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5화 〉LEVEL 3 (10) (35/87)



〈 35화 〉LEVEL 3 (10)

예전 그가 가지고 있는 라일라와의 기억을 보며 무척이나 궁금한 것이 있었다.


설정상 라일라의 팔다리가 없는 것은 성녀의 손짓 한 번이면 고쳐질 것인데 왜 그는 그렇게 지켜만 보고 아파했던 것일까?
성녀라는 존재는 처음으로 용사를 대면하고 무조건 사랑하게 만들어진 캐릭터인데 어째서 부탁 한번을 하지 않고 라일라를 죽도록 내버려 두었던 것일까?

하지만, 라일라가 죽는 것을 보고 그가 수도 없이 슬퍼하며 회귀했을 때. 나는 그 이유를  수 있었다.

"성녀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불허합니다"

"딱 한 번이면 됩니다. 부탁드립니다"

성전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수도 없이 받으며 그는 성녀를 만나길 간청했다.


"제발...제발 부탁드립니다"

어째서 그가 이렇게까지 하는 것일까?

잘 생각해보면 그는 라일라와의  만남 때부터 성밖에서 용병 생활을 했었다.
벨라와의 기억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로제와 함께 다니며, 전쟁을 도와주는 전쟁 용병의 신분일 뿐.
용사와는 전혀 무관한 존재로서 움직였다.


왜?

그리 어려운 질문은 아니었다.

'무능한 용사'

약해빠진 용사는 용사가 아니다.
나는...아니, 그는 약했다.
재능도 없었고, 눈치도 없었으며, 머리도 나빴을 것이다.

용사로 소환이 됐는데, 정말 마을 사람 1이 소환돼서 밥만 축내고 있다고 한다면, 내가 왕이라 해도 내쫓을 것이다.

그래...나라면, 이해했을 것이다.
좆 같긴 해도 내가 약한 건 사실이니까.
이해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당신은 정말 쓸모가 없는 인간이군요. 그렇게 모욕을 당하고 다시 또 이곳에 찾아온 것입니까?"


그런데, 그때 느꼈던 감정.
그날 그가 그녀에게 느꼈던 감정은 대체 무엇일까?


분노.
보고 있는 나까지 그녀에게 화가나 당장이라도 그녀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정도로 그는 그녀에게 분노하고 있었다.
원망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그녀를 역겨워하고 있었다.

마치, 얼마 전 내가 라일라를 보던 것처럼...

"도와줘...아니, 도와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지금 저에게 뭐라 말씀하신 건가요? 당신이 대체 뭐라고 제가 도와드려야 하는 거죠? 그날 당신이 내게 주었던 수치로 아직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데, 부탁이요?"

그가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기까지 얼마나 고뇌한 지 나는 알고 있다.
 별 볼 일 없는 아이가 걷는 것을 보고 싶어 미칠 듯이 고뇌하던 기억이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부탁...할게..."

"싫습니다"


"딱 한 번만...한번만...들어줘. 진짜 마지막이야. 들어준다면, 다시는 이곳에 얼씬거리지 않을게. 아직 어떤 부탁을 하는지 이유도 못 들었잖아"

"더러우니까. 놓으세요"


그는 그녀의 옷자락을 잡으며 애타게 부탁했다.
증오하고 미워하는 이에게 부탁할 때 그의 감정은 정말...다시 기억하고 싫을 만큼 끔찍한 것이었다.

그와 그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는 결국  기사들의 손에 붙들려 신전에서 쫓겨났었다.
자존심을 내려놓고 굴욕을 잊었으며 발악했던 결과물을 마주하자 그는 실성이라도 한 듯 신전 문 앞에서 한참을 웃었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
마치, 지금의 나처럼 그날의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만큼이나 라일라가 소중한 존재였던 걸까?
아니...
그에게 있어 라일라라는 존재는 희망 같은 느낌이었다.

그저 계약에 얽매여있던 로제와는 달리 라일라는 그에게 있어 살아가는 동력 같은 느낌이었다.
얼마 만나지도 않았고, 그저 그녀를 돌봐주기만 했을 뿐임에도...그는 자신이 타인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느꼈고, 너무나도 행복해했었다.


솔직히 공감은  수 없었다.
하지만, 이해는 할 수 있었다.
그의 감정을 전부 느끼다 보니, 공감을 못 함에도 이해를 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만들어졌다.


과정이야 어떻게 되었든 결과적으로 엘리제의 도움을 받아 성녀를 움직여 라일라를 치료했다.
그때 나는 왜 성에서 쫓겨났는지만 궁금할  왜 그렇게 성녀를 싫어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무척이나 이상하다.
여신의 선택을 받은 용사에게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는 성녀가 어째서 그를 막대했던 것이고 어째서 그는 그녀를 미워하게 된 것일까?

"일어나셨나요?"

"어"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어둡지만 눈에 띄는 분홍빛의 머리카락이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것인지 기절하기  입고 있던 것과 똑같은 옷을 입은 채 나를 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눈을 감고 다시 자는척할까 고민했다.

장난칠 기분은 아니지만, 진심으로 이 상황을 꿈이라 여기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의자에 앉은 채 팔을 움직여 보았지만, 당연하게도 묶여있었다.
눈을 가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여겼을 테지만, 곧이어 보이는 풍경에 눈을 가려주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어때요? 제 방인데. 전~~부  보물들이에요"

별로 대단한 것들은 아니었다.
그저, 사진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방이었고,  사진들의 주인공이 나라는 것뿐. 별로 신기한 일은 아니었다.


"이곳에는 카메라라는 게 존재해서 너무 행복했어요. 그동안  용사님의 그림만을 가진 채 만족하며 살아왔는데, 사진과 동영상이라니. 이게 바로 문화충격이라는 걸까요? 이거 보세요. 사진을 찍을 기회가 별로 없어서 동영상으로 하나하나 캡처했는데, 어떠세요?"


"이렇게나 나한테 관심이 많으면서  연기를 한 거야?"

"연기... 용사님은 그게 연기로 보이셨나 봐요?"


내가 찍힌 사진을 들고 고개를 갸웃해 보이는 모습.
그녀와 눈을 마주칠 때 느껴지는 특유의 분위기는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어주기 충분했다.

"연기 아니었는데... 헤... 있잖아요. 용사님을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건 상관없었어요. 그런데, 그년을 작은 주인님이라고 부를 때마다 제가 얼마나 역겨웠는지 아시나요?"

"그래...알았으니까. 그만하고 풀어줘"

중요한 기억이 빠졌다.
그렇기에 그녀를 대하는 게 무척이나 어려웠지만, 이렇게  사진을 박아놓은 것만 해도 그나마 호감이 있다는 뜻이었으니 차근차근 말로 풀어나갈  있을 것이다.

"제가 왜요?"

"나한테 미움받으면  되잖아. 어쩌다가 내가 풀려나서 다시 회귀하게 되면 어떻게 하게? 지금이라도 풀어주면 없던 일로 해줄게. 그러니까. 응?"

"아~ 맞네요.  마법사...헤헤...맞네...아마, 금방 여길 알아채고 오겠죠. 맞아요. 용사님은 금방 풀려나실 거예요. 세트린느도 그 괴물 같은 마법사에게 결국 지게 될 거예요"


흑마법사 세트린느.
좀비를 보고 그녀와 관련 있을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완전히 협조하는 상황일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그러니까. 어서 풀어줘"

"있잖아요. 용사님. 지금 어떤 기분이세요? 기억을 잃으면 정말 아무 생각이  나는 거예요?"


광기.
이제야 방금 그녀의 눈과 마주쳤을 때 느껴지던 오한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
그녀가 망가진 연기를  줄 알았는데...

"없던 일...없던 일...없던 일...히히힉...헤에... 없던 일이 되는 건가요?"


"그래. 그러니까..."

"어떻게? 어떻게어떻게어떻게어떻게어떻게어떻게 기억을 잃으셨다고 말하실수 있어요? 그 누구도 아닌 당신이?... 그러면 어떻게 해요...그러면 안되는거 잖아요? 그렇죠?"

혼자 깔깔대며 웃던 그녀는 순식간에 악귀가 씐 것처럼 나를 노려보며 소리를 질렀다.

"아, 기억을 잃었구나. 맞다...그랬지...전부 잊어버렸죠. 전~~~~부... 잊었어..."


"디아나"

"네. 용사님을 평생 사모하고 있는 디아나에요."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야 풀어줄 수 있어?"


"어...아...그런거 없는데...아...저에게 했던 것들 전부 기억하시면 생각해볼게요."


가능할 리가 없다.


"아 참, 힌트! 기억을 찾는데 도와드려야 되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내 앞에서 자신의 원피스를 잡고 갑자기 벗어버리기 시작했다.
어째서 그녀는 내 앞에서 옷을 벗는 것일까?
여러 의문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곧이어 눈에 들어오는 그녀의 나신을 보고 나는 그녀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거 다 용사님께서 써주신 건데... 이거 보세요. 이건 용사님이 달아주신 거. 그리고 이건..."

지금 이걸 내가 했다고 말하는 것일까?

"아...이렇게 말씀하시면 모르실 수 있구나. 하나하나 설명해드리면 기억해내시기 편할까요?"

그녀는 자신의 커다란 가슴을 들어 올려 나에게 가져와 가운데에 파묻혀있는 링을 보여주었다.


"저 유두가 숨어있는 게 콤플렉스인 걸 어떻게 아시고, 용사님이 편하게 뺄  있게 이렇게 커다란 링을 만들어주셨었죠. 보기  하라고 만들어놓으셨던  같은데, 이상하게 저 끈에 묶어서 끌고 다니셔서 조금 아팠었어요. 여기여기 여기 그려져 있는 100점 50점 10점은 주인님이 다트 던질  쓰던 곳이었어요. 심심하실 때마다..."

"그만해..."


"아...별로 안아팠는데...듣기 싫으셨나 보다...그럼 여기 쓰여 있는 '변기통'은 제가 자궁이 없어서 써놓으셨어요. 이제 아이도 못 낳으니 변기 역할만 하라고 하시면서..."

"그만하라니까"

"그리고 여기 음핵에 있는 반지 보이시나요? 이건 옛날 용사님이 저에게 선물해주셨던 반지였어요.  반지를 받았을 때... 저한테 사랑한다고 말씀해주셨었는데...헤헤... 약혼반지...헤헤헤"


그날을 상상하는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소설과 달라져 버린 라일라와의 관계를 봤을 때.
소설 속 히로인 중...극도로 미워하는 여자가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적이 있다.
그처럼 편협한 놈이 좋은 모습만 하고 이 세계에서 살아갈 리가 없으니...분명 원수를  히로인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라일라가 나를 망가트렸을  만약 내가 강했더라면... 나는 라일라에게 복수했을 것이다.

정말 만약... 그가 용서하지 못할 정도로 증오하는 여자가 생겼고, 이후 그가 힘을 가지게 되었다면...


"아 참, 처녀도 아니라는 말을 해야 하는데... 용사님 전용 변기통이다 보니, 사람이나 동물 걸 넣을 수는 없어서 아무거나 막 집어넣어 찢어버렸는데..."

"......"

"제 손으로 처녀를 찢는 모습을 보여주면 버리지 않겠다고 해주셨거든요. 그래서 막 주변에 보이는  아무거나 막 넣었어요. 제일 처음은...돌맹이가 가져갔던 것 같은데... 여기 오면서 잃어버렸네요. 제 첫 경험을 가져간 건데 잃어버리다니, 참  써먹을 년이네요."

그는 대체 그녀를 얼마나 원망했던 것일까?
그녀가 그에게 무슨 짓을 했길래 이렇게까지 했던 걸까?

"용사님이 저보고 가치가 없다고 할 때마다  진짜 열심히 했어요.  수도 없이 용사님 원망했는데... 미워했는데... 그래도 열심히 했어요.  그런지 아세요?"

"....."

"모르시구나... 정말... 다 잊으셨네요... 전부..."

그녀의 말이 끝나고 나자 의미 모를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해 눈을 떴다.
어깨를 들썩이며 홀로 깔깔 웃는 모습에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용사도 주인공도 아니야. 그러니까 내가 한  아니야"


"헤에...그런가요? 아...그렇구나...이제 아니구나..."


솔직히 저 정도까지 했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아무리 라일라에게 당했던 것을 떠올려 봐도... 내가 저 정도까지 여자를 상대로 분노를 표출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화가 나고 증오하더라도... 상대방의 인생을 망가트릴 정도로 나는 정신력이 강한 새끼가 아니다.
라일라가 내가 당했던 것을 그대로 나에게 보여줬을 때도 나는 그녀가 너무 불쌍하다 여겨 용서하려 했던...아니, 용서해버렸던 마음 약한 새끼다.
그런데, 내가 설마 이 여자를 그렇게까지...


"쿠엑..."

생각을 잇던 도중 복부에서 느껴지는 고통과 함께  몸이 뒤로 날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함께 묶여있는 의자와 함께 바닥을 구르고 나니 전신에서 올라오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아악!!!"

"아픈가요? ...아프면 안 되죠...우리 용사님...아프면 안 되죠...제가 실수했어요. 우리 사랑하는 용사님 때리면 안 되는데...그렇지만, 용사님이 잘못하셨어요. 용사님이 아니라고 하시다뇨...용사님이 아니라고 하시면 그럼 누가 용사님인데요?"


나신으로 나를 내려다보던 그녀의 손에 흰색의 빛이 서리더니 내 몸에 느껴지던 고통이 완전히 사라졌다.


"죽여. 그냥"

"제가요? 제가 용사님을 왜 죽이겠어요... 저... 좋았어요... 그래서 기억해달라는 거예요... 그렇게라도 관심을 받았던 때가 좋으니까"

광기 넘치던 그녀의 눈동자에 슬픔이라는 감정이 보였다.

그녀는 미쳤다.
용사라는 사람에 미쳐있다는 것은 이 방안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내 말에 슬퍼 할 정도로 이성적이다.
정신력의 차이인 걸까?


"하나하나 말해줘. 들을 테니까. 기억은 못 해도 들을 수는 있잖아. 그러니까 일단..."

"기억을 못하시면 안 돼요...아...기억을 못 하면, 그때로 다시 돌아가면 되는구나...아..."


"디아나. 이제 그만하고 천천히 이야기해보자"

내가 이름을 부르자 그녀의 보라색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맞아...그때도 그렇게 부르셨어요...가슴큰 노예년이 아니라... 암캐가 아니라... 저를 그렇게... 다정하게... 저를 그렇게 미워하시면서... 속이겠다고... 그렇게 다정하게 말씀해주셨어요"

"......"


"저...저...용사님이 사랑한다고 말해주셨을 때... 너무 행복해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어요...맞아... 저에게 복수하기 위해... 엄청나게 사랑한다고 말씀해주셨었는데... 청혼도 해주시고... 맞아... 다시 절 가지고 놀지 않으실 거라면... 그때처럼 다시 원망하게 되면...헤헤헤 그때처럼... 맞아...헤헤헤... 그때처럼 절 속여주세요. 저저저...멍청해서 잘 속아요"

과오.
 그는 돌이킬  없는 짓을 했던 것일까?
그가 만든 업보를 내가 짊어져야 할까?


"치료...할수 있잖아. 왜 안 하는 거야?"

"에? 그러면 안 돼요. 용사님이 하나하나 새겨주시고 달아주신 건데 없애버리라고요?"

"그냥 원망하면 안 돼? 잊으면 편하잖아. 그냥 전부 없애버리고 잊어버리면 되는 거잖아. 왜 그딴 새끼를 좋아하는 건데?"

그녀의 몸에 새겨져 있는 것들은 이제 회귀로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
육체적인 것은 치료할  있다고 하더라도 그녀의 기억에 박혀있는 것은 평생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치료라는 말을 입에 담은 것은 내가 보기 불편해서였다.
절대 내가 했을 리 없음에도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에 진심이 담겨있음을 알기에...나는 그녀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일라가 있어. 시간은 오래 걸렸을지 몰라도, 언젠간 나는 풀려날 거야."


 말에 그녀는 무척이나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전까지 용사님이 저를 미워하게 만들면 되겠네요"


"아마, 미워하지 않을 거야."


거짓말이었다.
나는 그가 아니며 그가 저지른 짓거리를 옹호할 생각도 대신 짊어줄 생각도 없다.

"미워해!!!!!!!!"


"......"

"아니...아니...하게 될 거예요...금방 하게 될 거예요..."


그녀는 그 말을 하고서 한쪽으로 걸어가 무엇인가를 손에 들고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주사기?


"있잖아요. 제가 엄청 고민했어요...히히...용사님이 회귀하시면 전부 사라지는 거잖아요...헤헤...그런데, 유일하게 안 사라지는 게 뭐게요?"

"기억..."


"정답! 헤헤...있잖아요...있잖아요...있잖아요..."


나는 그녀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지금 말하려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번쯤 생각해본 적 있는 것이다.


만약, 내가 마약에 중독된 상태로 회귀하게 된다면?
극도의 쾌락을 느끼거나, 행복을 느낀 상태로 회귀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그에 대한 정답을 이미 라일라를 통해 겪어본 적 있다.
인간의 한계치를 넘어서는 고통을 겪은 후 내가 그날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어떻게 되는지 수십번이고 겪어 왔고, 늘 겪고 있기에 너무나도 잘 안다.

"어라라라...이게 뭔지 아시는 건가요? 너무...반응이 없으세요...힝힝힝...그래도 죠아요. 용사님"

마약.
드라마나 영화로 본 적 있지만 실제로 보게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오늘부터 용사님은 저한테 엄~~~~청 의존하게 만들 거에요. 그래서 용사님이 저한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가 하나하나 가르쳐드릴게요. 맞아! 세뇌해드릴게요"

그녀가 무척 기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아마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용사니이임... 따끔하실 거에요~~"

"있잖아. 디아나"

이 여자는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알려줘 버렸다.
자신의 몸을 걸레짝처럼 사용했던 남자를 미칠 듯이 증오하고 있음에도 동시에 미치도록 사랑한다는 것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자기 입으로 내뱉어 버린 것이다.


"사랑해"

"주사....에?"

"사랑한다고. 그것도 엄청"


"거...거짓..."

그녀는 나 같은 것에게 속아 넘어갈 정도로 멍청하다는 사실도 고백해버렸고, 일부로 속아 넘어가고 싶어 할 정도로 무척이나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도 고백해버렸다.


"거짓말 아니야. 사랑해. 처음 봤을 때부터 엄청 예쁘다고 생각했어."

그걸 이용하지 않는 사람이 바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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