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2화 〉 LEVEL 5 (13) (72/87)

〈 72화 〉 LEVEL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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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디서 오셨습니까?"

리더로 보이는 남자의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해본다.

사방에서 k­2 소총을 쥐고 내 머리를 겨누고 있는 상황에 고민을 하는 내 모습이 조금 신기하지만...

생각해보니 총 맞아서 죽은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총은 내려놓고 말하지"

"이 주변에서 당신 같은 사람을 한 번도 본적도 들은 적도 없습니다. 저희가 이곳에서 터를 잡은 지 불과 한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누구보다 이 주변에 있는 파벌 및 주요 인물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 같은 사람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군요"

3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

호리호리하고 안경을 쓰고 있는 것이 여타 만화나 영화에서 볼법한 능구렁이 책사 같은 관상이었지만, 생각 외로 이곳의 리더인지 나에게 총을 겨누는 이들이 전부 이 남자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휴식을 취할 겸 정보나 얻자는 생각에 이들을 따라온 것이지만, 솔직히 조금 후회하고 있다.

아까는 언제 뱀파이어들이 나타날지 모르니 이들이 나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것 정도는 어느 정도 이해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곳 백화점으로 보이는 곳에 오는 동안 여섯 명가량의 인원이 나를 괴물 취급하며 강압적인 말투를 사용한 것까지도 이해할 수 있다.

지금까지 경계를 풀지 않고, 나에게 총을 겨누고 경계하고 괴물 취급하는 것도 전부 마음에 안 들기는 하지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눈앞에 있는 남자가 나보다 잘생겼다는 것이다.

뱀파이어가 된 탓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그런 것인지 눈앞에 있는 남자는 연예인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잘 생겨서 매우. 심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쪽... 아, 아직 통성명하지 않았군요. 저는 강찬수라고 합니다"

손을 내밀며 호감 가는 미소를 보이는 남자의 모습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주인공"

"...네?"

"이름이 주인공이라고"

­ 풉. 어떻게 사람 이름이 주인공...

등 뒤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

목소리는 기억해 놨으니. 어떻게든 참교육을 해줄 것이다.

"아...네..."

일부러 주인공이라고 말했는데. 생각보다 그의 반응이 시원찮다.

내가 너튜브에 올렸던 영상을 보지 못한 것일까?

하긴, 이미 그때쯤에는 샤를이 청와대와 협상을 끝낸 상황이었으니. 이곳도 그리 온전한 상태는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주인공씨. 당신은 밖에서 오신 분이 맞습니까?"

"아닌데? 산속에서 살다 오랜만에 내려온 건데?"

"...진심으로 하는 말이라면, 믿겠습니다만, 장난을 치시는 거라면 그만두시는 게 좋습니다. 애초에 이곳에서 한 달 동안 생존한 사람이 그 괴물을 죽이는 미친 짓을 벌이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자세히 설명해봐"

앉은 채 다리를 꼬며 여유롭게 소파에 몸을 기댄다.

약해 보이면 안 된다.

그동안 쭉 아싸 생황을 이어왔고, 요즘은 특히나 히로인들과의 생활만을 반복했기에 같은 지성이 있는 인간과 대화한 것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좀비 아포칼립스 물을 한 번이라도 접한 사람이라면 무법자 집단과 마주한 상황에 사회 속에서나 통용되던 예의를 따지는 것만큼 멍청한 행동이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손가락 하나 튕기는 것으로 나를 죽일 수 있는 히로인들 앞에서도 거만하게 굴었던 나다.

그런데, 오히려 내가 손가락을 튕기는 것만으로도 죽는 인간들 앞에서 거만한 행동이라니.

이보다 쉬운 일은 없을 것이다.

"이곳에서 꽤 강한 분도 바로 앞에서 맞는 총알은 꽤 무섭다고 하시던데. 주인공 씨는 뱀파이어가 아님에도 총이 두렵지 않으신가 보군요."

맞아봐야 알 것 같긴 하지만...

아까 괴물들과 싸웠던 걸 생각해보면 피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굳이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을 필요가 없어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린다.

고개를 돌린 자리에 우연히 누군가와 눈이 마주친다.

이곳에 들어왔던 문틈 사이로 나와 눈이 마주친 여자.

몇 시간 전 봤던 얼굴이다.

어디 갔나 했더니. 곧장 여기로 들어왔나 보다.

끌려온 것일까?

그 어벙한 흡혈귀 여고생도 같이 왔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사라져버렸다.

"밖에 누가 계셨나요?"

"아니, 하던 이야기나 계속해 봐. 딴소리하지 말고"

"...괴물을 죽이면, 죽인 괴물의 몇 배의 숫자의 괴물들이 지원을 오게 된다는 사실을 안다면, 절대 그런 멍청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거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는 눈썹을 씰룩이며 내 말투가 불쾌하다는 인상을 주었지만, 그래도 대답은 잘했다.

"오는 만큼 죽이면 되는 거 아니야? 그게 뭐가 무섭다고"

"산속에 있었다는 말은 거짓말이시군요. 사실대로 말씀해주시죠. 어디서 오신 겁니까? 설마, 도망치신 건가요?"

도망쳤냐는 말에 팔짱을 끼고 있던 팔을 풀고서 그에게 되물으려 했지만, 곧이어 주변이 술렁이는 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 거기서 도망친 새끼면, 빨리 내쫓아야 하는 거 아니야?

­ 애초에 양식장 놈들이 여기까지 굴러들어온 적 없잖아.

"다들 조용히 해주세요. 주인공씨 하나만 물어보겠습니다. 양식장에 대해서 아십니까?"

"물고기 양식하는 곳...을 말하는 건 아닐 테고. 뭐야? 여기는 사람도 키워서 먹어?"

이들이 말하는 분위기만 봐도 양식장이라는 곳에서는 물고기가 아닌 사람을 양식하는 장소라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웃으라고 한 말은 아니지만, 다들 표정이 굳어있는 것을 보니 괜히 무안해진다.

소총을 부여잡고 있는 이들의 손이 떨리는 것을 보니 쓸데없는 말을 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인공씨. 제대로 대답해주시죠"

"몰라. 거기가 뭐 하는 덴데?"

"모르는 척하시는 거라..."

"아! 혹시 그 주인공?"

강찬수라고 이름을 밝힌 남자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겁박하기 위한 말을 하려던 중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철민씨. 혹시 이 사람에 대해서 알고 계시는 겁니까?"

"어디서 들었나 했더니. 그. 왜. 있잖습니까. 저번에 라디오 주웠다고 울산에 구조대 오는 거 들으려고 자주 켜놨었는데. 거기서 주인공이라는 놈 이야기 엄청나게 나왔거든요. 아니...나만 들었어? 너희들도 들었잖아"

'야! 나두!' '어? 너두?' 이라는 말을 하며 주인공에 대해 서로 주고받는 모습.

이들이 나에 대해 알라고 밝힌 이름이긴 하지만, 너도나도 주인공 소리를 내니 뭔가 부끄러워진다.

어떻게 사람 이름이 주인공...

과거 주인공의 이름을 대충 지었던 것에 대한 후회가 물밀 듯이 밀려온다.

차라리 김영웅이나 김히어로 같은 거로 지어줄걸.

"전번에 라디오가 먹통 되기 전에 있잖습니까. 한국...그 개새끼들이 울산을 포기하겠다고 한 뒤로 열이 받아서 들은 사람이 적었지만, 그 뒤에 어이가 없어서. 그 자리에 남아 듣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년이 저 괴물들 풀어놓은 이유가 전부 그 주인공이라는 한 새끼 때문이라고 하면서, 그 새끼 찾으려고 이 개지랄을 냈다고 제 입으로 말했더랍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강찬수가 해명을 요구하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뭘 꼬나봐"

"철민 씨가 지금 말하는 주인공이라는 사람이 그쪽을 말하는 겁니까"

"어"

사실, 내가 히로인들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최대한 숨기는 것이 옳다.

욕을 먹을수록 오래 산다는데...

빨리 뒤졌으면 뒤졌지. 불로장생은 내 꿈과는 너무나도 멀기에 수억 명의 사람들에게서 욕을 처먹으며 천년만년 살고 싶지 않았기에 최대한 숨기고 싶은 사실 중 하나였다.

하지만, 어차피 회귀할 것이니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이곳에 대한 정보를 전부 듣고 샤를만 만나 그녀의 입으로 해명을 듣게 된다면...

내가 어떤 선택을 내리던 나는 몸을 팔겠다고 선언한 날 이전으로 돌아갈 것이다.

선택...

...양식장이라는 말을 들은 이후부터 샤를을 만나는 것이 더욱더 두려워졌다.

이제 또 뭐가 나오려나.

곧장 나에게 화를 내 거나 아니면, 정보를 캐내려고 할 것 같았는데...

생각 외로 신중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니 의외로 정신머리가 제대로 박혀있는 남자인 것일까?

턱에 손을 올리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니 그의 잘생김이 더욱 부각되는 것 같아 더욱 화가 난다.

"이곳에 온 목적이 뭡니까?"

"오늘 하루 잠자리 그리고 뱀파이어가 나타난 이후 지금까지 울산에서 일어난 일들 전부"

굳이 이름을 밝힌 이유는 그저 편하게 가고 싶어서였다.

상대도 어차피 뱀파이어고 머리도 좋아 굳이 별다른 설명 없이도 대화가 잘 통할 것 같으니. 알아서 설설 기라고 말한 것이었다.

그런데, 강찬수를 제외한 이들은 그리 머리가 좋지 않았나 보다.

"이 씨발 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니 몇 살인데 새파랗게 젊은 새끼가 쳐 반말 찍찍대냐? 뒤질래?"

욕을 하며 내 머리에 총구를 가져대는 남자의 모습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총 맞으면 언제로 회귀해야 적당할까.

"그만 하세요"

실수로 팔이나 다리 같은 곳에 맞아버리면 꽤 아플 것 같기에 기왕이면 대가리 한방으로 끝내줬으면 좋겠고 생각하고 있을 즈음 다행히도 리더가 그를 제지해 머리에 있던 총구를 떨어트렸다.

총알 맞고 죽는 경험은 나중으로 미뤄야겠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신이 주는 정보를 듣고 난 이후 곧바로 죽이려고 했습니다. 백 마리가 넘는 괴물...아니, 뱀파이어를 죽였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당신이라는 존재는..."

"그럴 능력은 있고?"

"......"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았기에 이곳 5층까지 계단을 통해 올라오면서 이곳에서 생존하고 있는 이들을 쭉 봤다.

열악 그 자체.

마치, 아프리카 난민들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씻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수십...아니, 수백 명가량 볼 수 있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강자가 그룹에 참여하게 되면, 기존보다 훨씬 더 많은 구역을 탐사해 더 많은 식량과 물을 구할 수 있기에 나에게 호의적으로 대해야 하는 것이 올바른 행동이다.

그런데, 이곳에 오기 전부터 머리에 총구를 들이밀고 호의는커녕 욕설 가득한 말투가 이어진 것을 보면 그의 말대로 나라는 강자의 등장은 그리 달가운 존재는 아니라는 말이었다.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비록 두 달 정도 시간이 흐르지 않았지만, 세상이 이렇게 되어버리면, 강자가 힘을 쟁취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 않습니까. 그래도 이것은 그저 제 입지를 위해 내린 결정은 아닙니다. 당신이라는 존재는 이미 안정이 되어버린 저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과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요. 얼마 지나지 않아 관리자들의 눈 밖에 날 것이 뻔합니다."

"관리자?"

"...정말 아무것도 모르시는군요"

"아무것도 모르니까. 아는 대로 말해"

"제가 말하면, 당신은 무엇을 주실 수 있습니까"

"뭐든. 방금 저 돼지가 말해서 잘 알잖아. 너희를 이렇게 만든 사람이랑 친하다는 거. 걔한테 말하면, 네가 뭘 말하든 아마 들어줄 수 있을걸? 못 미더우면, 그냥 나한테 정보를 주고 날 묶어서 뱀파이어들한테 갖다줘. 지금쯤 애타게 날 찾고 있을 테니. 날 데려오는 놈한테는 뭐든 주고 싶어 할거다"

"......"

그는 수락할 수밖에 없다.

그는 그저 입만 열면 될 뿐이기에 진실이면 땡큐고 거짓이면 입만 아픈 것뿐.

내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단하며, 저울질할 필요가 없다.

"잠깐만 다들 나가 있어 주세요. 이분이랑 둘이서 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그가 올바른 선택을 했다는 것에 나는 미소를 지었지만, 이내 그 미소는 울산에서 일어난 일들을 들으면 들을수록 점차 가라앉았다.

"말씀하시는걸 들어보니... 이곳이 인간을 사냥하는 구역인 것부터 알려드려야겠네요"

***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그 누구도 죽여본 적 없다.

애초에 현대 사회. 특히나 한국에 살며 손에 피를 묻힌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히로인들이 나타나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라일라를 제외하고 그 누구도 직·간접적으로 죽여본 적이 없다.

유일하게 내 입으로 자살해달라 부탁했던 라일라.

그녀를 제외한다면... 내 손은 분명 깨끗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 내 손은 무척이나 빨갛게 보인다.

아까 뱀파이어 무리를 죽였던 것 때문도 맞지만, 그것이 아니더라도 자꾸만 실감하게 되어버린다.

이곳 울산과 부산에 있던 인간들을 괴물로 만들어버린 샤를.

미국을 박살 내버린 하이네스.

그녀들뿐만이 아니다.

나는 첫 죽임을 당하기 전 수도 없이 많은 인터넷 기사를 봤었다.

경상도 반대쪽에 있는 전라도는 이미 위그드라실에 먹혔고, 중국은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해 결과적으로 중국 인구 태반이 사망하게 되었다.

유럽은 피냐를 죽이기 위해 전술핵을 사용했고, 그로 인해 유럽 시민들은 방사능에 노출되었다.

그것뿐일까?

인터넷 기사가 아니더라도, 나는 그녀들이 이 정도에서 그칠 위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수억명의 인구를 학살하는 히로인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주인공임을 부정했다.

미친 듯이 부정하고 부정했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라일라와 벨라트릭스 그리고 디아나를 받아들여 버렸다.

그래도, 내가 받아들인 그녀들은 단 한 번도 사람을 해치지 않았다.

않았었다.

...단 한 번.

벨라트릭스를 진정시키기 위해 강원도로 그녀를 유인했을 당시.

전투 시작부터 그녀가 사용한 유물의 힘으로 인해 강원도에서부터 서울까지 일직선으로 땅이 갈라졌다.

그 유물의 힘을 빌린 거대한 검기가 사람을 얼마나 해쳤을까?

나는 그것을 막지 않았다.

회귀하지도 않았다.

...아마, 나는 벨라트릭스와 붙기로 마음먹은 시점부터 속으로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벨라트릭스가 수천 명의 인간을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묵인했던 그 날.

어떻게든 부정하고 또 부정하려던 그도 함께 받아들였던 것이겠지.

그렇게...

나는 눈과 귀를 막고 넘어가려 했다.

안전하고 따스한 곳에서 삶을 편안하게 영위하려고 했다.

수십... 아니, 수백 수천 번 죽는 것을 감내한다면, 다루기 편한 히로인들을 이용해 이렇게 망가져 버린 세상에서 나 하나 정도는 얼마든 살 수 있을 테니.

사람들이 죽는 것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그래...분명...나는 그런 이기적인 생각으로 내가 주인공임을 받아들이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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