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 LEVEL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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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사라진 지 벌써 5시간이 흘렀다.
처음에는 그저 그가 바깥 구경을 하러 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아직은 약한 인간임이 분명한 그가 성안에 있는 종자들의 이목을 전부 피하고 홀로 이곳을 나갔을 리는 절대 없을 것이기에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불안감이 커진다.
"아직도 못...찾았다? 그걸 말이라고 하고 있는 거니?"
"죄송합니다... 하지만, 여왕님의 침실 앞을 기점으로 하나도 흔적이 남아있지 않는 것을 본다면, 분명 부군의 여자 중 한 명... 혹은 그 이상이 개입된 것이 분명해요... "
프리시아의 말에 그녀는 지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싶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상 그 어떠한 장소보다 가장 안전해야 할 그녀의 성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그가 사라졌다.
누구의 소행인지도 모르며, 언제 그가 사라졌는지조차도 모른다.
그 어느 곳도 아닌 그녀의 성안에서.
마치, 그날과 같지 않은가.
아무것도 모른 채 모든 아이가 죽고 성안에 그와 그녀만이 남았던 그 날과...
"저희 힘만으로는 부군을 찾아내기는 역부족...이에요... 그러니 일단 색적 쪽에 뛰어난 마법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입닥쳐"
샤를에게 있어 라일라에게 고개를 숙이며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는 그 어떠한 것보다 치욕적인 일이었다.
"여왕님... 이대로 있다가는 영영 찾아내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만약, 부군께서 이곳을 직접 나가신 게 아니라, 납치되었다고 한다면, 지금 부군께서 어떠한 짓을 당할지..."
"...만약 그랬다면, 이런 가정조차도 안 하겠지"
그는 과거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니 그가 잘못되었을 일은 없을 것이다.
사실 그녀는 차라리 그가 납치되길 바라고 있다.
만약...그가 자신의 발로... 원해서 이곳을 나갔다고 한다면...
"어떻게든 찾아내. 이곳...아니, 모든 아이를 사용해서라도 찾아내"
"네. 알겠습니다"
프리시아는 말을 마치고 곧장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무척 인간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자신 스스로가 원체 인간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타인에게 관련되지 않고, 타인에게 피해도 입히지 않으며 홀로 평생 살아가는 게 좋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했었지만.
실상 그는 인간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있다.
옛날 그는 뱀파이어가 되었지만, 단 한 명도 권속으로 두지 않기 위해 스스로와 싸웠다.
뱀파이어가 권속을 두려 하는 욕망은 인간이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아이를 만드는 것과 같음에도 그는 늘 자신이 살아가기 위한 피만을 인간들에게 요구하며, 늘 대가를 치러 주었다.
처음에는 그가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가 말 한마디에 쉽게 상처받고, 거절 한 번에 아파하기에 애써 아닌 척 관심 없는 척 했을 뿐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인간의 사랑이 고파한다는 것을...
그녀는 무척이나 오랜 시간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인간을 사랑하는 그가 수십 만 명. 수백만 명을 뱀파이어로 만들고 학살까지 해버린 그녀를 절대 품을 수 없다는 것까지도... 알아버리고 말았다.
지금이야 애써 무시한 채. 개과천선 시키려 노력하고 있지만, 그게 얼마나 갈까?
다시 예전과 같은 관계로 돌아갈 뿐이겠지.
그렇기에 그녀에겐 그와 함께 할 이 시간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이 시간이 너무나도 소중했었다.
"돌려받으러 왔어요. 선생님은 어디 계시는 건가요"
샤를의 눈앞에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여자가 서 있었다.
푸른색 머리카락.
뱀파이어인 그녀보다 더욱 인간 같지 않은 여자.
외견은 분명 어려 보이지만... 저 여자의 공허한 눈을 본다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정확하게는 저 여자는 그의 노력에 겨우 인간이라는 종족 끝자락에서 버티고 있는 것이리라.
"...우리 자기를 데리고 올 때. 자기가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던 것 같은데. 벌써 잊어버렸나 봐?"
"선생님은 어디 계시나요?"
"어머, 우리 자기가 이런 것도 안 가르쳐줬니? 멋대로 남의 집에 들어와서 원하는 걸 달라 떼를 쓰는 건 어릴 때나 통하는 거란다. 이런 기본적인 예의도 안 가르치고... 우리 자기가 선생님으로서는 조금 부족한가 보네."
사실대로 그가 사라졌다고 말하는 것은 죽어도 싫었다.
이 여자 앞에서 그를 잃었다는 말만큼은 죽어도 하고 싶지 않았기에 말을 돌리려 했지만, 샤를의 눈앞에 서 있는 여자는 그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고 공허한 눈으로 샤를을 마주 볼 뿐이었다.
"어디 계시나요?"
"너..."
"마지막으로 물어볼게요"
스산한 느낌에 샤를은 빠르게 프리시아와 사라를 이곳으로 부르려했지만, 어째서인지 프리시아와 사라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느낄 수가 없다.
그를 찾기 위해 종자들이 샤를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권능 안에 속한 이들을 느끼는 것 정도는 그녀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직속 종자인 프리시아와 사라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자신이 있는 이 방 전체가 뒤틀려있는 느낌이다.
"너... 뭐야?"
여유롭게 앉아있던 샤를이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라일라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은 채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어째서?'
샤를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지 이해할 수 없어 그저 멍하니 서서 라일라를 바라볼 뿐이었다.
"...무척 많이 참았어요. 전부 없애버리고... 선생님을 독차지하고 싶어도. 싫어하시니까. 당신들을 죽이게 되면, 선생님이 무척 슬퍼하게 되게 분명하니. 참으려고 했어요. 선생님...저... 무척 노력했어요..."
공허한 눈동자.
분명, 화를 내며 당장이라도 눈앞에 있는 라일라의 목을 뜯어버리고 싶었지만, 어째서인지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건 아니잖아요. 왜 저만 안 되는 건데요? 제가 제일 노력했는데... 제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제가 처음부터 선생님이랑 만났는데..."
공포.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지금 그녀가 느끼고 있는 것은 분명 공포였다.
"괜찮을 거라고... 언젠가는 용서해주실 거라고 믿었는데... 그럴게. 선생님이랑 저는 영혼으로 묶여있을 거라고...분명, 그럴 거라고...."
"너..."
"맞아. 그렇게 믿었는데... 왜 저만 안되는데요? 왜? 왜? 왜!!!!!!"
샤를은 순간 마주친 눈동자를 보자 문득 라일라에 대한 인상을 잘못 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이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인간.
아니, 정확하게는 방금.
샤를을 마주한 순간 라일라 라는 여자는 그가 그토록 애를쓰며 붙잡게 했던 인간으로서의 끈을 그녀 자신의 손으로 놓아버렸다.
애초부터 인간의 육신이라고는 머리밖에 없는 존재를 인간이라 부른다는 것이 어리석은 것이리라.
지금까지 망가지지 않은 채 인간인 척하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겠지.
샤를은 그것을 깨닫자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소가 입에 걸리기 시작했다.
"너도... 나와 마찬가지구나"
라일라가 이렇게까지 분노하는 것은 아마 샤를. 자신의 육신에서 한가득 풍기는 그의 체취 때문에 일 것이다.
대체 그녀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그에게 거부당했던 것일까.
늘 과보호를 받으며 그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여자가 이제 와 잠깐 사랑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질투를 하는 것이 그녀를 매우 기분 나쁘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이 여자가 완전히 망가지게 된다면 그가 무척 슬퍼하리라.
[나밖에 없으니까. 대신 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데. 나라도 구해줘야지. 그게...맞는거잖아?]
눈앞에 있는 이 라일라라고 하는 여자를 위해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아무리 증오스러운 여자라 하더라도...
"있잖아. 그거 알아? 우리 자기. 성욕 엄청 대단하던데. 날 사랑해서 그런지. 6일 동안을 매일같이 안아주더라. 날 가지고 싶다고 매일같이 속삭이면서"
"......"
"어머... 뭐야? 너 자기랑 한 번도 자본적 없어? 그래서 날 보자마자 이렇게 화내는 거구나. 어쩐지 저번에 내가 자기랑 잤냐고 물어봤을 때 네가 그렇게나 화내던 이유가 이거였네?"
마치, 고장 난 장난감처럼 라일라의고개가 삐걱거리듯 샤를을 올려다본다.
"......"
"우리 자기한테 직접 들어보면 되겠네. 아! 그거 알아? 난 너만 없으면, 얼마든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날 가지고 놀라고 했거든. 그런데 우리 자기가 너 같은 건 필요 없다고 그러더라"
"거짓말"
그녀의 말대로 거짓말이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이 여자는 그 누구보다 거짓말을 잘 꿰뚫는다.
그런데도 샤를은 또다시 거짓을 입에 담는다.
"너. 얼마나 잘못했길래 그 사람이 그렇게까지 싫어하는 거야? 그 사이비 성녀도 이렇게까지 싫어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거짓말이었다.
그는 샤를의 부탁에도 라일라를 버릴 수 없었기에 더욱 그녀를 괴롭혔었다.
그런데도 라일라라는 여자가 외줄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그녀가 자신을 잃지 않도록.
자극한다.
라일라의 눈과 마주친 순간 갑작스럽게 샤를의 몸이 차갑게 식어버렸고, 곧이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샤를의 전신은 얼음으로 뒤덮였다.
"제 눈앞에서 그렇게 당당하게 거짓말을 해버리면... 당신을 쉽게 죽일 수 없어지잖아요"
샤를은 라일라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라일라가 어떠한 여자인지. 그녀가 어떤 식으로 살아왔고, 어떤 식으로 죽어왔는지.
그에게 수십번. 수백 번이고 들은 이야기였으니까.
자신이 저 여자가 되었으면 좋겠다며 매일 밤 수십번이고 소원을 빌었으니까.
얼음 속에 가두어져 버린 샤를의 눈앞으로 라일라의 얼굴이 다가온다.
"그런 거짓말을 하다니. 선생님이 저한테 그런 말을 했을 리가 없잖아요."
얼음 속에서 바라본 라일라의 얼굴은 무척이나 해맑은 웃음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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