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3화 〉LEVEL 3 (8) (33/87)



〈 33화 〉LEVEL 3 (8)

[만약, 모두가 기억을 잃어버렸고 나 혼자만 기억한다고 하면 혼자만 기억하고 있던 일들은 전부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되는 걸까?]

수도 없이 죽어왔다.
죽고  죽고... 또 죽고...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 여기고 싶었다.
내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겪었던 고통과 감정을  누구도 이해해주지 못하기에 입밖으로 내고 싶지 않은채 잊고싶었다.


[선생님은 그래도 돼요. 그동안 힘들었잖아요]

그녀가 말하는 그동안이라는 말은 내가 회귀로 겪은 시간을 말하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소설 속 세계를 포함해  말일까?

[역시 똑같잖아...거짓말쟁이]


왜 그녀들은 하나같이 나를 그와 동일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가지고 있는 기억이 다르고, 경험한 게 다른데, 어째서 동일한 사람이라 생각하는 것일까.


[그러면, 반대로 나 혼자만 기억을 잃고 모두가 기억하고 있다면, 모두가 기억하고 있던 일들은 전부 없었던 일이 되는 걸까?]

보통 사람이라면 잊을 것이다.
나와의 추억을 전부 잊어버린 사람을 동일한 사람이라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국 잊을 것이다.

기억상실증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습관, 성격, 가치관은 같지만, 타인과 나누었던 감정의 교감과 그로 인해 일어난 추억들을 전부 잊는다.
한쪽에서만 가지고 있는 추억이라는 건 과연 의미가 있는 기억일까?

사실 전부 핑계고, 쓸데없는 소리다.
사실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나는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다는 것에 장황한 핑계를 대는 것이다.

정말 진심으로 되고 싶지 않았다.

주인공이 된다는 건 그녀들을 책임지라는 말이 되는 거니까...


[나는 누구에게 용서받아야 하는 거야?]

샤를은 주인공을 괴롭히고 또 괴롭혔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설정했으니...분명, 그녀가 용서를 바라는 것은 그런 이유일 것이다.
기억도 없는 나에게 용서를 바라는 여자를 나는 어떻게 감당해야 될까?


설령, 안다고 해도 내가 무슨 자격으로 그녀를 용서할까?


[주군의 보잘것없는 기사가... 비록 이룬 것은 없지만... 과거... 주군의 약속을 지키고자 합니다]


벨라는 애초부터 주인공도 포기했던 히로인이였다.
툭 건들면 망가져 버려 주인공도 도저히 손을 쓰지 못하고 버린 여자였다.


그런 여자를 아무런 힘도 가지고 있지 않은 내가?


[주인님께서 먼저 시작하셨어요. 제 주인님이 되시겠다며  눈앞에 나타나셨잖아요. 그러니 책임지셔야죠]

나는 엘리제가 지금도 무슨 생각을 하고 다니는지 모른다.
그녀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조차도 모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녀가 무슨 꿍꿍이를 가졌는지조차 모른다.

그리고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두렵다.

[선생님이 저를 위해 만들어주신 팔이랑 다리에요. 제가 가진 감정도 선생님 덕분이고, 심장이 뛰고 있는 것도 전부 선생님 덕분이에요. 제가 살  있었던 것도 선생님 때문이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이유도 선생님 때문이에요. 그래서, 선생님 없으면 저도 없어요]

라일라... 할 말이 없다.
그녀가 자신의 몸을 해하는 한이 있더라도 날 상처입히지 않을거라는 것을 알고있음에도 그녀와 마주하는건 꺼려진다.
2일정도 지났지만, 아직까지 그녀를 어떤식으로 대해야할지 감이 안잡힌다.


[하..하지만..차..차라리 사료를...주..주세요..저..저는 자격이..어어어없어요...]

그래,  성법도 사용 못하는 성녀 또한 대체 어떻게 해야할지...

주인공이 되겠다는  이 여자들을 책임을 지겠다는 말이다.


그녀들은 주인공에게 받은 것이 있다.
그리고, 줘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주고 싶은 것들이 있으며, 줘버린 것들이 있다.


그게 사랑이 되었든, 애증이 되었든, 용서되었든, 부탁이 되었든, 소유욕이 되었든 주인공은 그것들을 마주 해야만 한다.

나는 여덟 번을 죽었음에도  한 명도 책임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떻게...내가 주인공이 될수 있을까?

유일하게 샤를이 가능성이 있어 보이지만 솔직히, 마지막 순간 그녀가 보여주었던 표정을 보며 나는 샤를 또한 만만치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대체 왜 나는 순애를 안 쓰고 하렘을 썼던 것일까.

[벌써 하렘 구성원 20명 달성! 작가님 사랑합니다!]
- QWE123

아...나는 왜 치정 같은 걸  걸까. 그냥 성장물이나 쓸걸.

[아니, 캐릭터의 매력은 얀 수치에 따라 달라지는거 모릅니까? 작가님. 우리 아리의  수치가 하향 조정된 것 같습니다. 정식으로 아리의 얀 수치를 상향할 것을 요청합니다.]
- 얀데레다이스키

적어도 조금 유순하게 쓸걸.


[저걸 살린다고? 하... 다음 편에 저 새끼  죽어있으면 하차함]
-하차좌


하다 하다 이제는 독자 탓으로 돌려보았지만...이미  소설은 어디론가 증발해있고, 독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황이었기에 독자 탓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내 팔랑귀가 제일 문제지만...

"선생님. 머리 아프세요? 치료마법 걸어드릴까요?"


"마법으로 외상치료만 되는 거 아니야?"

"그래도 뭔가 좀 다르지 않을까요?"

소파에 누워 생각을 정리하던 도중 라일라의 목소리에 눈을 떴고, 곧이어 얼굴 바로 앞에 그녀의 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 하려고 했어?"

"치,치료마법 쓰려고 했어요."

뭔가 꺼림직한 느낌이 들었지만, 애써 무시하고 고개를 돌려 집안을 둘러본다.

오늘이 9월 8일이니까...
대충 내일쯤에나 샤를이 이곳에 올 것이다.

샤를이 안전하다는 것을 안 이상 굳이 이곳에 있을 필요는 없었기에 그녀가 이곳에 오면 얌전히 부산에 따라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느낌이 이상하다.

정말, 느낌이...


"엘리제"

"네, 주인님"

"너는  여기 있어?"

절대 이곳에 있어서는  되는 여자가 오늘 아침에 갑자기 나타나 내 기분을 잡치게 만들었다.
또또, 이 여자 때문에 뭔가 비틀렸다.

"노예가 주인님 옆에 있는  당연...."

"손 내리지 마. 일어 서지 마. 얌전히 거기서 대답이나 해"

"...나빠..."


그녀는 아침에 내 앞에 등장한 순간부터 저녁 식사 시간인 지금까지 쭉  멀리서 무릎 꿇고 손들고 있었지만, 최약체긴 해도 나름 초인이기는 한 것인지 하나도 힘든 기색이 없어 보였다.


솔직히 지금까지 엘리제가 나에게 했던 행동들만 봐도 충분히 버릴만했다.


라일라를 시켜 엘리제를 이곳에서 내쫓아버린 다음 다시는 이곳에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만들어도 무죄다.


그런데도 내가 그녀를 내버려 두고 있는 것은...

"아, 거슬리네. 청소할거니까 좀 비켜"

고개를 들자 라일라가 청소기를 들고 일부로 그녀 앞을 지나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할 거야. 가만히 내버려 둬"

"선생님~  여자가  저한테  걸어요~"


아침에 그녀를 처음 봤을 때에는 적당히 시간 봐서 쫓아내려고 했었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생각이 바뀐다.


"선생님. 오늘 저녁은 어떤  좋아요? 스테이크? 아니면, 저번에 맛있게 드신 오믈렛?"

"요리도 못하는 주제에"

"입 닥쳐"


"어머, 주인님. 얘 말하는  봐봐요. 상스러워서 정말"


서로 심각할 정도로 싫어하고 있다.

[저는 저 아이를 무척이나 좋아하거든요]

어쩐지, 그녀가 좋아한다는 말을 입에 담더라...
나한테도 안 하던 말인데, 라일라를 좋아하는 아이라고 했다?
이거는 그냥 못 넘어간다.

어차피 쫓아내 봐야. 몰래 들러붙을  알고, 그녀에게 타격이 전혀 없을 테니.
이렇게 옆에 두고 계속해서 라일라 편만을 들어주면, 조금이나마 내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을까?

"엘리제. 입 다물어"

"...그치마안~ 주인님. 이 어린녀...아이가 자꾸 까불잖아요. 주인님의 나라에는 장유유서라는게 있는데. 버릇없이"


"입 다물어"


뾰로통한 얼굴을 한  나와 눈싸움을 하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들고 있는 손을 아직 내리지 않은 것을 보니 내 말은 계속 들을 생각인  같다.


내가 아는 그녀라면 금방 어디론가 숨어버렸을 텐데...
아직은 참을만한가?
아니면, 내가 어디까지 화나게 하나 시험해보는 것일까?

뭐가 되었든 그녀가 화만 나면 된다.
그래야 내 속이 조금이라도 풀리지.

"음... 냄새부터 너무 별로다. 그리고 너무 태우는 거 아니야? 주인님은 미디엄 레어가 취향이신데~ "

"선생님! 저 여자가 또 말해요!"


"엘리제.  번 더 말하면 물구나무서고 있으라고  거니까 알아둬"

"그치만... 주인님 입맛은 저딴 애보다 제가 훨씬 잘 아는걸요?"

지금까지 엘리제가 해준 밥만 먹다 보니 입맛이 조금 높아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멋대로 가출해버려 그녀가 해준 음식을 먹지 못했고, 샤를의 성에 있을 때에는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요리사들의 음식을 먹었기에 이제는 그녀가 해준 요리가 어떤 맛이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아, 말했네? 물구나무서"

"네...?"

"못 들은척하지 말고, 그 자리에서 물구나무서"

"저 보이는데...치마..."


메이드 복을 입고 있어 치마차림이긴 했다.


"팬티? 그게 뭐? 부끄러워?"


"아니, 그게 아니라...팬티 안 입었는데..."


순간 당황할 뻔했지만, 그렇다고 입을 다물면 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그게 뭐?"

"치..."

"안 할 거면 나가던가. 라일라. 엘리제 여기서 내보내면 다시  들어오게 할 수 있지?"


"네~  공방에서  번이라도 나가면, 저 여자라도 절대 못 들어오게 할 수 있어요~"


그저 할 수 있다는 말이었지만, 어째서인지 당장 이곳에서 꺼지라고 말하는듯했다.
이 두 사람은 어째서 앙숙이 된 것일까?

입술을 깨물고서 애탄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엘리제는 곧이어 팔을 내려 바닥을 짚었다.

"정말...해요?"


"응"

"차라리 때려주시면 안 돼요? 이런 벌 말고... 손이 아니라 매도 괜찮은데...엉덩이 찰싹찰싹 맞으면 이쁘게 아파할게요. 저 앙앙 잘 울어요"


"안  거면..."

"할게요! 하면 되잖아요! 진짜!"

그녀가 처음으로 짜증을 내비치는 모습에 뭔가 가슴속에 응어리 진 것이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이 여자 때문에 대가리가  번이나 깨질뻔했는가...
입만 열었다 하면 사람 가슴을 사정없이 후벼파 얼마나 힘들게 했던가...

그녀의 다리가 높이 올라가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았고, 곧이어 그녀의 치마가 중력이 이끌려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이것도 구라를 치네"

"그치만..."

"입 다물어. 변명도 하지마"


"너무해..."


검은색 메이드 복에 깔맞춤 한  검은색 팬티가 눈에 들어왔다.
물구나무서게 하면 추할 거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원판이 좋았던 탓일까...


그녀의 흑단 같은 머리카락이 중력에 이끌려 바닥에 내려와 있음에도 그녀는 얼굴만으로 뭔가...뭔가...그래, 예쁘긴 예뻤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주인니임...이제 그만하게 해주세요..."


얼굴이 새빨개지면 조금이나마 추해 보일까 싶지만, 전혀 무리 없이 해내는 모습에 괜히 시켰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어떤 벌을 시켜야. 이 여자가 조금이라도  추해져 보일까...

"선생님. 식사 준비 됐어요"

"벨라랑...디아나 불러줘"

"네, 선생님"


디아나?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엘리제. 이제 일어나도 돼. 너도 밥은 먹어야지"

부엌으로 가서 식탁에 앉으니 벨라나 디아나가 오는 게 보였고, 곧이어 식탁을 준비하던 라일라의 팔목을 붙잡았다.


"그거, 엘리제 거야?"

"네...치울까요?"

"아니, 왜 그걸 치워. 엘리제가 아무리 미워도 밥을  주면 어떻게 해"

"그러면 어떤 일로..."


나는 예전 디아나에게 줬던  밥그릇을 찾아 그 안에 스테이크와 샐러드를 넣었다.
아, 오늘 메뉴가 찌개 같은 거였다면 참 좋았을 텐데

탄수화물도 챙겨야 되니 쌀밥도 넣고, 비타민도 챙겨야 되니 레몬도 대충 몇 개 집어넣었다.

"엘리제. 왜 거기  있어? 밥 먹을 준비해야지"


"주인님...아니죠?"

내가 하는 짓거리만 봐도 무엇을 할지 아는가 보다.
하긴, 자기가 디아나한테 하던 짓이었으니 잘 알겠지.

"왜? 네가 생각하는 게 맞는  같은데?


"이런 식으로 절 미워하면 저 나쁜 짓 할지도 몰라요"


"쭉 나쁜 짓 해 왔으면서, 뭘 새삼스럽게"

나는 바닥에 그릇을 내려놓고 얌전히 바닥을 가리키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뭐해? 꿇어야지"


생각해보면, 그녀가 나에게 거짓말을 한  빼고는 딱히 잘못한 게 없긴 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그녀가  믿음을 배반했기 때문이다.


뭐...디아나한테 한 짓도 있고? 이게 인과응보라는 것이겠지.


무릎을 꿇고서 얌전히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래, 이게 맞지.
이게 진짜 옳게 된 관계다.
뭔가 이제야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된 느낌에 나는 그동안에 정신적 고통이 치유되는 기분이 들었다.


"왜 날 봐? 먹어"

"먹기...싫어요"

"먹어"

"오늘 배가  고파서  먹을래요"

"먹어"


"주인님...저 배가 너무 아픈 것 같아요. 생리가 왔나 봐요"

"먹어"


"...주인님...저 미워하시는 거예요?"


"아니, 안 미워하는데? 그냥  먹으라고. 먹기 싫으면 나가던가. 아! 왜, 내가  버리는 건 괜찮아도 네 발로 직접 나가는 건 아닌  같아?"


"자꾸 그러시면...저...진짜 무슨 짓을 할지 몰라요. 경고했어요"

"일단 먹어. 고개 처박고 얼굴에 기름이랑 밥풀 묻히면서 싹 비워. 이야기는 그다음 들어줄게"


그녀는 더는 동정이 안 통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인지 이제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거...거거거걱정 마세요. 자...작은...주인님...제...제가 다 먹을..."


"넌 거기 얌전히 앉아서 수저로 먹어. 내려올 생각하지 말고"

"...네...주,주인님..."

나쁜 짓을 하겠다는 협박에도 내가 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자 그녀는 고개를 천천히 내려 밥그릇으로 가져가는  눈에 들어왔다.


실시간으로 그녀가 망가지는 것을 보고 싶어 고개를 내릴 즈음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흑..."


이상한 신음을 내며 어깨를 들썩인다.

"저는...아무것도...안했는데...너무해요..."


"우는척하지 마. 안 통하니까"

이렇게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 것일까?
그렇게는 못 한다.

"30분 안에 전부  먹으면 네가 나가고 싶다는 거로 알아들을..."


"저는...흐윽...그냥...주인님에게...이쁨...받으려고...한 것밖에 없는데..."


선넘네?
정말 못하는 게 없는 것인지, 연기까지 수준급이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곧장 속아 넘어갈 것이다.

"저...저도 벨...라처럼 주인님에게...안기고...흐윽...싶어서...열심히..."

그녀의 말을 끊기 위해 내가 입을 열려던 중 갑작스럽게 등 뒤에서 무엇인가가 떨어지는 소리에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바닥에 떨어진 뒤집개.
그리고, 놀랜 얼굴을 하고서 엘리제를 바라보고 있는 라일라.

"주인님이...저한테...키스해주셨던게...아직도...생각나서..."

"엘리제. 내가 졌으니까. 이제 그만하자"

"저...벨라처럼...배에 주인님...아기즙...가득 담고...싶어서...그랬던 거에요...저...도...주인님에게 사랑을..."


"엘리제!"

말은 엘리제에게 하고 있었지만, 내 눈은  뒤에 있는 라일리에게 고정되어있었다.
남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치사하지 않나?

"선생님? 그...정말...아니죠? 선생님이...다른 여자에게 사랑을 주셨다는걸...한번도 들은 적이...없는데...아니죠?"

"흐윽...저...그날 엄청 가슴 아팠는데...참았어요...저에게 처음으로...입맞춤 해주셨다는걸 알고...있으니까"

"엘리제. 입 닥쳐라"


"선생님. 아니죠? 저년이 지금 거짓말하는 거죠?"

라일라의 눈이 이상하다.
이건 정말 느낌이 안 좋다.

"선생님. 여자 기사는 저 신경 안 써요. 한마디만 하시면 되요. 저년한테만큼은 아무 짓도  했다고 한 마디만...... 선생님...선생님 저 여자 죽여버릴게요. 그래도 되죠?"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이미 대답을 들었다는 듯 라일라는 주변에 얼음으로 된 날카로운 것들을 만들어내었다.


"...저...저 주인님의 소중한 곳을 만졌을 때...정말...기뻤..."


"엘리제!!!"


나는 곧장 라일라의  어깨를 붙잡고 눈을 나에게 고정하려 했지만, 초점이 어디로 간 것인지 보이지가 않았다.


"선생님. 잠깐만 비켜주세요. 이상하게 마력이 컨트롤이 안 돼서. 다칠 수도 있어요"

라일라가 정말로 엘리제를 죽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회귀할 수는 없다.

아무리 그래도...이딴걸로...

"네가 처음이었어"

"네?"


"섹...아니, 그래 사랑을 나눈 거. 그거 네가 처음이었다고 키스도 처음이었고"


재대로 효과가 있었던 것인지 그녀의 초점이 나에게 고정되었다.


"저...저는 기억이...어...없는데..."

"당연하지, 회귀 전에 일어난 일이니까"

"그러면...저에게 주셨던 사랑이...전부 없었던 일이..."

"그런 게 어디 있어! 내가 기억하고 있잖아"

"그러...네요. 아무리 동정심에 해준거라지만, 선생님의 처음을  여자가 가져갔다고 생각하니... 화가나 버렸어요. 죄송해요"


살이 얼어붙을 정도로 차갑던 주변의 공기가 점차 따스해지는 것을 느끼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동정심? 나는 그런 말 내뱉은적 없었다.


"선생님. 그러면, 저년 팔 하나만 자를게요. 아니, 목만 살짝 자를게요"


"너도  다물어"

복수고 뭐고 엘리제 이년은 무조건 내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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