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 LEVEL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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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쭉 무시하려 했다.
"애초부터 저희는 이곳에서 뱀파이어들과 맞서 싸운다거나,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들은 얼마든지 이곳을 점령할 수 있음에도 그저 내버려 두고 있는 것일 뿐이죠"
샤를을 얼마든지 멈출 수 있을 것이라며 나에 대한 감정만을 조율한다면... 더는 피해자는 발생하지 않으리라...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하지만...나는 전부 알고 있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양.
이 남자에게 물어보았지만...
사실은 전부
모두 내가 알 수 있는 내용이다.
한 사람 한 사람.
개개인의 희망을 따진다면, 인간이 불로불사의 뱀파이어가 된다는 것은 무척이나 좋은 일이다.
그렇게 모두가... 뱀파이어가 될 수 있다면 내가 아니더라도 누구든 환영할만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저희를 죽일 의사가 전혀 없습니다"
뱀파이어는 인간의 피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뱀파이어는 인간의 피를 탐하는 것이 본능이며, 그로 인해 자신의 힘을 늘리는 것을 평생의 염으로 삼는다.
"...처음에는 그저 우리... 인간들을 가지고 놀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오락거리처럼 저희를 가지고 놀다가. 질리게 되면 언제든지 죽일... 그런데, 아무리 봐도 그게 아니더군요. 인간을 가지고 놀기에는... 저희를 공격하는 뱀파이어는 전부 이성이 없는 이들일 뿐. 정작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는 뱀파이어는 단 한 존재도 저희를 죽이려 하지 않더군요. 거기다 늘 식량을 구하기 위해 나갔던 이들 중 몇몇이 사라져버리더군요."
인간이 살기 위해 식사를 하는 것처럼 피를 탐하고, 인간이 본능적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늘리듯 뱀파이어 또한 본능적으로 자신의 권속을 늘린다.
가장 마음에 드는 짝을 찾아 결혼을 하는 것처럼... 뱀파이어는 가장 재능있는 이를 자신의 권속으로 만든다.
재능이 없는.
도태된 인간은 뱀파이어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평생을 가축들의 먹이를 먹으며 뱀파이어들을 위해 피를 내어준다.
그리고, 가축에게 배려라는 것은 불필요하다.
돼지나 소가 행복하다고 육질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듯.
그들에게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저 숨만 붙어있으면 되는 가축과도 같은 존재들이다.
"그리고 사라진 인원수만큼 새로운 이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항상 조사대가 가는 길목에 마치 우연인 것처럼 생존자가 있더군요. 그들은 하나 같이 울산 바깥에서 납치되어 들어온 이들이었...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고 있는듯한 표정이군요."
"......"
"더는 이에 관해서는 설명할 필요가 없으니... 양식장에 관해 물어보셨죠? 그곳은 단순하게 설명하면 낙오자들이 가는 곳입니다. 삶을 포기하고 그저 죽음을 택하는 이들만이 그곳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저 먹이를 먹고 피를 뽑히며 노예와도 같이 그들의 향락거리가 되는 곳. 그런 곳입니다. 양식장이라는 곳은"
"마치 가본 것처럼 이야기하네"
"......"
그는 내 말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
대답하기 꺼린다기보다는 그저 그날에 대한 감정이 솟아올라 버렸던 것인지 점차 그의 얼굴이 천천히 일그러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본래 인간이었지만 뱀파이어가 된 자들이 그저 인격 자체가 사라져 그런 반인륜적인 행위를 자행하는 것이 아니다.
인격.
그들이 사람은 아니기에 사람을 뜻하는 인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지만, 그런데도 그들은 인간과 같은 사고를 한다.
그들에게도 감정이 있고, 사회를 이루며 여왕 아래에서 하나의 국가를 만들어내기에 사회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들은 인간을 같은 종족으로 바라보지 않게 되는 것뿐.
그것은 갑작스럽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 아닌 단순히 본능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마치, 어린아이가 본능적으로 걸음마를 떼고, 언어를 습득하는 것처럼.
하지만, 이곳에 있는 뱀파이어 여고생은 조금 경우가 다르다.
최초 뱀파이어로서 다시 태어난 이후 수십일 가량을 인간과 함께 생활해버린 탓에 인격의 형성 때를 인간과 함께 보내버린 것이다.
마치, 어린 시절부터 늑대와 함께 살았던 늑대소년과도 같이.
다시 태어난 순간 주변이 전부 인간들이었기에 그녀는 자신을 인간이라고 착각해버린 것이다.
"그곳은 더럽고 추악한 곳입니다"
그의 얼굴에는 한눈에 보더라도 증오와 혐오가 가득해 보였다.
"그렇겠지"
"당신은 참 이상한 기분이 들게 만듭니다. 제대로 설명도 하지 않았음에도 제 말을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법이 존재하지 않는 장소에 강자와 약자가 정확하게 구별되어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상황.
굳이 그가 상세히 설명해주지 않아도 누구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그 상황을 현대 사회인들이 받아들이기 힘들기에 모르는 척 하는 것일 뿐.
자유 속에서 현대 사회를 살아왔던 이들에게 자신들이 개나 소와 같은 압도적인 약자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은 거부감이 들어 부정할 수밖에 없으리라.
"당신은 이곳에 무슨 일로 오신..."
"피곤하네"
더는 그에게 들을 말은 없었기에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의 말을 끊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전부 알 수 있는 이야기.
하지만, 애써 외면하고 있던 이야기들을 그의 입을 통해 들었으니 더는 용무가 없어진 나는 이곳을 나가 잠자리를 찾기 위해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
시작부터 끝까지 저자세로 나오던 것은 부탁 때문이었던 것일까?
고개를 돌리자 그의 잘생긴 얼굴이 보여 속이 안 좋아졌다.
"한 번이면 됩니다. 저희 사람들과 함께 밖에 나가주시죠. 그저 식량을 조달해오는 것일 뿐이니 당신에게는 정말 쉬운 부탁 일 겁니다."
"내가 왜 그걸 해야 되는데?"
"...부탁드립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는 남자의 모습.
그가 보이는 것은 명백히 나에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을 바라는 듯한 몸짓이었다.
나는 그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잘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마, 무엇을 하던 지금보다 훨씬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시작된 8월 1일.
그날로 돌아가게 된다면, 나는... 울산이 이렇게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울산뿐일까?
세상에 나 자신을 들어낸다면, 히로인들로 인해 발생하는 수많은 학살극들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했던 모든 것들이 전부 사라져버린다.
...솔직히, 잃어버릴 관계랄 것도 없이 지금도 위태위태하지만, 그런데도 수십번을 회귀하며 쌓아 올린 관계였다.
그것들이 전부 없던 일이 된다는 건...
만약, 돌아갔을 때 벨라나 디아나가 날 못 알아보면 어떻게 하면 될까?
또다시 라일라가 나를 고문할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게 나는 아직도 그녀들이 나를 주인공이라고 확신하는 이유를 모른다.
나와의 기억을 전부 잊은 벨라를... 첫 만남부터 자살을 했던 그 여자를 다시금 마주 봐야 한다는 건...
나는... 그날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기에, 내가 주인공으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만을 할 것이다.
더이상 샤를이 내 말에 설득되지 않는다면, 프리시아들만 남겨놓고 뱀파이어들을 전부 없애버릴 것이다.
어차피 인간으로서 죽었던 이들이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고 생각하면... 앞으로 뱀파이어들의 손에 착취당할 이들을 생각하면...
나는 그렇게라도 해야만한다.
그것이 내가 인간으로써.
주인공으로써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였다.
각양각색의 성격을 지닌 뱀파이어들이 존재하는 한.
대한민국 어디에서고 인간은 사육당할 것이며, 뱀파이어들의 숫자는 멈출 수 없이 계속 늘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수가 더는 불어나기 전에... 지금 전부 없애버리는 게...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눈을 뜬다.
낯선 천장.
한숨 푹 자고 일어나니 무척이나 개운하다.
며칠 동안 잠을 자지 않았기에 종일 잠을 잘 줄 알았지만, 시계를 보자 이제 4시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은 것을 보니 날짜가 바뀐 것은 아닐 것이다.
조금만 더 잘까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어제 피곤해서 씻지도 않고 잤다는 것이 떠올랐고, 곧이어 입고 있는 옷 이곳저곳이 새빨갛게 물들어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방 한쪽에 놓인 거울로 걸어가서 보니 꼴이 가관이다.
어쩐지 이곳에 올 때부터 날 보고 총을 겨누고 있더라니...
이 꼬락서니면 나 같아도 겁먹었겠다.
대충 씻기 위해 몸을 돌리던 중 누군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방 하나짜리 원룸이었고, 분명 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일까.
꾹 닫혀있는 출입문으로 향하고 있는 시야 속에 사람이 보인다.
사람?
아니... 내 눈앞에 있는 것은 분명 사람이 아니다.
내 허리 정도에 불과한 키를 가지고 있고 보자마자 껴안고 싶을 정도로 무척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음에도 내 눈앞에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쿠레아"
내가 쓴 소설 속 히로인이자 귀가 길고... 피부가 어두운 다크 엘프.
그리고 나를 납치한 주범.
그런 그녀가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이제야 나타난 거야?"
"......"
"날 납치한 목적이 뭐야? 도로 한복판에다가 던져놓고서 왜 이제야 나타난 건데? 아니 벙어리야? 왜 말을 안..."
생각해보면 그녀는 내 앞에서 단 한 번도 입을 연 적이 없었다.
벙어리인가 싶었지만, 나는 그런 설정을...
...동족들이 전부 죽고 눈앞에서 인간의 손에 부모가 죽을 때...
트라우마로 실어증이 걸렸다는 설정을...적었던 것이 기억난다.
하지만, 금방 치유 돼서... 괜찮아졌을 텐데...
"...미안"
출입구 문에 몸을 기댄 체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의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갈 만한 나이로 보이는 어린 소녀였다.
실제로 말을 못 하는 소녀에게 벙어리냐고 윽박질렀다는 것을 깨닫자 죄악감이 물밀 듯이 밀려온다.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납치한 네가..."
"이제 죽이고 싶어졌어?"
"...너..."
벙어리가 아니었네? 라고 말을 이으려고 했지만, 그 말이 나오기도 전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당황했던 것도 있지만 그보다도 나를 얼어붙게 한 것은 그녀의 표정과 목소리였다.
"아직 아니야?"
"...뭘..."
"죽여야 하잖아"
증오.
이 아이가 나에게 내보이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격한 증오라는 감정이었다.
"이대로 두면 인간 전부 죽어. 그러면 안 되잖아"
"......"
"그 여자가 죽어야. 끝나"
"쿠레아. 날 납치한 이유가 뭐야?"
내 말에 소녀는 손을 들어 올려 나를 가리킨다.
"멍청해. 더 멍청해. 봐야 알아"
나보다 더 멍청한 건 네 언어 구사 능력이다.
코앞에서 이런 어린놈미 날 멍청하다 욕하는 상황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아 한 대 때리고 싶었지만, 어느정도 수준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초월자급으로 추정되는 소녀에게 내 공격이 먹힐 거라고는 눈곱만큼도 생각이 들지 않는다.
"됐어.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신경꺼"
"이번에도 안죽여? 멍청이"
도저히 못 들어주겠다.
버릇이 잘 못 들었어.
으딜 어른한테 이렇게 막돼먹은 말을!
딱밤 한 대라도 때려야 겠다고 생각하며 손을 들어 올렸지만, 내가 손을 전부 들어 올리기도 전에 내 손이 무언가에 잡혀 올라가지 않게 되었다.
"...놔라"
"이제 안 통해. 너 약해"
불과 5시간 전 사람들이랑 함께 있을 때에는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아 코가 높아진 상태였지만.
소녀에게 팔이 잡힌 채 1mm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나라는 존재가 한없이 나약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비켜"
무력감에 휩싸이자 대화고 뭐고 다 필요 없어져 밖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문을 떡하니 틀어막고 있는 소녀는 어째서인지 비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비키라고"
"...죽일거야?"
"아니, 뭘 자꾸 죽이냐 마냐 물어보는 거야? 대체 누구를 죽인다는 건데?"
샤를을 죽일 거냐고 묻는 말임을 알고 있음에도 굳이 모르는척했다.
"그것보다, 난 누굴 죽이고 싶은 마음도 그럴 담도 없어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죽일까 싶어 피해 다니는데. 죽이긴 뭘 자꾸 죽여"
"인간. 죽이면 돌아와"
"뭐?"
"그 여자만 죽이면. 전부 다시 인간 돼"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순간 눈 앞에 있는 소녀가 하는 말이 무슨뜻인지 이해못해 되물었지만, 이내 나는 이 조그마한 소녀가 내 물음에 대답도 하기 전에 깨달아버렸다.
"그 여자 하나 죽이면 사람 전부 안 죽여도 돼"
"......"
"그래도 안 죽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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