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0화 〉LEVEL 5 (2) (60/87)



〈 60화 〉LEVEL 5 (2)

고개를 돌리자 창문을 통해 바깥 풍경이 빠른 속도로 지나치고 있었다.

오랜만에 오는 부산.
이렇게 차 안에서 밖을 바라보니 옛날 조선 시대 때 귀양살이를 하기 위해 한양에서부터 먼 길을 떠나는 양반이 어떤 기분을 했는지   같다.
실상은

내가 왜 그랬을까...
입조심 좀 하지...


[딱 일주일만 몸으로 때울게]

내가 내뱉은 한마디의 말이 불러일으킨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주군!!!]

귀에 피가 날 정도로 나에게 소리를 지르던 벨라트릭스.
나를 껴안으며 듣기 힘들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아니죠?'와 '선생님'이라는 말만을 반복하던 라일라.
말은 못 해도 힐끔힐끔 노려보는 것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명하던 디아나.


[저는 찬성이랍니다]

예상했다는 듯 악마와도 같은 미소를 지어 보이던 엘리제.
엘리제를 제외하고 다들 나를 위하고 있다는 것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과분한 애정.
너무나도 과해 부담되긴 하지만, 그래도...

그녀들의 이런 과부한 애정 때문이더라도 나는 회귀하지 못한다.

벨라트릭스를 제압하려고 했던  나는 얼마든 회귀 할 수 있게 되었다.
직접 해보지는 않았지만, 나는 아마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게 시작되었던 8월 1일.
그 이전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날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실수투성이에 나태함과 어리석은 행동이 가득했던 과거를 지우고 새롭게 다시 시작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못했다.

얼마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녀들이 나에 대해서 전부 잊는다는 것이 두렵다.
나를...내가 아닌 그로 기억하는 그녀들을 처음부터 다시 마주하게 되는 것이 두렵다.

그래서 나는 실수를 바로잡을  있음에도 회귀하지 못했다.


"샤를"


"으...에..."

나를 앞에서 껴안은 채 목에 달라붙어 모기처럼 피를 쪽쪽 빨고 있던 샤를은 내 목소리에 웅얼거리는 소리를 내어 보였다.


"너무 마시면, 나 죽으니까 적당히 하고 입 떼"

"파하...그래도 나 2년 동안 굶고 이제야 겨우 식사하게 됐는데. 이거밖에  마시는  하는 건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해"


"3년이나 굶어? 왜?"

"왜긴 왜겠어. 자기가 2년 전에 도망쳤으니까 그렇지"

2년.


[엘리제요. 그 여자를 제외하고 선생님이 떠나신 후 선생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거에요.]

나는 몇 달 도망치는 것도 힘들었는데.
참, 오랫동안 잘도 숨었다.

내가 지금까지 회귀했던 것 중 가장 오래 살아남았던 때가...

[저를 용서해주세요. 선생님]


라일라를 용서한다는 조건으로 그녀를 자살시키기 전까지가 가장 오래 살아남았던 기억이다.
 당시 내 옆을 벨라트릭스가 지켰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라일라가 나를 지켜주었기에 마음만 제대로 먹었다면 더 오래 살아남았으리라.


마음만 먹었다면...

라일라를 용서하는 것은 둘째치고  당시에 나는...
회귀를 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내가 고통받는 것이 싫다고 해도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좀비 때가 휩쓸어 사회가 무너져버린 세상을 멀쩡하게 살아갈 자신이 없었기에 나는 회귀해야만 했다.
좀비...

"있잖아. 아직도 울산에 좀비 있어? 생각해보니 부산이랑 울산이랑 엄청 가깝잖아"


울산에 좀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기사를 본 게... 아마, 8월 중순쯤이었나?
그러고 보니 디아나한테 세트린느에 관해 물어본다는 것을 깜빡했다.


좀비의 발생원인 흑마법사 세트린느와 디아나가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것을 저번에 들어놓고서 디아나에게 한 번도 세트린느에 관해 물어보지 않을 것을 떠올리자 너무 멍청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대답을 안 해? 이제 울산에 좀비 없어?"


"...좀...우리 자기. 그게  궁금한 거야?"

"아니, 그냥 혹시나 아직 있으면, 세트린느한테 그만하라고 말해두려고"

이제 디아나가 내 옆에 있게 되었으니.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포스트 아포칼립스만큼은 피해야 한다.


"...그 여자라면... 아..."


"왜? 무슨 문제 있어?"

내 목을 물고 있던 입을 떼어내고 그녀의 눈이 나와 마주쳤지만, 어째서인지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다른 쪽으로 향했다.

지금 일부러 피한 건가?

"...아니, 아무 문제 없어. 자기야. 이제 도착했으니까. 내리자"

그녀가 내 말을 어물쩍 넘기려 하는 것 같은 기분에 붙잡으려 했지만, 샤를은 문이 열리자마자 빠르게 밖으로 나가버렸다.

"자기야. 공주님처럼 손잡아줄까?"

 문밖에서 손을 내밀며 장난을 치는 모습에 나는 한숨을 내쉬고 밖으로 나왔고, 곧이어 보이는 바깥 풍경에 눈살을 찌푸렸다.

"어서 오세요"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수십 명의 목소리.
방금 내린 차에서부터 성까지 두 줄로 도열해있는 메이드 복장의 여자들을 바라보니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해? 이런 거 하지 말라고 할걸 그랬나? 자기가 좋아할 줄 알고 준비한 건데."

"...아니, 고마워"

나를 환영한다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수많은 사람...아니, 뱀파이어들을 마주하게 되니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아 어깨가 으쓱하는 기분이 든다.

이래서 이곳에 안 오려고 했던 건데...
이들이 원래 사람이었고, 샤를의 힘으로 억지로 조종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기분이 좋아져 버리는 내가 싫다.

오자마자 인간의 지배욕을 자극해 나를 유혹하는 샤를의 행태에 순간 넘어갈 뻔했다.

"들어가자"


내 손을 잡아당기며 걸어가는 샤를의 얼굴에는 커다란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녀는 착하다.
적어도 나에게는...착한 여자다.


그녀는 어째서 이렇게 상냥한 것일까?
그녀의 따뜻함이 나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아니, 내심 나는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하고 있다.


"여기가 우리 방이야. 어때?"


"우리?"

"응. 우리 집. 우리 방. 우리 침대"


내 손을 잡고서 넓은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 얼굴에 한가득 기쁨을 나타내고 있는 그녀가 무척이나 사랑스럽게 보인다.


이렇게 그녀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옳지 못한 행동이다.
그녀가 저지른 일.

부산의 인구는 적게 잡아도 300만 명.
그녀는 그들의 터전을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아닌 존재로 만들었다.


그녀는 인간이 아니기에 인간을 죽이는데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눈으로 보지는 않았지만.
뉴스에서 부산을 통제했던 군대.

부산을 통제한다는 뉴스 이후로는 따로 나온 것은 없었지만.
뉴스가 아니더라도, 당시 일반 시민들의 영상. 및 커뮤니티 글을 통해 본 기억이 있다.

학살.
대한민국 수만의 장병들이 학살당했다.

일부는 뱀파이어가 되었다는 소문이 있긴 하지만, 그들 중 대다수가 죽었다는 것은 아마 진실일 것이다.


"왜 그런 표정이야. 어디 아파? 아까 차에서 피를 너무 많이 마셨어 그런 거야?"

"...샤를"

"응, 말해"

"내가 그만하라고 하면 그만할  있어?"


"...갑자기 무슨 말이야? 우리 자기가 하는 부탁이라면 해줘야겠지?"

"이미 뱀파이어가 된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이제 더는 뱀파이어를 늘리는 건 그만해줘"

최소한의 양심.


"피를 마시는 건 어쩔  없지만... 그렇다면, 사람을 죽이는 것만이라도 그만해줘"

그녀는 분명 싫다고 말할 것이다.


"미안"

굳이  내 말을 거부하는지 물어보지 않아도 그녀가 왜 내 말을 거부하는지 나는 알고 있다.

"사람을 죽이는 건 자기 말대로 할게. 그런데, 아이들이 늘어나는  어쩔  없다는 거 알잖아."


샤를은 약하다.
정확하게는 너무나도 어중간하다.
벨라트릭스나 라일라와 같은 개인적인 무력이 아닌 뱀파이어 종족 전체의 힘이 샤를의 무력이기에 그녀는 강하다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약하다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왜, 어쩔 수 없는데?"


"자기는 내가 다른 여자들 손에 죽었으면 좋겠어?"


"...안죽어"


"그건 자기 생각"


"......"


"그 성녀만 봐도   있을걸? 그 여자 우리 자기가 아끼는 아이가 아니었다면, 진작  기사 손에 죽었어. 복수보다 인질로 사용될만한 가치가 있었으니 그때까지 살아있었던 거잖아."

"복수...디아나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는듯한 말투네"


"어쨌든 안돼. 나는 우리 자기를 공유하고 싶은 생각 죽어도 없거든.  내 것을 남이랑 공유해야 되는데?"


내 손을 잡고서 올려다보던 그녀의 붉은 눈동자에는 어째서인지 슬픔이 묻어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것 치고는 잘 놔주던데"

공유하고 싶지 않다고 해놓고서 라일라가 용서받을 수 있게 부탁도 들어주고, 회귀할 수 있게 자살 각도 만들어줬으면서.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때 놔줬으니까. 자기 발로 순순히 여기  거 아니겠어? 우리 집에 돌아와 줬잖아."


"일주일 뒤에는 갈 거야"

"돌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나에게서 살며시 떨어진 그녀는 곧이어 내 앞에서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나 우리 자기가 원하는 건 뭐든 들어줄  있는데? 뭐든지. 야한 부탁도 전부 들어줄 수 있어."

"내 발로 안가더라도 끌려서라도 돌아가게 될걸?"


집에 남아있는 히로인들에게 일주일이라고 말하며 겨우겨우 설득해놨는데.
일주일 뒤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하면 그녀들이 어떠한 반응을 보일지 안 봐도 눈에 선하다.


아니, 일주일은 참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그전에 이곳으로 쳐들어올 것 같기도 하다.

"그럼, 그 여자들 전부 죽여버리면 되지 않을까?"


"샤를..."

"장난이야. 내가 무슨 수로  괴물들을 죽이겠어."

아마 장난으로 한 말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그것을 실행에 옮길 힘은 없었다.


그것보다 뱀파이어인 샤를이 인간인 벨라나 라일라를 두고 괴물이라 언급하는 것에 어째서인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자기가 돌아가고 싶다고 하면 얼마든 보내줄게. 그러니까 여기 있는 동안은 나만 생각해줘"


샤를은 양손으로 자신의 드레스 끝단을 살짝 들어 올리며 퇴폐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여기까지 와서도 그 여자들 이야기를 해야겠어? 내가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면서..."

나른한듯한 그녀의 목소리가 나를 유혹하듯 들려왔지만, 어째서인지 실소가 나온다.

아...옛날 그녀가 했던 말들이 떠올라서 그런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어제 이곳에 왔을  따먹고 싶었던  애써 오늘까지 참았는데... 계속 거부하면  화낼 거야]

[아가방에 잔뜩 들어있단...하으으윽...말이야]

[히끅...내려다 보지마...그렇게 보지하으으응]


이번에도 이런 퇴폐적인 유혹이 그리 오래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자기는 가만히 있어. 내가 전부 알아서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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