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9화 〉LEVEL 5 (1) (59/87)



〈 59화 〉LEVEL 5 (1)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잠에서 깼다고 생각했지만...눈에 보이는 것들은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게 했다.


"씨발..."

두 번이나 내뱉는 욕이었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변한 것은 아니었다.

분명 방금까지 집 소파에 드러누워 말랑말랑한 디아나의 허벅지 살과 함께 평온하게 잠이 들었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전혀 다른 세상.
욕이 안 나올래야  나올 수가 없다.


세상에 하루만 쉬고 싶다고는 것이 그리 잘못된 걸까?
내가 너무 큰 것을 바라는 거야?


"꺄악!!!"

미쳐버리게 열이 받지만, 주변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그래도 상황 파악 정도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뜨자 보이는 곳은 어느 마을.


쾅!


아니, 정확하게는 마을이었던 곳이었다.
방금 전까지는 사람들이 서로 웃으며 오순도순  살고 있던 마을이 1초 만에 폐허가 되어버렸다.


"......."

[Continue]


LEVEL : 4 -> 5

지금 보는 광경은 레벨업으로 인해 그의 과거를 보고 있음이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이번에도 나는 제삼자가 되어  마음대로 몸을 움직일  있는것 같다.

거기다 잠을 자던  뜬금없이 객사한 것은...아마 아닐 것이다.
내가 있던 집은 벨라트릭스와 라일라 그리고 디아나가 있었기에 절대로 누군가가 나를 암살할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그리고 저 컨티뉴라는 글자.
매번 나오는 베드 엔드가 아닌 저 글자를 보고 추측해본다면 나는 지금 죽은 것이 아니리라는 것에 확신을 더한다.

주변을 둘러보자 온통 폐허만이 존재했다.
그가 이곳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를 찾기 위해 몸을 움직이려던 도중 문득 한가지가 떠오른다.


그 새끼가 주변에 없음에도 주변 환경들이 세세하게 눈에 들어온다.
환경이라고 할 것도 없지만,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긴 바닥과 그 주변에 조금씩 흩뿌려진 핏자국. 돌멩이 하나하나. 바닥에 굴러다니는 누군가의 것이었던 몸의  조각.

조금 눈을 돌려보면  멀리 숲이...


쾅!


방금까지 있었는데, 없어졌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들은 전부 무엇일까?

일단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기에 움직이자는 생각을 하던 도중 나는 굳이 걸어서 움직일 필요가 있나 싶어졌다.
하늘에서 보면 그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몸을 띄운다.
예전에도 한 번 실험해봤던 것이기에 쉬웠다.

그렇게 몸을 띄우며 조금 높이 올라간 뒤 고개를 숙이자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대충  수 있었다.


세상이 펑펑 터져나가고 있다.

몸을 높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훨씬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멸망.

세상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여 혹시나 아닐까 싶었지만, 내가 보고 있는 것은 그의 과거가 맞았다.

그저 그의 인지 범위가 인간의 수준을 뛰어넘었을 뿐.


모든 것이 선명했지만, 하늘을 넘어 우주가 보여야  저 바깥이 하얗게 드리워져 있었다.
...마치, 마법사가 주변의 것들을 장악하듯 세상 전체를 장악한 것이다.

몸을 아래로 내려 그가 있는 장소로 향했다.
전 세계가 그의 영역인것처럼 보여 못찾을  알았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그가 어디 있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를 마주한 순간 나는 내가 왜 이것들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동안 벌어진 일들에 대해 어느 정도 궁금증을 해소해왔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은 대체 어떤 상황인지.
어째서 나인지.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왜 그는 기억을 지웠을까.
왜 그는 이곳으로 넘어왔을까.
왜 히로인들이 현대로 넘어오게 만들었을까.

하지만, 내가 마주 보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것 같다.

"빵"

어린아이가  모양 장난감을 가지고 놀듯.
손가락을 내밀며 입으로 소리를 내는 그의 모습.

장난과도 같은 그의 조그마한 행동으로 인해 처음 봤던 마을과 같이 세상 어딘가의 마을이 몰살당했다는 것을 그리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마을이 아닌 도시. 아니,  대륙 어딘가의 국가가 멸망했을지도 모른다.

"히히"


해맑은 어린아이와 같이.
아니, 정신병자처럼 그는 웃었다.

그렇게 웃으며 몇 번이고  소리를 내어 보인다.


그는 망가졌다.
누가 보더라도 그가 미쳤다는것을 알수있었다.


정상인의 얼굴이 아니다.


...솔직히 그가 이 정도로 강해질 때까지 망가지지 않았다는 게 더 신기하다.


가만히 앉아 저 장난과도 같은 행동을 하는 것으로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을 때까지 그는  번이나 죽음을 겪었을까?

그의 눈동자 어디에도 이지를 찾아볼  없다.


만 번 정도면...저렇게 될까?


죽음의 숫자도 물론 그를 강하게 만들었겠지만...
벨라트릭스와 싸울 때처럼 가볍게 목숨을 잃어 본  있기에 알 수 있다.
그저 자살을 이용한 쉬운 죽음의 반복으로는 결코 저렇게 될 수 없다.

죽음의 질...
이런 표현이 웃기기는 하지만, 얼마나 처절하게 죽었느냐도 그를 강하게 만들어주었을 것이다.
나 또한 목적을 가지고서 죽거나. 감정이 격화된 채 죽었을 때에는 아주 조금이지만 강해졌다는 것을 실감했으니. 그도 분명 그럴 것이다.

[엄청나게 강하셨어요. 저 같은 건 감히 재단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셔서... 얼마나 강하셨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적어도 선생님의 여자들이 전부 적으로 돌아선다 해도 순식간에 제압해버릴 만큼 강하셨어요.]


라일라가 예전 했던 말이 떠오른다.
이 모습을 보니 그의 강함을 재단할  없다는 말이 이해된다.

[선생님은 강해지실 때마다 늘 힘들어하셨어요. 절대 이길 수 없다고...힘들다고 생각했던 상황이 되면,  선생님은 망가지셨고...순식간에 엄청나게 강해지셔서...]

왜...엘리제였을까.
...그가 마지막에 고른 히로인이 엘리제 였다는 말인걸까?


"빵"

만약 옛날 라일라나 벨라트릭스와의 기억을  때처럼 그와 동화되어있었더라면, 큰일이 났을 것 같다.
완전히 망가진 그와 동화되었더라면, 나까지 제정신을 유지할  없게 되어버렸을 테니...


그가  기억을 지웠는지 이해가 되었다.
이렇게까지 망가졌는데 당연히 기억을 지우겠지.

...누가 회귀시켜주었는지는 몰라도. 그는 자신이 세상 모두를 죽였다는 것에 자책하며 모든 기억을 지워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그가 왜 현대로 넘어왔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의 의문을 해결시켜주기 위함인지 내  뒤에서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즐거우세요?"


익숙한 목소리.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에..."

"그렇게나 즐거워하시니. 저도 정말 좋네요."


"빵"


그의 말과 함께  등 뒤에 서 있던 여자의 목소리는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이지를 상실한 그가 일반인과 히로인들을 구별할 리가 없었기에 당연한 결과...

"주인님"


...죽었으리라 생각했던 여자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온다.


[엘리제. 그 여자를 제외하고 선생님이 떠나신 후 선생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거에요.]


"죽어"



"더는 죽일 사람이 없어요. 이 세상에 이제 살아있는 사람은 주인님 혼자 남았거든요."

"죽어"


쾅.


그가 앉아있는 주변으로 모든 것들이 터져나간다.
유일하게 온전히 남아있던 그의 주변 건물들이 무너지고, 핵폭탄이 떨어진 듯 거대한 폭발이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왔지만...


"이제 돌아갈 시간이에요. 주인님"

그녀는 죽지 않고 그에게 말을 걸었다.
천천히 시야가 흐릿해지기 시작한다.


돌아갈 시간이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가 자멸하고 있을 뿐이었다.

세상 모든 생명체를 죽이고, 그다음에는 세상을 무너트리고 마지막에는 자신까지 죽이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나는 아직 모든 이유를 듣지 못했다.
아직도 나는 그가 이곳에 넘어온 이유를 듣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이 기억으로 엘리제가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을 추가로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하얗게 질려가는 세상 속에서 엘리제는 무엇이 그리 즐거운 것인지 웃고 있었다.


지금 그녀의 눈이 나를 향하고 있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사랑해요. 주인님"

정말 알 수 없는 여자다.




***



눈을 뜨자 거대한 것이  눈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듯 무너질 듯 무너지지 않는 그것이 혹여 떨어져 내 눈을 다치게 할까 두려워 잽싸게 손을 들어 그것을 붙잡았다.


"아읏..."


휴...다행이다.
내가 잽싸게 잡지 않았다면,  거대한 것이 눈으로 떨어져 실명 했을 게 분명했다.

"갑자기 일어나자마자 무슨 짓이에요."


"자기방어 행동?"


"뜬금없이 무슨 소리를...아흣...제가 말하는 중이잖아요. 그만하...흣..."

 손에서 느껴지는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것을 주무르며 방금 꿨던 꿈과 같은 것을 떠올려본다.
지금까지 쭉 그래왔듯 그의 기억은 나에게 무엇인가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을 전달하려고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흐읏...그만 하세요."


"그렇게 싫으면 말 만하지 말고, 네 손으로 직접 치우지?"


"...치우세요"

디아나가 내 행동을 저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마음만 같아서는 그녀의 가슴에 입을 대어 아이와 같이 쪽쪽 빨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내가 있는 장소는 거실이었다.

"지금 몇 시야? 슬슬 배고픈데."


"...흣...부탁드려요. 일단 손을 떼고...흣...말씀해..."


달아오른 것일까.
그녀의 목소리에 야릇한 신음이 섞여 무척이나 애달파져 있다는 것을   있었다.
왠지 목덜미에서 습기가 느껴지는  같기도 하고...


"혹시 오줌 쌌어?"

"......"


"대답이 없네?"

"쓸데없는 질문에 대답하고 싶은 생각이...꺅!!"

고운 대답이 나오지 않기에 그녀의 가슴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녀의 새된 비명을 들으며 즐겁게 미소를 짓고 있을 때 머리에 배고 있던 그녀의 허벅지가 딱딱하게 굳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그녀는 몸에 힘이 빠져 소파에 쓰러지듯 몸을 누어 보였다.


몸을 살짝 일으켜 디아나를 내려다보자 절정의 여운을 참는 듯 이를 악다물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가슴만으로 가버리는 주제에 어떻게든 참아 내려는 모습이 갸륵하지만.

"꺄읏..."


그녀의 유두가 있을 곳으로 손가락을 가져가 살짝 튕기자 애써 참아내고 있던 절정이 터져 나온 듯 그녀의 허리가 튀어 올랐다.

솔직히 야하다.
몸을 완전히 일으켜 내려다보자 그녀의 야한 모습이 더욱 선명히 보인다.


흐트러진 것은 둘째치고 마구 주무르다 보니 차고 있던 브래지어가 풀린 것인지 거대한 수박 두 덩어리의 중앙 부분이 조그맣게 도드라져 보였고, 바지를 입은 채 나른하게 뻗어져 있는 양다리 사이로 물기가 진하게 일자로 나타나 있었다.

거실에는 나와 디아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아마 전부 방에 있겠지.

솔직히 벨라와 라일라는 평소와 같은 억지를 내뱉으며 밀어붙일 수 있지만, 엘리제.  여자는 조금 걸린다.
하지만, 신음을 전부 듣고 있음에도 밖으로 나와보지 않는 것은 세 여자 전부 나의 행위를 묵인해준다는 것이 아닐까?
정말 오랜만에  발 빼기 위해.


"디아나. 벗..."


...말하려던 중  등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입을 다물었다.


"응? 자기야. 계속 말해야지"

"...여긴 무슨 일로 온거야?"

고개를 돌려 그녀를 마주한다.
붉은 머리카락이 무척 인상 깊은 여자.
말투에는 장난기가 많지만,  장난스러운 말들이 전부 진담인 여자.

"무슨 일이냐니. 우리 아직 결산이 끝나지 않았잖아. 어제는 쉬러 간다고 해서 그냥 놔줬지만. 오늘은 마무리해야지?"

"......"

무슨 결산을 말하는 것일까.
전혀 모르겠다.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거야? 설마, 나를 이용하고도 아무런 보상도 없이 넘어가려고 했어?"


웃으며 이야기하는 그녀의 말이었지만, 그녀의 말에는 무척이나 날카로운 가시가 담겨있었다.
솔직히 '명령'이라는 것을 내세워 뱀파이어들이 했던 고생을 전부 무보수 노동으로 치부하고 넘어가려고 했었다.

샤를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그녀에게 줄 게 없다.
아니, 있기는 하지만...

"자기야. 나에게서 얻어간 게 있으면 그만큼 돌려줘야 하는 게 아닐까"


"......"

"내가 필요한 건 딱 하나인데. 자기도 알지?"

"그냥 무보수 노동으로 하면 안 될까?"

...본전도 못 뽑을 말이었다.
그동안 쭉 같이 있거나 내가 무엇인가를 해준적 있는 벨라트릭스, 디이나, 라일라의 경우와는 다르다.


나만 기억하는 과거. 그리고 모두가 기억하는 과거 전부 나는 샤를에게 빚을 졌다.


"자기야. 나 그런 장난 싫어해.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나 힘들게 자기를 도와줬는데. 아무런 대가가 없다는 것을 안다면. 얼마나 슬퍼할까."


그녀가 한 걸음씩 나에게 걸어오기 시작했고, 곧이어 내 앞까지 도달했을  그녀는 자리에 멈췄다.
샤를의 의지로 멈춘 것은 아니었다.

"그 이상 주군에게 다가오시면 베겠습니다."

어디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일까?
타이밍이 너무 좋게 나타나 검을 빼어 들고 샤를의 목을 겨누고 있는 벨라트릭스.
샤를이 오기전 디아나를 덮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는 이 상황을 설명할 딱 맞는 단어가 있던데. 토사구팽. 설마 나와 아이들을 그렇게 이용하고 이제와 버릴 생각은 아니지?"


솔직히, 내가 할 말은 없다.
샤를이 아무런 조건도 내 걸지 않고 나를 도와주기는 했지만...
입을 닦고 넘어가기에는 양심이 너무 찔렸다.

부산을 먹어버린 샤를이 돈이 필요해 나에게 대가를 요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뱀파이어의 여왕으로 군림하는 그녀가 명예와 권력을 요구하는 것 또한 아닐 것이다.

...그녀가 나에게서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라일라가 한 손을 든 채 언제든 마법을 쓸 준비를 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벨라. 칼 거둬. 라일라 너도 그만하고."

무보수 노동은 아니긴하지.
알바를 할때도 사장이 월급을 다음 날 준다고 하면, 감히 내 노동력을 가져가 놓고 월급을 하루나 밀리냐며 열이 뻗어 그날 잠을 못 이루었는데...

그래. 눈 한번  감자.


"딱...일주일"

"응? 일주일이라니? 무슨 소리야? 자기야 정확하게 알려줘야지."


예전 엘리린의 몸에 들어갈 때도 느낀 것이지만.


"...딱 일주일만...몸으로 때울게"


 입에서 창녀와 같이 자신의 몸을 팔겠다 말한 순간 내 안에 있던 무엇인가가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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