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LEVEL 3.5 (2)
나는 그를 이해한다.
누구도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나만은 그를 이해해야만 한다.
1년 500화.
하루에 한 편씩 때로는 2편씩 글을 썼다.
글을 처음 써봤기에 한 편을 쓰는데 4~5시간이 걸렸었다.
100화가 넘어갈 때부터는 미숙한 실력이 소설을 완전히 무너뜨려 한편을 쓰는데 10시간이 걸리기 시작했다.
200화가 넘어갈 때쯤 설정들이 전부 엉켜버려 연재를 포기하고 설정 체크만 일주일을 전부 쏟은 적이 있다.
300화가 넘어갈 때부터는 아예 소설들을 처음부터 갈아엎기 시작했다.
연재는 연재 대로하고, 1화부터 300화까지 설정 오류와 오타 비문들을 전부 갈아엎었다.
400화가 넘어가자 한 편을 쓰는데 18시간이 걸렸다.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진즉에 완결을 냈어야 함에도 소설을 끝내기 싫어 억지로 붙잡고 있던 후폭풍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써도 만족을 할 수 없어 401화라고 쓰여 있는 파일만 10개가 넘어갔고, 401화를 억지로 연재하면 402화도 그 전회차와 똑같이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내가 정한 유토피아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질려서, 나는 더욱 자극적인 것 찾아 헤맸다.
그로 인해 이야기를 이어나갈 소재가 떨어졌고, 그렇게 억지로 이어가는 스토리에 나까지 지쳐가기 시작했으며, 주인공의 파워인플레는 주변 히로인들을 들러리로 만들었다.
그렇게 도저히 연재를 못 하겠다 판단해 완결 낸 소설이었다.
애초에 유토피아에 끝이 있을 리가 없다 생각했고, 완결 같은 건 생각도 하지 싫었기에 그다지 좋은 결말은 아니었다.
말도 안 되는 설정과 시나리오들을 써서 억지로 해피엔딩을 만들어냈으니...결말이 좋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런데도 내 모든 것을 쏟아낸 소설이었다.
무료소설에 늘 조회수가 10을 넘지 못하는 소설이었기에 돈을 벌기 위해서도 아니고, 독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진심으로 완성만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내었던 소설 속에 들어온 것이다.
"아악!!!!!!!"
어떻게 오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살려...아악!!!"
당연히 자신감이 넘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의 잘난 말투 같은 것도 나름 주인공을 따라 한 것이었다.
너무 잘 따라 한 나머지 원래 주인공보다 더 철부지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는 잘 해냈다.
그가 놓치고 있던 세 번째라는 것만 아니었다면...그는 잘 해낸 것이리라.
디아나는 세 번째 용사를 소환한다고 말했다.
그러면 지금 그는 두 번째라는 것이다.
...굳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첫 번째가 원래 주인공이라는 것 정도는 쉽게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주인공이 죽었다.
언제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누가 죽였는지를 묻고 싶지만, 이곳은 그의 기억 속이었고...
"이제야. 돌아가신 건가요?"
지금의 그가 제정신을 가지고 있을 리 만무했다.
세상이 또다시 뒤집힌다.
"아, 그렇다고 제가 죽겠다는 말은 아니에요. 당신 같은 하찮은 남자와 제가 목숨이 같다는 건 너무하잖아요. 어차피 다시 용사 소환을 해야 하고, 그 소환에 제가 없어서는 안 될 테니. 저는 아마 죽지 않을 거예요."
한쪽 벽으로 고개를 돌리자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선명하게 시간이 보이는 것이 그가 회귀에 대해 인식한 것이 분명했다.
죽음으로 인해 시간이 되돌아오고 있다는 것을 두 번째 죽음에 깨달은 것이다.
디아나가 말했던 것이 바르면, 지금 죽게 되었을 때 30분을 돌아가게 될 것이다.
20분 동안...그는 얻어맞았다.
인생 첫 죽음. 그리고, 연속되는 두 번째 죽음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기에 그는 그 무엇도 바꿀 수 없었다.
"이제야. 죽으신건가요?"
세 번째 죽음.
"이제야...잠깐만...잠깐...아악!!!"
참...운 나쁘게도 그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던 때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녀의 메이스에 팔이 뭉개지고 나서부터는 아까와 똑같이 몸이 짓이겨졌고, 그렇게 네 번째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
"아...아...아악!!!!"
"괜찮으십니까? 갑자기 왜... 용사님?"
네 번째 죽음 후에는 성녀의 기도실 바깥으로 회귀했다.
그곳을 지키던 성기사가 그를 걱정해 가까이 가는 것이 보였지만, 그는 죽음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풀밭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죽음의 고통.
연속에서 그것을 겪게 되면 어떻게 될까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만약, 내가 손쓸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회귀가 죽기 직전으로 변하게 된다면 나는 버틸 수 있을까?
지금의 나 또한 어느 정도 적응되긴 했지만, 그런데도 죽음 하나하나가 버겁다.
내 고민을 들어주듯 그는 자신의 방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방구석에 쳐 박혀 오들오들 떨기 시작했다.
이렇게 보니 참 한심하긴 하다.
그는 죽은 지 얼마 안 되었기에 정신이 아직 남아있을 게 분명함에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나도...건물이 무너져 라일라에게 살려달라 외쳤던 그 날 그녀에게 두 번...아니, 네 번 연속으로 죽었다면, 이런 모습을 하고 있으려나...
"어제 그렇게 교육을 했는데 어째서...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이지?"
어제 그렇게 교육을 해놨는데, 하루 만에 아침훈련에 나오지 않는 그의 모습에 화가나 문을 박차며 들어온 그녀였지만 방구석에 처박혀있는 그의 모습을 보자마자 당황했다.
그는 종일 잠을 안 자며, 어제 있었던 일들을 생각했을 것이다.
나름 합리적인 판단도 했을 것이며, 앞으로 성녀에 관해 일절 신경 쓰지 말하여야겠다고도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 정도로는 압도적인 공포에 위축되어 있던 그의 정신을 추스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나오거라"
"...죄송합니다"
벨라는 늘 진지한 여자였다.
처음이나 지금이나, 늘 타인을 상대할 때 장난이라는 건 없는 여자였기에 그가 지금 보이는 행동이 늘 하던 장난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멱살을 잡고 나간 거겠지...
"...하기 싫습니다. 죄송한데, 정말...죄송한데...아무것도 안 할게요. 진짜..."
나도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녀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은 것인지 그를 걷어찼다.
"뛰어라. 아침 구보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녀는 그의 정신이 뭉개져 있는 이유도 묻지 않았고, 얼마나 힘든지도 묻지도 않았다.
정말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를 굴렸다.
"마시거라"
"......"
몇일간 아침마다 뛰게 해놓고서 물 한 모금 안 주던 그녀가 오늘따라 이상하게 그에게 물을 건네주었다.
그토록 오만방자하게 굴던 그의 입이 네 번의 참교육만으로 완벽하게 고쳐진 듯 그 누구보다 입조심을 잘하게 되었다.
"왕국 내전 당시. 너와 같은 표정을 한 놈을 많이 본 적 있다"
"......"
"그런 눈을 한 놈들 중 대부분이 며칠 안 가서 죽더군"
그는 그대로 내버려 뒀어도 살았을 것이다.
...내가 살았듯...그도 살아남을 것이다.
"안 죽은 놈들은 전부 살고 싶은 놈들. 아니면,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놈들 뿐이었다"
"......"
"어떻게든 살려고 해 보거라"
그녀의 위로에는 그다지 감정이 실려있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시켜서 하는 듯한 행동과 태도.
그가 눈치채지 못하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제가 용사라서 이러는 겁니까?"
"네가 무너지면, 왕국도 무너질 것이다. 네가 신전에 왔을 때 네 입으로 하겠다고 말했으니 그에 대한 책임을 져라"
그와 벨라의 관계는 딱 그 정도였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일지 모르겠다.
그녀의 위로 아닌 위로에 힘을 얻은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가 금방 일어설 놈이었는지는 몰라도 그는 빠르게 회복되었다.
"스승님. 저 이틀째 굶었는데, 좀...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니, 회복되는 척 하고 있었다.
"평소 오던 시간보다 빠르군"
"....저는 아침잠이 없습니다"
"저혈압이라고 하지 않았나?"
"늦으면 때리실...누구보다 빠르게 와 훈련 준비를 미리 하는 것이 훈련 기사의 기본자세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았다.
"히...히익...아니에요...아니에요...잘못했어요...제가...안했어요...용서해주세요...아니에요..."
디아나에게 들어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의 성장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성녀 쪽에서 사찰을 나왔고, 그는 트라우마의 당사자를 마주하게 되었다.
"사,살려줘... 아니, 살려주세요. 저,저 진짜 아,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요. 진짜예요"
그의 치료를 목적으로 성녀와 단둘만 있게 되었을 때 그는 그녀에게 모든 것을 고백해버리고 말았다.
트라우마는 그런 것이었다.
강철과도 같은 정신이 아니라면. 아무리 치료하고 치료해도, 죽음에 대한 압도적인 공포 앞에서는 제정신을 유지하는 게 불가능하다.
그것으로 인해 자신이 더욱 망가진다 하더라도, 정상적인 판단력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그는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목을 졸랐다.
회귀라는 힘. 그리고 그것이 성장한다는 것 그녀에게 전부 불어버린 것이다.
"이번에는 얼마나 회귀하신 건가요?"
"네?"
그녀를 따라 그녀의 기도실로 끌려간 그는...정말 멍청하게도 저번과 똑같은 죽음을 경험하게 되었다.
메이스에 똑같이 찍힌 것이다.
어떻게 저렇게 멍청할 수 있을까?
만약 내가 죽어본 적이 없었더라면, 그를 절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얼마나 회귀하신 건가요?"
"50...분...회귀했습니다..."
50분 전에 물어보았던 말을 또다시 경험하자 그녀가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지 깨달은 듯한 모습이었다.
이 이후의 이야기를 아는 나였기에 방금 그가 내뱉은 말이 지옥으로 가는 열차표를 끊는 행위라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를 구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
그가 살려달라는 말을 하면 할수록 디아나의 행동은 더욱 과격해졌다.
"어머, 누가 그렇게 만든 거에요? 아...아쉽다. 그런 얼굴을 하실 줄 알았다면, 누가 침 바르기 전에 제가 가질 걸 그랬어요. 예상했던 것보다 무척 귀여우세요. 용사님"
엘리제가 그를 도와줄 리 절대 없었으며, 왕과 교황을 포함한 이곳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들어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상대가 될 리 없다.
이곳은 현대가 아니었고, 상대는 성녀였다.
이 왕국 세 명의 상징적 존재 중 한 명인 성녀.
그리고...
"성녀가 너를 죽였다? 그리고, 너는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고? 장난치지 말거라"
"...장난 아닙니다. 정말이에요...살려주세요...제발..."
그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가 장난을 치는 것이라면 그녀는 진즉에 화를 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그의 말을 무시했다.
벨라가 그를 무시한 것은 그가 정신병자처럼 보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말대로 성녀가 용사를 죽이려 한다는 것을 진심으로 듣는다고 해도, 그녀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미, 회귀로 인해 전부 없던 일이 되어버렸는데. 어떤 증거를 가지고 성녀를 포박하여 죄를 물을 수 있을까?
"...그러니까. 왜 그랬냐고 묻는 것이다. 성녀가 널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없을텐데"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수십번이나 죽었어요. 이제...더이상..."
그녀 나름 그에게 정이 들어가고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 그는 첫 제자였고, 그가 망나니처럼 행동했던 것도 나름 그녀가 자신에게 정들게 만드는 방법 중 하나였다.
특히나, 얼마 전까지 그녀에게 누나라는 말을 했던 것은 그녀의 과거를 회상시키는 트리거 역할도 하고 있었기에 그녀는 어느 정도 그에게 정을 붙여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일렀다.
그녀에게 있어 이 왕국은...그리고, 가문은 그녀의 일생이었다.
그 일생을 던지며 그를 지키기에는 그와의 연결고리가 너무나도 약했다.
"...차라리 도망치거라"
"제가 안 해봤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제가...아...아닙니다. 이제 됐어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아무리 그가 멍청하다 하더라도...생존본능이라는 것이 존재했고, 살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보았다.
도움을 구하는 것도 해봤고, 이곳에서 도망치는 것도 해봤다.
미리, 자살해서 회귀 시간을 바꾸는 것도 해봤으며 그녀를 죽이기 위해 칼을 들고 그곳에 간 적도 있다.
그것뿐일까?
왕국 경비대들에게 돈을 꽂아 성녀에게 괴롭힘당하던 시간에 맞춰 신전에 들이닥치게도 해보았고, 왕실 마법사를 통해 알람 아티펙트를 구해와 그녀에게 고통받으며 사용한 적도 있다.
수도 없이 실패했다.
그는 수도 없이 죽으며 그녀를 미워했고 증오했으며 두려워했다.
다음에는 반드시 그녀를 죽여버리겠다고 수도 없이 다짐했다.
그런데도...그는 멍청했다.
아니, 그녀가 그보다 훨씬 머리가 좋았다.
내가 설정했던 성녀라는 캐릭터는 무척이나 똑똑한 여자였다.
물론...그녀가 회귀에 대해서 알기 전으로 돌아가려고 한 적도 있었다.
9일을 돌아가기 위해 목을 연속해서 찔러 연속 회귀를 해보려던 그였지만... 그의 몸이 그것을 거부했다.
자살을 이용해 연속해서 회귀할 수 있는 건 3번이 한계라고 말하는 듯 3번의 회귀부터는 자살하려고만 하면 몸이 정지가 된 듯 멈추었다.
쿨타임? 그런 것과는 달랐다.
똑같은 시간을 의도적으로 반복하지 못하도록 막은 것이다.
아마...그것을 끝으로 그는 제정신을 유지하기 너무 힘들어졌다.
처음 회귀했을 때에는 어느 정도 정신을 가지고 있지만, 일정 시간이 흐른 후 죽음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정상적인 행동이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 세계에 떨어진 지 3개월. 디아나가 본격적으로 그를 죽이기 시작한 지 1개월.
"이제 들어가셔도 돼요"
변함없이 그를 죽이며 쾌락을 느끼는 디아나.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 뭐에요? 하나도 모르겠던데... 둘이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 말해주세요. 네?"
몰래 미행을 한 뒤부터 그에게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한 엘리제.
"또...신전에 갔다 온 것이냐? 대답하거라!"
왕국의 기사가 되는 것을 선택한 벨라.
이곳에 떨어졌을 당시에는 유토피아라 생각했겠지만, 이제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완전히 비틀려버린 관계 속에서 그는 망가졌다.
그는 그저 죽을 뿐이었다.
나에게 분노하며 복수를 하려고 했던 라일라와는 다르게 디아나는 그저 자신의 쾌락만을 채우면 되었기에 고통을 주는 방식은 늘 정해져 있었다.
나름 참신하게 생각한다고 하지만 애초에 회귀하게 되면 어떤 식으로 괴롭혔는지조차 잊어버리게 되니, 그녀가 괴롭히는 건 대부분 거기서 거기였다.
하지만, 죽음이라는건...그와 같은...나와 같은 인간에게 무척이나 버거운 것이었다.
그는 반복되는 죽음 속에서 하나둘 포기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5번째 죽음부터는 늘 성녀가 직접 그에게 와서 데리고 가거나 납치해서 갔기에 굳이 그가 움직이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늘 방안에 처박혔다.
그렇게 2개월이 지났고, 그가 가진 회귀의 권능이 1일을 되돌릴 때 즈음이었다.
"그만 나오거라"
그는 입을 여는 것도 포기했기에 자신을 내려다보는 벨라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의자에 앉아 있는 그에게 다가가 한 손으로 멱살을 잡아 들어 올렸다.
"정신 차려라. 살아야지! 이대로 죽을 셈이냐!"
나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아마 이렇게 1440번의 죽음이 완성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을 말해주듯 벨라의 눈이 무척이나 흔들리고 있었다.
반복되는 죽음이 변화하는 순간이 오는건 오늘이 아니라는 듯 그녀는 그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밖으로 나가버렸고, 시간이 흘렀다.
"용사님. 안녕하세요. 어머 어머 어머. 뭐야. 왜 그렇게 되신 거에요? 지금 어떻게 살아 계시는 거예요? 성녀가 한 짓 맞죠? 에구... 불쌍해라... 제가 도와드릴까요?"
가만히 그 두 사람을 보던 중 들려오는 말에 나는 순간 당황했다.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소리칠뻔했다.
"다른사람꺼라서 손대기 찝찝하긴 하네요. 아까워라"
그녀가 이 난장판에 참여하는 순간 진짜 악몽이 시작될 거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진심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도 제가 찾아오게 만드셨네요"
엘리제가 나가고...그녀가 찾아왔다.
"히익..."
그는 아직 완전히 망가지지 않았다.
라일라에게 망가져 봐서 그가 얼마나 망가졌는지 잘 알고 있다.
패턴이 동일한 죽음은 어느 정도 적응할만했는지 그는 아직 정상이었다.
그리고...아직까지도 그는 나와 똑같았다.
144번의 죽음이 1일. 288번의 죽음은 2일.
그의 반복되는 이야기가 변한 것은 그 2일째부터다.
이제는 회귀를 너무하다 보니, 보고 있는 나까지도 날짜 감각이 이상해져 그가 이 세계에 떨어진 지 얼마나 됐는지 감이 잘 안 잡힌다.
하지만, 꽤 시간이 지났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이번에는 어떻게 해드릴까요?"
무미건조한 목소리였다.
연기하지 않는 디아나의 목소리는 늘 이랬다.
디아나를 안았을 때 그녀가 하던 연기와는 차원이 다른 무미건조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를 죽일 때만큼은 그 누구보다 표정이 많은 여자였다.
누군가를 때린다는 것이...괴롭힌다는 것이...고통스럽게 만든다는 것이 그렇게 즐거운 것일까?
그녀의 광기 넘치는 미소를 보며 나는 늘 눈을 감아버린다.
이런 모습을 보려고 이 기억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만두십시오"
기도실의 문이 폭발하듯 열림과 동시에 강인한 목소리가 기도실 전체를 울렸다.
"당신은..."
"당장 멈추지 않으신다면, 왕국 법에 따라 당신을 즉결처형하겠습니다"
이제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벨라트릭스의 목소리에 성녀는 빠르게 자신의 메이스를 들어 그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쭉 정해진 계획대로 죽여 회귀했던 것과는 다르게 예기치 못한 상황에 그가 일찍 죽은 것이다.
나타난 세상의 모습은 그의 방이었고, 그의 눈동자는 평소와 다르게 무척이나 또렷해 보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당신...무슨 짓을 한 건가요?"
"......"
"워,원래는 이런 기분이 들면 안 되는데...무슨 짓을 한 거에요? 대답해!!!"
당황.
벨라의 즉결처형이라는 말에 그녀가 당황한 것이다.
용사를 멋대로 죽이려고 했던 그녀의 행위는 그 정도로 위험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두려움.
만약 성녀에게 시간이 있었거나 아니면, 쳐들어온 사람이 왕국의 검인 벨라트릭스가 아니었더라면, 여유로운 판단을 내릴 수 있었을 테지만...성녀에게 벨라트릭스라는 여자는 너무나도 위험한 존재였다.
벨라트릭스 자체만으로도 위험하지만, 그녀가 가진 가문의 힘은 왕국 정치 전반에 미쳐있었기에 그녀의 입에서 나온 즉결처형이라는 말은 디아나에게 현실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대답하지 않겠다는 건가요?"
그녀의 압도적인 공포 앞에서도 그의 눈동자는 빛이 존재했다.
...희망을 가지고있던 것일까?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희망이 보이긴 한다.
1일 차만 버티면 2일 차에는 반듯이 벨라트릭스가 온다.
회귀 시간이 늘어나게 되니, 벨라트릭스가 움직일 가능성이 생겼다.
그는 이 말도 안 되는 죽음 속에서 살아남을 방법이 생긴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그의 눈에 보이는 빛이라는 것이 살고 싶다는 욕망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렇게 끌려가서 그녀에게 대답할 때까지 고문당했고, 결국 그는 죽었다.
"회귀를 두 번 연속해서 하셨군요. 그것도 제 손으로"
그의 회귀를 무척이나 세심하게 느끼는 디아나였지만, 그런데도 벨라의 난입은 그녀에게 있어 예상 밖이었다.
그는 죽음이 두렵지 않게 되었고, 죽어도 입을 열지 않을 것이다.
"뭐, 좋아요. 당신이 이기나 제가 이기나 한번 해보죠. 당신이 사실대로 말씀 해주신다면,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 편안한 죽음만을 선사해드릴게요. 하지만, 끝끝내 말씀을 안하신다면... 지금까지 많이 여유로우셨죠?"
게임의 난이도가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