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LEVEL 3 (3)
[있잖아...나...금방 만나러 갈게...그러니까...이번에는 진짜니까...진짜...조금만...]
[마지막으로 이번 한 번만 기다려줘]
뒷이야기를 보지 못했기에 그 이후 그가 라일라를 어떤식으로 구한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주인공이 바뀌었음에도 라일라는 내가 설정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히로인이 되어 내 눈앞에 살아있었다.
그는 성공했다.
그녀가 망가지기 전에 그녀를 구해내었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그녀에게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가 그녀를 구하기 위해 겪은 고통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그에게 그녀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다.
동정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녀를 불쌍하다 여기기도 했다.
그래서 복수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감정이 내가 짠 어설픈 시나리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기에... 더더욱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죄...죄송해요..."
"네가 왜 죄송하다고 말해? 네가 한 게 아니잖아. 네가 날 그렇게 만들었었어?"
눈을 뜨자 라일라의 모습이 보인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입을 벌린 채 입술을 떨며 그저 눈물만을 흘리고 있는 얼굴.
나는 그녀가 이렇게 아무 말도 못 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물어본 건 그게 아니잖아"
"선...생님... 그게... 그러니까..."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병신같이 입을 열었다.
시간이 갈수록 버티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은 뒤부터 감정이 너무 격해져 버렸다.
병신같이 감정컨트롤에 실패했다.
그녀에게 선생님이라는 존재는 부모보다 더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 사랑하고 자기 자신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그녀는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고, 일어나지도 않은 환상 같은 일로 인해 자신이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여기는 것을 영원히 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최대한 오래 버텨줬으면 좋겠어. 진심이야]
그녀의 감정을 전부 받아내었기에 잘 알고 있다.
그날 그녀의 눈을 나를 향해 분노를 내비치고 있었지만, 그와 함께 선생님을 보지 못한다는 슬픔 또한 맺혀 있었다.
처녀라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 그를 향한 사랑의 증표였을 것이다.
언젠간 선생님에게 사랑받을 거라 생각하며...기대하고...또 기대하고... 언젠가는 사랑받는 날을 기다려왔던 증표였을 것이다.
속였다고 생각한 나를...그 증표를 빼앗아간 나를 죽도록 미워할 만큼...아니, 편히 죽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을 만큼 그녀에게 소중한 것이었다.
처녀가 아니라는 이유로 선생님 앞에 설 자격이 없어졌다 생각했을 테니까.
그래서 그녀는 그날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분노만을 쏟아냈었다.
"나를 어떻게 알아본 거냐고 묻잖아"
"선생님...."
"물어보잖아. 왜 대답을 안 해?"
그녀는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역시 제가 옆에 없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시죠?]
내가 그녀에게 적의를 들어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음에도 그녀는 용서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선생님의 부탁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이뤄드릴게요.]
분명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선생님...울지마세요..."
그녀의 손이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이자 나는 그것을 쳐내었다.
"만지지 마"
그녀는 후회도 하지 못할 것이다.
후회할 이유도 모르고 후회를 해야 할 기억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그녀는 사죄하는 것도 용서를 받는 것도 내 물음에 대답하는 것도 후회하는 것도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말하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복수하고 싶지 않다며 몇 번이고 세뇌했다.
그런데...나는...
아무 말도 없이 나를 괴롭힐 때 그녀의 미소가 일그러지는 것을 보며 자업자득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광기에 미쳐 나에게 분노만을 쏟아내던 그녀의 푸른 눈동자에서 눈물이 떨어질 때마다 꼴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엄한 사람에게 화풀이나 하는 쓰레기 새끼다.
나에게 트라우마를 심은 것도 죽고 싶게 만든 것도 라일라인데...지금 눈앞에 있는 그녀도 라일라인데....
증오하는 사람도 혐오하는 사람도 전부 그녀인데 눈앞에 있는 그녀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마치, 꿈 같다.
내가 고통받았던 것은 그저 꿈속이었고, 나는 꿈속에서 당한 일을 그녀에게 화풀이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실 그게 맞다.
내가 당한 건 전부 꿈속에서 일어난 일이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현실도 전부 없던 일이 되었으니 꿈이 맞다.
"그럼...저는 어떻게 해야 되는 건가요? 어떻게 해야...선생님에게 용서받을 수 있는 걸까요..."
"내가 먼저 물어봤잖아. 왜 대답을 안 해주고 다른 말만 해"
"정말 몰라요...처음부터 선생님인지 몰랐어요...처음 이곳에 왔을 때도... 두 번째로 만났을 때도...너무 편안해서...선생님이랑 같이 있으면 너무 편해서...그래서 혹시나 선생님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 물어본 거였어요..."
"왜 그때는 몰랐는데?"
"몰라요...모르겠어요. 왜...제가 그랬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눈물을 흘리며 말을 이어가지 못하는 그녀를 보며 올라오는 자괴감에 이제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몸을 돌리고 현관문을 나섰고, 곧이어 내 옷자락이 붙잡힌 것을 느꼈다.
"놔"
"저는...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떻게 해야...용서...기분이 풀리시는 걸까요? 차라리 때려주세요. 벌... 얼마든지 받을게요. 저 얼마든지 혼날 수 있어요..."
"옷 찢어지니까. 손 놔"
"모른단 말이에요! 왜 그랬는지 하나도 모른단 말이에요..."
몸을 돌려 그녀의 손목을 잡아 옷에서 떨어트렸다.
그러자 곧이어 그녀가 나를 껴안았다. 어떻게 해서는 나를 붙잡으려는 듯 그녀는 무척이나 강하게 나를 껴안았다.
"절 그렇게 보지 마세요. 절 미워하지 마세요. 원망하지 마세요. 뭐든지 할게요. 선생님이 분이 풀리신다면... 어떻게든 할게요. 사라지라고 해도 할 수 있어요. 저를 찾아 주시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사라질게요. 언젠간 찾아주신다고 말씀만 해주시면... 저 얼마든지 선생님 눈앞에서 사라질 수 있어요. 그러니까... 제발..."
"그냥 시키는 대로 해"
"저...저...잘 참을 수 있어요. 선생님은 모르시겠지만, 저 선생님이랑 만나기 이전에...엄청 많이 참았었어요. 힘든 거 잘 참아요. 뭐든지 시키셔도 돼요."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마"
"그...금방 괜찮아지실 거에요. 그렇죠? 선생님이 시키는 거 전부 다 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 쭉 그래왔던 대로... 하면 될 거예요. 그러면 선생님도 잊으실 수 있어요"
나는 잊을 수 있을까?
아니, 그녀가 그때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똑같은 목소리로 있는 이상...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녀와 함께 있는 이상 계속해서 망가져 갈 것이다.
매일같이 수십번이나 죽고 싶었던 그 날을 생각할 것이다.
"선생님에게 사랑받고 싶어요. 평생...꿈이었는데... 꿈이라도 꿀 수 있는 거 잖아요. 거짓말이라도... 괜찮다고 말해주세요. 언젠간 괜찮아질 거라고만... 말해주세요. 그러면 뭐든지 할게요. 할 수 있어요..."
누가 봐도 거짓말인 것을 아는 거짓말...
그게 과연 거짓말일까?
"말해요. 말해주세요..."
"...그만해"
"말해!!!!"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있어 그녀를 마주 볼 수 없었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녀의 표정을 보고 있었더라면 나는 거짓말을 해버렸을 테니까...
아주 조그마한 동정.
불쌍하다는 이유로 했던 나의 말이 나를 계속해서 망가트릴 것이다.
"...저 선생님이 여자가 많아도 괜찮아요. 그냥...조그마한 사랑만 주시면 되요. 저...저...그걸로 만족 할수있어요. 아주 조금이면 돼요. 아니에요...아니에요아니에요아니에요...그냥 사용해주시면 되요. 그냥... 도구로 사용하세요. 아이를 낳는 도구로 사용하시면 되요. 그러니까...거짓말이라도...말해주세요. 괜찮아질 거라고...거짓말이라도...사랑한다고 말만 해주시면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평생 모를게요. 참을 수 있어요."
그 누구보다 거짓말에 민감한 여자가 거짓말을 재촉한다.
진실을 말하든 거짓말을 말하든 그녀의 미래가 어떤 것이 될지 나는 잘 알고 있다.
[주인님을 망가트렸던 저 아이가 진실을 듣고 난 뒤 어떻게 하면 될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그녀는 라일라와 내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하면 될지 알고 있었다.
그래...마치, 저곳에서 나를 바라보는 디아나와 같이 라일라는 망가지고 또 망가지게 될 것이다.
"...그래...그렇게하자. 노력해볼게"
거짓말을 해 그녀를 속여도 그녀는 내 거짓말을 눈치챌 때마다 망가져 갈 것이다.
아무 말도 안 하더라도 그녀는 망가질 것이다.
그리고...그 전에 이미 나는 망가져 있을 것이다.
돌아가자.
결말을 알고 있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죽는 것 빼고는 없다.
그녀가 아무것도 모르던 때로 돌아가자.
그녀의 어깨를 잡아 살짝 떨어트리자 눈물로 범벅이 된 그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
벨라가 망가졌다.
고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겠다.
라일라가 망가질 거라 확신한다.
엘리제는 어디에 가 있는지 찾을 수도 없는 상황이며... 디아나는 사용한다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져 있다.
이보다 최악일 수는 없을 것이다.
"라일라"
"선생님...아니죠? 아니죠? 아니라고...말해주세요. 저보고 또다시 잊으라고 하시는 거예요? 제가 선생님에게 무슨짓을 저질렀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로 그저 꿈만...꿈만..."
"모르는 게 나아"
"...아니에요. 아는 게..."
그녀도 속으로는 알 것이다.
차라리, 모르는 게 낫다고... 평생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을 모른 채로 내 옆에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싫다고 하는 것은...
나에게 용서받아 선생님과 이어지는 꿈을 꾸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라일라"
"싫어요...싫어요...싫어요...알아도...괜찮아요. 그냥...거짓말만 해주시면 돼요...저..."
"날 죽여줘"
"싫어요! 안 할 거예요. 죽어도 안 할 거예요. 저 그렇게 못해요. 평생 선생님에게 사죄할게요. 용서 빌게요. 어떻게 해서는 선생님이 용서할 때까지 저 버틸 수 있어요"
그녀가 아니다.
내가 버티지 못한다.
결과가 어떻게 하면 될지 뻔히 알면서도 3일 만에 버티지 못하고 쳐 불어버린 내가...그녀를 버티는 게 가능할까?
차라리 그녀가 나를 몰랐던 때로 돌아가는 게 낫다.
얼마 전 공원에서 만났던 그때로 돌아가 모른척한다면 그녀는 내가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더라도 나에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내가 조금 더 강했더라면 괜찮지 않았을까?
과거에 사로잡힌 약해빠진 새끼가 아니었더라면...그녀를 미워하는 것은 막지 못하지만...적어도...오랫동안 그녀와 함께 시간을 나눌 수 있었을 것이다.
"디아나"
"...네넷! 주..주인님!"
"날 죽여줘"
"...아...안돼요...아...안돼요...절대...안돼요..."
그럴 거라 생각했다.
아무도 나를 죽여주지 않으면 스스로 죽는 수밖에 없었기에 집 안으로 들어가 테라스로 향했다.
"선생님!!"
엘리제가 구매한 이 집은 꽤 높이가 높았기에 떨어지면 나 같은 일반인은 곧바로 죽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바깥으로 나가려는 내 앞에 투명한 벽이 생겼다.
무척이나 차가운 얼음으로 된 벽.
"...라일라. 하지 마"
"...안돼요...선생님이 그 몸으로 거기서..."
"이거 치워줘. 부탁이야"
"아프단 말이에요...지금 선생님 몸으로 떨어지시면...아파요..."
"이것보다 아픈 일 수도 없이 겪었어. 누구 덕분에"
죽는 것도 제대로 못 하는 현실에 그녀에게 화를 낸 것이었다.
그리고, 내 화가 가슴에 비수를 꽂았던 것인지 그녀의 흐느낌이 더더욱 크게 들려왔다.
"아니면, 나 대신 네가 죽을래?"
"...선생님...저...할수있어요...저...열심히 할게요....그러니까..."
"내가 못 버티겠다는 거야. 너 같은 거 걱정한 적 단 한 번도 없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녀를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좁디좁은 알량한 마음 때문이다.
"거짓말이잖아요..."
"거짓말 아니야. 난 너 같은 거 평생 용서할 생각 없어. 그냥 얼굴만 마주쳐도 생각이 나. 아니, 얼굴을 안 마주쳐도 네가 나한테 했던 것들이 생각나고 꿈에서도 나오고 사람을 미쳐버리게 만들어. 너랑 같은 공간에서 숨을 마시고 있다는 것도 증오스럽고 네가 그딴 표정을 지으면서 잘못했다고 하는 게 역겨워. 그런데, 할 수 있다고? 버틸 수 있다고?"
"......"
"아이를 낳고 싶다고 했지? 사랑받고 싶다고 말했지? 너, 사람 참 미치게 만든다. 내가 아까 말했잖아. 그걸 들었으면서 어떻게 나한테 그딴...씨발...안뒤질거면, 막지 마. 제발 부탁이니까"
나는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한다.
이건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회귀하고 정신이 돌아왔을 때 내가 후회할 게 분명하기에 나는 몇 번이고 스스로 참을 만큼 참았다고 되뇌는 것이다.
테라스로 향하는 곳은 벽이 막고 있기에 나는 곧장 부엌으로 걸어가 식칼을 꺼내었다.
한방에 찔러 죽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저번에 자살해 봤기에 두렵지도 않다.
고통을 참는 것도 나에게는 무척이나 쉬운 일이다.
그러니...
"선생님... 그러지 마세요"
옆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왜 그랬는지 하나도 몰라서 죄송해요...바보같이 선생님을 알아보지 못해서...제가 정말로...바보라서..."
주인공이 바라는 것은 이것이었던 걸까?
그녀를 동정하고 불쌍히 여기라고?
"사랑해요...정말...사랑해요...너무너무...사랑해요...저를 구해주셨을 때부터...선생님은...제 살아가는 이유이자 행복이였어요...그러니까...바...보같이 사랑하는 사람도 못 알아본...저 같은 거를 위해서...그러지 마세요"
하지만, 타인에게 가지는 동정심으로는 자신이 겪은 고통을 덮어 낼 수 없다.
"선생님. 사랑해요"
***
[BAD END] - 라일라 DEAD (37일 생존)
***
선생님이 죽는 것을 도저히 볼 수 없었던 것인지 내가 죽기 전에 그녀가 죽었다.
나는 또... 그녀를 죽여 회귀했다.
이번에는 정말 모른척하자.
그녀가 물어보는 것에 답하지 않으면 되고, 그녀가 혹시나 내 뒤를 쫓아오는 것을 예상해 다른 곳으로 가자.
그때에는 엘리제가 날 지켜보고 있을 테니, 집을 옮기는 것도 편할 것이다.
...라일라와 내가 만나지 않는 것이 가장 올바른 길이다.
[대답해주세요. 네? 잊어주세요... 제가 했던 일들 전부 기억하지 말아 주세요... 마..맞아. 선생님이 평생 죽지 않으면...되는거잖아...그런거잖아...]
[죽게 되면... 다시 돌아가게 되면... 저를 찾지 않으실 건가요? 저...꼭...찾아주세요...찾아서 꼭...혼내주세요...]
[...선생님...잘못했어요...저는 선생님 없이 살아갈 수가 없어요...]
[죽고 싶은데...죽지 못해요...선생님을 이렇게 만든 제가...벌도 받지 못하고...죽는건 아니잖아요...그러니까 일어나주세요...일어나서 제가 했던짓...전부 벌해주세요...]
그날의 그녀에게 주는 가장 큰 벌일 것이다.
어두웠던 시야가 천천히 거둬진다.
수십번이고 머릿속으로 되뇐다.
그녀가 없던 때로 돌아가자.
돌아가서 평생 그녀를 잊자.
그녀에 대한 원망도 미움도 공포도 그리고...그녀의 죄도 전부 잊자.
그렇게 눈을 떴다.
"...선생님?"
나는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일까?
"...선생님...아니죠? 아니죠? 아니라고...말해주세요. 저보고 또다시 잊으라고 하시는 거예요?"
왜 나는 이 광경을 또다시 보고 있는 것이지?
분명 방금 죽었을 텐데...어째서 나는 아까와 똑같은 풍경을 보고있는 것이며 똑같은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일까?
"제가 선생님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로 그저 꿈만...꿈만..."
꿈을 꾸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이게 만약 악몽이 아닌...현실이라면...
"헛된 꿈만 꾸고 싶지 않아요. 저 용서 받을 수 있어요"
나는 최악의 상황에서 도망칠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