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LEVEL 2 (8)
내가 그 아이를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내 한 몸 먹고 살기 바쁘던 시절. 나는 정말 우연히도 그 아이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정확하게는 그 아이를 대리고 있던 마법사의 소식이었다.
용병 일을 하며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던 중에 우연히 눈에 들어왔던 현상금 전단에 눈이 돌아 로제에게 달려갔다.
"네가 왕궁 마법사를 잡겠다고?"
"응"
"미친 새끼. 너 죽고 싶어서 안달이 났구나? 어쩐지 저번 토벌대에 꼽사리 끼었다가 살아 돌아온 게 용하다 싶더니, 이미 뒤져버린 유령새끼가 여기 앉아있었네"
"내가? 내가 왜 죽어?"
이 세계에 정착을 하고 싶지만, 막상 할 줄 아는 게 없어 용병 일을 자처했다.
그 무렵 나는 철이 없었고, 그게 판타지의 왕도라 생각했었다.
토벌대에 참가해 대가리가 몇 번 깨져보니 알았다.
이쪽 세계에서 용병 질을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세 번의 죽음을 겪고 겨우 깨달았다.
그래서,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무슨 소리야? 네 실력으로 왕궁 마법사는커녕 동네 약팔이도 못 이길 텐데 뭘 어떻게 하려고?"
"누가 내가 잡는다고 했어?"
개 같은 몬스터 때려잡는 것보다 밑천을 모아 그것을 기반으로 장사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수준의 밑천을 모으기 위해서는 대가리가 수십번을 깨져도 모자라다.
그래서
".....나?"
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키자 그녀는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무척 커다란 웃음소리를 내더니...
"뒤지고 싶냐?"
그녀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내가 원하던 대로 따라왔다.
그녀는 나에게 빚이 있었고, 그녀의 성격상 그 빚을 없앨 때까지는 내 부탁을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씨발, 이번이 두 번째라는 거 알아둬라"
그녀가 나에게 한 약속이었다.
바라는 것을 들어주겠다고 했던 약속에 그녀는 자신의 용병단을 내버려 두고 나를 따라 마법사가 발견되었다고 하는 마을로 왔다.
"그런데, 겨우 이딴일에 소원권을 사용하는 건 좀 아깝지 않냐? 저번에야 상황이 그랬으니 몰랐을테지만. 나 나름 날린다니까?"
"이딴 일이라니? 무려 300골드짜리 일인데? 300골드 무시함?"
"겨우 300골드야. 차라리 지금이라도 나한테 돈을 달라고 하는 게 어떠냐?"
사실 그것도 고민한 적이 있긴 하지만... 그녀의 성격상 돈을 달라고 했으면 원했던 것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할 수 있는 선에서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말했을 때 나는 용병단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그것은 그녀에게 무척 하찮은 부탁이었기에 그녀는 부탁을 더 들어주겠다고 말했고 이번에 그 두번째 소원.
돈을 달라고 말했으면 뭐 대충 섭섭하지 않을 정도는 받았겠지만...
누가 만들었는지 모를 이딴 거지 같은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내가 필요한 것은
이곳 생활에 적응할 장소와 시간.
그다음이 돈.
그리고 마지막으로 든든한 백이였다.
그녀가 데리고 다니는 용병단의 위세는 왕국 한정으로 어마어마한 수준이었기에 나는 두번째 소원을 끝으로 그녀의 이름을 팔아먹고 다닐 생각이었다.
마지막 소원만 빌지 않는다면,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쭉 나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빚을 진 그녀가 이름 몇번 팔아먹었다고 찾아오지는 않겠지.
"시끄러워요. 단장님"
"씹새끼. 나를 이딴식으로 대하고도 살아있는 새끼는 니가 처음이자 마지막일거다"
그녀와 같이 다니는 동안 내가 느낀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욕이 더 거칠다는 것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욕설이 나오다 보니, 가끔 내가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걸레랑 대화를 하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인기가 없는 이유가 있었다.
강인한 여성! 뒤틀린 성욕! 이라는 느낌으로 자신 있게 내놓았는데....
[작가님. 하렘 멤버인데 미소녀가 아니라고요? 하차하겠습니다]
-Que 123
[...? 내 대사 뺏겼누...]
-하차좌
너무 강인한 여성을 떠올리며 설정한 탓인지 외모부터 성격까지 남자가 따로 없었다.
"외모는 그래도...음....흉터만 빼면..."
"왜, 뭘 봐"
"키도 좀 줄이고.... 머리도 좀 단정하게...."
"눈깔 돌려라"
미소녀는 힘들어도 미녀까지는 될 것 같다.
그녀의 몸 이곳저곳을 뜯어보며 품평하던 그날 오랜만에 그녀에게 맞았다.
우리는 수색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금세 마법사의 공방을 찾을 수 있었다.
자신의 실력과 공방의 수비력을 믿고 있던 전 왕실 마법사는 여기저기 자신의 흔적을 뿌리고 다녔기에 역추적하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 무척이나 쉬운 일이었다.
[죽기 싫다면 여기서 나가라]
"흑마법사.... 너에게 죽은 아이들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 내 친히 이곳에 왔다! 어서 내 앞으로 와 목을 내어라!"
[죽어라]
"말이 통하지 않는군. 가라! 로제몬!"
"........두번째다"
....나름 나를 위한 버릇 같은 것이었다.
몬스터에게 죽고, 사람의 손에 죽고, 죽는 게 자꾸만 반복되고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 날 것 같을 때마다 나는 억지로 장난을 쳐 텐션을 올렸다.
기분이 다운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바닥으로 곤두박질 쳐 자살하고 싶어질 때가 있었기에 습관처럼 나도 재미없는 장난을 치며 유쾌한 척을 했다.
마법사의 공방에 제 발로 들어간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원래라면 밖에서 지켜만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떠올려버렸다.
왕실 마법사. 사라진 아이. 그가 훔쳐 간 보물.
내가 아는 히로인이 안에 있을것이라는게 떠올라서 내 발로 걸어갔던 것이다.
이날 공방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지금까지 장사나 하고있었을텐데.
"기분 좇같네"
"...그러네..."
그를 죽이고 그의 공방에서 본 것들은 전부 그녀의 말대로 좆 같은 것들뿐이었다.
공방 안에는 신체 부위들을 골고루 수집해 약물에 담가 놓은 통들이 즐비해 있었고, 인간의 시체인지 몬스터의 시체인지 모를 것들이 어지럽게 굴러다니고 있었다.
"아, 씨발..."
공방 제일 안쪽.
가장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곳에 도달하자 눈에 들어오는 그것에 그녀는 입에 욕지기를 뱉었다.
그리고는 어깨에 걸친 대검을 바로 잡고서 그것을 베려했다.
"하지마"
"뭐?"
"죽이지 말라고"
"....저걸 살리겠다고?"
"살아있잖아. 왜 멋대로 죽이려고 해"
죄책감.
그날이 시작이었을 것이다.
내가 글로만 서술했던 모습을 직접 눈으로 바라봤던 그 날부터 내 마음속에 아주 작은 죄책감이 싹터버렸다.
사지를 절단당한 채 입을 뻐끔거리는 여자아이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는 저 아이가 사지를 절단당한 채 이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죽이는게 바른 행동이었다.
"....라일라"
그녀의 이름을 내뱉었음에도 그녀는 입을 뻐끔거릴 뿐이었기에 일단 데리고 가서 치료를 해주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며 그녀를 안아 들었다.
아이를 들자 무척이나 가볍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맘때 라일라가 몇 살쯤이었을까?
캐릭터의 나이를 정확하게 잰 적은 없지만...아마, 13살쯤 됐을 것이다.
그렇게 그녀를 안고 밖으로 나가는 동안 아이는 자꾸만 숨을 내뱉어 귀를 간지럽혔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귀를 기울였고, 이내 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죽여주세요]
나는 이 아이가 어떤 식으로 고통받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왜 그녀가 죽여달라고 말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소설이잖아.
나는 그냥 소설을 쓴 것뿐이잖아.
그런데, 내가 왜 죄책감을 느껴야 돼?
하지만, 그런 식으로 죄책감을 버리기에는 안고 있는 아이가 너무나도 가벼웠다.
그래서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그녀를 공방 밖으로 꺼냈다.
정말 그 조그마한 죄책감이 시작이었다.
그녀를 도시로 데리고 온 뒤 치료했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금세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다.
"....절...죽여주세요...."
"라일라"
"부...부탁드립니다"
"배 안 고파? 오늘은 내가 스프 말고 다른 거 가져왔는데. 먹어보면 엄청 맛있을 거야"
하지만, 내 몸 하나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에 사지가 없는 아이까지 함께 감당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마법사에게 치료를 받은 뒤부터 말을 할 수 있게 됬음에도 그녀는 같은 말만을 반복했다.
부탁드립니다. 제발. 저를. 죽여주세요.
입력된 값만을 반복해 행동하는 기계처럼 그녀는 늘 똑같은 말만을 반복했고, 그 외에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앙 물어봐봐....미안. 스프로 다시 가지고 올게"
알고 있음에도 가져와 본것이다.
혹여 냄새에 끌려 조금이나마 씹을까 싶어서.
그녀의 입에서 흘러내려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 다시금 주방으로 걸어가 그녀가 늘 먹던 스프를 가져와 아주 조금씩 그녀에게 먹였다.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고장 난 인형처럼....그녀는 늘 같은 말만을 반복할 뿐 그 무엇도 하지 않았다.
밥을 먹는 것도 화장실을 가는 것도 씻는 것도....정말 그 무엇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지쳐가는 것은 당연했다.
나는 이곳에서 살아가야만 했고, 나 하나 먹고살기도 빠듯한 실정이었다.
물론, 현상금으로 인해 지금 당장은 놀고먹어도 부담이 없었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지낼 수는 없었다.
내가 일을 나가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일을 끝내고 코를 막고 집에 들어왔다.
일을 끝낼 때까지 그녀가 버티고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원초적인 이 냄새는 참을수가 없었다.
조금은 짜증이 났다.
밖에서 일을 하고 들어와서 그녀의 수발을 든다.
내가 왜 이걸 해야 해?
어느정도 시간이 흐른뒤부터 나는 그녀가 빨리 죽길 바랬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내 손으로 그녀를 죽이지 못한채 그녀가 알아서 죽어가는 것을 기다렸다.
책임지지도 못하면서 나는 왜 그녀를 데려왔던 것일까?
바보같다.
"잠깐만 나갔다 올게. 얌전히 기다려"
그녀의 입을 닦으며 하는 나의 말에 그 아이는 변함없이 '죽여주세요'라고 말하며 나를 배웅했다.
내가 그렇게 밖을 나가려 할 때 등 뒤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척이나 조그맣지만...
평소와는 다른 느낌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려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방금 뭐라고 했어?"
내가 몇 번을 물어봤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무엇인가 변했다는 것을 느꼈다.
그저 망가져 있을 뿐인 이 아이에게 변화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그저 환청일지도 모르지만....이대로 계속된다면 정말 내 손으로 그녀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그것을 변화라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이내 확신이 되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그녀는 변했다.
더는 일을 끝내고 코를 막고 집에 들어오지 않아도 되었다.
더는 수프를 끓이지 않게 되었다.
조금이나마 그녀가 무거워졌고... 그녀의 입에서 다른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다녀...오세..요..."
솔직히 기분 좋았다.
처음에는 그저 위선이었다.
순간의 멍청하고 병신 같은 위선으로 귀찮은 그녀를 데려온 것은 맞지만 그녀가 죽여달라는 말을 꺼내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에 나는 너무 기뻐서 웃음이 나왔다.
이래서 전에 있던 세계의 사람들이 선행을 했던 거구나 싶었고,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변화됐다는 것은 무척이나 좋은 소식이었다.
하지만, 뭐랄까...
"..다녀...오세..요..."
"응, 다녀올게"
"아...빠..."
이건 좀 그랬다.
내가 아무리 전 세계에서 살아왔던 나이.
그리고 이곳에서 생활했던 세월과 회귀하면서 겪은 시간까지 더해도 그녀만 한 나이의 아이가 있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아빠는 아니지.
"오빠"
"아...빠..."
"오빠"
"...다...다녀...오세요"
고집이 있는 아이였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눈동자였지만, 왠지 모르게 그녀가 나에게 말하는 아빠라는 말이 무척이나 듣기 좋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상태가 호전되면 호전될수록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밖으로 나갈 때마다 다녀오라는 말을 몇 번씩이고 했었다.
그녀의 입에서는 다녀오세요라는 말로 나온 것 같지만, 나에게는 돌아와 주세요. 라고 들렸다.
머리가 똑똑해 금세 말을 잘하게 되었지만, 내 앞에서는 늘 말을 더듬었다.
그녀는 늘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했기에 내 앞에서는 불쌍해져야만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라일라에게 정이 들기 시작하면서 가정부를 들였다.
처음에는 돈이 아까워서 미쳐버릴 것 같았지만, 그런데도 라일라의 조그마한 얼굴을 보니 그 생각도 금세 누그러들었다.
내가 조금 더 일하면 됐으니까...
그 아이가 행복하길 원했다.
....행복하기를 원했다.
라일라가 웃는 표정을 볼 때마다 늘 그런 생각을 했다.
정말 이 아이가 마지막 순간까지 행복하기를 바랬다.
"내가 그때 죽이자고 했을 때 들었어야지"
"닥쳐"
"며칠째 이러는 거냐? 너도 같이 뒤지려고? 뒤져서 그 애 보러 가려고?"
분명 나는 그녀가 죽는 순간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 생각했다.
"이 아이도 마지막까지 행복했잖아. 그럼 그걸로 된 거 아니야?"
"......"
"말해줬잖아. 일주일이면 마나 역류로 죽었어야 했어. 지금까지 살아있던 것도 기적이야. 와아 아버지를 위한 딸의 눈물겨운 사랑. 이 씨발 새끼야. 내가 죽이자고 했어 안 했어. 그런 식으로 후회할 거면 뭐 하려고 쳐 데려왔냐"
그녀가 데려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죽을 거라는 것 정도는 설정을 짠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그저...죽는 순간까지만이라도....그녀가 행복했으면 했다.
"그 새끼 애 데리고 무슨 실험을 한 지는 모르겠지만, 이 도시 마법사들도 전부 고치는 게 불가능하다고 했었잖아. 제발 청승 좀 그만 떨어"
위선으로 끝났어야 했다.
그저 죄책감을 덜어주기만 했으면 됐다.
라일라가 겪었던 고통을 자신이 전부 서술했다는 이유로 이 아이에게 죄책감을 느꼈다.
그저 돈에 대한 욕심으로 마법사를 죽여 더는 그녀가 살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위선을 떨며 모른척했다.
"있잖아....."
그냥....이 아이가...
"다... 다... 내 상황이 되면...똑같지 않을까?..불쌍하잖아....미안하잖아..."
그녀의 부모가 없다는 것은 그녀가 불쌍해 보이도록 하기 위한 장치였다.
마을 사람들이 내다 버리는 쓰레기장에서 헝겊을 걸친 채 아무 곳에서나 자도록 한 것도 모두에게 미움받는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마법사의 실험도 마찬가지다.
그저 강한 히로인을 주인공의 동료로 넣고 싶었기에 설정을 때려 박았다.
인간으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독자들에게 설명 하기 위해 개연성을 넣은 것 뿐이었다.
그녀를 부수고 또 부순 다음 다시 만든 것도 주인공을 생명의 은인으로 만들고,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따르게 만드는 장치에 불과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아이가 되도록 만든 것이다.
"너 정도껏 해"
"....내가 다리 고쳐줄수 있다고 했는데 뭐라고 했는지 알아?"
"내 말들어"
"얘 초등학교 다닐 나이인데...뛰어다닐 나이인데 걷는것보다 버려지는 걸 더 무서워하더라..... 내보내려고...했었는데....눈치는... 빨라가지고..."
"야!!"
"아빠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는데도 자꾸 부르는데... 진짜 병신같이.... 아빠 된 기분 들더라"
"정신 차리고 내 말들어. 네가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내가 했는데. 전부 내가 한 건데....내가 한 게 아니잖아....그렇게 될 줄 누가 알고 썼겠어. 그냥...나는 아무죄 없는 거잖아"
"...인공아. 죽은 거로 끝내자"
"그런데 아프더라. 아빠라고 부를 때마다 엄청 아파서.... 애를 낳아본 적도 키워본 적도 없으면서... 아프더라....애 주제에...아프면서.. 아프다고 말을 안해... 다 아는데...숨기는거 다 아는데.... 정이 들었다고 생각했을 때 그만둘걸... 아니 처음부터... 죽든 말든 신경 쓰지 말걸....."
"그래서 씨발, 지금 뒤지겠다고? 어차피 결과는 똑같을텐데? 니 좆 같은 능력 써봐야 결과는 똑같아"
그녀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불가능하다.
나 같은게 주인공이 했던 것처럼 그 아이를 살리는 것은 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돌아가면 돼"
"뭐 하려고"
"....고쳐줘야지. 팔다리만이라도 어떻게 해서든 고쳐줘야지. 걷는건 해봐야지....평생...버림받고... 미움만...받았는데...다른것도...있다고...알려줘야지...그래야...맞는거잖아..."
미련이었다.
현대에서도 이 세계에서도 누군가 내 앞에서 죽는 건 처음이었기에 미련을 떨칠 수가 없었다.
멍청했기에 그 아이가 죽어서야 깨달았다.
내가 준거라고는 위선밖에 없었다는걸...
그녀가 살아있을 때 했으면 될 것을 멍청하게 지금에서야 미련을 가졌다.
"....자살해본적은 있냐? 손 떠는 거 보니 없네. 그렇게 찌르면 존나 아플 거다"
"도와줄래?"
".....씨발놈"
말은 사나워도 늘 고마운 여자.
몇번이나 죽어 나를 기억하지 못함에도 그녀는 늘 변함없이 나를 걱정해주었다.
"고마워"
"참 병신한테 알맞은 병신 같은 능력이네"
라일라를 다시 만나면 미련을 떨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 아이가 밖에서 뛰노는 모습만 보면 나는 괜찮아 질 거라 생각했다.
"라일라"
"....오...셨어요? 오..오늘은 일찍 오셨네요"
얼마 전에 죽은 아이.
그 아이는 제대로 일어나지 못해 침대에 누워 말을 더듬는 척을 하고 있었다.
"...이...일으켜...주세요..."
"누워있어도 돼"
늘 그랬듯 나는 침대 옆으로 가서 무릎을 굽힌채 라일라와 눈을 맞췄다.
"불편하지?"
"아..아니요. 아..안불편해요..."
"금방 고쳐줄게"
그녀는 싫다고 말했다.
왜 싫은지는 예전에 들었기에 알고 있었다.
이 아이는 다 낫게 되면 떠날 거라고 생각했었다. 버림받을 거라 생각했다.
자신이 불쌍하고 아프기에 내가 옆에 있는 거라 믿고 있었다.
그녀의 생각은 정확하게 맞았다.
그녀에게 팔다리가 붙어있었더라면 나는 그녀를 치료해주고 돈을 쥐여준 채 밖으로 내보냈을 것이다.
그녀가 아프지 않았더라면....곧 죽을 것이 아니었다면...나는 그녀에게 정이 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곧 죽을 아이이기에 나는 더욱 죄책감을 느끼며 각별하게 대했다.
마지막이라는 이유로...
"여신님의 호출을 제외하고는 신전 출입을 금했을 텐데요?"
"....성녀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불허합니다"
"딱 한 번이면 됩니다. 부탁드립니다"
왕성에서 쫓겨났을 때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않으리라 맹세했었다.
만약, 다시 돌아온다면 다시는 이딴 굴욕 겪지 않겠다 수도 없이 맹세했었다.
멋대로 나를 부르고 멋대로 나를 내쫓은 이 새끼들한테 다시는 머리 숙이지 않겠다 맹세했었다.
당했던 거 전부 갚아주겠다 맹세했었다.
그런데도 나는....
"한 번이면 됩니다. 제발.....제발..."
참...값싼 맹세였다.
하긴 이곳에 온 이후로 늘 이랬다.
되는 게 하나도 없는 삶만을 몇 년 동안이나 반복했다.
그래도 한 번만 볼 수만 있다면 뭐든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단 한 번만 그녀가 걷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천천히 일어나는 거야. 천천히"
"...그..이렇게...아앗!"
비틀거리며 걷던 그녀의 몸이 기울자 나는 빠르게 손을 내밀어 그녀가 넘어지는 것을 막았다.
"근육은 정상인데. 뇌가 안 익숙하니까 넘어지는 거야. 무작정 걸으려고 하지 말고..."
만족했다.
아니, 만족해야만 했다.
"...고...고마워...요..."
"응"
"고마...워요...아..빠.."
".....응"
제대로 걷지도 못한 채 죽어버렸다.
기간이 너무 짧았던 것이 문제였다.
빌어먹을 신전이 부탁을 들어주는데 너무 오래 걸려서....
조금만...아주 조금만 더 회귀하면...
***
두 번째 회귀부터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계속해서 이야기가 흘러가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딴거 보고 싶지 않다.
이 남자가 미련에 미쳐버려서 무한히 죽고 또 죽는 이것을 대체 왜 봐야 하는 것일까?
"라일라. 듣고있지?"
라일라가 말을 하지 못하는 때로 돌아가 하나부터 열까지 또 가르치고 있는 꼴이 무척이나 우습다.
몇 번이고 신전에 찾아가 머리를 박아 라일라를 고쳤고, 수십번이고 그녀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내 하나씩 그녀에게 해주었다.
"미안해"
그는 라일라라는 이 아이가 더이상 웃지 못하게 되는것을 참을수 없게 되었다.
"미안해"
그는 더이상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미안해"
그는 반복되고 또 반복되는 미련을 끊어낼 수 없게 되었다.
"미안해"
이것을 끊어낸다는 것은 라일라가 영원히 죽는 것을 말하니까.
"미안...해..."
수십 번이나 죽었다. 죽고 또 죽고. 또 죽었다.
이제 그는 그녀가 죽는 것을 지켜만 볼수있을까?
"저 아이 때문이지?"
"........"
"몇 번이나 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그만해"
"....로제"
"왜"
지금껏 쭉 궁금했던 것이 있었다.
"나...안될것 같다"
"......."
"내 마지막 부탁 들어줄 수 있어?"
어딘가에 처박혀서 지 살 궁리만 할 새끼가 왜 전쟁에 참여했는지.
어째서 그렇게 강해질 수 있었던 것인지.
그런데 이제야 조금 납득이 된다.
"나랑 드래곤 잡으러 갈래?"
"병신"
그녀의 병신이라는 말에 그는 활짝 웃으며 이미 식어버린 라일라의 손을 꽉 잡았다.
"있잖아...나...금방 만나러갈게.... 그러니까...이번에는 진짜니까...진짜...조금만..."
그는 죽는 순간까지 라일라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수십번이나 기다려달라 말하며 자신의 목을 찔렀다.
그렇게 그의 푸념을 들으며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
설정이 그랬다.
라일라를 되살리기 위해서 성녀의 도움과 드래곤의 심장이 필요하다는 설정.
플롯을 쓰던 중 문득 이 설정을 쓰면 시나리오 하나 만들겠다 싶어 넣은 설정이었다.
덤으로 성녀가 하렘으로 들어오는 것도 가능했으니 일석이조였다.
솔직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회귀하나 들고 있는 마을사람 1이 드래곤을 잡는 것이 가능할 리가 없거니와.
잡았다 하더라도, 라일라는 그동안 계속 고통받아야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그녀는 미치거나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해냈다.
마치, 내게 말하는듯하다.
너도 할 수 있어. 제발 부탁이니 해줘.
"....선....생님? 아니죠? 아니죠? 맞아요?"
주인공은 그렇게 죽고 난 다음 몇 년 동안 그녀를 내버려 뒀을까?
몇 년 동안 그녀는 실험을 이유로 고통받았을까?
그 이후부터는 알려주지 않았기에 모른다.
그는 마치, 여기까지만 알려주면 충분하다고 나에게 말하는듯 했다.
익숙한 공원의 모습.
아까까지 내가 앉아있던 벤치에 그녀가 앉아있었고 그녀가 죽었던 자리에 내가 서 있었다.
회귀를 시키는 것도. 기억을 읽게 만드는 것도 전부.... 그가 하는 짓이다.
그가 주동자가 아니라도 그는 관여했다.
....가장 중요한 이유가 빠졌지만, 목적은 알것같다.
회귀를 이용해 그녀들을 붙잡도록 만들었다.
레벨업이라는 것을 이용해 반복되는 죽음과 멈춰서는 것을 막고있다.
그는 마치 그녀들을 빼앗으라고 나에게 부탁하고있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오랜만이야. 라일라"
하지만, 나는 그처럼 평생을 고통받는 주인공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내가 하는건 라일라와의 약속 때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