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6화 〉LEVEL 3 (11) (36/87)



〈 36화 〉LEVEL 3 (11)

그는 무능이라는 말도 아까운 남자였다.
무능한 인간은 능력만 없었지만, 그는 능력이 없을뿐만 아니라 예의도 없고, 주제 파악도 하지 못하는 남자였다.


"내가 용사라고? 아니, 그전에 여기가 판테아라고?"

처음에는 그에게 무엇인가 있을 거라 믿었다.
아무리 그가 평민과도 같은 행색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여신에게 선택받은 용사였기에 무엇인가 가지고 있을 거라 믿었다.
그의 오만한 행동이나 타인을 내려다보는 듯한 언행도 그가 무엇인가 가지고 있기에 저런 행동을 하는 거라 믿었다.

그가 특출난 것 하나 없는 버러지와 같은 인간임이 들통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성녀님. 오늘도 놀러 왔어"


그의 눈은  흉부를 향해있었다.
온몸에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느낌에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늘 그랬듯 가면을 써야 했기에 아무 이유 없이 찾아온 그를 애써 미소로 응대했다.


"성녀님. 너무 반응이 없는 거 아니야? 매번 찾아올 때마다 막 환대하는 것까지는 안 바라는데, 반응이 너무 무미건조하잖아"


어서 사라져 줬으면 했다.
애초부터 용사를 소환하는 것도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았으니 그를 평범하게 대하기 힘들었던 것도 있었지만, 그의 행동거지와 말투에서 느껴지는 더러운 의도에 역겨움을 참기 힘들었던 것도 있다.
마치 물건을 품평하듯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 나는 그에게 수십 수백 번을 강간당하는 기분이었다.

어느 날.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그는 변했다.
아니, 신전으로 찾아오지 않게 되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다행이라 여겼다.

그가 찾아오지 않게 되자 나는 무척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일상을 되찾게 되어서 그런 것일까?


그렇게 다시 찾아온 일상을 보내던 중 그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재능 없는 용사.

검술에 재능이 없다면 마법이라도 재능이 있나 싶었지만, 그는 그 무엇도 일반인의 범주를 뛰어넘지 못했다.
그저 그에 대한 보고서 중 첫 장을 읽은 것뿐이지만, 그가 얼마나 무능력한 남자인지는  첫 장만을 봐도  정도였다.


이 왕궁의 선생  누구도 그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하지 않았다.
그나마 유일하게 긍정의 의미를 내포한 내용이 있긴 했다.
기사단장이었던 벨라트릭스 카르딘의 보고서 중 아주 조그맣게 최근 교육에 열의를 보인다는 내용이 있었지만...의미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왕성에서 그에 대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왔다.
그의 오만하고 무능력한 자태에 열이 받은 재상이 국고 사용에 대한 제재를 요청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국고는 정치하는 것들의 전유물이기에 자기들 멋대로 했을 테지만 아무리 그가 쓰레기 같은 인간처럼 보여도 그는 여신의 선택을 받은 용사였다.
그것은 그날 소환식에 참여했던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다시 한번 그를 찾아갔다.
역겨워 다시는 보지 않으려 했던 그를  눈으로 다시 보고 평가하기 위해 찾아갔고, 나는 그날 그가 왜 신전에 찾아오지 않게 되었는지 알  있었다.

공포.

그와 눈이 마주칠 때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나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히...히익...아니에요...아니에요...잘못했어요...제가...안했어요...용서해주세요...아니에요..."

그의 주변에서 풍기는 압도적인 공포는 보고 있는 그를 마주하고 있는 나 뿐만 아니라 신전 관계자들 전부가 당황할 정도였다.
바닥에 주저앉아 몸을 웅크리며 수도 없이 잘못했다 말하던 그의 모습에 나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기시감.

나는 예전 그의 이런 모습을 한번...아니, 여러 번이고  기억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곧이어 확신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는 여신의 선택을 받은 용사였다.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을 리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자 나는 그에게 유예를 주고 그 자리를 떠났다.

나를 보고 두려워하는 인간이 있을 리가 없다.
그렇게나 연기를 했고, 가면을 써왔는데 본지 1~2개월밖에 되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 그런 식으로 반응했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를 두고 보았다.
그리고, 다음에 그를 마주했을 때 확신했다.


"사,살려줘... 아니, 살려주세요. 저,저 진짜 아,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요. 진짜예요"


그는 미래를 경험할 수 있다.
아니, 과거로 돌아올  있다.
이 멍청한 남자는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사실 전부를 실토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했던 일들 전부를 그는 실토해내었다.

단순한 이야기였다.
이 남자가 주제도 모르고 내 몸에 손을 대었고, 그것을 시작으로 그는 벌을 받기 시작한 것이었다.


"처,처음에는 10...10분정도 돌아갈 수 있었어요. 그런데, 자꾸...죽다보니까...늘어...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그가 이제 40분이라는 시간을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나는 그가 어째서 나를 이렇게 두려워하는지 깨달을  있었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 또한 알 수 있게 되었다.

"거..겁탈...아니에요... 그냥...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어깨에 손을 대었던 것뿐이에요...그렇게까지...하실줄은 몰랐어요..."


얼마 전 그가 매번 신전을 찾아왔고, 어느 순간 찾아오지 않게 되었을 때 무엇인가 편안한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를 이용해 스트레스를 푼거겠지.
내가 가진 여신으로부터 받은 권능과 그가 받은 회귀의 권능은 무엇인가 비슷한 점이 있었으니 기분 같은 애매모호  것이 공유되었던  같다.


그것을 깨닫고, 참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저보고...신...전으로...오라고...하신건가요?"

역겨운 그를 신전으로 불렀다.
그는 내 말을 거부할 수 있을 정도로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기에 그는 멍청하게도 내 말을 따라 신전으로 왔다.
그를 한쪽에 앉혀두고 가만히 그를 보고 있던  몰려오는 쾌감에 나는 전율했다.

"아...아...아...아..."

그에게 시계를 보여주며 다시 물어보았다.


이번에는 얼마나 회귀한 건가요?

"50...분...회귀했습니다..."

공포에 사로잡힌 그는 대답할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몰려오는 상쾌한 기분에 나는 그날 웃었다.
순간 그가 용사가 아닌 여신님의 선물인줄 착각할 만큼 나는 흥분했고, 너무나도 즐거워 생애 이렇게 웃어본  없을 정도로 크게 웃었다.


그렇게 나는 즐기고 또 즐겼다.
시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몰려오는 쾌감은 더욱 켜졌다.


나는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인데, 즐거움이 몰려온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성녀를 연기한 생활을 전부 보상받는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를 제대로 망가트리고 말았다.

회귀하자마자 나에게 수도 없이 욕을 하며, 다른 이들에게 나에 대한 사실을 알렸던 그였지만, 이미 그에 대한 평가가 바닥을 쳤기에 그가 나를 어떻게 할 방법은 없었다.
애초에 이 왕국에서 나를 어떻게 할 수 있는 존재는 여왕과 기사단장...그리고, 또 한 명이 있다면 공주 그 여자밖에 없었으니. 그는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도망가려하면, 더욱 큰 벌을 주면 되었다.
물론, 직접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렇게 할거라고 생각만하면 이루어졌으니 나는 아무런 부담도 없이 즐거움만을 만끽하면 되었다.


시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망가져 가던 그였고 얼마 전부터는 완전히 망가져 버려 벨라트릭스로부터 이상한 말이 나오기 시작했기에 눈물을 머금고 그만두려 했다.


"이 시간에 내가 왜 여기 있어?"


하지만, 그가 자신의 기억을 지우는 방법을 터득해버리고 말았다.
그 나름대로 생각해 낸 생존본능이었겠지만, 그것은 나에게 또 다른 선물이었다.


나는  즐거움과 쾌락을 더 느낄  있다는 생각에 난생처음으로 사람을 보며 사랑스럽다 여겼다.
가지고 싶다 생각했다.


그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나는 전혀 모른다.
아니, 조금은 알 수 있다.
이 시간이 너무나도 기대가 돼 어떤 식으로 괴롭힐지 여러 생각을 했기에 아주 조금 내가 그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예상할  있었다.


예전 그의 역겨운 눈동자와 함께 움직이던 아랫도리.
아마, 나는 그 더러운 것을 수도 없이 잘라버렸을 것이다.
찌부러트리고, 뽑아버렸을 것이며, 터지게 만들기도 했을 것이다.
아마, 매일같이 즐거웠을 것이다.
어차피 내 기억은 사라지고, 감정과 기분만이 남았기에  새로웠을 것이고 절대 질리지 않는 장난감이었을 것이다.

평생토록 즐길  있는 장난감.
아...그는 소중한 장난감이 었다.
그만한 장난감은 세상천지 어느곳에도 없을테니. 그는 아주 사랑스러운 장난감이었다.

한계치가 넘어가는 죽음에 대한 공포에 그는 주기적으로 기억을 지웠다.
그의 의도로 지워진 것이 아니다. 압도적인 공포가 그의 기억을 강제로 지운 것이다.
살고 싶다는 욕망이 지웠고, 뇌의 허용치를 넘긴 것에 대한 반동으로 지워진 것이다.


하지만, 평생이라 생각했던 즐거움은 끝을 맞이했다.


내가 아무리 그를 감싸려 해도, 그는 해도 해도 너무할 정도로 무능력했다.
왕성은 이미 그를 버렸고, 내가 있는 신전 또한 여론이 너무 나빠졌다.

이 상황에 내가 그를 옹호했다가는 내 위치가 흔들릴 여지가 있었기에 나는 어쩔  없이 그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매번 즐거움을 전해주던 장난감이 사라진다고 하니 서운하기는 했지만, 어차피 그는 장난감이었다.


내 인생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전해주는 장난감.

그렇게 그가 떠났고, 그가 마지막으로 회귀했던 시간은 10일이었다.


1440번의 죽음.
나는 그를 너무 가지고 놀았고, 그가 가지고 있는 힘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아니, 그 힘의 위험을 알고 있었지만, 그를 너무 과소평가했었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이곳에서 발버둥치며 살아가다가 무너져 버릴거라 여겼다.

그리고, 그에 대한 잘못된 평가는...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왔다.


그를 다시 만난 것은 마족의 침공이 일어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였다.

"성녀님이네? 여긴 어쩐 일이야? 아, 지원온거야? 너무 늦었는데..."


나에 대한 기억을 깔끔하게 지웠다 생각했다.


"누나 구해주러 온 건데... 성녀님을 보게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네"


그는 그 말을 하기 전...

한 번 회귀했다.


그를 보며 떨던 내 손이 그것을 증명했고, 그에 대한 두려움이 그가 무조건 회귀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었다.

그는 나를 죽일  있을 정도로 강해져 버렸다.
아니, 정확하게는 나를 죽일 수 있는 존재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로제.
철혈의 여제이자. 왕국의 최강이라 불리는 기사인 벨라트릭스와 비견하는 무력을 가진 용병.
그런 그녀가 나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서 벗어나야만 한다.
벗어나 야만 했다.


하지만, 그가 가진 권능은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어디 아파? 얼굴이 왜 그렇게 시퍼레?"


특히나...나는 그에게서 벗어나는 게 절대 불가능했다.
 번을 회귀한 것일까?
첫 만남에 그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이 5번이나 바뀌었다.
대체 그는 나에게 무슨 짓을  것일까?

"이번에는 여기까지만 할게. 다음에는  안 마주치게 조심해야 해? 그래야 잡는 재미가 있지"

어째서인지 그는 그날 나를 풀어주었다.
당연히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왕국은 전쟁 중이었고 내가 도망칠 곳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발버둥을 하던  그와 두 번째로 만나게 되어버렸다.

두 번째 만남에서 나는 이상해져 버렸다.


"디아나"

 번이나 감정이 바뀐 것일까?
 수도 없이 감정이 바뀌어버렸다.
그의 목소리에 인생을 살며 단 한 번도 느껴본  없던 생소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

"적당히 전쟁도 끝나가는데...음, 나랑 같이 갈래?"

거절하려 했다.
분명 거절하려 했지만, 그는 또다시 회귀했다.
생소한 감정이 몇 번이고 가슴을 후벼팠고, 결국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쏟아지는 감정과 기분에 내가 이상해진다.


공포. 두려움.
분명 그런 것도 존재했지만... 중요한 건 그것들을 제외한  수 없는 감정들이었다.

"무슨 짓을 했냐고 물어보면...음...아직은 네가 필요하니까. 쓸만하게 해준 것뿐이야. 그런데  참 재밌다. 아~ 네가 느끼던게 이런거였구나?"


내가 그에게 했던 짓을 그대로 돌려받았다.
그가 버텨낼 것이라 여기지 않았다.
쉽게 쉽게 망가지던 인형과도 같던 그가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한데...어떻게 그는 이렇게 정상인처럼 행동하는 것일까?

그는 회귀하기 전에 내게 무슨 짓을 했길래 이런 감정을 느끼게 만든 것일까?
그와 함께 다니기 시작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감정의 정체를 천천히 깨달아가기 시작했다.
그가 나를 증오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는...

"이런 거 좋아해?"


복수를 위해 친절하게 대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왜...

"엄청나게 공략 난이도 높다 생각했던 히로인이 사실은 최약체였다는 걸 알고 내가 얼마나 실망한  알아?"

그는 나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친한 척하고, 상냥한척하며, 나를 위해주는 척했지만, 실상은 나를 어떻게 해서든 무너트리려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어째서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그의 미소에 가슴이 뛰는 것일까?


"내 부탁 들어주면 뭐든지 해줄게. 어때? 어떤 소원을 빌고 싶어?"

알면서도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내가 부정적인 대답하려고만 하면, 늘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몰려와 내 입을 막았다.


후회. 절망. 슬픔.

"어떤 소원을 빌고 싶어?"


그의 물음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입이 열렸고,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결혼? 아이? 아..."


나는 그를 사랑하고 있다.


그는 일부러 이러는 것이었다.
내가 최악의 고통을 느낄 수 있도록 가장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절망감을 느끼게 만들기 위해 이러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쌓이고 쌓이는 감정을 도저히 어떻게 할  없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회귀하기 전의 기억을 모르기에 또다시 속고 또 속고 또 속는다.

"쓸데없이 회귀해버렸네...결혼 좋지. 하자"

어느 순간부터 신전에 있을 때에는 귀찮아하던 기도를 매일 같이 하게 되었다.
내일은 버려지지 않기를 기도했고, 그다음 날 또다시 기도했다.
아침 점심 저녁 빼먹지 않고 기도를 드렸다.

 그가 나를 보며 미소짓기를 기도했고 상냥한 미소로 나를 맞아주길 기도했다.
그리고... 제발 그날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를 하는 나도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수도없이...빌었다.


"얘가 라일라야. 어때 귀엽지?"


부러웠다.
그녀에 관해 이야기 할 때마다 그가 그녀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이 전해지는 것 같아 늘 그녀를 부러워했다.
그가 안고있는 저 여자가 나였다면...얼마나 좋을까...

"거부하지 마. 라일라 고쳐주기로 약속했잖아"

그가  번이나 회귀해 나에게 질문했는지 가늠이 안  정도였지만, 그런데도 나는 거부하려 했다.
하지 않겠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려  때마다 느껴지는 슬픔에 나는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도...싫다고 말했다.
 아이를 고치면 내가 어떻게 될지 알기에 더더욱...

"디아나"

싫었다.
전부 거짓말이라도 좋았다.
그저, 버려지지만 않으면 되었기에 나는 몇 번이고 거절했다.

"약속 지켜"

나는 그날 버려졌다.
아니, 그의 연극이 끝났다.

나는 전부 알고 있었다.
그가 나를 보며 느끼는 역겨움이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를 때마다 회귀하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진즉에 알고 있었다.
나를 싫어하고, 원망하고, 역겨워할 뿐만 아니라 지금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어 한다는 것 정도는 전부 알고있었다.


그런데도, 얼마든지 속고 싶었다.

그를 사랑하기에 얼마든지 속고 싶었고 영원히 그가 거짓말 해주길 바랬다.

"죽이진 않을게"


그를 붙잡고 사정했다.
그의 약속을 들먹이며 그를 붙잡고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결...씨발, 알고 있었잖아. 전부 거짓말이란 거. 알면서 속겠다고  거잖아"


그는 나를 수십번이고 죽였을 것이다.
그리고 함께 있으면서   없을 정도로 회귀했기에 내가 그의 거짓말을 깨닫고 있다는  또한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만하자. 죽이는 것도 질린다."

그는 아직도 나를 죽이고 싶어 한다.
그런데도 이런 거짓말을 하는 것은 나에게 평생토록 고통을 주기 위함이었다.
그가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평생, 이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라고 그는 말하고 있었다.
쌓일 대로 쌓여버려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는 이것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라고...그는...말하고있었다.


"뭐든지 한다고 말하는 거 좀 식상한데..."

그날 나는 그의 옆에 있을 수만 있다면...무엇이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이든...정말...무엇이든...할수...있다.




***


"그걸 나한테 전부 알려주면 어떻게 해. 좀... 숨겨서 말해야지. 그걸 다 말해버리면..."

"아니요! 전부 아셔도 돼요...헤헤...제가 용사님에게 숨기는 게 있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그쵸?"


그의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게 얼마 만일까?
그가 내 얼굴에 손을 대어주는 것은 정말 얼마 만인 것일까?

쓸모없다고 말하며 짓밟을 때 이후로 처음인 걸까
아,아니 몸에 새겨진 것들이 예쁘게 나왔나 확인할  이후로 처음일 것 같다.
아닌가? 예전 얼굴이 보기 싫다며 때릴 때 이후인가...?


어...으...아...머리 아파.


"그런 거 치고는   때리던데? 제대로 이야기  거 맞아?"


"아니!! 아니에요아니에요아니에요아니에요 제가 미쳤나 봐요. 그저 아무것도 기억 못한다고 하셔서 제가 미쳐버렸나 봐요. 이상해졌나 봐요. 제가 나쁜년...사죄할게요 그러니까 버리지 마세요 버리지 마세요..."


내가 왜 그때 때린 것일까?
전부 내가 멍청해서 그런 거다.
해서는 안 될 짓을 해버렸다.
어떻게 용서 받아야 하는 걸까?
이럴 때에는 어떻게...


아...맞아.
이럴 때에는...

"그만해! 뭐 하는 짓이야!"


"그...그렇지만... 제가 잘못할 때마다...늘...용사님이...여길 찌르라고 하셔서...이렇게 해서 사죄하면...좋아하셔서..."

"그런다고...그만해"

그의 표정이 어둡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일까?
이...이렇게 하면 늘 잘했다고 말해주셨었는데...
기억을 못 하셔서 그런 것일까?
아...맞다. 기억을  하시는구나.


"왜...머리를 때려...그만하라니까!!! 야!! 그만하라고!!!"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과 함께 어깨를 붙잡고 있는 그의 양손이 눈에 들어왔다.


"죄송해요. 용사님.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요. 용사님은 연기하시는 중이었는데, 바보같이 제가 노예가 돼버렸어요"


놀란 얼굴을  채 나를 바라보는 그의 검은색 눈동자를 보며 나는 격하게 올라오는 감정을 이겨내 미소를 지었 다.
평생을 해오던 것이기에 가면을 쓰는 것은 무척 자신 있다.


"용사님이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그러니 용사님. 저를 미워해 주세요. 아, 주...주제 넘는 말이지만, 여...연기 하셔도 돼요. 저...잘 속아요. 그러니까...다시 한번...말씀해주실수 있나요?....아...아니, 안 하셔도 돼요."


그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내 볼에 손을 올려 천천히 쓸어내렸다.

"그래...사랑해"

한숨 섞인 그의 목소리에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 차올라 미쳐버릴 것 같다.
또 듣고 싶다.
그의 입에서 다시 한번 예쁘다는 말을 듣고 싶고, 함께 하고 싶다는 말을 듣고 싶다.
사랑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듣고 싶다.

아...정신 차려야되는데...
지금 용사님은 지금 모습을  좋아하시는데...
이상해지면 싫어하시던데...
그러니까 정신 차려야 되는데...

정말로 어제 그년을 죽이길 계획해서 다행이다.
도저히 못버티겠어서 이제 그만 그년을 죽이고 끝내려 했는데...
멍청한 년이 그날 찾으러 올 거라고 말해줘서 절대 도망 못 치게 이것저것 준비해 놨었는데...


마지막 순간에 용사님과 이렇게 단둘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정말 다행이다...

"한 번 더...해주시면...안되나요?"


"디아나"


"히익...흠흠...아,안해주셔도 좋아요"

"사랑해"

이미 용사님을 세뇌한다는 계획이 무산되었지만...
다시 한번 그때처럼 그가 연기를 해준다면...이제...

전부 부서져 버려도 상관없다.


하지만, 아직은 참아야 했다.
지금의 용사님은 이 모습을 가장 예뻐하시니까. 아직은 버티고 버텨야했다.
내가 기억할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가 웃는 모습을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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