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1화 〉LEVEL 3 (6) (31/87)



〈 31화 〉LEVEL 3 (6)

"물 온도는 알맞으신가요?"


생각해보면 샤를이 나를 찾아냈던 이유는 무척이나 단순한 것이었다.

피.


그저 그런 뱀파이어나 혹은 사라와 같은 종자였다면, 몰랐을 테지만 뱀파이어의 여왕인 샤를이라면 주인공의  한 방울만으로 부산에서 서울에 있던 내 위치를 특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과거 의도적으로 피가  적이 있다.


[잘못된 선택을 하셨으니 벌을 받으셔야겠네요. 주인님]

엘리제.
그녀는 분명 찜질방에서 잠을 잤던   나에게 키스를 하며 의도적으로 입술을 깨물었었다.


[어머, 실수]

누가 봐도 고의였다.

"어때요? 나른해요? 어깨 마사지해드릴까요?"


아마, 그 찜질방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었기에 그 조금의 피만으로는 부산에서 나라는 존재를 바로 알아내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지연이라는 학교 후배가 접근한 거겠지.


그리고 나는 공원에서...

[너? 야, 거기 너 뒤돌아봐봐]

손톱을 물어뜯다 피를 한 번 더 흘렸고, 내 주변에 붙어있던 뱀파이어를 죽이기 위해 왔던 라일라와 마주쳤다.

[요즘  구역에 누가 쥐새끼들을 많이 풀어놔서 잡으러 다니고 있거든]


그날 샤를은 내가 주인공이라는 것을 확신했을 것이다.


[서어어언~배~~님!]

그 여자가 죽어라 나를 붙잡았던 이유.
어째서 그날 샤를은 자신이 직접 오지 않고, 하위 뱀파이어나 직속 종자만을 보냈던 것일까?

[일 처리하느라 늦어버린 건데. 너무하다 우리 자기]

오늘따라 무척이나 머리가  돌아가는 느낌이지만 아직도 너무 정보가 부족해 결론이 나지 않았다.
어째서 그녀는...


"어때요? 시원해요?"

직접 물어보고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전혀 의도를 알아챌 수 없으니 당사자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며 빠른 해결방법일 것이다.


"드디어 절 봐주시는 거예요?  지금까지 투명 상태를  풀고 혼잣말한 줄 알고 당황했잖아요"

하지만, 전혀 대답해줄 것 같지 않았다.

"이거 그건가요? 방치 플레이?"


"엘리제"


"네, 주인님"


"저쪽에서 무릎 꿇고 손들고 있어"

온몸에 묻은 흰색의 것들을 씻기 위해 목욕탕에 들어와 준비된 물에 몸을 뉜 순간부터 허공에서 갑자기 등장해 자연스럽게 물 온도가 어떻냐고 물어보는 목소리에 순간 열이 뻗쳐 화를  뻔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화를 내는 것조차 기뻐할 것이다.
입으로만 주인님이고 사람을 장난감처럼 조종하려고 하는  여자에게 그 어떠한 감정도 내비치지 않는 것이 가장 올바른 선택이리라.

"화나...셨어요?"

"입 다물고 시키는 대로나 해. 그리고 내가 물어보는 거 빼고는 아무 말도 하지 마. 목소리 듣는 것도 싫으니까"

"...힝..."


자기 입으로 힝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내 말은 따르려는 것인지 자신이 입고 있던 메이드 복을 가지런히 한 뒤 내가 가리켰던 곳으로 얌전히 걸어가 무릎을 꿇고 손을 들었다.


대체 언제부터 날 따라다녔던 것인지 감도 안 잡힌다.
아니지?  계속 날 따라다녔다고 생각한 것일까?
내가 이곳에 올 것을 예상하고 기다렸을 수도 있는데...


"너,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주인님~ 멀어서 잘 안 들려요~"


아니면, 내가 이곳으로 오는 것을 유도했다거나...
내 말을 전부 들었음에도 못 들은 척하는 모습에 나는 천천히 탕에서 몸을 일으켜 한쪽으로 걸어갔다.

"주인님~ 제가 시중들어드릴게요~"

"입 다물라고 했다"


"히이잉"


이 여자는 숨기고 있는  너무나도 많았다.
왜, 성녀를 나에게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을까. 왜, 갑자기 사라진 뒤 인제야 나타났을까.
어째서, 내 위치를 샤를에게 알려주었던 것일까. 왜...

[시간이 지났거든요. 더는 못 돌아가게  때까지 붙어있어야 하니까요. 제가 없던 시간으로. 주인님은 제가 주인님이라 확신한 순간의 이전으로는 돌아가지 못하게  때까지 거짓말이라도 하며 붙어있어야죠]


왜 그딴 거짓말을……. 애초부터 그 주인공은 나와는 달리 자신이 회귀하는 날짜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었다.
주인공을 통해 본 게 아니라면, 내가 회귀하는 것으로 추측했다는 건데...
절대 불가능하다.

"너는 무슨 생각으로..."


말을 하던 중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절반은 거짓말이며, 나머지 절반은 나를 희롱하기 위한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녀에게 무슨 대답을 기대하고 그것을 물어보려 했던 것일까?


"네, 주인님. 얼마든 말씀하세요"

목욕탕 김에 의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작은 웃음이 깃들어있었다.
그녀는 참 무서운 여자다.
그동안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떠올려 보면 단  번도 진실을 말한 적이 없다.

"너는 뭘 하고 싶은 거야?"


"그거야, 당연히 주인님의 노예로서의 본분을 지키는 거죠"

거짓말이다.

"너는 애초에 나를 좋아하긴 해?"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싶지만, 짙은 수증기에 가려져 보이지가 않았다.
사실, 그냥 그녀에게 다가가서 확인하면 되는 일이었지만, 의미 모를 불안감이 뇌를 잠식해 그녀에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

"차라리, 일관성 있게 싫어한다고 말하지 그랬어."

그녀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그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밖으로 나가기 위해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겼다.

정말,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녀가 진심으로 나를 싫어했더라면,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를...


"...히익…. 흠흠...벌써 다 씻었네"

목욕탕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긴 붉은색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뒤로 무엇인가 감춘 듯 등짐을 지고 있었지만, 아래쪽으로 보이는 청색 바지의 모습에 나는 그녀가 무엇을 감춘 것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


"...뭐하는거야?"

"눈을 떠보니 네가 없잖아. 같이 더러워져 놓고 매정하게 혼자서 씻는 게 어디 있어."

"뒤에 숨긴 건 뭔데?"


뭐라고 대답할지 좀 많이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다.

"아깝잖아. 이렇게나 향이 많이 나는데 빨아버릴 수도 없고, 그러니 내가 가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어?"


"선물 잘 받을게"


예상했던 것보다 더 뻔뻔한 대답을 보며 대충 그녀가 어떤 컨셉으로 밀고 나가려는지 이해했다.
대충 한쪽에 걸려있는 흰색 목욕 가운을 집어 알몸 위로 걸쳤다.

"먼저 가지 말고 같이 씻자"


"싫어.  밖에 나가도 되지?"

"......"

"되지?"

"...내 구역만 벗어나지 마. 벗어나면 혼내줄 거야"


"어떻게 혼내주려고? 아까처럼 고홋 하면서 혼내주려고?"

"...너...하...같이  씻을 거면 됐어."


고개를 돌리고 있었지만, 그녀의 귀가 빨개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하루 본 것뿐이지만, 조금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어오거라"

그녀의 말에 바깥으로 연결된 문이 열리더니 메이드 복을 입은 여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목욕 시중이라는 것일까? 바로 앞에 엘리제가 해주겠다고...
그러고 보니 안쪽에 엘리제가 있다는 것을 깜빡하고 있었다.
손들고  있으라고 말하고  뒤에 따로 명령을 안 했던 것 같다는 생각에 몸을 움직여 욕실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안에 누가 있었어?"

"...아니, 없었나 보네"


영악한 년.
엘리제가 사라진 것을 깨달은 나는 빨리 이곳을 나가기 위해 몸을 돌렸고, 나가려는 도중 떠오르는 생각에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그녀에게 입을 열었다.

"라일라는 어디에 있어?"


"......몰라"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찔리는 게 있는지 눈을 맞추지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거짓말을 못 하는 부류일까?
하도 엘리제에게 당한 게 많고 방금에도 당했나 보니, 이 여자도 의도적으로 거짓말인 척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라한테 물어보니까 네가 데리고 갔다고 하던데?"

"...그 아이는 제대로 혼을 나야겠네"


사라...사실대로 알려줬는데 미안하게 됐네...

"그래서 어디 있는데?"

"...나중에 알려줄게. 이제 하루밖에  지냈어. 일단 즐겨. 그러고 나서 이야기하자"

"아직이라는 건 무슨 뜻이야."


"그 마법사 아이. 별로 안 좋아하지 않는 거로 알고 있는데...오히려 증오했던 여자의 행방이 그렇게 궁금해?"

속고 있는 기분이다.
엘리제도...이 여자도...
두 사람뿐만 아니라, 세상 전부가 나를 속이는 기분이다.

나만 모르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이미 거절당했는데 억지로 붙잡고 이야기한다고 해서 대답이 나올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자기야. 저녁 식사 전까지는 들어와"

"...생각해보고"

"그건 아니지! 첫날밤을 보내고 다음  외박하는 새신랑이 어딨어!"

"새신랑이라니 언제 우리가 결혼했다고"

"...약속했었어. 그러니까 여기 있는 동안에는 잠은 여기서 자야 해. 그러니까 딴 여자랑 자면 화...안돼"

결혼 약속까지 했다고 말하는 것일까?
그것에 관해서 물어보기 전에 이미 샤를은 욕실 안으로 들어간 이후였다.
 또한 이곳을 나가던 도중 여기 있는 동안에는 즐기라고 말했던 그녀의 말이 잠깐 머릿속을 스쳤다.


대충 옷이라도 구하자는 생각에 밖으로 나온 나는 곧이어 익숙한 얼굴을 마주 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처음 뵙겠습니다. 프리시아에요..."


내 앞에 서 있는 프리시아와 함께 익숙한 금발 머리 여자가  쪽으로 후다닥 달려와 등 뒤로 숨었다.

"...벨라.  있었어?"

"벨라 아니야"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하는데?"


"......"

얘는 대체 왜 이렇게 됐는지도 모르겠고... 솔직히 머리 아픈 일투성이였지만 내 컨디션은 평소보다 꽤 좋은 상태였다.


[용서해주세요]

생각하지 말자.
벨라를 이렇게 풀어준 것이라면, 그녀도 딱히 손대지 않았을 것이다.
어제부터 봤던 샤를의 행동을 생각하면 나에게 미움받을 짓을 하는 여자는 아니었다.

"프리시아. 남자   가져다줄래?"


***


옷을 가져다 달라고 말을 하니, 그녀는  바깥으로 나를 안내해주었다.
목욕 가운만을 걸치고서 밖을 나가자고 말을 해 거부했었지만, 성에는 남자 옷은 없다고 하며 아무도 신경 안  거라는 말에 억지로 그녀를 따라 나왔다.
그런데...

신경을 안 쓴다고 하지 않았나?


"맞춤 양복은 제작에 시간이 조금 걸리다 보니, 당분간은 이렇게 입고 다니시면 돼요. 아까  번씩 입어보신 옷들까지 해서 전부 성에 보내놓을 테니 입다가 질리시면 언제든 바꿔입으시면 되고요"


...엄청 신경 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신경 쓰인다.
치수를  것도 아닌데 가게를 들어오자마자 내 사이즈를 아는 것처럼 수많은 옷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마네킹이 된 것처럼 주구장창 옷을 입었다가 벗으며 프리시아 앞에서 패션쇼를 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아까 샤를이 선물 잘 받겠다고 말하며  옷을 가져가긴 했는데...

"그래도...이게 제일 나은  같아요..."

"그렇죠? 프리시아님도 보는 눈이 있으시다니까. 제가 구해온 것 중에 가장 비싼 걸 단번에 찾아내셨네요. 그리고, 부군님이 핏이 좋다 보니 뭘 입어도 어울리시네요. 외모도 너무 잘생기셔서..."

핏? 얼굴? 잘생겨?

"멋대로 부군을 재단하면 죽을 거야"

"죄...죄송합니다!"


"부탁한 일만 해줘...널 죽이고 싶지 않아..."

그저 장난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그녀는 자신의 허리춤에 걸려있는 레이피어를 꺼내서 점주의 목에 겨누고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곳은 뱀파이어 왕국이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새삼 깨달았다.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괴물이 일반 현대인들 위에 군림하는  어떤 의미인지.
일반적인 현대 화기는 당연히 통하지 않을 것이고, 아마... 핵폭탄까지 그녀들을 어쩌질 못할 것이다.
실제로, 유럽이 히로인에게 핵을 쐈다는 기사를  적이 있다.


그리고, 내가 회귀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그녀는 그 핵폭탄 속에서 살아남은 거겠지...

금발 머리라고 했고, 벨라는 이곳에 있으니 아마, 그녀는 수인일 것이다.
호랑이과 수인이자 피냐라는 이름을 가진 메인 히로인.
벨라는 내가  설정보다 강해져 버려 비교하기 어렵지만, 소설 속 라일라보다 약하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유럽연합을 상대로 그 정도를 보여줬다면...


벨라가 칼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고층 빌딩 몇 채가 사라질것이고, 진심으로 휘둘렀을 때 도시 하나가 사라질 것이며 그렇게 국가를 멸망시키는데 일주일도 걸리지 않을 사람처럼 생긴 괴물들.

"어떤 생각 하고 있어?"


"...아니, 아무것도"


"이거 어때?"

애초에 이곳이 일반 양복점이 아니라 여러 가지가 준비돼 있었던 것인지 현대에서 자주 보지 못할 드레스들이 잔뜩 있었기에 벨라는 분홍빛의 드레스 찾아 입고서는 내 앞에서 빙글 돌아 자랑했다.
벨라의 성숙한 외모와는 무척이나 이질감이 느껴져 다른 거로 입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때?"

"...예...쁘네"


"히히"


그런 말도 안 되는 힘을 가진 여자가 수십 또는 수백 번이고 망가졌었다.
가두고 가둬두던 그녀의 이면이 깨어나 주인공을 독차지하겠다는 일념으로 히로인들을 죽이고 나라를 멸망시켰다.


그녀를 멈추지 못해 회귀하고, 또 회귀하고...
그리고, 결국 그는 벨라트릭스를 버렸다.

더는 감당하지 못한다 생각했다.


아마...나 또한...
그러고 보니, 예전 회귀  그녀는 나와 관계 후 정상적인 모습으로 나를 지켜줬었다.
샤를의 종자들을 때려눕히며, 나를 지켜줬던 그녀가 회귀하고 나서 갑자기 변했다.
내가 한 것이라고는 그저 머리를 쓰다듬은 것밖에 없는데...


이미, 회귀 날짜가 변해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렸지만, 그녀가 변한 이유가 궁금하긴 했다.


"이제...어디로 가시는...건가요?"

옷을 입고 밖을 나오니 딱히  곳이 없었다.

피시방이나 갈까?
...피시방...
아무 생각 없이 쉴 곳을 찾던  첫 번째로 떠오른 게 피시방이라는 사실에 나는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진짜 별거 없는 사람이었고... 별거 없는 사람이 아니게  지 고작 해봐야 한 달 하고 며칠 지났을 뿐이다.
수도 없이 회귀해 반년이나 지나버렸지만, 실제로는 고작 해봐야 한  하고 며칠...


그런데..나는 정말 별거 아닌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

"평소에 해운대에 사람이 이렇게 없었어?"

"부군께서... 나오신다고 하셔서... 일대의 뱀파이어들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켰어요..."

사람은 물론 도로를 걷고 있음에도  한 대 다니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주변 상가 안에는 사람...아니, 뱀파이어들이 몇몇 카운터를 보고 있었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음에도 몇몇 길거리 노상도 개시하고 있었고, 심지어 포장마차까지...


전부  하나만을 위해 준비되어있는 것이다.
아마, 내가 이곳이 아닌 부산의 어느 곳을 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시끌벅적한 게 좋아"

"그러면...다시 부를게요..."


내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해도 되는 곳.

맞지 않는 옷을 입은듯한 느낌이다.
실제로 내가 입고 있는 옷도 불편하다.
그저 추리닝바지에 흰 티만 입고 있던 내가 수천만 원의 옷과 신발 시계 등을 걸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불편하다.

"...프리시아"

"네...부군"


"내가 널 처음 봤었나?"

"아...아뇨. 기억...잃으셨다고 하셔서..."

기억을 잃은 적도 없는데 이제 개나 소나 내가 기억을 잃었다고 말하고 있다.


뱀파이어들의 여왕인 샤를과 그녀의 직속 종자인 프리시아들이 주인공의 피를 착각할 리가 없다.
부정하고,  부정해도 나는 내가 쓴 소설의 주인공이다.
기존의 주인공이 아닌 바뀐 주인공.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내가 뭐라고?"


"부군은...받을 자격이 있어요..."

쭉 자신을 세뇌해왔다.
절대 아니라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인정하지 않을 거라 나 자신을 몰아붙였다.
그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싶지 않았고...그처럼 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처럼 망가지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기 싫다.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왜 해야 하는 것일까?


내가 있는 이곳은 안전할 것이다.
샤를이 있고, 그녀의 종자가 있다.
벨라 또한 내가 위험하다고 하면 나를 구하기 위해 정신을 차리고 나서주지 않을까?


세상이 멸망시킬 정도로 강한 히로인이 오더라도 이 라인업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정말 드래곤이나 마왕이 오더라도 나는 안전할 것이다.

[이제 하루밖에  지냈어. 일단 즐겨]

그녀의 말이 또다시 머릿속을 스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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