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범죄와의 전쟁
"싸장님, 진짜 여기 맞습니까?"
뭐,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이해가 간다.
나도 조폭 아지트라고 해서 존나 어두컴컴하고 그럴 줄 알았거든.
7층짜리 사옥 꼭대기 층에 떡하니 박혀있는 회계 사무실이 조폭의 본거지라니.
존나, 상상도 못 했네.
"일단 들어가 보죠."
그래도 니들, 이제 다 들켰으니까 얼른 방 뺄 준비나 해라.
우당탕 문을 열고 들어가니, 로비에 앉아 있던 여직원이 눈을 땡그랗게 뜨고 우릴 쳐다본다.
"아, 불시 검문 왔습니다."
"어... 네...?"
제지하려는 여직원의 몸짓을 가뿐히 피해 주고, 얼른 비상구 계단으로 들어가 7층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잘못하면 무릎 나가니까 엘리베이터나 타고 올라오랬더니, 지지리도 말을 안 들어 처먹는다.
아까 그 여직원이 다급히 어디로 전화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아마 7층의 그놈들일 거다.
남자는 어린 시절 절대 계단을 한 칸씩 오르지 않았지.
그 시절 잼민이 감성을 떠올리며 날 듯이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놈들에게 대응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
반격 정도야 아무 상관없지만, 혹시 도망이라도 치는 날에는 내 업무가 무한 증식을 해버리는 사태가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다 왔다!"
7층에 도착하자마자, 쓸데없이 화려하게 치장된 큰 문이 보였다.
이 새끼들, 돈을 그냥 미친듯이 처발라 놨구만.
주단대가 뒤따라 도착하는 걸 보자마자, 바로 문짝을 걷어차 날려버렸다.
문 뒤에서 숨죽이고 있는 기척이 느껴지는 쪽으로 날렸으니, 아마 몇 놈은 리타이어 했을 거다.
"암흑기사 출두요!!"
"싸장님...!! 암행어사요, 암행어사!!"
썩씨딩 유어 바니걸!
날아간 문짝을 보며 멍한 얼굴을 짓는 면면들을 둘러본다.
중앙에 앉은 놈이 들었던 인상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게.
저놈이 보스인 공진호가 틀림없었다.
곧장 앞을 가로막는 테이블을 몸으로 밀쳐 날려버리며 놈에게 다가갔다.
의자에 앉아 있던 놈들이 혼비백산해서 물러나고.
각성한 티가 나는 놈들은 한 번에 세 네 명이 덤벼들며 주먹을 휘둘러 온다.
비정상적으로 빠른 게 하나, 비정상적으로 묵직한 게 하나.
나머지 둘은 겉으로 봐선 고유 재능이 뭔지 모르겠는데.
사실, 딱히 몰라도 상관없다.
딱콩! 딱콩!
먼저, 내게 달려든 두 놈의 머리에 딱밤을 먹여 제압하고.
주춤하는 나머지 두 놈까지 뒤통수를 때려 기절시켰다.
콩! 콩!
이 방안의 각성자는 얘들이 전부인 것 같네.
드디어 마음 놓고 보스 놈에게 접근할 수 있겠다.
덤으로 물어보고 싶은 것도 아주 많지만, 대충 딱 하나만 물어볼 생각이다.
"너구나, 우리 구역 초토화 시켰다던 KMU 따까리가."
KMU 따까리라니 단어 선택에 좀 더 신중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거기가 어떻게 너네 구역이냐, 거기 원래 마담 거였잖아.
"잡다한 소리는 됐고, 내가 물어볼 게 있거든요."
그러고 보니 주위에 듣는 귀가 많아서, 주단대를 시켜 전부 다 아래로 내려보냈다.
이제 정보 누출 걱정은 없겠다 싶어, 뭐라고 말하면 순순히 답을 해줄까 고민하던 찰나에.
아래층에서부터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계단으로 오는 게 아니라, 천장을 뚫고 다이렉트로.
콰아아앙!
무식하게 힘으로 천장 박치기를 한 건, 의외로 여자였는데.
여자치곤 꽤 큰 키에, 짧은 반바지와 민소매 티를 입어 활발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바닥이 박살난 탓에 먼지와 돌가루가 풀풀 날려, 공진호가 기침을 해대기 시작했다.
"쿨럭...! 쿨럭!!"
"너, 뭐야, 이 새끼야! 우리 아빠한테 무슨 짓 했어!"
무슨 짓은 니가 한 것 같은데.
그보다, 공진호를 아빠라고 부르는 걸 보니 딸인가 보네.
나를 보자마자 멧돼지처럼 돌진하길래, 뻗어오는 주먹을 한 손으로 잡아 허공에 한 바퀴 돌리며 바닥에 메다꽂았다.
자신이 당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은 듯, 놀란 얼굴이 꽤 봐줄만 하게 일그러졌다.
그보다, 얘가 올라오고 나니 드디어 알겠다.
이 아래층을 향해 뻥 뚫린 공간 너머, 누군가의 기척이 있다는 것을.
길쭉하게 머리 위로 난 귀가 두려움을 느끼며 움찔거리는 듯했고.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 구를 때마다, 발바닥의 육구가 부드러운 소리를 내며 눌린다.
"쟤구만, 토끼."
"너... 너...!? 어떻게!"
진짜로 주단대의 말대로 꽁꽁 숨겨놓고 있던 모양인데.
눈치를 보아하니, 성노예나 그런 느낌은 아닌 것 같았다.
내 관심이 돌아간 틈을 노려, 이 멧돼지같은 년이 미친 듯이 몸을 들이 받아 오길래, 가벼운 잽으로 아랫배를 한 대 쳤다.
퍼억!
"끄흐읍!!!? 우욱...!!"
그녀가 주먹에 맞는 순간, 아래층의 토끼가 움찔하며 몸을 튕기는 것이 느껴졌다.
순식간에 튀어오른 몸이 구멍을 빠져나와 그녀와 내 앞을 가로막고 섰다.
"오... 오오...!"
부드럽게 흩날리는 짧은 베이지색 머리카락 사이로 하얀 토끼 귀가 쫑긋하고 바르게 서 있었다.
"오오... 오...?"
동그랗게 뜬 빨간 눈동자가 떨리며, 나를 조심스레 바라보는 그 모습은.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순진무구했다.
다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때.
"부, 부탁 드릴게요..."
주단대는 나에게, 단 한 번도.
"누나를... 용서해주세요..."
토끼 귀가 달린 수인 '여자'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야...! 루이, 비켜!"
"누나...!!"
그녀는, 아니 그는.
바니 걸이 아니라, 바니 보이였던 것이다.
"씨바아아알!!!"
"히익...!?"
내 마음의 상처!
어떻게 보상해줄건데!
* * *
내 뒤를 따라온 지원 차량에, 요 범죄자 새끼들을 전부 실어 보내고.
각성자 놈들은 전부 1층 로비에 주루룩 벌을 세워 놨다.
앞으로 이 조직 내에서 사고를 치는 새끼에겐 강한 체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1분 미리 보기로 맛보여 주는 중인 것이다.
그리고 내 앞의 이 공진홍이라는 멧돼지 년과, 바니 보이 루이가 골칫거리인데.
확실히 루이의 케이스까지 듣고 나니 어느정도 추측이 확신이 되어가는 중이다.
멜리나 마마윤이나 루이는 원래 몬스터였다.
셋 다 계기는 다르겠지만, 모종의 이유로 인간과 비슷한 자아를 가지게 되었고, 그 순간 몸도 인간에 가깝게 바뀌게 되었다.
하지만 루이도 그렇고 마마윤도 그렇고, 본인이 몬스터 였을 때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다는 건, 몬스터와, 이 몬스터 인간을 전혀 다른 개체로 봐도 무방한 거겠지.
몬스터 인간이라니 어감이 좀 이상하네, 따로 부를 단어가 있나 생각해 봐야겠다.
아무튼, 그래서 이 둘의 처분에 대해서 말인데.
루이는, 본인은 어떻게 돼도 좋으니 공진홍만은 선처해달라고 비는 중이고.
공진홍은, 본인은 어떻게 돼도 좋으니 루이를 안전하게 살 수 있게 해달라고 비는 중이다.
씨발, 너네 존나 잘 어울린다?
"야, 그럼 이렇게 하자."
루이라는 존재가 이 사회의 이해를 받을 수 있을 때 까지, 숨겨줄 곳이 필요하다면 가장 적합한 곳이 한군데 있다.
"루이 너는 내가 알아서 잘 숨겨줄 테니까. 그 대가는 공진홍 니가 치러."
"그, 그런...!"
"알았어. 내가 뭐 하면 되는데?"
존나, 범죄자 년이 이렇게 당당해도 되는 걸까 싶긴 한데.
고유 재능이나 신성력을 다루는 능력을 보면, 이년는 충분히 싹수가 보이는 년이다.
"공진홍 너는 KMU에 들어가라. 가서 훈련받고 거기서 일해."
"뭐!? 싫...!!"
"싫으면 하는 수 없고."
존나 어금니 부서지겠다. 힘 풀어라, 이년아.
눈 앞에서 서로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두 사람을 보면서.
이 정도면 나름 괜찮게 마무리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애정 행각은 너네 둘 만 있을 때 해라, 좀.
"아... 앗...! 죄송해요... 저, 종족특성으로 발정을 가지고 있어서... 이렇게 되면 멈출 수가...!"
"루, 루이! 얼른 침대로! 얼른!!"
진짜 가지가지 한다.
예상 외의 일도 많았지만, 결국 처음 계획했던 대로 폭풍 적의단은 해체되었고, 그 자리를 내가 맡아 반사회적 각성자들을 수거, 관리하게 되었다.
물론, 나는 그저 가만히 지배를 할 뿐이고, 모든 업무는 마마윤이 담당하게 되겠지만.
그 옆에서 귀와 손, 발을 숨긴 루이가 수발을 들 것이고.
사실, 마음 같아선 주단대까지도 옆에 두고 싶었다.
사태가 마무리되자마자 그 아저씨를 바로 찾아갔던 것도 그런 이유였는데.
보기 좋게 까여버렸다.
그게 그와의 마지막 대화였던 탓인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았다.
"혹시 내 옆에서 나 좀 도와줄 생각 없어요?"
그렇게 물은 나에게, 주단대는 평소와 다른 분위기로 대꾸했다.
"당신이 하려는 게 대체 무엇이길래, 저 같은 늙고 병든 아저씨의 도움까지 필요하다는 겁니까?"
그 물음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냥,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또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싶을 뿐입니다.”
그래도 무언가 애매모호한 느낌에, 뭐라 대답해야할지 몰라서.
오로지 내 의지만으로 내 인생을 살고싶다, 그런 식으로 말을 꺼냈더니.
곧장 허허로운 웃음이 돌아왔다.
“당신은 누구보다도 주변의 도움을 필요로 하시면서, 누구보다도 주변의 영향을 받으려 하지 않지요."
"제가요...?"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서, 그게 당신의 인생이 아니게 되는 것이 아니며. 당신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간다고 해서, 그게 오롯이 당신의 인생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선문답 같은 말을 했던 것 같다.
“당신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가지십시오. 제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겁니다.”
그 말이 가슴에 날아와 꽃힌 감각이 아직도 선명하다.
겨우 눈을 들어 마주친 그가 표정으로 내비친 감정은, 너무나도 의외로, 안타까움이었다.
“아시겠습니까?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건 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어차피 자신은 이미 목적을 이루었다며, 망설임 없이 뒤돌아 나가버린 것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열받네.
이런 평생 직장이 어딨다고, 참.
나중에 제발 받아달라고 울고 불고 후회해도, 절대 안 받아줄거다.
* * *
"회장인가? 언제 왔지?"
"아이고, 삭신이야. 조금 됐지요."
긴 흑발을 정리하며 박아정이 그의 맞은 편에 앉았다.
"그래서, 확인하고 오겠다는 건, 확인 했나?"
무슨, 인간이 아닌 신의 흔적을 발견한 것 같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나갔었지.
결국 자신들도 죄다 동원돼서 한팔 거들기까지 했고.
"아, 했지요. 말년에 새로운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만나야 할 사람을 너무 늦게 만났지요'
그렇게 중얼거린 주단대가 한껏 고개를 젖히고 소파에 몸을 묻었다.
"그 남자 말이로군."
"예에, 왕이 될 재목이 관리를 받지 못해 썩어 있었습니다."
누가 영감탱이 아니랄까봐, 하는 말마다 늙은이 냄새가 심하게 난다고 박아정은 투덜댔다.
"새 아지트는 괜찮습디까?"
"아, 나쁘지 않아."
"갑자기 이사를 하게 돼서 면목이 없습니다."
위치가 발각된 아지트는 소용이 다했다는 것쯤, 박아영 본인도 잘 알고 있기에 책잡을 이유가 되지 않았다.
다만, 굳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이 일에 발을 들이밀었어야 했나 하는 의문은 조금쯤 남는다.
단순히 확인만 하고 온다던 양반이, 며칠간 신나서 돌아다니지 않았나.
"혹시, 회장의 진짜 목적은 그 저그단인가 뭔가를 부수는 거였나?"
"......"
또, 이럴 때만 입 꾹 쳐다물지.
"굳이 그렇게 까지 했던 것도, 그 남자 때문이겠군."
"썩은 가지에서도 싹은 자라니까요."
주단대가 나지막이 대꾸했다.
"그것이 우리 프로메테우스가 추구해오던 것 아니었습니까."
여전히 예전같은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며, 박아정이 피식 웃었다.
근데, 그건 그거고.
"그 프로메테우스라는 이름은 진짜 별로라니까."
이건 이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