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LEVEL 3 (5)
샤를
정확한 이름은 샤를리즈 베르티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녀는 마왕 직속 간부였다.
그녀가 나왔던 극 후반 즈음에는 이미 주인공의 파워인플레이션이 극에 달해있었기에 그녀가 소설에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가 그녀를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저 그녀의 설정을 조금 자극적으로 썼기 때문이다.
히로인의 숫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빠르게 질리게 된다.
어디선가 한번 본듯한 캐릭터.
혹은 이미 나왔던 캐릭터와 유사한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된다.
그림이 아닌 글이었기에 더더욱 신 히로인의 대사가 기존 히로인 누군가의 대사와 느낌이 겹치기 매우 쉬웠다.
그래서, 더욱 자극적인 캐릭터 혹은 특별한 캐릭터를 짜야만 했다.
...그리고 히로인 들 중 거의 마지막에 등장한 캐릭터가 샤를이다.
타인의 비명을 사랑하는 여자.
죽이는 것보다 비명을 듣는 것을 너무나도 사랑했던 여자였다.
특히나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더더욱...
인간의 비명을 배경 삼아 티타임을 즐겼으며 살려달라는 울부짖음을 들으며 식사를 즐긴다는 설정이었다.
그녀는 누군가를 죽이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괴롭히는 존재가 성대를 더는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 어떤 비명도... 살려달라는 말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녀는 쓸모없다고 판단해 죽였다.
작중에서는 주인공을 어쩌질 못했으니 그의 히로인들을 괴롭혔고 히로인들이 죽기 직전 주인공이 등장해 그녀를 제압하는 것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마음 같아서는 너무 많아진 트로피 히로인 숫자에 몇몇 정도는 죽여버리는 시나리오로 갔으면 했었다.
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독자들의 반발이 너무 심했기에 그저 괴롭히는 정도에서 주인공을 등장시켰다.
악역에서 개과천선 후 히로인이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주체할 수 없는 소유욕과 타인을 괴롭히고 싶다는 욕망을 이기지 못해 주인공 몰래 그를 무력화 시키려고 시도했었고, 그것이 실패하자. 그의 주변 히로인들을 암살하려고 했었다.
분명 그런 설정의 히로인이었다.
...그런데 왜...
"샤를"
"응? 왜? 우리 자기 필요한 거 있어?"
"아니...조금 답답해서"
고개를 살짝 내려 내 배가 답답할 정도로 꽉 껴안고 있는 그녀의 양다리를 바라보았다.
이상하다.
많이 이상하다.
설정상 그녀는 절대 이런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조금만 풀어주면 안 될까?"
"아, 맞다. 우리 자기 약해졌었구나"
절대 도망치지 못하게 등 뒤에서 내 가슴을 두르고 있는 그녀의 팔에 힘이 살짝 풀려 이제야 폐에 공기가 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에게 붙잡혀 부산에 들어온 지 벌써 하루가 지났음에도 그녀는 참 이상하게도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아, 건드리지 않았다기보다는...
"자기야. 잘 먹을게"
그녀의 입술이 어깨에 닿는 느낌이 듦과 동시에 따끔거리는 고통이 느껴졌다.
그녀의 송곳니가 살갗을 파고들고 있음에도 살짝 따끔거릴 뿐 그다지 아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상하다.
진심으로 붙잡히는 순간 나는 예전 라일라의 때와 같은 일을 겪게 될 거로 생각했다.
진심으로 두려웠다.
그런데도 죽지 못했던 것은 그저 회귀날짜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서일 것이다.
"샤를"
"으...에 자이아?"
"아니야. 다 마시고 이야기하자"
목에 얼굴을 파묻은 채 대답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허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를 피하고자 나는 얼마나 노력했던가...
벨라에게 맞고 있을 때는 물론이고 예전 샤를의 종자들이 내가 타고 있는 차를 막고서 싸울 때 나는 샤를에게 붙잡히고 싶지 않아 죽으려고 했다.
정확히는 라일라에게 도움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어찌 되었든 샤를에게 붙잡히는 것만은 그동안 쭉 피해왔다.
하지만...
"하아...하으윽..."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고 나니 피해왔던 내 노력이 아무런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내 피를 삼키는 소리와 함께 그녀가 내뱉는 숨소리가 자꾸 목을 간지럽혔다.
그저 피를 마시는 것뿐인데 어째서 이런 숨소리를 내는 것일까?
내가 침대에 걸터앉아있었고, 그런 나를 그녀가 등 뒤에서 껴안고 있는 자세였기에 내 아들이 커진 것을 그녀가 보지 못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야"
"응?"
"하고 싶어?"
그녀는 그렇게 말을 하고 내 배를 두르고 있는 발을 움직여 바지 가운데를 발가락으로 툭툭 건들었다.
그리고, 검은색 스타킹을 신고 있는 발가락이 묘하게 움직이는 게 눈에 들어오자 안 그래도 크게 성장한 아들이 더욱 크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장난치지마"
"흐응~ 장난인 것 같아?"
만족할 만큼 피를 다 마신 건지 그녀는 내 목에서 입을 때고서는 귓가에 음란한 숨결과 함께 속삭였다.
그녀의 발가락이 바지 지퍼를 잡아 천천히 내렸고, 이내 커다랗게 자라있는 성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있잖아. 나 자기 피에 길들어서 다른 사람 피는 구역질이 나더라. 그래서 지금까지 한 번도 마시지 않았어"
"...그게 뭐?"
"뱀파이어가 피를 마시지 않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몰라? 나 자기 없으면 안 돼. 그러니까 도망갈 생각하지 마"
등에서 그녀의 가슴이 짓눌려지는 느낌과 함께 검은색 스타킹으로 덮인 양발이 내 성기를 훑기 시작했다.
어디서 이런 걸 배운 것인지 무척이나 섬세하게 내 귀두를 자극했다.
"기분 좋아? 남자들은 이런 거 좋아한다던데"
"귀에 대고 말하지...흣"
말을 끝까지 내뱉기 전 그녀가 내 귀를 깨무는 느낌에 나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곧이어 그녀의 혀가 귀 안으로 들어왔고, 그녀의 발과 혀에서 전해지는 쾌락에 사정감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읏...."
"참지 않아도 돼"
그녀의 말을 끝으로 내 성기에서 진한 흰색의 정액이 튀어나왔고, 그녀의 발바닥이 내 귀두를 완전히 감쌌다.
사정감이 끝나 정신을 차리자 검은색 스타킹을 한가득 더럽히고 있는 흰색의 액체는 찐득하게 방울져 그녀의 발가락을 타고 바닥에 떨어지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조금 흘려버렸네. 전부 받아주려고 했는데"
"...적당히 해"
"어떤 걸 적당히 하라는 거야?"
듣는 내가 나른해질 정도로 무척이나 조용하고 음란한 목소리였다.
"애초부터 너..."
"괴롭히는 걸 좋아하는 여자라고?"
"대체 원하는 게 뭐야? 데려온 목적이 있을 거 아니야"
내 말에 그녀는 내 배를 감고 있던 발을 풀어 천천히 스타킹을 벗기 시작했다.
"자기한테 원하는 건 엄청 많지"
"....."
"예전처럼 괴롭히는 건 안 할 거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왜?"
그녀는 나의 말에 대답해주지 않고서 자신이 벗은 스타킹을 천천히 들어 끝에 방울져 떨어지려 하는 흰색의 그것을 혀로 핥았다.
"우리 자기 혈액도 맛있는데 정액은 더 맛있네."
액체는 둘째치고 자기가 신고 있던 스타킹에 입을 대고 있는 건 조금 더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붉은 입술에 살짝 묻어있는 정액의 모습에 생각을 접었다.
"첫 아기씨는 꼭 입으로 먹어보고 싶었는데, 기대했던 그대로야"
"......"
"입으로 직접 먹고 싶은데... 그러면 우리 애기가 상처 나겠지?"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함께 자신의 송곳니를 보여주며 진하게 웃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목적이 뭐냐고 물어봤잖아"
"목적... 그런 거 없...아!"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내 어깨를 잡아당겼다.
침대에 눕게 만든 그녀는 곧이어 나를 넘어와 내 가슴 위에 앉았다.
"방금 속옷 봤어? 자기 보여주려고 오늘 야하게 입었는데"
내 위에서 그녀가 양손으로 붉은색 드레스를 들어 올려 그 안에 있는 검은색의 속옷을 보여주었다.
"어때 내 보지 가리개. 스타킹처럼 끈적끈적한 것으로 덮고 싶지"
조곤조곤한 말투와는 다르게 그녀의 말은 음란했다.
그녀는 음란하지만 아름다웠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음에도 나를 유혹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무척이나 싸 보이는 게 당연했지만, 그녀가 내기 전해주는 감정은 절대 싼 것이 아니었다.
"이제 그만해"
"내가 이렇게까지 어필하는데. 그만하라고 하는건...너무해"
히로인과 성관계를 한다는 것에 거부감 같은 건 없었다.
라일라와 섹스하고 그딴 일이 있었음에도 내가 벨라와 관계를 맺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얼굴을 본지 이제 하루가 겨우 넘은 여자를 안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거부한 것이었지만...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어제 이곳에 왔을 때 따먹고 싶었던 걸 애써 오늘까지 참았는데... 계속 거부하면 나 화낼 거야"
"따먹어?"
"응. 더는 나오지 않을 정도로 따먹을 거야. 그러니까 거부하지 마"
명백한 통보였다.
"싫다고 하지 마. 싫다고 말해도 전부 먹을 거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다리 사이로 손을 넣어 속옷을 옆으로 살짝 젖혀 그 안에 있는 균열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여기로 다 먹어줄게"
"샤를. 넌 대체 무슨 생각..."
"질문은 식사 끝나고 난 다음 해줘. 자기야"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굳게 솟아있는 자지 위로 엉덩이를 가져갔다.
마치 나보고 보라는 듯 드레스 치마를 양손으로 들어 올린 채 천천히 정말 천천히 자신의 균열에 나의 것을 집어넣었다.
"내가 자기 자지 먹고 있는 거 보여? 흐윽...전부 봐줘야 해?"
그녀의 균열이 벌려지며 귀두를 감쌌고 그녀는 숙이고 있던 허리를 곧게 펴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 앞으로 더 들어가면 자기가 처음이 되는 거야"
그녀는 창백한 얼굴에 붉은색 홍조를 띠며 무엇엔가 취한듯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뱀파이어 여왕의 피를 뒤집어쓴 첫 자지...하....하으...응♡"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단번에 자신의 허리를 내렸고, 곧이어 그녀는 잡고 있던 드레스를 놓아 양손을 오므리며 등을 더욱 뒤로 젖혔다.
이제는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성기를 수축해오는 그녀의 보지 느낌은 무척이나 색다른 것이었다.
물이 많던 벨라와는 무척이나 다른 느낌.
직접 손으로 꽉 잡는듯한 거친 감촉이었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생각에 일단 싸고 난 다음 생각하자는 마음으로 살짝 몸을 일으키려고 할 때 그녀의 팔이 내 가슴을 밀었다.
"...자기야 뭐해?"
"도망 안 쳐"
내 위에 올라타 가슴을 누르고 있던 그녀는 내 말에 진한 웃음을 내비쳤고, 그것을 마주하자 나는 무척이나 소름 끼치는 웃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말했잖아. 지금은 내 식사 시간이야"
"...뭐?"
"자기는 내가 많이 먹을 수 있게 아기씨만 열심히 만들면 돼"
진심으로 나를 먹겠다고 말하는 모습에 나는 얼떨떨해진 기분이 들었다.
이게 맞나? 라는 생각을 할 때 그녀의 허리가 들렸고, 귀두에서 느껴지는 시원함에 그녀의 균열 밖으로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곧장 그녀의 허리가 내려가 다시금 나의 것을 삼켰다.
"하으흥~♡"
그녀의 붉은색 눈이 환희로 차오름과 동시에 허리 놀림이 점차 빨라졌다.
솔직히 못 버틸 거로 생각했다.
아니, 소설 설정상 침대 위에서 주인공을 이기는 히로인은 절대 없을 거로 생각했는데...
"아흣...하아....읏..."
붉은색 드레스를 펄럭이며 내 위에서 허리를 흔드는 그녀의 모습은 무척이나 음란했고, 시간이 갈수록 점점 그 음란함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허리를 세운 채로 위아래로 흔들며 내 정액을 짜내었고, 그다음에는 나를 껴안은 채 엉덩이만을 흔들어 짜내었다.
"두 번째는 너무 적었어. 자기야. 이번에도 참으려고 하면 혼낼 거야...하으응..."
이렇게 당하고만 있는 게 자존심 상해 몸을 일으켜 그녀를 눕혀버리고 싶었지만, 그녀의 검지가 내 이마를 누르며 일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자기는 가만히 있으라니까? 뭐 하려고 하지 마. 그렇지 않아도 여기사 처녀 아닌 거 보고 나 화난 거 참고 있으니까"
"...확인해본거야?"
"확인 안 해도 다 아는 방법이 있어. 그러니까 하려고 하면 더 심하게 짜낼 거야"
찌푸린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런데도 화가 났다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진심으로 그녀는 나를 착정하려고 하고 있다.
그것을 깨닫자 나는 이번에는 진심으로 그녀에게서 벗어나려고 했고, 그런 나를 그녀가 꽉 껴안아 다시 한번 엉덩이를 뜰썩거리기 시작했다.
"하으응~♡"
"적당....흐읏..."
"시러....흐윽....또 왔다아앙"
액체와 살이 비벼지는 소리가 찌걱찌걱 방을 울리기 시작했다.
.
.
.
나를 장난감처럼 이곳저곳으로 움직여 자세를 수도 없이 바꿔 끝도 없이 나를 짜내던 그녀는 결국 7번을 자신의 배에 넣고 나서야 만족한 것인지 내 위로 쓰러지듯 누웠다.
"하아...하아...히흣...하앙"
내 목에 야한 숨을 내쉬고 있는 것을 보며 나는 살며시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릿결을 쓸어내렸다.
"...샤를"
"하으응..."
절정의 여운에 자지가 들어가 있는 엉덩이를 흔들며 내 말에 대답해 보인다.
그래, 매일같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데 침대 위에서는 내가 이겨야 벨런스가 맞지...라고 생각했지만, 고추에 힘이 잘 안 들어가는 게 그녀가 조금만 더 착정했더라면 내가 먼저 나가떨어졌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날 여기 데려온 이유가 뭐야?"
"...가지고...흐응...싶어서"
"빼고 이야기하지?"
"...그치만...흐윽...빼면 다 흘러버리는걸...음식...버리면 안 돼...히윽"
상하 운동을 하면서 대부분 흘려버렸을 텐데...
"아가방에 잔뜩 들어있단...하으으윽...말이야"
그녀의 머릿결을 쓰다듬던 손을 천천히 움직여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다시 넣어주면 되잖아. 그렇지?"
"...배불...러...이제 내일...히끅...먹을거야"
"더 먹어야지. 남기면 안 되잖아"
이 여자는 위계질서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솔직히, 이 정도 됐으면 이 여자가 생각보다 무해하다는 것을 깨닫기 충분했다.
"싫...어...배부르다니히익!!"
방심하고 있었던 것인지 갑작스럽게 허리를 들어 올리자 그녀는 지금까지의 조용하던 목소리가 아닌 방안을 가득 채운 신음을 보여주었다.
"명령이야...그만후에!"
생각보다 반응이 재밌다.
"그만하라...고홋!"
"고홋..."
"웃지마힛.....아흐윽..."
이제야 좀 정액을 만들 마음이 생겼다.
그녀를 껴안고 있던 몸을 옆으로 돌려 침대에 눕힌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를 스트레스 덩어리라 여겼다.
전혀 이유를 모르겠지만 이 여자는 스트레스 생성기가 아닌 스트레스 샌드백이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끝까지 살아있으면 화내도 돼"
"히끅...내려다 보지마...그렇게 보지하으으응"
아까처럼 나를 제압하려고 했던 것인지 그녀의 팔이 내 쪽으로 다가왔지만, 그것보다 내 허리가 더 빨랐고, 그녀는 그것을 끝으로 저항하지 못하게 되었다.
***
"씻는 곳을 찾으십니까?"
모르는 여자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고, 곧이어 메이드 복을 입고 있는 뱀파이어가 눈에 들어왔다.
생전 처음 보는 얼굴.
"누구?"
"여왕님의 시중을 들고 있는 메이드입니다"
"이름은? 이름은 왜 빼먹어?"
"저에게는 이름이 없습니다. 씻는 곳을 찾으시는 거라면 제가 목욕탕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샤를을 참교육하고 몸이 너무 더러워 씻으려고 나왔던 것인데 나타난 여자가 창백한 피부와는 다르게 무척 동양인의 외모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굳이 이름을 물어본 것이었다.
"어...그래. 안내해 줘"
고개를 숙인 뒤 내 앞으로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에 천천히 따라간다.
"원래 이름이 뭐였는데"
"...잊었습니다"
"2달도 안 됐는데?"
그녀는 한국인이었다.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그녀의 직속 종자였던 여자들을 전부 만나봤기에 소설에서 넘어온 뱀파이어는 더는 없었다.
그런데, 또 다른 뱀파이어가 있다면 한국인 중 그녀 혹은 그녀 종자의 피를 받은 사람밖에 없을 것이다.
"저는....."
"그 입 계속 열면 죽는다"
메이드의 말에 대답한 것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근원지를 보자 그곳에는 익숙한 얼굴을 하는 뱀파이어가 한 손을 들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부군. 오랜만에 보네"
"사라"
"오, 내 이름도 기억하고 있었소?"
샤를의 종자 중의 한 명.
이곳에 있으면 금방 마주칠 거로 생각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빨리 마주쳤다.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야, 넌 꺼져. 그리고, 방금처럼 쓸데없이 부군이랑 이야기했다가는 죽여버릴 거니까. 입단속 잘해라"
"네, 알겠습니다. 사라님"
메이드가 고개를 숙인 뒤 저 멀리 걸어가는 게 보이자 눈살을 찌푸리며 사라를 바라보았다.
"왜 네 마음대로 보내?"
"부군이야말로 저런 애한테 함부로 말 걸지 좀 마소. 부군이랑 대화했다는 것을 여왕님이 알았다가는 저년 그대로 고문실행이니"
"...이야기만했는데?"
"알면서 물어보시는구만"
하긴, 방금 그녀와 함께 있으면서 하는 말을 들어보니, 그럴 것도 같다.
"너는?"
"나야... 설마, 죽이기야 하겠소?"
정말...여왕도 그렇고 이 여자도 그렇고, 나를 예전부터 알고 있다는 듯 대하는 게 무척이나 이질감이 느껴진다.
"그건 그렇고, 빨리 씻기나 하소. 부군 몸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쌍둥이랑 이아가 날뛴다고, 프리시아가 고생하고 있으니까"
"...냄새?"
"피 냄새도 심각한데, 그...뭐냐, 그 하얀색 그것도 좀 심하네"
뭐가 심하다는 것일까 싶어 그녀에게 묻고 싶었지만, 사라는 곧장 몸을 돌려 아까 메이드가 안내하던 길로 먼저 걸어가기 시작했다.
"뭐가 심한데? 많이 역해?"
"아씨! 닥치고 따라오쇼"
왜 갑자기 성질이야... 존나 무섭게.
그녀의 등 뒤를 따라가며 성 밖의 풍경을 바라본다.
저기 보이는 게 해운대인 걸까?
참 전망 좋은 곳에 성을 만들어놨다.
하긴, 부산 대부분의 사람을 뱀파이어로 만들었다고 하니 이곳에서는 그녀가 말 그대로 여왕일 것이다.
마냥 그렇게 주변을 살펴보다가 목욕탕에 도착했고, 나는 멍하니 그곳에 들어가 옷을 벗었다.
"...사라"
"왜...뭐요"
"좀 가지? 나 옷 벗어야 하는데?"
"거, 본다고 닳는 것도 아닌데 깐깐하네"
이년은 나한테 존대를 하는 것인지 반말을 하려는 것인지 한 가지만 했으면 좋겠다.
대체 무슨 말투야 저게
그녀가 뒤를 돌아가는 모습에 나는 갑자기 무엇인가 떠올라 그녀를 불렀다.
"뭐...나 부르는거요?"
"딴 애들은 어디 있어?"
"어떤...아, 그 존나 쓸모없는 기사랑 마법사?"
성녀는 사람 취급도 안해주는건가?
성녀를 찾고 싶은 생각은 별로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는 여왕님이 데려가서 잘 모르겠고, 그 쓰잘머리 하나 없는 기사는 뭐, 성 어디엔가 있을 거요"
말하는 꼬락서니 참...
그녀의 말투를 붙잡고 한 소리하고 싶기는 했지만...
저거 다 내가 설정한 거여서 한마디 말도 못 하겠다.
자존심 미칠듯하게 쌔서 남한테 존대는 죽어도 못하는 여자지만, 주인공 앞에서는 여왕님 눈치 때문에라도 억지로 존대한다는 설정이었다.
...정확히는 여왕님의 명령과 자신보다 강한 사람이기에 존대한다는 설정이었다.
"일단 씻고 나오쇼. 엄한 년들이 당신 탐내다가 여왕님한테 뒤지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왜?"
"당신 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그 냄새. 다른 뱀파이어들이 보면 환장할 텐데. 여왕님이 그걸 가만 두겠소?"
그녀의 말에 내 뇌가 잠시 정지 된 듯 멍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딴 개 같은 설정 짠 적 없다.
애초에 내 소설은 무료 전체이용가 소설이었는데 왜...?
하지만, 내가 그 설정을 만들었든 갑자기 생긴 것이든 그녀의 말은 내가 뱀파이어 한정 걸어다니는 페로몬 덩어리가 되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