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 LEVEL 5 (17)
* * *
.
.
.
타인을 내 편으로 만드는 건 자신이 있었다.
그것은 세연이 흡혈귀가 되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나이와 여자라는 성별을 무기로 동정심을 살만한 말 몇 마디만 한다면.
그리고, 그것에 더해 슬픈 표정만 지어준다면, 남녀노소 가릴 거 없이 모두 그녀의 편이 되어주었다.
세연은 자신의 외모가 특출났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평균 이상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지만, 티비에 나오는 진짜들과 객관적인 비교를 해보면, 그녀는 그저 그런 여고생일 뿐이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으니.
그런데도 그녀는 그 예쁜 여자들보다 더욱 타인들의 동정심을 잘 살 수 있었다.
다른 이들보다 조금 눈치를 잘 보고, 어떻게 하면 감성팔이를 할 수 있는지 알기에 그녀는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다.
다만 그녀가 유일하게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 없는 이가 있다면 그건 그녀를 낳은 부모와 같은 미친 새끼들뿐이리라.
[내가 야구를 좋아하거든. 그래서 오랜만에 배트 한 번 휘둘러볼까 싶어서 들어봤어]
당장이라도 그녀를 향해 휘두를 기세로 배트를 들고 있는 남자를 봤을 때 알았다.
눈앞에 있는 남자는 지금까지 그녀가 만나왔던 그 누구보다 가장 미쳐있는 사람.
대체 어떻게 서로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망가져 있는 사람.
그것을 깨닫자마자 그를 공격하는 것을 잊고 바닥에 나자빠져 코피를 흘렸지만, 그는 그런 그녀를 보고 해맑게 웃어 보였다.
재밌다는 듯.
[안 죽여. 그러니까 굳이 안 도망가도 돼]
태어나서 처음 보는 그녀의 부모보다 미쳐있는 인간이 하는 말을 믿을 바보는 아니었기에 그가 잠깐 뒤를 도는 사이에 도망쳤다.
조심스럽게 문을 통해 도망가려던 때.
바닥에 널브러진 옷가지를 보며 무엇인가를 고민하던 그의 모습이 아직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질식사... 처음 해보는 건데. 존나... 아프겠지?]
나지막이 흘린 그의 혼잣말이었지만, 그가 얼마나 미쳐있는지 알만한 대목이었다.
"언니... 저희 어디로 가는 거에요?"
"...몰라. 일단 아무 데나 가봐야지. 그 새끼 진짜 뭐 하는 새끼야. 구해줬더니. 양심도 없는 새끼. 네 말만 아니었으면 죽든가 말든가 신경도 안 썼을 텐데"
쉘터에 있을 때부터 세연을 지켜주던 언니.
항상 언니라고 불러서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 이름도 모르는 언니는 자신의 목숨보다도 세연을 지키려고 했다.
...몸이 이렇게 되고 난 이후 자꾸 이런 식이다.
평소보다 과하다.
그저 동정심만 받아야 했을 수준의 연기였음에도 사람들이 자꾸만 과하게 반응해버린다.
긴 시간 노력해서 받아야 했을 동정이 그저 부모가 없다는 말 한마디에 사람들은 눈을 글썽이며 그녀를 바라본다.
세연의 도와달라는 말 한마디에 사람들이 서로 부탁을 이루어주겠다며 서로 경쟁을 한다.
쉘터를 나온 것도 전부 그것 때문이다.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누군가를 죽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세연을 두고 서로 싸우고 총기를 겨누는 것을 봤을 때.
세연은 묘한 쾌감을 느꼈다.
조금 과해져 미성년자인 세연을 덮치려는 이가 있기는 했지만, 이런 육체를 가지고 일반 남성에게 당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트라우마조차 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자신의 편이 잔뜩잔뜩 모여있는 안전한 쉘터에서 제 발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강찬수.
그 남자는 보자마자 세연이 어떤 사람인지 바로 꿰뚫어 보았다.
"세연아. 다시 쉘터로 돌아가는 건 어떻게..."
"...그건 언니는 다시 돌아가고 싶은 거에요?"
"아,아니! 그 새끼들이 너한테 한 짓이 있는데 어떻게 다시 돌아가! 그냥 해본 말이야."
"언니는 다시 가셔도 돼요... 그 사람이 절 싫어하는 거지. 언니는 괜찮잖아요"
"정세연! 내가 그런 말 하지 말랬지!"
"하지만..."
언니는 그녀를 천천히 품에 안고 뒷머리를 쓰다듬는다.
며칠 씻지 못해 냄새가 조금 많이 났기에 당장이라도 떨어트리고 싶었지만, 이곳에서의 유일한 그녀의 편을 잃을 수는 없었기에 참았다.
"세연아.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던. 난 네 편이야."
[아악! 이씨발 새끼들이]
냄새를 감내하던 중 그녀의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
언니는 듣지 못한 듯했지만, 세연의 귀에 또렷하게 들렸다.
그 남자.
언니를 떼어내고 목소리가 들려온 곳에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 도시 한복판에 수많은 무리가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괴물들. 그리고, 그 사이를 누비며 괴물들을 죽이고 있는 남자.
미쳤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러면 일단 안전한 곳을...세연아? 지금 어디... 강세연!!"
세연이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그녀의 몸은 건물 옥상을 뛰어넘어 공중에 있을 때였다.
도와주기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그가 얼마나 망가져 있는지 다시 한번 보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를 다시 한번 봤을 때에는 그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커져 있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대체 왜 자신을 죽이려는 괴물을 죽이며 슬퍼하는 것일까.
어떻게 그는 지금 숨을 쉬며 살아있는 것일까.
괴물들 사이를 누비며 울고 있는 그는 이성을 잃은 뱀파이어들보다 더 괴물 같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것일까.
몇 시간 동안 정신없이 그가 싸우는 것을 보고 있을 때 즈음 그가 쉘터사람들로 보이는 이들과 접촉하는 것을 봤을 때 세연은 확신했다.
"하아...하아... 세연아..."
"언니. 저희 쉘터로 돌아가요"
그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
***
목적지가 xx 마트라는 것을 들었을 때 그녀는 수십 번이고 그를 따라가는 것이 맞나 고민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양식장과 가까운 위치에 있는 마트를 목적지로 골랐는데.
그 노골적인 함정에 걸려주는 미친놈이 있을 거라고는...
"미쳤어. 미쳤어. 진짜 미쳤어."
"자꾸 그렇게 구시렁거릴 거면 지금이라도 돌아가지?"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갈 수는 없었다.
"안다고 말했잖아요! 알 것 같다면서요! 분명히 그렇게 말해놓고서는..."
그렇게 경고를 했음에도 탐사팀과 함께 밖을 나온 그의 행동에 이해를 할 수 없어 화를 내려 했지만, 곧이어 느껴지는 주변 시선에 세연은 입을 다물었다.
"...진짜 기분 나빠"
"그건 나도 동의"
열 명 가량 이루어진 소규모 팀.
출발할 때부터 지금까지. 2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매우 기분이 나쁘다.
죽으러 간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려고 하는 듯한 표정.
쉘터를 일주일 만에 들어왔지만, 그녀가 알기로는 이들 중 몇몇을 제외하고 전부 다른 팀에 속해있는 사람들이었다.
마치, 죽고 싶은 사람들만 뽑았다는 듯.
하나같이 그들의 눈에는 죽음에 대한 각오가 서려 있었고 그것은 그녀를 거북하게 만들었다.
"아저씨. 진짜 방법 있는 거 맞죠?"
"돌아갈 거 아니면, 닥치고 걷자"
"...저 죽기 싫으니까. 아저씨가 무조건 책임지는 거에요"
그는 그녀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앞을 걸었다.
제일 선두에서 걷고 있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그녀는 왜 이곳에 따라왔을까 수십번이고 후회했다.
그 호기심이 뭐라고...
그래도 다시 돌아가는 건 싫다.
고개를 들자 태양 빛이 그녀를 내리 쬐 눈을 자극한다.
태양 아래에서 뱀파이어는 약해지며, 애초에 그늘 바깥으로 나오지 않으려고 하니. 위험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한평생 먹어왔던 그녀의 눈칫밥은 분명 세연에게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늘을 피해가며 대로로 우회해가며 이동하던 우리는 세시간이 걸려서야 목적지인 마트까지 도착할 수 있었고, 마트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지하로 내려가며 여유롭게 뱀파이어를 죽였다.
평소에는 그녀 혼자서 실내에서 기다리고 있는 뱀파이어를 죽였기에 한마리 한마리 신중하게 죽였었지만, 오늘은 그가 함께였기에 딱히 걱정 없이 여유롭게 지하로 내려갈 수 있었다.
강찬수가 쉘터를 휘어잡은 이후 그녀는 남들보다 강한 뱀파이어라는 이유로 자주 바깥에 나가 식량을 가져왔기에 익숙하게 식품 판매대로 곧장 가서 물자를 가방에 담는다.
"아저씨도 가만히 있지만 말고, 도와주시죠?"
"그건 계약에 없는 사항인데"
"...계약은 무슨. 아저씨 무료 봉사하는 거잖아요"
"그걸 어떻게 알았냐?"
애초에 그가 쉘터에 무엇인가 바라는 것이 있어 보이지도 않았고 금방이라도 떠날 것 같은 느낌을 풍기고 있는데 모르는 게 이상할 것이다.
호구도 이런 호구가 따로 없을 정도다.
"안 할 거면 됐어요. 어차피 제가 안 해도 다른 사람들이 다 챙길..."
진열대에 가려서 몰랐지만, 지하에 사람들이 없는듯한 느낌에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 어디갔어?"
"여기 왔던 사람들이면, 네가 열심히 일하는 거 보자마자 바로 올라가던데"
"...안잡고 뭐하셨어요"
"그러게..."
내가 미쳤지. 미쳤어. 이 미친놈을 내가 왜...
세연은 수십번이고 그 말을 되뇌며 지금까지 담아놨던 물자들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저씨. 그냥 까놓고 물어볼게요"
"까도 볼 것도 없..."
"장난치지 말구요! 아저씨 여기 죽으러 온 거에요?"
"아마 아닐걸"
"......"
"나도 내가 뭘 하려는지 모르겠다. 그냥 보고 싶었던 건데..."
"뭘요?"
"내가 외면하고 있던 것들"
그의 말에 그녀는 마치 그가 다른 세상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저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듯한.
세상이 너무 조그마해 사람이 개미처럼 보이는 곳에서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에 입을 열려고 했지만, 그녀의 귀를 때리는 묘한 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비...소리?
뱀파이어가 되면서 수십 배로 예민해진 청각이 그녀에게 경고를 울린다.
빠르게 위로 올라간 그녀는 바깥이 어두컴컴해지고, 투명한 통유리에 이슬이 한방울 한방울 맺히는 것을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이럴 줄 알았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것은 먹구름이 태양을 가린다는 말이고, 건물 안에 있는 괴물들이 바깥으로 나온다는 말이었다.
쉘터에서부터 3시간이나 걸려서 이곳에 온 것이기에 괴물들을 뚫고 3시간을 걸려 다시 돌아갈 용기는 없었다.
차라리 이곳에서 하루 정도 버티다가 들어가는 것이 전원 생존하는데 유리할 것이다.
"올라왔소? 그럼 가지"
1층에서 무기를 닦으며 기다리고 있던 남자는 지하에서 올라온 세연과 아저씨를 보자마자 그렇게 말해 보였다.
비가 올 것을 예상했다는 듯 미리 우비와 장화를 신은 채 총을 들고서 밖으로 나가려는 그들의 모습에 그녀는 주먹을 쥔다.
"잠깐만요. 다들 여기에 있어야죠... 그게 맞는 거잖아요. 굳이 왜 지금 돌아가시려고 하는 거에요. 나가면 전부 죽을 텐데... 애초에 이곳에 식량이 필요해서 온 거 아니에요? 그런데 아무것도 가방에 안 넣고 다시 돌아간다고요? 다들 미쳤어요?"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이 세연에게 꽂힌다.
마치, 왜 그런 말을 하냐는 듯.
눈짓만으로 그녀를 나무라고 있었다.
"...주인공이라고 했나?"
"어"
제일 처음 돌아가자고 했던 남자는 그의 낯선 언행에 혼잣말로 '요즘 젊은이들은...'이라는 말을 조용히 되뇄지만, 이내 혀를 차고 말을 이었다.
"자네는 어떻게 할 텐가"
"나가면 전부 뒤진다는데 여기 있어야지"
그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그곳에 있는 뱀파이어들을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그곳에 있는 이들을 전부 죽인다 하더라도 뱀파이어는 양식장에만 있는 것이 아닌 이곳 양식장에서 수급 받고 있는 밖에도 그들은 무수히 존재 할 것이다.
따라가면 죽는다.
"아니면, 굳이 나가야 하는 될 이유라도 있어?"
"있지. 아무렴. 있고말고. 갈 이유야 차고도 넘치지. 저 애새끼 때문에 전부 틀어지지만 않았어도..."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돌아가는 길목에 내 딸 아이가 있으니 꼭 가야지. 거기서 날 찾으며 울고 있는걸 아는데 어떤 아비가 가만히 있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뱀파이어들이 그득한 그 양식장이라는 곳에 처박기 위해서 돌아가자는 거 맞지?"
그는 자신이 왜 이곳에 왔는지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듯했다.
"난 자네가 불쌍하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네. 자네가 죽든 말든 신경 안 써. 그냥 한번... 자네가 강하든 말든 그 금수만도 못한 그들을 이길 수 있던 없던 그냥 한 번이라도 보고 싶었던 것뿐이야. 죽더라도 딸 아이 얼굴 한번..."
"보면 어떻게 하려고?"
"죽여야지. 내 손으로"
"......"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가축처럼... 노리개로 살아가게 될 것을 뻔히 아는데. 구해줘야지. 아비로써 최소한의 행복은 지켜줘야지"
바닥에 주저앉은 남자 주변의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전부 가족. 친구. 연인을 구하고 싶어서 이곳에 온 이들이다.
너무나도 뻔한 스토리.
뻔하기에 콘텐츠로 소비했을 때 독자. 시청자에게 공감받을 수 밖에 없는 스토리였지만, 그녀로서는 전혀 공감이 가지 않았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소중한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본능이다.
인간의 이기심은 추악하며, 살기 위한 본능은 그 어떠한 욕망보다 드높다.
이들은 그저 삶을 포기해버린 것뿐.
더는 살고 싶지 않았기에 다른 사람을 이유로 들어 죽으려 하는 것이다.
"아저씨. 가죠. 위층에 아마 침대도 있고, 좀 정리하면 깨끗한 곳도... 아저씨?"
"앉아서 뭐 해? 안가?"
그는 이미 바깥으로 나가고 있었다.
비가 내리는 곳에서 비를 막을 무엇도 걸치지 않은 채 서서 빨리 가자고 재촉하는 듯 무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네..."
"비 존나오네"
사람들이 바깥으로 나가 그를 따라갔고, 그녀 또한 그를 붙잡기 위해 나가던 순간 들려오는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당신 말대로 가는 대신에 딸내미 죽이지는 말자"
"......"
"당신 딸내미가 죽고 싶든 안 죽고 싶어 하든. 내 손으로 죽이지는 말자고"
그는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이내 그와 눈이 마주친다.
그리곤 이내 아무 말도 없이 몸을 돌려 그들과 함께 걸어간다.
"우리 서로 그렇게 하자"
그가 왜 저렇게 망가졌는지.
그렇게까지 망가졌음에도 어째서 아직 버티고 있는 건지 궁금했다.
그런데 인간을 가축이 되어버린 곳을 향해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그녀는 그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왠지 알 것 같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소중한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본능이다.
그런데 자신보다 타인을.
그것도 생판 모르는 이를 더욱 소중히 여기는 이가 있다고 한다면...
자신의 목숨을 바치고, 자신을 수도 없이 망가트려 가며, 오롯이 타인을 위하는 이가 있다면 그들은 성인이라 불리거나.
영웅이라 불리기 마땅한 이들일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