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화 〉1. 후배(3) (4/134)



〈 4화 〉1. 후배(3)

"으으···"

나는 내 자취방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뿌렸던 액체나, 내 몸 위에 뿌려졌던 액체, 그리고  전체에 퍼져있던 엄청나게 야한 냄새도 깨끗이 사라졌었다.
마치, 꿈이었던 것 처럼.

"···진짜 꿈이었나?"

···나 요즘 욕구불만인가?
그런 야한 꿈을 꾸다니···.

"잠시만. 혹시···"

슬쩍.

팬티 속을 들여다보니, 다행히 몽정은 하지 않은 모양이다.


"휴···"

그나저나, 방금 꿨던 그 꿈.
나한테 고백했던 이쁜 후배가 나왔었다.
설마 인생  고백을 받은 충격 때문에, 그런 꿈을 꿔버린 걸까?

그나저나 엄청나게 기분 좋았지···.
마치 실제로 일어난 일처럼, 감각 하나하나가 생생했다.


실제로 귀를 핥아지는 소리나 감각 그리고 내 귀에 속삭이던, 꿀처럼 끈적하고 달콤한 그 후배의 목소리.
그런 음성을 듣는 것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좋았다.
부드러운 여자애의 손이, 내 똘똘이에 닿는 감각도··· 호기심에 샀던 싸구려 오나홀보다도 기분이 좋았고.
여자애의 촉촉한 입술이, 내 입술에 닿는 감각은 정말이 몸에 전기가 흐른 것처럼 짜릿했다.
그 작은 입술이 내 똘똘이를 빨아들였던 감촉도.

···그리고 그 이쁜 후배의 알몸.
마치 조각상같이 완벽한 비율에, 새하얀 온몸.
터질듯한 하얀 봉우리와  끝에 있는 작은 선분홍색의 알맹이.
얇은 허리에 가는 다리, 털 하나 없이 매끈하던 음부까지···.
그 안까진 직접 못 봤었지만, 아마 그 안도 아름다운 선분홍색으로 칠해져 있었겠지.

그리고 그 성기끼리 닿았을 때의 감촉··· 그리고··· 결국은 성기가 성기 안에 들어가는··· 그··· 섹스를 했던 감각···.
내 위에서 후배가 허리를 흔들 때마다, 움직이던 커다란 봉우리.
그리고 종국에는   번이었지만 내가 직접 움직이기까지···.

꿈일 줄 알았으면  더 적극적으로···.

"아···."

그런 생각을  탓인지  그래도 자다 일어나서, 열심히 자기주장을 하던 내 아랫도리의 아들이  빳빳하게 서버렸다.


"···배도 고프니까, 뭐라도 먹고 나서 잠시 쉬다가 운동이나 하러 갈까."

나는 성욕이 들끓을 때, 딸을 치는 대신 운동을 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렇다고 딸을 아예 안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서는 운동을 한다.
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

내 방에 치킨이 놓여있다.
그리고 치킨 위엔 돈과 메모지가 하나 붙여져 있었다.
나는 그 메모지를 읽었다.
메모지엔 어제의 날짜와 연락처, 그리고 오늘부터 1일이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좆됐다."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너무 비현실적인 일이 일어났을 때, 현실 도피를 하는 것은 인간의 방어기제 중 하나라고 했던가?
 어제 일어났던  일을 꿈으로 치부하고 현실 도피를 하려 했지만, 결국 들이 밀어진 것은 잔혹한 현실이었다.
그 이쁘장한 후배가 나에게 고백을 했고,  집을 찾아와서 일선을 넘어버린 것은 사실이었다.
문제라면  이유를 전혀 모르겠고, 난 그 후배를 그날 대학에서 처음 봤다는 것.
아무리 이쁘장해도 만나자마자 고백을 하고, 그 고백을 거절당했다고 상대를 따먹으러  주소까지 알아내서 찾아가는 것은 도저히 정상인의 사고방식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물론 내 실수로 술을 먹여버린 게 크게 작용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데 돈은 왜 있는 거야?"


잘 먹었다고 주는 건가?
싶었는데, 메모지를 읽어보니 다 식어버린 치킨값인 모양이다.
추가로 여러모로 더럽혀진 집 청소도 다 해준 모양이고···.
임신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생각보다 착한 녀석인가?


문제라면 내가 본 후배의 인상으론, '임신은 제대로  될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뜻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저질러버린 것을 어쩌겠는가.
마지막에 단 한 번이라고 해도 내가 직접 움직이기도 했으니···.
만약의 일이 일어나도 내가 책임을 져야지···.


"에휴···."

털썩.
어느새 흥분이 다 식어버리고, 현실을 직시함에 따라 탈력감에 휩싸인 나는 침대에 드러누웠다.
어차피 공강날 이니까, 오늘은 생각을 정리할 겸 온종일 집에 누워있어야겠다.

"···하루 만에  번이나 쌌다고 근손실 오진 않겠지?"

역시···  식은 치킨이라도 먹고 운동하러 갈까?
나는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치킨을 앞에 두고 바닥에 앉았다.
난 치킨 상자에 붙은 메모지를 때서, 주머니에 넣었다.


"···."


이제와서 괜히 메모지 적힌 번호가 신경 쓰였다.
···일단 연락처는 저장해놓을까?
사귀게 되었든, 아니든 그런 일이 있었으니 어차피 언젠가 연락은 해야겠지.


연락처를 저장하고, 까똑을 들어가 보니 자신의 셀카를 프로필 사진으로 박아놓은 후배가 보인다.
옅은 갈색의 긴 생머리에, 크고 똘망한 눈과 오똑한 코에 작고 귀여운 입까지.


"다시 봐도 이쁘긴 이쁘단 말이지···"

내가 직접 본 여자 중에선 손에 꼽을 정도로 이쁘다.
후배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내가 연예인 사진을 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기분이 든다.
어쩌다 이런 이쁜 애랑 사귀게 된 건지···.

"···뭐 어차피 금방 질려서 차이겠지."

그동안 난 적당히 연인행세만 잘하면  것이다.


내가 진짜 사랑이 있어야 사귀니 뭐니 하는, 감히 남에게 말하긴 부끄러운 연애사상을 가진 이유.
그것은 단순히 모쏠아다인 것에 대한 변명을 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다.
실제로 저렇게 이쁜 후배한테 고백받았는데 거절해서 증명하기도 했고.

어쨌든 내가 그런 사상을 가지게 된 이유는, 이쁘고 잘생긴 녀석들이 몇 달에 한 번씩, 재미 삼아 연인을 갈아치우고 하는 모습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덜컥 애가 생겨서 학교를 그만둔 경우까지 실제로 봤다.
그런 식으로 이루어진 가정은, 대부분 금방 파탄 나게 되어있다는 것까지.
뼈저리게 알고 있다.


어쨌든 진짜 사랑이라는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저런 것들을 사랑이라고 명명하는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굳이 따지자면 인간의 본능 욕구  하나인, 성욕에   가깝지 않을까.
물론,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어차피,  녀석도 이렇게나 이쁘니까 연애 경험도 많고, 그··· 성적인 경험도 많겠지.
실제로 그 녀석과 했을 때, 너무 기분이 좋았었다.
평생 저런 것만 해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단순히 내가 모쏠아다(였던것)이라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에휴··· 어쩌다 이렇게  건지."
"오, 치킨이야? 나도 먹어도 돼?"
"그래. 다 식었긴 한데···."
"아항. 그래서 한숨 쉬고 있었구나? 그럼에이프라이기로 데우면 되지."
"그거야 그렇지."
"그럼 데운다?"
"응."

 앞에 놓여있던 치킨이 스윽 위로 올라간다.

"···잠시만."
"응?"


슬쩍 위를 올려다보니, 익숙한 얼굴이 갸웃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전등의 빛을 받아도 새까맣게 보이고, 겨우 어깨까지 오는 짧은 칠흑색 머리카락.
날카로운 눈매에 흑수정처럼 빛나는 눈동자.
슬렌더한 몸매위론 검은 가죽점퍼에 청바지를 입은, 한마디로 쎈누나같은 스타일.
내 대학 동기이자, 소꿉친구, 그리고 술에 미친 씹인싸새끼다.

"뭐, 뭐야! 류해은. 너 언제 들어왔어!"

당황해서 나도모르게 보고있던 휴대폰의 화면을 숨기듯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나? 방금."

다행히도 수상히 여기진 않는 모양이다.


"노크는 하고 들어와!"
"초인종 눌렀는데? 대답 없길래 그냥 들어왔지."


아.
생각에 잠겨있느라  들은 모양이다.
하긴,  열고 닫는 소리도  들었는데 초인종 소리를 들었을 리가 없지.


"아니, 대답이 없으면 들어오질 마! 미친놈아!"
"새끼~ 야. 뭐 어때? 우리 사인데."


류해은이 에어프라이어에 치킨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에휴··· 그래. 비밀번호를 뚫린 내가 잘못이지. 비밀번호를 바꿔야겠네."
"그래? 그럼 잊지 말고 나한테도 알려줘. 뚫는데 힘들었단 말임."
"너 때문에 바꾸는 건데 내가 알려주겠냐고···"

녀석은 자연스럽게 냉장고로 가더니, 패트병을 꺼냈다.


"뭐야, 내 술 왜 이렇게 줄었어?"

페트병에서 출렁이는 액체를 보더니, 불만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저 녀석 때문에···!

"야!"
"왜?"
"대체  그거 라벨까지 때서 냉장고에 처넣어놓은 거야?"
"뭐야 너. 이거 물인  알고 마셨어? 이야~ 그것참 안됐구나. 핫핫핫."


그러고는 호탕하게 웃으며, 찬장에서 컵을 꺼내 페트병에 담긴 술을 따랐다.
머그컵에 한가득 소주가 담긴다.

"나만 마셨으면 몰라, 그거 물인  알고···."
"응? 혹시 집에 찾아온 후배한테 맥이기라도 했어?"
"뭐야 시발. 너님 어케 알았어요?"
"···진짜??"

류해은은 당황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설마  새끼···!


"그 후배한테 집 주소 알려준 게 너냐?"
"···아하핫.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선생님."


어색하게 웃으며, 볼을 긁적이는 류해은.

"너, 거짓말할 때 습관 있는 거 아냐?"
"···앗. 시발, 실수했다! 튀어!"

난 도망가려는 녀석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그···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선생님."
"하아··· 대체  알려준 거야?"
"그게, 나중에 나한테 술 사준다길래 알려줬습죠···"

상상도 못 한 이유!
나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잠시 멍하니 녀석을 바라봤다.

"이··· 이··· 이··· 술에 미친 새끼!!"

그러고는 팡팡 소리가 나게 손바닥으로 등을 쳤다.

"아! 아! 그치만, 술을 어떻게 참아! 아! 아아! 미안, 미안하다니까!"


일단 미안한 마음은 있는지, 도망은 다녔지만, 반격을 해오진 않았다.
 모습에 나도, 때리는 걸 멈췄다.


"···일단 앉아서 얘기하자."
"넵."

나는 양반다리로 바닥에 앉았고, 류해은은 무릎을 꿇었다.

"···그래서 뭘 믿고 걔한테  자취방 주소를 알려준 거야?"
"아니 그게 말이지? 걔는 평소에 착한 애라 뭐 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어. 기껏해야 빌린  돌려주거나 하려고 물어본  알았는데···"
"그러면 집 주소가 아니라 연락처를 물어봤겠지···"
"···걔랑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렇게 화가 났어?"

류해은의 표정이 진지해진다.
···나름 걱정하는 건가?

"하아··· 아마 네가 그 후배한테 집 주소 알려주기 전 일텐데. 걔가 나랑 사귀자고 해서···"
"설마 받아줬어?"


갑자기 내 말을 끊고 고개를 들이민다.

"아니? 거절하고 집에 왔지."
"모쏠인 네가 그 이쁜애가 사귀자고 했는데, 거절했다고??"

류해은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렇게까지 놀랄 일인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후배의 연예인 뺨도 치고 갈 외모를 떠올렸다.
···잘 생각해보니 놀랄 일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 거절했다. 왜? 꼬와?"
"아니··· 그게 아니라··· 일단 계속 얘기해줘."
"그 후배가 저녁쯤에 집에 찾아오더라고."
"그래서?"
"일단 집에 들이고, 고백을 왜 거절했냐고 묻길래, 너한테 말한 대로 근손실 날까봐라고···"
"잠깐."


류해은이 갑자기 손을 내밀어서, 내 말을 막았다.

"응? 왜?"
"너 설마 처음에도 근손실 난다는 이유로 고백을 거절했어?"
"어···."
"야 이 미친 새끼야!"

퍼억!

류해은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내 등을 쳤다.


"아악!"


녀석의 손은 비명이 나올 정도로 매웠다.

"아파라··· 갑자기 왜···!"
"어차피 거절한다고 해도, 좀 이유 같은 이유를 댔어야지! 그런 식으로 거절하면, 기껏 용기 내서 고백한 상대의 마음이 뭐가 돼?!"

류해은은 이때까지 본 적 없을 정도로 잔뜩 화난 표정으로, 날 꾸짖었다.

"···!"

평생 고백에 대해 생각하기는커녕, 좋아하는 애도 딱히 없던 난  이야기를 듣고서야 깨달았다.
상대의 고백을 하는 태도가 아무리 가볍더라도,  고백의 뒤에는 커다란 용기가 있었을 거라는 사실을.
어차피 고백을 거절할 거면 무슨 이유를 대든 상관없다는 생각은, 굉장히 이기적이고 쓰레기 같은 생각이라는 것을.


"미안···."
"에휴. 나한테 사과해서 어따 쓰게? 역시  착한 애가 맞았어. 내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널 확 그냥 푹! 하고 찔러버렸을 텐데.·"
"찌른다니··· 뭘로!?"

물론, 찌른다는 건 장난이겠지만.
그 기세가 너무나도 무서웠다.
류해은이 괜히 동기들 사이에서도 쌘누나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뭐든, 날카로운 거로. 푹."

씨익 웃으며, 이를 드러내는 류해은이었다.
···찌른다는 거, 장난 맞겠지?

"어쨌든. 그래서 집에 찾아와서 어떻게 됐는데?"
"그래서···"

잠시만.
생각해보니  얘기를 하려면, 결국 후배한테 따먹혔다는 말도 해야 되는데···?


"···? 야. 왜 말을 하다 말어? 감질나게."
"그게···"


등에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그걸 어떻게 돌려 말해야 하지?

띵!

경쾌한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진다.
에어프라이기가 다 돌아갔다는 소리다.

"···일단 치킨이라도 먹으면서 얘기할까?"
"흐음. 그래, 그러자."


간신히 화제를 돌린 나는 에어프라이기에서 치킨을 꺼내며, 어떻게 둘러대야 할지 고민했다.



···



나는 대충 후배가 집을 찾아왔고 목이 마르대서 물을 주려다가 착각해서 술을 맥여버렸더니, 후배가 취해서 꼬장을 부리길래 일단 사귀겠다고 달랜 다음 바래다줬다고 둘러댔다.


"아하··· 그런 일이 있었구나."

류해은은 닭다리를 뜯으며,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다행히, 수상하게 여기진 않는 모양이다.

"그래. 너 때문에 그런 일이 있었다."
"난 또.  맥이고 둘이 떡이라도 친 줄 알았···"
"크훕! 캐핵, 케헥!"

류해은의 농담성 발언에 찔린 나는, 치킨을 뜯다 목에 걸리고 말았다.

"뭐, 뭐야. 갑자기 왜 그래?"
"무···물···"
"여기!"


꿀꺽, 꿀꺽.

"크헤엑! 야! 이거 네가 마시던 소주잖아!"
"핫핫. 목에 걸린 건 이제 괜찮잖아?"


팡팡.
류해은은 내 등을 가볍게 두들기며, 호쾌하게 웃었다.

"자. 그럼 이제 걔랑 헤어질 거지?"
"뭐?"


갑자기 이야기가 그렇게···.


"너. 걔랑 사귄다고 했지만, 진짜로 사귈 마음은 없잖아. 맞지?"
"음··· 그건 맞긴 하지."
"아직 아무것도 안 했으니까, 뭐라도 하기 전에 헤어져 주는  걔를 위한 일이고, 널 위한  아냐?"
"···일리가 있군."

정말 아무것도 안 했다면 말이지.

"내가 자리 마련하고, 잘 말해볼 테니까. 둘이 헤어져. 알았지?"


진지하게, 그렇게 말하는 류해은.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해결해주려 하다니.
나름대로 이런 상황까지 오게 만든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는 모양이다.


물론, 이런 상황까지 왔어도 내가 사귈 마음이 없으니 헤어지는 게 결과적으론 둘을 위한 일일 것이다.
···아까도 말했듯, 정말로 아무것도  했다면 말이지.
하지만 난 걔랑 끝까지 가버렸는걸?
말 그대로, 후배의 가장 깊은 곳에서 가버리고 말았었지.


"그··· 일단 그렇게까진 안해도···"
"아씨··· 이 아싸새끼. 또 또 또  꺼내기 부끄러워서  지랄이네. 하여간 넌 예전부터 그랬지. 어릴 때  달 동안 용돈 모아서 산 장난감이 불량품이었는데, 말하기 부끄럽다고 교환하러 가지도 못해서 내가 대신 교환해오고 말이야."


류해은이 갑자기 부끄러운 과거 얘기를 꺼냈다.

"야! 그 얘기를 지금 왜···"

 볼을 붉히며, 류해은의 입을 틀어막으려 했다.

"그 모습을 몇 년 동안이나 옆에서 봐온 내가 얼마나 답답하겠어, 응? 덩치도 커다란 놈이 말야, 새꺄!"

내 돌진을 가볍게 피하더니, 계속해서 말을 꺼내는 류해은.
나보다 키도 크면서, 어떻게 저렇게 잽쌀 수가 있는지···.
기럭지가 길어서 그런가?

"그러니까···"
"그래. 그때랑은 달리 이번에는 내 잘못도 있지. 그래서 이번엔 내가 판 다 깔고, 알아서  말할 테니. 넌 몸만 와 알았지?"
"아니 그러니까···"
"대답."


십 년 넘게 류해은과 지내온 나는 알  있다.
여기까지 오면, 더 이상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그렇다고 해서 내가 걔랑 떡까지 쳤다고 솔직하게 말하기도 그렇고···.


"···네."


류해은의 페이스 휘말린 나는 결국 네라고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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