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LEVEL 4 (3)
"제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러시는 건가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말투.
마치, 비련의 여주인공과 같은 대사와 애틋한 표정에 치가 떨려온다.
"저에게 만약 죄가 있다면, 그건 분명 주인님을 향한 헌신의 마음이 과해 일어난 불상사일 뿐. 분명 저에게 악의 같은 건 없었을 거에요. 말씀해주세요. 제가 대체 무엇을 잘못한 건가요"
물론, 그녀가 죄를 저지른 적 없다.
지금까지 쭉 그녀가 직접적으로 나에게 해를 끼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혀를 차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어두운 방안을 유일하게 밝혀주던 전등에 손을 올려 그녀에게 비춘다.
"엘리제 씨. 당신은 전혀 연기에 소질이 없어요. 비련의 여주인공이라도 연기하시고 계시는 거라면, 죽어도 안 어울리니 당장 집어치우시죠"
"...저는...한낱 주인님의 노예일 뿐인데. 어떻게 이런 천한 여자에게 말을 높이시는 건가요...이제 저를 버리시는 건가요?"
마주 보는 엘리제의 눈동자에 습기가 차며, 물방울이 또르르 떨어졌다.
이것이 악어의 눈물인가?
늘 포식자였던 그녀가 가증스럽게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이가 갈린다.
지금까지 그녀로 인해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가.
그 고통을 생각하면, 일말의 동정도 들지 않는 눈물이었다.
"저를...이렇게 움직이지도 못하게 묶으시고...대체 어떻게 하시려는 건가요? 저를 범하시려는 건가요! 에로 동인지에 나오는 공주처럼 저를 더럽히시려는 건가요... 이렇게 강제로 하지 않으셔도 늘 제 몸은 주인님의 하얀색 물감에 칠해질 준비가 되어있다는 거 아시면서...굳이...혹시 주인님께서는 이런 쪽이 취향이신 건가요?"
나는 테이블에 앉아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발을 짓밟았다.
"지금 제가 장난치는 것처럼 보이십니까"
"...아파요. 주인님...저 너무 무서워요. 얼굴이라도 보여주세요...제가 잘못했어요...용서해주세요..."
"같잖은 연기 집어치우라고 말했을 텐데요"
사실 내가 연기를 집어치우고 싶다.
그녀를 납치해 묶은 뒤 공포감을 조성하기 위해 방안의 불을 끄고 전등으로 그녀만을 비추며 존댓말을 해보았지만, 전혀 통하지 않는 듯 그녀의 얼굴에 홍조가 한가득 피어있었다.
마스크를 쓴 것도 그녀에게 최대한 표정을 감추기 위해서 였다.
내 연기를 비웃기라도 하겠다는 듯 비련의 여주인공을 연기하는 모습.
정말 모르는 사람이 보면 당장 강간당하기라도 하는듯해 보이지만, 이 여자 지금 속으로 웃고 있을 게 뻔했다.
간간히 보이는 그녀의 웃음 섞인 미소에 지금 내가 쓰잘머리 없는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충분했지만 이제 와서 그만두면 더욱더 없어 보였기에 컨셉을 유지하며 눈에 더욱 힘을 주었다.
"저는...주인님 밖에 없어요...저,저를 버리지 말아 주세요"
"표정 관리나 하고 무섭다고 하시죠"
"...티 많이 나요?"
씨발년.
"...지금부터 제가 질문을 할 것입니다. 벌을 받고 싶지 않으시다면 진실만을 말해주시기 바랍니다."
"네! 얼마든지 말해주세요! 제 모든 것인 주인님을 걸고 진실만을 말하겠습니다!"
질문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거짓말이 나왔다.
이 여자에게 내가 전부였던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을까?
설령 그것이 맞다 하더라도, 이 여자가 이렇게 쉽사리 진실을 말할 거라는 기대는 하지도 않았다.
...그래, 아직 무슨 벌을 받는지 모르니 이렇게 자신 있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겠지.
나는 한쪽에 서 있던 라일라를 향해 눈을 돌렸고, 곧이어 라일라는 자신이 들고 있던 상자를 가져와 그녀의 앞에 있는 테이블에 올렸다.
"이게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그 동안 고생했던 노예에게 주는 주인님의 상?"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 하는군요. 좋습니다."
이제야 조금 그녀의 웃음기가 사라진듯한 느낌이 들었다.
단순히 호기심에 웃음기가 빠진 것뿐이었지만, 이 상자 안의 내용물을 보게 되면 그 웃음기도 금세 사라지게 될 것이다.
나는 섯다 패를 까보는 기분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상자를 열어 내용물 중 하나를 살며시 꺼내 테이블에 위에 올려놓았다.
"이게 무엇인지 아시나요?"
"......"
"나름 신경 써서 구해온 것인데... 만족스럽지 못하시나 보군요. 그래도 환하게 웃어주셔야죠. 곧 서방님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는 건데"
굵고 긴 물건을 테이블에 올려놓자 그녀의 표정이 썩어들어가는 게 눈에 들어왔고, 기분이 무척이나 좋아졌다.
테이블에 우뚝 서 있는 길고 굵은 실리콘 덩어리.
"...주인님. 저 장난감 싫어해요"
"엘리제 씨. 이제부터 제 말에 단 한 번이라도 거짓말을 하거나. 혹은 제 마음에 들지 않는 대답이 나올 경우. 이 길고 굵은 막대기가 당신의 새로운 주인님이 될 거에요"
"...장난도 싫어한답니다"
아...그녀를 어떻게 해야 당황하게 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녀는 내 손으로 괴롭힘당하는 것을 무척이나 원한다.
내 감정을 받아낸다는 상황 자체를 너무나도 원하는 그녀였다.
굳이 그녀가 말로 표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내가 지금까지 그녀와 함께했던 시간이 그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은 내가 그녀를 직접 벌하는 것이 아닌, 그녀의 소중하고 소중한 것을 빼앗는 게 제일 큰 벌이라 생각했다.
"엘리제 씨. 당신이 말했던 대로 저는 언젠간 전부 버리게 되겠죠. 벨라트릭스. 라일라. 디아나. 그리고 샤를도 나중에 돼서는 버리게 될 거에요. 그렇다고 지금의 내가 당신을 찾아가 어리광을 부릴 것 같지는 않지만, 미래의 일은 정말 모르는 것이겠죠. 당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때 당신은 과연 순결한 처녀일까요?"
"......장난치지 마요. 주인님. 저 조금 화 날려고 해요."
"장난인지 아닌지는 시험해보시면 아시는 거죠. 자, 엘리제 씨. 진실만을 입에 담으시면 됩니다. 만약, 거짓이 섞여 있다? 그러면, 이것이 당신의 주인님이 되어 매일 당신과 함께하게 되실 거에요. 이해를 못하실 수 있으니 자세히 설명드리자면, 새로운 주인님과 일심동체가 된채 평생을 살아가시게 된다는 말이에요."
마음 같아서는 진짜를 여기에다가 가져다 놓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그녀는 예뻤고 나는 타인과 무엇인가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내가 그녀를 평생 안지 않을지라도 내가 하나하나 구상해냈던 이상의 히로인을 공유하는 것만큼은 죽어도 싫다.
그녀가 입술을 깨물고 나를 노려보는 게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이제야 대화할 준비가 된 것이다.
"왜...이러시는거에요...저...잘못한거 없어요...제가 주인님에게 뭘 했다고 이러시는 거에요..."
"자, 첫 번째 질문입니다"
그녀에게 물어볼 여러 가지 질문 중 첫 번째를 꼽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고민하고 또 고민한 뒤 아예 시간순으로 정렬해서 물어보는 게 낫겠다 싶어 가장 무난한 최근의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9월 9일. 그날 당신은 제가 라일라를 두고 디아나를 데리러 방송국에 제 발로 들어가도록 유도했으며, 결과적으로 디아나가 저를 납치할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전부 알고 있었으면서도 고의로 제가 납치당하도록 입 다물고 있던 것을 인정하십니까?"
"......"
화를 내는 것인지 그녀는 나를 노려보며 입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 무언? 좋아요. 알겠어요. 시작부터 저의 진심을 시험해보고 싶으신 거군요"
기어코 피를 봐야 정신을 차리겠다는 거구나.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길고 굵은 것을 손에 들어 보였다.
내 평생 이것을 손에 잡아볼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자꾸 이러시면 이번에는...저...진짜 삐뚤어질 거에요...저번처럼 어린애 장난 같은 짓 안 하고 진짜로 화낼 거에요."
"네, 좋아요. 협박 잘 들었어요. 시작부터 대답 안 할 거면 그 입 닥치고 계시면 됩니다. 조수!"
"네, 주...군"
"이년 다리 벌려"
"꼭 이렇게 해야만 하는 겁니까... 다른 방법이..."
"하기 싫으면 말해. 디아나 시킬 거니까"
디아나가 자신을 대신하는 것은 죽어도 볼 수 없는 것인지 벨라트릭스는 엘리제에게 다가가 그녀의 뒤에서 양다리를 잡아 나를 향해 벌렸다.
밑에 있는 전원 버튼을 누르자 '윙' 소리를 내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아 참, 이것을 넣는 건 제 손이 아닌 제2 조수 라일라의 손을 통해 집행할 예정입니다. 저는 당신의 몸에 일절 손도 안 댈 것이고, 당신의 소중한 것을 잃는 순간도 보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처녀인지 비처녀인지 상관없는 일이다.
말을 타거나 격한 운동을 할 경우에는 자연적으로 찢어지기도 하는 처녀막이고 그녀가 다른 남자의 손을 타는 것도 아닌데 무슨 상관일까.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그녀가 생각하는 처녀막의 가치는 분명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인정해요."
"응? 너무 목소리가 작아서 안 들리는데요?"
"인정...한다구요! 그러니까 그 징그러운 거 끄세요!"
"징그럽다니. 당신의 주인님 후보인데. 아... 이 모양이 마음에 안 드시면 다른 것도 있으니 얼마든 취향을 말씀하셔도 된답니다."
"인정한다고 했잖아요!!! 빨리 놔!!"
그녀가 입술을 깨물고서 나를 노려보니 생전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 든다.
아, 카타르시스가 이런 것일까?
늘 억울하게 그녀에게 당해오던 것들이 사이다처럼 톡톡 터지는 느낌이 들게 만들어 기분이 매우 좋다.
"벨...아니, 조수. 자리로 돌아가도 좋아요."
"주군. 저는 조수가 아니라..."
쓸데없는 말을 하는 벨라에게 손짓해 입을 다물게 했다.
쓸데없다고 생각했던 무대와 의상 그리고 연기가 드디어 제 역할을 한 듯 공포감 조성에 성공했다.
"이제야. 이야기할 준비가 된 것 같군요. 인정하신다고 하니, 다음 질문을 하겠습니다. 당신은 제가 디아나에게 붙잡혀 있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쭉 방관했었습니다. 이것도 인정하십니까?"
"...네"
고분고분하게 인정해 보이는 모습.
일단 납치 방조죄는 성립이 되었다.
드디어 이 개년의 죄가 하나 확정된 것이다.
"두 번째 질문입니다. 최근 당신은 샤를을 만났습니까?"
"만나지 않았어요."
"...절 아주 개 멍청이로 보시는군요. 좋습니다. 9월 1일부터 오늘 사이에 샤를...아니, 뱀파이어를 만나 대화한 적이 정말 없으십니까?"
"......"
"긴쪽이 좋나요 굵은..."
"대화...했어요..."
이 개 같은 년이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니 머리를 쓴다.
"언제. 어떻게. 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까지 말씀하셔야죠"
"프라이버..."
윙윙윙
"주인님이...디아나를 만나는 날...뱀파이어를 만나서...이야기 했어요..."
"그리고?"
"...주인님이 어디 계신지 알려줬어요."
"그것뿐?"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나는 침을 삼켰다.
어떻게 와 왜는 어느 정도 알 것 같았고 그것 말고도 물어볼 것은 산더미 같이 많았기에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되었다.
"...또 있을 텐데"
"정말 없어요!"
"예를 들면, 내 상태가 마음에 안 든다 싶으면, 대충 벨라가 어떤 상태인지를 설명해주면서 당장 쳐들어오면 될 것 같다고 신호를 준다던가"
"...이미...써먹었나보네요"
너어는...진짜...
...이건 전의 것과는 다르게 아예 납치를 주도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두 번째 죄도 확정이다.
여기까지만으로도 이년은 사형에 처해야 마땅하지만, 아직 물어볼 죄들이 많이 남았다.
"세 번째 질문입니다. 당신은 벨라트릭스가 죽기를 바라고 저에 대해 알려준 게 맞습니까?"
"......"
"그때의 내가 벨라와 만나면, 당장 거부할 것을 예상하고 벨라트릭스를 만나게 했습니다. 맞나요. 아닌가요"
"...거짓말하면...안되죠?"
이미 대답을 들어버렸다.
그래, 그녀는 그때부터 내가 회귀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양아치 같은 년이 자살 유도까지?
내 정신적 피해에 직.간접적인 공헌을 해놓고 입을 다물고 있었네?
"네 번째. 당신은 애초부터 회귀에 대해 전부 알고 있었습니다. 맞습니까?"
"......."
"알면서도 구라친 이유...그래, 구라치는 거야 당신의 장기이니 어느 정도 이해하겠습니다."
"...저 삐뚤어져도 미워하지 마세요"
"...협박 안통합니다. 일단 네 번째 질문의 마무리는 다섯 번째 질문을 마친 다음 다시 하도록 하죠. 물어볼 게 참 많아요. 아직 준비한 질문의 절반도 안 나왔으니. 긴장하고 계세요."
"주인님이 자초하신 거에요"
그렇게 말한다고 누가 쫄 줄 알고?
지금 나에게는 좌 라일라 우 벨라트릭스가 있다. 이거야.
무력으로만 소설 내 최상위권 히로인 둘이 딱 붙어있고 만약을 대비해 힐러 한 명까지도 뒤에 버티고 서있는데 이걸 어떻게 뚫으려고?
쫄 이유가 전혀 없다.
"라일라가 저를 납치한 적이 있습니다. 당신은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만약 라일라가 나를 납치했..."
"주인님 그거 아세요?"
"...질문 도중입니다. 극악무도한 범죄자 주제에 말 끊지 마시고 질문을 먼저 다 듣고 난 후에 하도록 하시죠. 당신은 애초에 발언권 자체가 없다는 걸 이제는 좀 알아주셨으..."
"저쪽 세계에 있을 때는 주인님이 세계 어디에 있어도 느낄 수 있었는데, 이곳에 온 이후부터 그 누구도 주인님의 얼굴과 목소리를 기억하지 못하고 주인님의 위치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 아시나요?"
그녀의 말을 중간에 멈추려고 했었다.
그런데, 나를 바라보며 섬뜩한 미소를 짓는 그녀의 표정에 나는 얼어붙은듯 그녀의 이야기를 전부 들었고, 곧이어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지금 중요해? 질문 같은거 집어치우고 묻는 말에만 대답이나 해. 아니, 하세요"
"기억은 다른 년이 건드린 거긴 한데... 주인님의 기운은 제가 관리하고 있었거든요. 주인님을 두 번째 만났을 때부터요."
"...뭐?"
"주인님이 세상 어디에 있든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그 커다란 권능이 세상에 풀어지면, 아무것도 모르는 주인님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고통받게 되시잖아요"
"......"
"그래서 막고 있었거든요.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지만, 저는 주인님을 위해서라면 제 한 몸 아깝지 않은 노예니까요!"
"잠깐"
분명, 그런 설정이 존재하긴 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제가 어느 곳에 있더라도 느껴져야 할 주인님이 세상 어디에도 느껴지지 않았어요. 모두가 그래요. 이곳에 온 모두가 주인님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에요]
시간상 엘리제를 두 번째 만났을 때. 들었던 말이었다.
분명 라일라에게 완전히 망가져 죽은 뒤 레벨 1이라는 숫자가 내 앞에 나타났던 그 날...
그녀가 내 앞에 나타나 나에게 주인공이 되라 강요하며 주인공의 설정에 대해 말한적이 있긴 했다.
그런데 그녀가 막고 있었다?
대체 엘리제가 어떻게 그걸 막을수가... 아니, 할수 있다고해도 그걸 왜...
아니, 해준건 고마운데... 왜 그걸 지금에 와서...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은 상황에 청천벽력과 같은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절 버리려고 했던 주인님이 나빠요! 주인님에게 드리기 위해 소중하게 지켜왔던 제 처녀를 싸구려로 만들려 했던 주인님이 잘못한 거에요!"
"엘리제. 잠깐만 기다려봐. 머릿속이 정리가 안 돼서 그런데, 10분만 기다려줄래?"
나는 그렇게 말하며 몸을 천천히 돌려 이 방의 문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벨라랑 라일라도 잠깐만 이쪽으로..."
"그러니 저는 아무 잘못도 없답니다~♡"
실수...했다.
그녀가 대체 뭘 믿고 지금까지 까불어왔는지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내가! 잘못했어! 생각해보니까. 내가 진심으로..."
다시 한번 생각해보니 그녀는 정말 무고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고한 엘리제를 어서 풀어주기 위해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이미 자신의 힘으로 몸을 묶고 있던 속박을 풀고 있었고, 어느새 자리에 서서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그녀의 미소를 마주하며 천천히 고개를 양옆으로 저었다.
"그러지 마... 그러면 안 되는 거 알지? 사...사라지지 마!!!"
곧이어 천천히 투명해지는 엘리제를 붙잡기 위해 열심히 그녀를 향해 달려갔지만, 내가 도달했을 때에는 그녀가 사라진 뒤였고 나는 곧장 라일라를 바라보았다.
"너,너는...막았어야지...지금 뭐 하는 거야?"
허공을 멍하니 보고만 있는 라일라의 모습에 열불이나 그녀를 향해 걸어갈 때 누군가가 나를 잡아 뒤로 당겼다.
"주군!"
쾅
커다란 굉음과 함께 몸의 중력이 사라진 듯한 붕 뜬 느낌과 함께 발아래 몸을 떠받았고 있던 바닥이 사라졌다.
건물이 무너지는 굉음 사이로 또 다른 굉음이 귀를 파고들었다.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