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 LEVEL 5.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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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했다.
[죽여주세요]
그저 자신을 죽여달라고 말하던 소녀.
[부탁드립니다]
사지가 잘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해 죽여달라며 절규하던 소녀는 어느 날 나에게 말했다.
[다녀오세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뛸 듯이 기뻤다.
그리고
[버리지 말아 주세요]
그 당시 나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당시에는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었기에 수십번 고민했다.
사지가 없는 여자아이.
그녀의 상태는 누군가 24시간 붙어서 모든 것을 해결해줘야 했다.
식사와 목욕은 물론이고, 배설과 수면 그리고 이동까지.
...버리는건 인간으로서 아닐지라도 다른 이에게 아이를 맡기고 그저 일정량의 돈을 꾸준히 보내준다면 최소한의 도리는 지키는 거라 생각했다.
[아빠]
그런데, 라일라는 그것조차 못하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그냥 옆에만 있어 주세요]
영악한 아이.
[얼마 안 남았어요. 그때까지 조금만... 조금만 같이 있어 주세요.]
그 아이에게 거짓말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울지 마요]
도망가지 못하게 만들어놓고 울지 말라는 아이의 말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구해준 사람이 아빠라서 행복했어요]
그 말을 듣고 미련하게 그 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회귀라는 힘을 가지고 있는 내가.
그 아이의 싸늘한 시체를 보고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셨어요? 오늘은 일찍 오셨네요]
[다리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받아들일 수 없다.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그냥... 옆에만 있어 주시면 돼요]
[버리지만 않는다면, 저는 뭐든 좋아요]
영악한 아이.
[고마워요...]
내가 회귀한다는 사실을 그 아이가 알 수는 없었겠지만...
그 아이는 내가 돌아갈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고, 그렇게 돌아가면 돌아갈수록...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그 아이에 대한 마음이 진심이 되었다.
처음 회귀했을 때부터 진심이었겠지만...
...진심으로 라일라를 살리고 싶어지게 만들었다.
그 아이는 나를 불가능에 도전하도록 만들어버렸다.
내 눈을 멀게 했다.
뻔히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나방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나는 실패했다.
포기했다.
나 같은 새끼는 도저히 안 된다.
벨라트릭스가 떠났다.
그녀는 내가 사랑하는 이가 아니더라도 라일라를 구하는데에도 꼭 필요한 여자였다.
하지만, 불가능하다.
그녀는 나와 함께하면 함께할수록 망가져 갔다.
수백 번 회귀를 하며, 벨라를 안고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와 그녀의 관계 그 자체의 문제였다.
오직 나이기에 그녀는 미칠 수밖에 없었고, 내가 설정한 캐릭터였기에 망가질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후회를 할 수밖에 없게 한 캐릭터다.
히로인이 되지 못한 그저 초반부에 잠깐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후회라는 감성을 자극하는 캐릭터.
내가 사랑하는 여자는.
내가 만든 설정으로 인해 내 손으로 버려 야만 했다.
그렇게 벨라를 떠나보내고 그녀가 사라진 구멍을 다른 히로인으로 메꾼 다음... 다시금 라일라를 구하러 가는 건 이제 불가능하다.
로제가 떠난 것은 둘째치고, 더는 앞으로 나아갈 힘이 없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이 전부 무의미한 발버둥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 아이를 구한다는 것을 핑계로 나는 얼마나 더 망가져야 할까.
이제는 정말 못하겠다.
더는 죽고 싶지 않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고통보다 더욱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은 세상에 홀로 남아있다는 고독감이었고, 그것을 이제 버티지 못하게 되었다.
그만하자.
누군가의 목소리가 뇌를 울리며 정신을 깨운다.
"어머, 너희. 내가 함부로 장난감 주워오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여왕님! 엘린이 멋대로 뱀파이어로 만들어버렸어요! 혼내주세요!"
"아니에요! 저는 하지 않았고 엘리가 했어요!"
"네가 먹었잖아. 바보야"
"너는 내가 먹을 때 왜 뺏어가냐고 화냈잖아!"
"여왕님 보셨죠? 얘가 먹었대요오"
"동족으로 만든 건 엘리에요!"
눈을 뜨니 곧장 쌍둥이 자매가 보였고, 뒤이어 왕좌에 우아하게 앉아있는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뱀파이어들의 여왕.
샤를.
내 소설 막바지에 나오는 마왕군의 간부 중 한 명이며 소설 캐릭터 중 성격 안좋기로는 TOP3안에 들어갈 것이다.
평가해주는 독자라고는 6명밖에 없긴 하지만...
그래도 그 6명에게 인기 없고 성격 쓰레기인 거로 엘리제 다음가는 여자였다.
"너희..."
"잘못했어요"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알았어. 혼내지는 않을 테니. 저건 이제 버리렴"
"여왕니임~"
"있잖아요오오"
샤를과 눈이 마주치자 어째서인지 그녀의 표정이 천천히 굳기 시작했다.
혐오?
엘리엘린 자매는 샤를을 설득해 나를 데리고 있는 것을 허락받았다.
"어? 일어나 있었네?"
"그러면 끌고 갈 필요 없겠다. 일어나서 따라와"
지금이야 샤를이 눈앞에 있어서 가만히 있는 거지. 샤를만 안보였었다면, 나는 분명 이들에게 꿀밤을 오지게 먹였을 것이다.
아, 그전에 이곳을 나가게 되면, 당장이라도 회귀 해야 되니 그건 힘들지도...
"잠깐"
자리에서 일어나 쌍둥이를 따라가던 중 샤를의 잠깐이라는 말에 무심코 고개를 돌린다.
나를 부르는 소리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음에도 어째서인지 내 목이 자동으로 돌아간 느낌.
이건...
"그래도 용사라서 그런지. 권능 없이 하면 거부 반응이 있네"
그제야 내 몸 상태가 평소와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영역이 비이상적으로 커져 있다.
인간 중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육체 바깥의 영역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애들한테 손대지 마]
[도망치는 것도 멋대로 죽는 것도 안 돼]
"너...지금 무슨 짓 한 거야"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됐나 보네. [꿇어]"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뇌에 박히는 듯한 기분.
이질적인 감각에 나는 표정을 찌푸리고 그녀를 노려봤지만, 어느새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땅을 보고 있었다.
내가 지금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박고 있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는다.
"쓰레기 같은 눈을 했어도 용사는 용사인가 봐?. 하긴, 그년의 대적자인데. 이 정도는 해야겠지"
"...지랄..."
"그런데, 초월자도 아니고... 거기다, 이딴 게 용사라는 건 좀 웃기긴 하네. 하긴, 인간 수준이 딱 이 정도겠지"
무엇인가 내 머리 위에 올려져 머리를 짓누른다.
"죽여버리기 전에 치워..."
"아직 인간이었을 때의 물이 빠지지 않아서 그런가? 내 아이가 됐는데도 반항하는 아이는 네가 처음이야."
"씨발년이..."
욕설을 내뱉으려던 도중 머리를 짓누르는 힘이 강해졌고,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바닥은 내 이마에 의해 금이 가기 시작했다.
바닥이 깨지고 머리가 파묻히며 돌조각들이 얼굴을 찔러 피가 나고 있어 고통이 느껴졌지만, 그보다도 나를 힘겹게 한 건 자꾸만 뇌가 아려온다는 것이다.
여왕.
어째서인지 그녀의 존재감이 너무 커다랗게 느껴진다.
그녀에게 반항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려고 하면 할수록 뇌가 그것을 거부한다.
이상하리만치 강해진 육신과 늘어난 영역으로 인해 훨씬 강해졌음에도 어째서인지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머리가 바닥에 파묻혀 숨을 쉬지 못하게 되어서야 내 육체가 뱀파이어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기절한지 얼마나 됐다고, 또다시 정신을 잃었다.
"일어났어?"
"여왕님한테 대드는 뱀파이어가 어디 있어"
"......"
"멍청이"
"바보"
버근가?
내가 아무리 히로인들한테 처맞고 다니는 병신이라고 해도, 이 정도로 동네북은 아니었다.
...샤를에게 이기지는 못할지언정 칼빵 몇 대는 놔줄 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 아무것도 못 하고 기절까지 당했다?
내 육체가 뱀파이어로 된 탓일까.
하긴, 샤를의 능력이 지배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긴 하지만...
"...씨발"
좇 같은 년.
샤를에게 반항하겠다는 생각만 했을 뿐인데 뇌가 미친 듯이 거부한다.
기분이 참신하게 더럽다.
"...애들아"
"응?"
"왜?"
"나 납치하느라 고생한 것 같은데. 그래도,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거거든? 나 죽여달라고 부탁하면 들어줄 수 있어?"
"...응?"
"...에?"
나를 보며 쌍으로 고개를 갸우뚱하는 엘리엘린 자매의 모습.
"싫어"
"혹시 바보야?"
날 병신이라고 놀리는 것은 수천 번이고 들어봤지만, 바보냐는 말은 처음으로 듣는다.
"날 여기에 데려온 이유가 뭐야?"
"그것보다, 무슨 이름이 좋아?"
"용사는 재미없어"
"아니, 그것보다..."
"예삐랑 삐삐 있는데. 어떤 게 좋아?"
"아니, 라라랑 루루 중에 하나로 하기로 결정했잖아! 왜 멋대로 말해?"
둘 다 싫은데...
내 말을 무시하고 자기들끼리 말하는 것을 지켜보는 건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몸을 일으켰다.
"뭐 하는 거야?"
"내가 말하고 있잖아!"
"애들아. 노는 건 얼마든지 상관없는데. 아저씨가 애새끼랑 놀아본 적이 없어서. 너희가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거든? 그러니까 나 같은 재미없는 아저씨는 빼놓고 둘이서 알아서 놀자?"
나에게 이 둘을 때리지 말라는 명령을 심어놨기에 내가 직접적으로 손을 댈 수는 없었지만, 다행히도 엘리엘린의 정신연령은 보이는 육체 나이와 거의 흡사한 10살 미만의 애새끼들이었다.
대충 말을 좀 하면...
"[앉아]"
씨이발?
몸을 돌려 나가기 위해 문고리에 손을 올린 그 상태로 시야가 갑자기 낮아졌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엘리엘린이 있는 곳을 바라본다.
"...애들아"
"여왕님이 말 안 해줬으면 큰일 날뻔했어"
"그치? 여왕님이 바로 도망갈 거라고 했는데. 그대로 됐어"
"바보"
"멍청이"
악동과도 같은 얼굴을 하는 두 아이를 보며 나는 눈앞에 아이들이 정신연령이 낮은 것이 오히려 불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을 바라보는듯한 기묘한 아이들의 얼굴.
"나 결정했어! 예삐로 할래!"
"예삐는 안대! 예삐는 너무 빨리 죽었잖아."
"그치만, 이거는 용사잖아. 그래서 튼튼해"
"사라가 이거 보면 분명 죽이려고 할 텐데?"
애새끼들이 또다시 자기들만의 대화에 빠져들었음에도 내 다리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엘리엘린은 분명 영혼 특성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는 애새끼들일 텐데 어째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일까.
의문을 일단 집어치우고 당장 이딴 개 같은 상황은 벗어나야 했기에 마나를 일으켜 몸을 일으키기 위해 발악을 하기 시작했다.
움직이려고 하자마자 다시금 머리에서 울리는 거부반응.
하지만, 할만하다.
아까 사를의 앞에 있을 때보다 훨씬 미약한 거부반응이다.
"어디 숨겨놓을까?"
"그치만... 숨겨놓으면 재미없는걸?"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자. 나는 들키지 않게 최대한 조심히 일어나 문을 열어 밖을 나왔다.
어디를 가도 범법자 신세인 나에게 은신은 숨을 쉬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다.
...연합국에 거액의 현상 수배를 당한 현직 대도이기도 하니.
어렵지 않게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
복도로 나오자마자 보이는 뱀파이어들의 모습에 기둥이나 지형지물로 몸을 숨겼다.
그렇게 몸을 숨긴채로 빠르게 이동하며 뼈저리게 실감하게 된다.
이 육체.
존나 좋다.
인간이라는 하등생물에서 새로운 생명체로 탈피한듯한 기분.
육체적인 제약이 완전히 풀린 것도 모자라 영역 자체가 말도 안 되게 늘어났다.
마법사들이 말하는 신세계라는 것이 이 말일까?
그저 육감에만 의존해야 되는 것과는 다르게 눈을 감아도 눈을 뜬 것처럼 모든 것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마음먹고 영역을 넓히려고 한다면 100m는 넘게 늘어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축복받은 육체였지만, 갑작스럽게 환경이 바뀐 탓인지. 고작 해봐야 20m 정도의 영역으로 전해져오는 정보량조차 전부 소화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 이곳에서 도망치는 것은 쉬울 텐데...
몸이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뇌의 거부 반응이 심해진다.
[도망치는 것도 멋대로 죽는 것도 안 돼]
샤를이 걸어놨던 지배의 영향임이 분명하다.
이 상태면 이곳을 도망쳐도 평생을 그녀의 저주에 뇌가 절여져 버릴 것이 분명하다.
차라리 이 자리에서 자살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까 심장을 찔렀을 때처럼 똑같이 손을 들어본다.
손을 날카롭게 만들어 심장을 찌르기 위해 움직였지만, 이내 아무런 마나도 담기지 않은 채 내 가슴을 때리는 손.
씨발... 조졌다.
잘 생각해보자.
나는 지금 도망치는 것도 자살하는 것도 하지 못한다.
가만히 있으면 아마, 엘리엘린의 노리개가 되어 평생 장난감처럼 살아가야 할 것이다.
...장난감?
애들이 나를 가지고 어떻게 놀지 모르겠지만, 만약 위험한 놀이를 하는 거라면, 오히려 나에게 좋은 것이 아닐까?
뒤지면 곧장 돌아갈 수 있을 테니.
그 아이들이 날 죽이지 않더라도 차라리 다시 엘리엘린에게 돌아가서, 날 죽여줄 년을 찾는 것이 빠를 것 같다.
그렇게 다시 원래 있던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리려고 할 때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
"거기. 뭐 하는 놈이길래 숨어있는 거지?"
여성의 것으로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무척 거친 목소리였다.
"...숨은적 없는데요?"
"신입이면 어디... 너 좀 치냐?"
...로제와 같은 느낌을 주는 여자였다.
아니 로제의 상위버전 같은 느낌.
싸움에 미친년.
"갑자기 무슨 소리..."
"뭐 하다 온 새끼길래 피 냄새가 이렇게나?"
내 앞에 있는 여자에게서 풍겨오는 압도적인 투쟁심을 느끼자 이 여자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자,잠깐..."
사라 베르티네.
싸움에 미쳐있는 뱀파이어이자 말보다는 주먹이 먼저 나가는...
깔끔하게 울리는 '퍽' 소리와 함께 내 육체가 공중에 붕 뜨는 것을 느꼈다.
만나도 참, 개 같은 여자를 만났다.
바닥에 몸이 떨어지기 전에 중심을 잡고서 바닥에 사뿐히 내려앉아 사라를 노려본다.
"잠깐, 이야기 좀 들어보시죠?"
"한판 붙자!"
들은 척도 안 하고 나를 향해 달려오는 사라를 보며 나는 주먹을 꽉 말아쥔다.
애초부터 내 육체는 초월자까지 단 한 걸음만 남기고 있었다.
그 한 걸음을 도저히 넘기지 못해 로제와의 대련에서 항상 졌지만, 그렇다 해도 보스몹도 아니고 중간보스도 아닌 네임드 몹에 질 정도는 아니다.
거기다 군단의 힘을 빼놓고 아무것도 없는 샤를의 권속 중 하나라고 한다면 뭐... 말 다 했지.
몸을 살짝 움직여 나를 향해 달려들며 주먹을 내지르는 사라의 허리에 주먹을 그대로 내리꽂았다.
물리법칙을 무시하고 그 자리에서 꼴사납게 바닥에 나자빠진 그녀의 모습.
힘 조절을 하려고 했지만, 갑작스럽게 늘어난 힘에 아직 적응하지 못했던 탓인지 과하게 때려버렸다.
"꺄악!!!!"
이 광경을 본 것인지 주변에서 들려오는 시녀들의 비명들.
내가 죽고 싶어 하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사고를 일으키고 싶진 않았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죽고 싶었는데...
혹시나 불미스러운 일로 미움을 사버려 고문으로 죽게 되면 무조건 기억을 지워야 해서 최대한 과한 행동은 피하고 싶었다.
"너...뭐하는 새끼냐?"
"어? 아직 기절 안 했네?"
이 몹은 생각보다 튼튼했던 건지 맞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음에도 일어나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도 타격이 아예 없던 건 아니었는지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이 눈에 띈다.
"아니다. 어디 소속인지나 먼저 말해봐"
"갑자기 무슨..."
"찾았다!!!!"
"잡았다!!!!"
돌아가려고 했는데 알아서 날 찾으러 복도 끝에서부터 짧은 다리를 박차가며 오도도 달려오는 애새끼 둘이 보인다.
"멋대로 도망쳤어! 예삐 주제에!"
"멋대로 사라졌어! 바보 주제에!"
"도망쳤으니까. 혼나야 해!"
"어어엄청 혼나야 해!"
"어. 도망치려고 했으니까. 혼내주라. 최대한 덜 아프고 깔끔하게 죽는 거로 혼내줘"
"에?"
"응?"
엘리엘린은 내 말에 순간 버퍼링이 걸린 듯 일시 정지한 채 나를 마냥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서 들어온 괴물인가 했더니. 꼬맹이들 장난감이었구만?"
"...어? 사라다!"
"빨리 숨겨야 해!"
사라를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 서로 내 양팔을 잡고서 끌고 가려고 했지만... 사라가 내 옷을 잡고 있었기에 내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디 가려고?"
"예삐가 예삐처럼 죽어버릴 거야!"
"죽으면 안대!"
"이건 오늘부터 내꺼야"
옷이 찢어지는 게 먼저일까. 내 팔이 뽑히는 게 먼저일까.
생각보다 무섭지 않다.
납치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피가 튀는 전장에 서 있었고, 사람들의 탐욕 속에서 서로 속고 속이며 살아갔는데...
늘 기아에 고통받는 아이들과 살기위한 이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마주해야만 했었는데...
여기는 뭔가 귀엽다.
농사를 지으며 평온하게 사는 것보다 차라리 여기서 죽치고 있는 게 낫지 않을까?
어차피...전부 포기했는데...
"이놈 이기면 돌려줄 테니까. 내놔"
"싫어!!! 예삐는 우리꺼야!!"
"우리꺼야!!!"
이게 마족?
그럼 지금까지 내가 봐왔던 인간들은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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