래서...나는 그와 그 여자가 만났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토록 바라던 기회가 생겼음에도 나는....
그가....나를 다른 게 바라봐줄 기회가 생겼음에도 나는 그것을 걷어차다 못해...
"아... 너였어?"
몰랐다.몰랐다.몰랐다.몰랐다.몰랐다.몰랐다.몰랐다.몰랐다.
나는...그가 선생님일거고 전혀 모르고 있었다.
왜...왜..왜....말해주지 않았던 거에요? 선생님....
"저기..."
"그럼 됐고, 너 나랑 헤어지고 난 후 선생님...아니지. 주인공이라는 남자 본 적 없어? 들어본 적이라도"
"......없어요"
"그래?"
그저 그가 나와 있기 싫어한다고만 생각했다.
그가 나를 보며 느끼고 있는 소름 끼칠 정도로 말도 안 되는 공포를.....그저 아무 생각없이 무시했다.
그를 붙잡아놓은 것은 그저 내가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해져서... 조금이나마...편해져서....그래서 잡아둔 것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정말.... 어디를 가야 선생님을 찾을 수 있을까?"
".....저는 잘 모르겠네요"
함께 있으면.....그 동안 선생님을 찾는 동안 힘들었던 게 전부 사라져서...
그래서...그래서 그를 붙잡고 있었던 것이었다.
"여기... 저 힘들 때 자주 오는 곳이거든요. 그쪽도 짜증 나는 일이 생기면 와보세요."
그가 나를 바라보며 마지막 말했을 때 나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한 채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마냥 바라보고만 있었다.
왜...나는 그제야 그가 선생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왜 조금 더 일찍 알아채지 못했던 것일까?
그가 선생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의 뒤를 따랐고 금세 나는 선생님과 선생님이 사랑했던 여자가 같은 곳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을 그토록 괴롭게 만들었던 여자.
결국 버려졌던 여자가 그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나는.....버려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빼앗고 싶다.
당장이라도 그곳에 들어가 그를 데리고 나오고 싶었다.
.....전부 죽여버리고 싶었다.
그런데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와 다시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기억을 잃어버린 그를 다시 마주한다는 것이...나를 그렇게나 무서워하는 선생님을 다시 한번 마주한다는 것이...두려웠다.
묻고 싶었다.
왜...왜 나를 그렇게 봤던 건지... 왜 나를.....
그런데 물어볼 용기도 생기지 않았다.
나와 만나자마자 역겨워하던 그의 눈동자를 다시 한번 마주할 용기가 도저히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나는 멀리서 그가 있는 곳을 지켜만 보았다.
선생님이 그 여자가 있다는 것에 분노하며... 사랑했던 여자도 함께 있다는 것이 슬퍼했다.
그런데도...나는...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 여자만큼은 안된다고...말해야하는데...
나도.. 그 여자의 아주 일부분만이라도 사랑해달라고 말하고 싶은데...
[여기서는 사람을 죽이면 안 돼요]
모른척 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선생님이 날 더는 만나주지 않으려 할 테니까.
그가 가지고 있는 원망은...그런것이었으니까.
이유라도 알았다면
왜 그렇게 나를 미워하는지... 두려워하는지 이유라도 알았다면....
그래도 계속 모른척한다면 우연인 것처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 믿으며 나는 선생님을 모르는 사람처럼 대했다.
멀리서만 봐도 좋았다.
이 이상의 욕심은 과욕이라 자신을 내몰았다.
그에게 조그마한 사랑이라도 받았더라면 나는 더욱더 큰 것을 요구했을 테고 그것을 받으면 또 큰 걸 요구하는... 욕심이 가득한 못된 년이니까.
원망받더라도 선생님을 계속해서 볼 수만 있다면...
이대로...쭉 이대로 있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를 이렇게라도 볼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버틸 수 있다며 세뇌하고 또 세뇌했다.
그렇게 수도 없이 자신을 납득시켰는데....
"....역시 제가 옆에 없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시죠?"
그런데 그가 아무리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며 두려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보다 선생님이 아파하는 모습을 도저히 볼 자신이 없었다.
"선생님"
그래서 선생님 앞에 섰다.
내가 모르는 죄를 지어 속죄하던 선생님이... 지금은 내가 죄를 지었다며 나를 증오하고 있다.
"도와달라고 부탁한 적 없어"
그래도 나는 참을 수 있다.
언젠간 용서받을 테니까.
언젠간 이유를 알려주실 테니까.
제가 멋대로 구해졌던 것처럼 저도 제 멋대로 선생님을 구해드릴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