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3화 〉LEVEL 4 (1) (43/87)



〈 43화 〉LEVEL 4 (1)

"생각보다 일찍 깨어났네"


"주군은...어디 계신 겁니까?"

눈을 뜨자마자 들리는 엘리제의 목소리에 그녀는 그의 행방을 제일 먼저 물었다.

"주인님은 그 여자가 납치해갔잖아.  기억 못하는  한다."


"어,어디 계시는지 아십니까?"


"그 재수없는 년이 찾고 있으니 금방 알게 되겠지"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몸 상태를 체크했다.
곧바로 전투에 들어가도  정도로 상태가 좋았다.
그녀가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  상태가 나빠지는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라일라가 주군을 찾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만 믿고 기다릴 수는 없었다.
뭐라도 하자는 생각에 그녀는 방 밖으로 나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나오기로 결심한 거야?"


"...무슨 말씀하시는 겁니까?"

"쭉 숨어있었잖아. 귀여워서 좋았는데. 이제 끝내는 거야?"

"숨은  없습니다."

"나한테까지 거짓말 하지 마. 내가 널 얼마나 오래 봤는데 그거 하나 모르겠어?"


엘리제의 말에 그녀는 문손잡이를 잡은  우뚝 섰다.

"그때는 정말 귀여웠었는데... 옛날 생각나서 좋았어. 그래도, 지금이 귀엽지 않다는 말은 아니야"


"......"

"납치되는 거 전부 알고 보고 있었으면서 구경했잖아. 그게 제일 귀엽더라"

"그런 적 없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거짓말. 구해줄  있었으면서."


쭉 꿈만 꾸고 싶었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꿈속에서 그에게 어리광만 부리고 싶었다.
다시 돌아온다면, 또다시 죄책감 속에서 그의 쓸모가 되기위해 발버둥 쳐야만 했기에 더욱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망가졌어도 너처럼 강한 아이가 완전히 무너질  없잖아. 지금까지 얼마나 버텨왔는데, 겨우 주인님과 섹스 한번 했다고 전부 망가져 버렸겠어?"


꿈속에서는 죄책감 같은  가지지 않아도 되었다.


기사라는 이유로 그를 외면했기에 평생을 기사로 남으려 했던 맹세를 어겨도 되었다.
이곳은 왕국도 없고, 가문도 없었기에 기사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그에게 어리광을 부려도 된다 생각했다.

"기억이 없습니다. 더이상 할 말이 없으시면 가겠습니다."


"주인님이 알면 뭐라고 하시려나~ 과거에 그렇게나 괴롭혔던 여자가 납치해가는데도 옛날이랑 똑같이 구경만 하는 기사라니. 하긴, 이제 기사도 아니구나"

"그만하시죠. 계속해서 말씀하신다면...저도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아, 하긴 우리 언니도 버렸으니, 더는 주군도 아니게 된 주인님을 버리는 것도 가능하겠..."


엘리제의 목에 검을 들이밀었다.
죽일 생각은 아니었지만, 말을 멈추는 데에는 이것이 제격이라 생각했기에 한 행동이었다.


"나 죽이려고? 어머, 주인님의 물건인 노예를 마음대로 죽여도 되겠어?"


"...당신은 주군의 것이 아닙니다. 애초에 당신은 누군가의 것이 될만한 여자가 아니지 않습니까."


"응? 무슨 말 하는거야? 정말 모르겠는걸?"


"저는 공주님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20년 동안이나 봐왔기에 더욱 미워할수 없는 것이겠죠. 하지만,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늘 원망스럽습니다."

공주의 입은 독사와 같아 늘 심장을 찌르고, 분노를 일으킨다.
그럼에도 그녀를 미워할수 없는 것은 그녀가  주군의 친동생이며 어린 시절을 함께했던 소꿉친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엘리제를 동정한다.
그녀가 비뚤어진 이유를 알기에 더욱 그녀를 인간적으로 미워하는게 힘들었다.


"내 입? 아... 기사가 아니라고 했던 말이 그렇게 상처였어?"


"...그만..."


"버려진 건 사실이잖아. 그날 네가 너무 쓸모없어서 버려진 건 사실 아니었어?"

엘리제가 하는 말에 그녀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고, 검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를 죽여서는  된다.
아무리 공주가 그를 속이고 있다 하더라도, 그의 명령 없이 그의 것을 마음대로 할  없다.

"내가 너에게 주인님에 대해 알려줬던 건.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라고 알려줬던 거야. 이제 널 좋아하지 않으시니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전혀 모르겠군요. 그분이 저에게 마음을 준..."

"또또 거짓말. 나보다 거짓말을 잘하는 아이라니까?"


"...그 말은 취소해주시죠. 당신보다 거짓말을 잘하는 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머, 잘못 안 거겠지. 거짓말이 뭐야? 나 거짓말 같은 거 해본 적 없어"

사실 그가 자신에게 마음을 주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한참 옛날부터 그가 자신을 사모하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자격으로?
단  번도 그의 마음에 응한 적이 없는데, 그가 망가지고  망가지는 것을 보면서도 외면했던 그녀가 어떤 자격으로 그의 마음에 보답할까?

버림받은 순간까지도 그에게 쓸모가 되지 못해 마음을 전하지 못했다.
이미 버림받고 죽을날만을 기다리는 그녀가 대체 무엇을 기대한다는 말일까.


"쓸데없는 생각 같은 거 안 합니다. 그분이 저를 버리셨다 해도, 저는 주군을 위해 마지막까지 목숨을 바쳐야 합니다. 그저 그것뿐. 그 이상의 무엇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그가 도와달라 수도 없이 말했던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수 있었다.
하지만 불가능하지 않은가.
그리고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그녀는 왕국과 여왕을 져버리고 그를 선택할수 있을까?
그를 살리기 위해 또다시 국가를 피바다로 만들 자신이 있을까?


"흐응~ 그래? 그럼 확인해볼래?"

"......"

"그러네. 그게 더 낫겠다. 그년이 주인님을 구하는 것보다 네가 가는 편이 그림이 더 살겠어. 직접 네 눈으로 확인해보는 거야. 정말 네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건지"


엘리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순간 이해하지 못했다.

"대충 주인님이 어디 있는지  것 같은데. 어때 들어볼래?"

이어지는 엘리제의 말에 그녀는 들고 있던 검을 놓칠뻔했다.




***

그녀가 내게 건 저주였다.

[싫어하시게 될 거예요.]


내 좆대로 살겠다 그렇게 되뇄는데...
나는 그의 기억을 보며 수도 없이 흔들려 버리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가 기억도 하지 못하는 죽음을 전부 봤던 것은 오기였다.
아주 조그마한...그녀를 변호할 만한 아주 조그마한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나는 그의 죽음을 전부 마주했던 것이었다.


그녀를 버리면 끝나는 일을 굳이 참작의 여지가 있을지 모른다며 찾고 또 찾았다.
하지만 너무 명백하다.

그녀의 행동들은 전부 잘못되었고, 용서할만한 것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 같은 웃음을 지으며, 그를 죽이고 또 죽였던 그녀가 나와 다시 마주하게 되었을 때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대체 그녀를 어떤 식으로 대해야 할까?

나에게 그녀가 필요하다 생각했다.
억지로라도 그녀를 데리고 있으려 했다.

그녀는 내가 처음으로 만든 소설의 첫 등장인물이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였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워져 있던 히로인이였기에 버리고 싶지 않았다.


[사랑해.]


그날 그렇게 말했던 것은 그녀를 이용하려 했던 것이 아니다.

[당신은 인형과 관계를 맺고 싶은가 보군요. 인격도 대화도 필요 없는 인형과 관계 맺을 거라면, 굳이 저 같은  쓸 필요가 있나요?]

그녀의 정신이 망가졌다는 것을 알고, 원래의 모습을 연기시켰다.
그녀를 막 대하고 싶지 않았고 그녀가 내 옆에 있었으면 했다.


성녀가 아이돌을 한다는 것을 들었을  당황했던 것도
망가져 버렸을 때 내가 화를 내었던 것도 전부 진심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녀의 얼굴을 마주하는  두려워진다.
그녀가 나를 죽일까 싶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내가 대체 어떤 표정으로 그녀를 마주 봐야 하는지 몰라 두려웠다.


감겨있던 눈을 살며시 뜨자 분홍색의 긴 머리카락을 하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원래라면 날카롭게 나를 노려봐야 할 보라색 눈이 무척이나 둥글둥글해 보이지만, 그런데도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하디순한 그녀의 눈이 이내 커다랗게 확장되었다.


"회귀 하신 건가요..."


"응"


나는 어째서 이 시간으로 돌아온 것일까.
어째서 그녀를 전부 안고, 그녀의 가슴에 파묻혀 시간을 보내던 때로 나를 돌려보낸 것일까.


"왜...지금인가요. 조금 더 과거로...돌아가시지 그러셨어요."

"...지금 어때? 어떤 감정이 들어?"

"...가져서는 안 될 감정이에요. 당신은 저에게 어떤 말로 속이셨길래 이런 감정을 가졌던 건가요"


조금 더 과거로 갔다면, 그녀를 안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아니,  과거로 돌아갔어도 결과는 똑같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가슴은 마약과도 같아 탈출하고 싶어도 탈출하지 못할 것이다.


"전부 봤어"

"...무엇을 보셨다는 건가요"


"네가 말해줬던  전부"

"당신은 비위도 좋으시네요. 전부 봐놓고서  품에 기대고 계시다니 정말..."

"비위는 무슨. 어차피 너는 기억도  하잖아"


그녀의 풍만한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서 눈을 감는다.
대체 나는 지금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다른 건 전부 몰라도 단 한 가지 알 수 있는 건 내가 지금부터 하는 것은 전부 억지라는 것이다.


"이제 전부 알게되셨으니  버리시는 건가요?"

"싫어"


"감당하지 못할 행복을 받았어요. 해서는 안 될 짓을 했어요. 저... 지금 엄청 기대하고 있어요. 희망을 품어버렸어요. 앞으로...쭉 행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있어요."


"싫어"

"저...당신에게 원망받고 싶어서 당신을 납치했어요. 당신이 저를 잊었다는 것을 알고 다시 그날을 재현 시키려고 납치한거에요."

"재현? 할수 있겠어?"


억지로라도 그의 죽음을 전부 다 봤다.
직접 겪지 못해 자신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그가 기억도 하지 못하는 것을 나는 눈으로 전부 봤다.
그리고 내린 결정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으니, 이번에야말로 정말 내 마음대로 할 것이다.


"당신은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지도 모르시잖아요"

"너는 알아? 그리고 몰라도 상관없어. 그 이야기를 본다 하더라도 나는 똑같은 결정을 내릴거야"


"...버려주세요"

"내가  버려"


"버리지 않으실 거라면, 절 가지고 놀아주세요"


"지금도 잘 가지고 놀고 있어"


"제 몸에 다트를 던지며 노세요"

피 튀기는  이제 질린다.


"알몸으로 산책 가셔도 돼요. 그렇게 만인에게  몸을 보여주며 저에게 수치심을 주셔도 돼요."


내  공유한다는 것 자체를 혐오한다.


"청소도 잘해요. 제 쓸데없이 큰 유방으로 바닥 닦는  좋아하셨잖아요"


내 것이 더러워지는 것도 싫어한다.

"화장실로 사용하세요"


볼 일 보는데 다른 사람이 보고 있으면  나온다.

"그러면 묘기 좋아하시나요?  안에 물건이 어떤 것까지 들어가는지..."

"전부 필요 없어"


"필요하세요!!!"

악에 받친 소리였다.
그녀가 소리를 지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당신은...필요 하셔야돼요. 저에게 그런 감정 가지시면 안돼요...제 몸을 자르는  보여드릴까요? 저 악 지르는 것도 잘해요..."

"피튀기는  싫어한다니까. 잔인한 것도 싫어"

"저한테 어울리는 것들은 그런 것들이에요. 당신의 사랑을 받는  저에게 과분한 것이에요"


"그런거 안해"

예전 내가 라일라에게 납치됐을 때 단 한 번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거짓말이라도 좋아요.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그 이후로 나는 수천 번이고 후회했다.
다시는 이딴 일 겪지 않겠다고 말하며, 그녀를 안았던 그 날을 수도 없이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그녀에게 내뱉었던  말을 수백번이고 후회했다.

그날 이후 내 입에서 누군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꺼낸 적은 단  번도 없었다.

[거짓말 아니야. 사랑해. 처음 봤을 때부터 엄청 예쁘다고 생각했어.]

그런데도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그녀에게  것은...

"저 죽을까요? 쉽게 편해지면  되는데. 당신이 바라는 것이 제 죽음이라고 하신다면 얼마든 죽을 수 있어요."

"참 너도 질기다."

지금까지 쭉 억지를 부려왔지만, 나는 지금이 제일 억지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다.
지금 나는 나를 그렇게나 죽였던 여자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것이다.
죽인건 죽인거고 나와는 상관없으니 내 마음대로 할거라며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너희들을 이용해서  엿 같은 세상에서 떵떵거리면서 살 거야. 너희들을 구원한다는 생각 같은  죽어도  할 거야. 그러니까 너는 그냥 가만히  전용 베개나 하면서 위로나 해줘."

"당신은 대체  본 건가요. 알면서도 그런 말을 어떻게..."

"그럼 다 봤지. 너는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까지도 날 위로해줘야 하는 이유 정도는 전부 봤지"


내 말에 그녀는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인지 한숨 소리를 내쉬며 입을 닫아버렸다.


바보 같지만, 차라리 바보가 되는  낫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난이도 이지의 히로인을 두고 쓸데없이 피해자 코스프레 할 생각 없다.

그리고 다음 다가올 히로인은 이 여자보다 정말 어려울 것이다.
그녀가  것을 떠올리자 조금 옷을 차려입고 디아나와 떨어진 채 만날까 했지만 역시 이대로 만나는 게 나으리라 생각하며 그대로 말랑말랑한 가슴에 파묻혀있었다.

끼익하는 문소리에 고개를 들었고, 곧이어 문 쪽에 그녀의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떻게...주군께서...그 여자랑..."


그녀는 쓸데없이 책임감 크고, 심지가 너무 올곧아 죽어도 부러지지 않은...만약 부러진다면 하나의 국가가 멸망하는 히로인이었다.


나를 자살로 두 번이나 내몰고, 내 앞에서 세 번이나 자살한 상습 자살범.

"어서 와"

그녀가 생각했을  가장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야 이 심지 굳은 여자가 속마음을 전부 내어 보일 거라 생각하며 한 행동이지만...

"어떻게...그러실  있는 겁니까..."

조금 후회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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