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1화 〉LEVEL 5 (3) (61/87)



〈 61화 〉LEVEL 5 (3)

"자기는 가만히 있어. 내가 전부 알아서 할게"

눈앞에 드레스 차림의 여성이 혀로 입술을 닦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마치, 흉포한 육식 동물이 먹이를 바라보는 듯한 기분.


과거 전례가 있기에 그녀의 이런 모습이 무서운 것은 아니지만...
샤를의 이런 흉포한 모습은 뭔가 남성성을 위협받는듯한 기분이 들게 만든다.

"가만히 있기 싫은데? 뭐든 들어주겠다고 했으니 내 마음대로..."


가만히 앉아서 잡아 먹히는 것은 취향이 아니었기에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순간 짝 소리와 함께 내 손이 밀려났다.
내 손을 강하게 쳐낸 것은 아니라 아픈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내 손을 쳐낸 상황 자체가 당황스럽다.


실수겠지?
실수라 여기며 좁은 어깨를 감싸고 있는 드레스 위로 손을 다시 한번 내뻗었지만...

"...무슨뜻이야?"

"가만히 있으라니까. 내, 내가 알아서 할 거야"

"샤를?"


"이,일단 여기로 와서 앉아"

겉으로는 무척이나 태연해 보이지만, 어째서인지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
겁을 먹고 있는 걸까?
...생각해보니 그녀는 이번이 첫 경험이다.
내 기억 속에서는 그녀와 몇 번이고 잔적이 있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샤를은 처녀의 몸을 유지하고 있다.


본의 아니게 두 번이나 그녀의 처녀를 경험하는 것이지만.

예전에는 이런 식의 반응을 본 적이 없는데...?

"앉으라니까!"


가만히 서서 지금 보이는 반응에 대한 진심 어린 고민을 하던 중 그녀가 손을 붙잡고 침대로 나를 이끌었다.


그러고 보니,  당시에 나는 샤를에게 무척이나 겁을 먹은 상태였다.
샤를에 대한 설정을 짠 당사자였기에 그녀가 어떤 해코지를 할지 몰라 긴장을 하고 있었다.

모든 주도권이 샤를에게 있었기에 그녀가 이렇게까지 소녀 소녀 한 감정으로 나를 덮치려고 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갑자기...왜 웃어?"

"있잖아. 샤를. 아까 뭐든 들어주겠다고 했지?"


"...으,응. 그렇지? 뭐든 해줄 게 얼마든지 말해. 우리 자기가 원하는 거라면 다 들어줄 수 있어"


원래라면 그냥 끌려다녀주려고 했다.
처음만 이렇지 나중에는 허우적대며 나한테 그만해달라고 말할 것이 분명하기에 그녀 마음대로 하게 두려고 했었다.
그런데, 이런 반응이면...


"샤를이 스트립쇼 하는  보고 싶어"


"...스트립쇼? 그게 뭔데?"


"춤추는 거"

"춤... 나는 그런  잘 못 하는데. 꼭 지금 봐야 해?"

"응,  보고 싶어"

그녀는 옷을 벗는 것을 싫어했다.
맨몸을 보여주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겨 첫 경험을 할 때에도 옷을 전부 입고서 했었다.


"...그게...이따가...나중에 하면  돼?"


"지금 보고 싶은데? 아, 뭐든지 해주겠다고 했으면서 이것도 안 해주는 거야? 아까 내가 물어보던 것도 대답 안 해줬으면서 춤추는 것도 안 해줄 거면 뭐든지가 아니지 않나? 이러면 좀 실망인데"


"자,자기가 몸으로 때운다고 했잖아... 안 해준다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아... 하기 싫은 거야? 내가 억지 부리는 거였어? 그냥 하지 마. 하지 마"

"......"


"몸 팔러 왔으니. 창 놈은 가만히 있으면 되는 거죠? 말만  해준다고 하지. 별거 없..."

"해줄게... 해주면 되잖아!"

언성을 높이며 나에게 화를 내기는 했지만, 그래도 정말 춤을 추려는 것인지 그녀가 나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나를 바라본다.

침대에 앉아서 다리를 꼬며 그녀와 눈을 맞추자 알 수 없는 붉은 눈동자가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였다.


"뭐해? 그렇게 가만히 서 있을 거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걸 어떻게 해... 춤 같은 거 아이들이 하는 것만 봤지. 한 번도 해본 적..."


"샤를이 춤추는  꼭 보고 싶었는데..."


"못해도...웃으면 안 돼?"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그녀의 몸이 느릿느릿 움직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원래 그녀가 있던 세상은 중세를 배경으로 했기에 무도회 같은 것도 있었기에 아주 모를  없다는 생각에 꺼낸 말이었다.


애초부터 내가 보고 싶은 것은 늘 누군가의 위에만 서 있던 샤를이 애를 쓰며 나한테  보이려 하는 상황 그 자체였기에 시킨 것이었지만, 의외로 눈앞에서 춤을 추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긴 드레스 자락을 휘날리며 춤을 추는 모습은 음악이 없음에도 아무런 위화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기대 이하다.
개인적으로 뻣뻣한 몸짓으로 부끄러움을 애써 참아가며  눈치를 살살 보고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비웃고 싶었는데.


비웃기에는 그녀의 재능이 너무 뛰어나다.

"샤를"

"응? 이제 막 시작했는데... 보고 싶다며...  정도로 별로였어?"

"아니, 난 스트립쇼 보고 싶다니까?"

"...춤추는거라며"

"그게 춤추는 건 맞는데. 정확히는 옷 벗으면서 춤추는 거야"

침묵.
내 말을 끝으로 방안에 정적이 흘렀다.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나를 바라보던 그녀는 곧이어 한쪽 눈을 찌푸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응? 왜 말이 없어? 나 보고 싶다니까?"

"......"


"샤를? 혹시 화났어? 나한테 화내는 거 아니지? 아~ 그런 거 보여주기 싫다고?"

"...자기 지금 나한테 옷을 벗고 춤추라고 하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니고"

"그게 아니면 뭔데"

"옷을 벗고 추는 게 아니라, 춤을 추면서 옷을 벗으라고"

그녀의 얼굴이 이제는 대놓고 화가 났다는 것을 보여준다.
입을 꾹 다물고 나를 노려보는 눈동자에 애써 웃음을 참았다.

그녀는 다른 이의 비위를 맞추는 것을 하지 못하는 캐릭터다.
주인공을 제외하고 늘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던 여자고, 특히나 원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에 집착하는 히로인이다.

공유 따위는 죽어도 싫다고 하던 그녀가 지금 내 눈치를 보는 이유는 내가 회귀를 하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밉상 짓을  뒤 내가 회귀를 하게 됐을 때.
그녀는 아무 이유도 모른 채 나에게 미움받게 되는 것을 두려워 이런 헌신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리라.

"왜 대답이 없어? 아~ 하기 싫어? 하기 싫으면 하지 마. 샤를이 스트립쇼 하는 걸 정~말 보고 싶은데. 당사자가 하기 싫다는데 뭐 어쩌겠어. 그냥 일주일 뒤에 집으로 돌아가면 다른 애들한테 시킬게"

"자기야"


"응, 말해"

"자기야"


"말하라니까? 왜 자꾸 부르는 거야. 혹시 너 화났어? 화난  아니지?"

그녀가 입술을 깨물고 나를 노려본다.

"...됐어.  해"

"응, 하지 마. 안 해도 된다니까? 내가 강압적으로 시킨 것도 아니고. 얼마든지 안 해도 돼"


"......"

"아까는 뭐든 말하라고 해놓고서... 그냥 말만 하라는 거였나? 해줄지 안 해줄지는 고민 좀 해보고 일단 말만..."


"자기야. 그만해. 자꾸 그러면 나 화낸다."

방안이 후끈해질 정도로 화를 내고 있으면서 이제 와서 화를 낼 거라 엄포를 하는 모습이 가소롭다.

"알았어. 더는 안 시킬게. 그건 그렇고, 디아나였으면 아무 이유 없이 해줬을 텐데. 아쉽..."

말을 끊은 것은  의도가 아니었다.
순간 피부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무엇인가에 말을 멈추고서 샤를을 바라보았고, 곧이어 피부를 찌르던 느낌이 소리소문없이 빠르게 사라졌다.

"알았어. 할게"

"어..."


"...그러니까.  여자. 이야기 꺼내지 마"

디아나를 언급한 것이 그녀의 신경을 건드린 것일까?
방금  진심으로 나에게 화를  것이었다.

...벨라트릭스는 둘째치고, 대체 디아나는 뭐하고 다녔길래 나중에 만난 샤를한테도 이렇게 원망 받는 것일까.

옷이 스치는 사르륵 소리에 정신을 차리자 곧이어 눈앞에 드레스를 벗고 있는 샤를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 벗으면 어떻게 해. 좀 꼴리게 옷 벗으면서 춤추는..."


"할 거니까 조용히 해!"

"네..."

그녀의 전라를 감상하기 위해 침대에 앉아 다리를 꼬고 있었지만, 언성을 높이며 나를 노려보듯 내려다보는 붉은 눈동자에 꼬고 있던 다리를 풀었다.


역겹다는 듯한 눈초리가  심장을 찌르는듯하지만, 그래도 반투명한 검은색의 란제리를 입은  창백한 피부를 붉게 물들이고 있는 몸을 보니 아주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변태일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

"날 따먹겠다고 하던 여자가 할 말은 아닌 거든?"


"그,그런말 한 적 없어!"

 적 있다.
회귀하기 전 분명 그녀는  따먹겠다고 했었다.

"아까는 나보고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전부 한다고 했잖아. 그게 따먹겠다는 게 아니면 뭔데"

"...시끄러"

늘 여유를 부리며 조곤조곤하게 말하던 그녀가 이제는 완전히 여유를 잃은 듯 목소리에 차분함이 사라졌다.


"속옷만 남겨놓는 건.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뜻 맞지? 언제 시작하는 거야? 오늘 안에는..."


"...진짜 변태. 이런 남자인 줄 알았으면...하아"

나를 매도하려 하던 그녀는 순간 내 얼굴을 보더니 이내 입술을 곱씹고 아까와 같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녀라면 죽어도 하지 않을  같은 행동.
나에게 잘 보이고 싶어 애를 쓰는  상황이 무척 마음에 든다.


아쉬운 게 있다면, 개인적으로 아이돌 춤을 보고 싶다는 것뿐...
그녀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한 올 한 올 옷을 벗는다.

란제리와 그녀의 가슴을 가리고 있던 속옷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보자 어느새  몸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그녀의 몸짓이 점차 둔해지기 시작했고, 이내 완전히 멈춘 채 나를 바라본다.


"웃지 마..."

"왜 팬티는  벗어? 나보고 벗겨달라고?"

"그런 식으로 내려 보지마..."


그녀는 내가 여기 오자마자  위에서 허리를 흔들려고 했겠지만, 똑같으면 두 번이나 처녀를 가져가는 의미가 퇴색된다.


"만지지 마..."

"또 원하는 거 있는데. 들어줄  있어?"


"이제 싫어.   거야. 오늘 진짜 기분 좋았는데... 진짜 싫어"


손을 들어 붕긋하게 솟은 가슴에 손을 올리자 거부하듯 그녀가 몸을 빼려는 시늉을 해 보인다.


"아무것도 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싫다니까..."

그녀의 입은 명백한 거부 의사를 내뱉었지만, 그녀의 몸은 거부 같은 모습은 전혀 없이 전면개방된 듯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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