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7화 〉 LEVEL 5 (18) (77/87)

〈 77화 〉 LEVEL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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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장이다 뭐다 다들 지랄 발광해대길래 엄청나게 긴장했었는데.

막상 와보니 그들이 했던 지랄 발광이 과한 것이 아니었다.

"아저씨... 아저씨는 죽더라도 저만큼은 살려야 할 의무가 있어요"

"제 발로 따라와 놓고 개뼈다귀 같은 소리 좀 하지 마"

"아저씨나 틀딱 같은 소리 하지 마세요"

"틀...뭐?"

절대 들어서는 안 되는 말을 들은 것 같아 내 귀를 의심하고 고개를 돌린다.

"다시 말 해봐. 틀 뭐?"

"아씨, 지금 그게 중요... 아저씨 앞! 앞!"

세연의 말에 다시 고개를 원위치시키자 이미 뱀파이어가 코앞까지 도착해있었다.

야구 배트가 머리를 때리는 깔끔한 소리와 함께 눈앞에 있던 뱀파이어가 풀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다시금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뱀파이어들을 바라본다.

애초에 이곳은 몰래 들어올 만한 곳이 아니었다.

이곳에 있는 뱀파이어들은 전부 이성을 가지고 있었고, 인간만큼의 지능이 있었으며 인간의 수십 배에 달하는 육체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대충 눈에 보이는 숫자만 대략 백여 마리.

부산에 있는 뱀파이어 대부분의 피를 커버해야 했기에 엄청 넓을 거라고 생각했고, 지도로도 그 넓이를 확인했지만... 실제의 천분의 1로 된 지도로 보는 것과 직접 와서 크기를 보는 것은 다른 느낌이었다.

대충 때려잡아야 할 숫자가 천에 육박한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야.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한 게 아닐까 하는 후회가 들기 시작한다.

애초에 전부 죽이는 것 따위는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떨어지지 마"

"절대 떨어질 생각 없어요"

나를 향해 달려드는 뱀파이어들을 보며 나는 빠따를 잡은 손에 힘을 뺀다.

원래라면 이곳에 혼자 왔어야 했다.

아니, 그전에 나는 회귀를 하는 게 맞았다.

이게 무슨 게임도 아니고,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곳에 와서 개지랄하고 하는 것일까.

외면하고 있던 것들을 직접 눈으로 봐야 한다고?

마치, 세상을 구해야 하는 용사가 심적 고민을 하고 있다는 듯한 말이지 않은가.

나는 그저 내가 싸질러놓은 똥을 치우기 싫어 애써 합당한 이유를 찾고 있는 것일 뿐이다.

히로인이 이곳에 온 것도 내 탓.

히로인들을 이딴 식으로 설정한 것도 나이며.

그녀들이 세상을 부수고 사람을 죽이는 것도 나를 찾기 위함이다.

히로인들을 막지 못한 것 또한 내가 약하고 기억조차도 못하기 때문이다.

기억을 지운 것도 나고.

기억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도 나다.

참 쉬운 문제였다.

초월적인 누군가가 나를 가지고 놀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모든 게 내가 한 짓이라면.

나만큼은 부산과 울산을 뱀파이어 소굴로 만든 샤를을 탓해서는 안 된다.

나만큼은 뱀파이어가 된 이들이 인간을 가축처럼 부리는 것도 그들을 탓해서는 안 된다.

내가 반복되는 죽음을 견디지 못하고 미쳐버렸기에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지 않은가.

나로 인해 모두가 고통 받고 있다.

내가 주인공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전부 내 탓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남 탓만을 반복한다면 결국에 내 주변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질 것이다.

"아저씨!!"

손에 들린 야구 빠따가 바닥을 구르는 소리와 함께 수도 없이 몰려드는 뱀파이어들을 바라보며 나는 눈을 감았다.

순식간에 온몸을 물어뜯기기를 바라는 듯 온몸으로 그들의 먹이가 될 작정이었지만, 몸에 그 어떠한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다.

"...멍청이"

눈을 살며시 뜨자 피와 살점으로 바닥을 채우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과거 인간이었던 이들이자 현재는 뱀파이어로서 충실히 삶을 살아가던 이들이 눈을 잠깐 감았다가 뜬 사이 모조리 죽어있다.

"또...또..."

"쿠레아"

시체들을 밟고 있는 조그마한 소녀의 몸에는 핏방울 하나 묻어있지 않았지만, 누가 보더라도 이 학살을 행한 이가 저 소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들은 그 누구도 내가 죽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죽어도 그저 회귀할 뿐 진짜로 죽는 게 아님을 대부분의 히로인들이 알고 있다.

"멍청해. 바보 같아"

그런데도 그녀들은 내가 죽는 것을 두려워한다.

나의 죽음을 격렬하게 거부한다.

소설 속 세상에 있을 때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죽는 것밖에 없었을 테니까.

죽고 또 죽고.

또 죽고.

내가 망가져 무너지는 순간들을 지켜봐 왔을 테니까.

나는 애초부터 모든 것을 알 필요가 없었다.

단순히 이유만 알면 되었다.

나는 왜.

이 고생을 하는 것일까.

수도 없이 강제로 죽어가며, 히로인들에게 파묻혀가며.

죽어가며 고통스러워 해야 했을까.

셀 수도 없는...

정말 셀 수도 없는 죽음을 겪어 산산이 부서져 버렸음에도 기억을 지워가면서 왜 나는 이렇게 살아있는 걸까.

"그 여자만 죽으면. 끝나. 그런데 왜. 죽으려고 해"

"마지막엔 해피엔딩인 게 좋잖아"

"그. 마지막에. 너만. 행복하지 않아"

"할 수 있어"

두렵다

그녀들이 나를 잊는 게 너무나도 무섭다.

또다시 죽음을 반복해가며 벨라를. 라일라를. 디아나를. 샤를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두렵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지금보다는 분명 나을 것이다.

모든 게 시작됐던 그날로 다시 돌아간다면...

분명, 그녀들은 그리고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행복한 오늘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샤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면, 몇 번이고 다시 도전하면 된다.

하이네스도 이드도 보지 못한 무수히 많은 히로인들도 몇 번이고 반복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아니. 실패했어. 그러니. 또. 실패할 거야. 그러니 죽어야 해. 특히 그 여자."

"실패한 적 없어"

레벨업이라는 것을 통해 어떻게든 나에게 최소한의 코스트로 기억을 전달하려고 했다.

나는 히로인들과의 기억을 전부 잃었기에 히로인들의 죽음을 목격하자마자 강제로 나 자신을 죽임으로 회귀시켰을 것이다.

그러니, 실패한 적 없다.

내가 조금이라도 덜 죽어. 이성을 유지한 채 모두와 함께 있는 미래는 아직 진행 중이다.

솔직히, 얼굴도 모르는... 혹은 하이네스처럼 안좋은 기억만을 가지고 있는 히로인을 위해 죽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는 못한다.

하지만, 샤를은 다르다.

지금까지 수십번을 죽었는데...

그 정도는 할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쿠레아"

"말... 하지 마"

"날 죽여줘"

"싫어..."

"그러면 내가 죽도록 내버려 둬"

"싫어!!!"

아무런 표정도 없이 무미건조하던 그녀의 목소리와 표정이 일그러져 나를 바라본다.

슬픔이 가득한 쿠레아를 보니 이제야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내가 히로인을 공략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들은 하나같이 나에게 집착했고, 가지고 싶어 했는데.

이미 공략된 그녀들에게 대체 무엇을 더 공략해야 할까.

그저 내가 그녀들에게 공략당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그녀들이 조금이라도 날 쉽게 공략 할 수 있게 힌트만을 주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벨라트릭스는 예외다.

과거 실패했던 히로인.

나만 성공했던 히로인.

사실 완벽한 성공이라 부르기는 힘들지만...

이번에 다시 하게 되었을 때. 더 완벽하게 하면 된다.

"쿠레아"

"......"

이제 대답조차 하지 않는 소녀의 모습에 나는 천천히 그녀에게 걸어가 머리에 손을 올렸다.

아마, 내가 자주 이렇게 했을 것이다.

소설속에서 쿠레아가 꽤 좋아했던 것이니. 분명 나 또한 이렇게 쿠레아의 머리를 쓰다듬었을 것이 분명하다.

"부탁해"

"이제... 그만해도... 되잖아... 아무도 없이 편하게... 살아도 되잖아... 이제 아무도 모르게 됐는데... 안 해도 되는데..."

"대신에 이번에는 안 잊어먹고 빨리 찾을게"

"그런 거 필요 없어!!!"

"정말?"

조그마한 쿠레아의 볼에 손을 올리고 눈을 맞춘 채 다시 한번 되묻자 소녀는 내 눈을 피해버렸다.

"필요 없어... 평생... 안 찾아도 돼... 그러니까..."

"난 네가 꼭 있어야 해"

귀여움 탓이다.

만난 지 이제 겨우 하루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그녀에게 이렇게 정이 들어버린 것은.

아마, 등장하자마자부터 독자들을 전부 홀려버려 메인 주연 자리를 꿰차버린 그녀의 귀여움 탓이리라.

"더는 보기 싫어... 힘든데... 아파하는데... 나 아무것도 해줄 게 없어... 그런 거 이제 싫어..."

"돌아가지 않으면 나는 더 아파하고 힘들어질 거야"

"......"

"지금 죽지 않은 채. 평생 안 돌아가면, 나는 평생 후회하게 될 거야"

나를 그렇게 좋아하는 샤를을 버리고 내 살길만 찾아 가게 된다면, 나는 분명 후회할 것이다.

"그러니까. 딱 3초만 눈 감고 있어 줄래? 금방 끝날 거야"

"...내가"

"레아"

"내가 할 거야"

소녀는 두 눈에 눈물을 한가득 머금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하면... 안아퍼... 내가 해야 해... 옛날에는... 못했어... 못해서... 아프게 했어... 이번에는... 내가 해야 해"

두 눈에 눈물을 흘리며 애써 한마디씩 내뱉는 쿠레아의 모습에 나는 입을 다물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럼 부탁할게"

"미안해... 미안해..."

나는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8월 1일로 돌아간다.

"멍청이라고 해서... 미안해... 바보라고 해서... 미안해... 또 아무것도 못 해서... 미안해..."

***

[BAD END] ­ 주인공 DEAD (55일 생존)

LEVEL : 5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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