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57화 〉 저 푸른 초원 위에 (157/250)

〈 157화 〉 저 푸른 초원 위에

* * *

“아니, 씨발. 잘살고 있는 우리 북괴 새끼들은 대체 왜…?”

KMU 세력 이야기 중이었는데 뜬금없이 북한이 왜 튀어나오냐.

그리고, 설령 KMU 내에서 세력을 확장하는 것과 북한을 조져버리는 게 관련이 있다 치더라도, 나에게 당장 급한 일은 마더구스로 진입하는 것이다.

북한 퇴치?

길어봐야 일주일도 안 걸릴 일이겠지만, 내게도 우선순위라는 게 있으니까.

“거,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죄송하지만….”

“마더구스로 진입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시려는 거라면, 그건 일단 이쪽에 맡겨주시겠습니까.”

그래서 거절을 하려고 대충 입을 열었는데, 내 생각을 읽은 듯한 정효진에 의해 곧바로 잘려 나가버렸다.

“아무리 주세운 님이라 하더라도, 저 결계를 뚫고 들어갈 방법이 마땅히 없는 건 마찬가지 아닙니까?”

“뭐, 그쪽에는 방법이라는 게 있고요?”

“확답드리긴 힘들지만,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마더구스 근처에 내가 자꾸 어슬렁거리면 KMU에서는 분명히 나를 주시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 마더구스에 자신들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지도 모를 일이라고 한다.

그럴 바에야 그냥, 마더구스 속의 아인을 최대한 숨기며, 지금처럼 정효진 측에서 결계를 뚫을 방법을 찾아내는 게 낫고.

“그러니, 주세운 님은 그 사이에 북한의 일을 정리해주시면 됩니다.”

붕 떠버린 내가 놀면 뭐 하겠냐, 내 여자들이랑 섹스밖에 더 하겠냐고.

이왕 돕기로 한 거, 마더구스는 확실히 마크해 줄 테니까 북한 쪽이나 해결해 달라고.

그녀가 담담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해왔다.

대충 말을 들어보니까, 내가 북한을 정벌하는 일이 아인파의 세력 확장과 직결되는 게 맞는 모양인데.

마더구스 관련이야 내가 아인파의 손을 들어주면 자연스럽게 따라올 일이니까 그렇게 중요한 사항이 아니라 쳐도, 대체 북한에 뭔 일이 있길래 이렇게 급하게 이야기를 꺼내는 걸까.

하, 씨발.

이제 진짜 하빈이도 쑥쑥 커가는 느낌이라 한동안은 집에 처박혀 있으려고 했더니만.

하는 수 없지, 존나 빠르게 처리하고 돌아오도록 하자.

“하… 알았어요. 뭔 일인지 설명이나 해봐요.”

“주, 주세운 님…!”

아무튼 돕기로 한 건 사실이니까, 대충 무슨 일인지나 들어볼 생각이었는데.

“함경도 길주에서 새로운 몬스터가 발견되었습니다. 개체명은 불가사리라고 명명했습니다.”

불가사리가 왜 거기서 나와?

“불가사리요? 아니, 바다에 사는 새끼가 육지까지는 어쩐 일이래.”

“……!?”

그런 뜻에서 그렇게 말을 했더니, 어째 정효진의 눈초리가 또 사나워지는 게 아니겠냐.

나를 존나 한심하게 쳐다보는 그녀의 눈빛에, 이번에는 경악스러움까지 서려 있어서.

“라, 라고 할 뻔…….”

“…….”

황급히 말을 취소하긴 했다만.

사실, 나를 왜 저렇게 쳐다보는 건지 잘은 모르겠다.

“크… 크흠…! 불가사리라는 것은……. 저기, 주세운 님. 한국 설화에 나오는 불가사리 모르십니까…?”

“거……, 알아야 합니까?”

“아, 아닙니다. 사지 건강하게 자랐으니 좀 무식해도 뭐….”

씨발, 아까부터 자꾸 무식하대.

아무튼, 그 불가사리라는 건 한국 설화에 나오는 괴물의 이름이라는 모양인데, 가장 큰 특징으로는 쇠를 집어먹는 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쇠붙이를 집어삼킬 때마다 동시에 덩치도 커진다는 것 같은데, 그 북한에서 튀어나왔다는 몬스터 새끼 역시 딱 그런 모습이다 보니.

불가사리라는 이름이 찰떡이긴 하구만.

“그 불가사리가 뭐, 이것저것 처먹다가 너무 커져서 잡기 빡센 수준까지 간 모양이죠?”

“틀린 말은 아니긴 합니다만, 그 불가사리가 먹은 쇳덩어리 중에 문제가 될 만한 게 있었다는 게 문젭니다.”

그러면서, 그녀가 내게 길주가 어떤 곳인지 아느냐고 물어왔는데.

씻팔, 길주가 어디에 있는 건지도 모르는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북한이 핵실험을 하던 곳입니다.”

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좀 알 것 같기도 하고!

“설마, 그 불가사리가 처먹었다는 게….”

“예, 그곳에 있던 핵탄두와 우라늄을 비롯한 모든 것을 먹어 치운 상태입니다. 지금.”

“허, 씨발.”

이 북괴 놈의 새끼들은, 예나 지금이나 어째 도움이 되질 않냐.

“길주는 두만강 아래에 있는 지역…. 주세운 님, 두만강이 어딘지는 알고 계십니까…?”

“아잇, 씻팔!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는 당연히 알죠.”

오른쪽에 있는 강이잖냐.

“하아…. 아무튼 그쯤 있는 지역인데. 길주에서 핵을 삼킨 불가사리가 현재 남하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뭐, 대충 설명하자면.

그곳에 살던 인간들이 처음 불가사리를 발견하고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만, 귀엽게 생겼다고 밥을 주며 키우기 시작했다는 모양인데.

그렇게 애완견처럼 길러지던 불가사리가 어느 날 목줄을 끊고 탄약고로 숨어들어 폭약을 하나둘 처먹었고.

북한 정부가 그 사실을 알아채고 난 뒤에는 이미 불가사리의 몸뚱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상태였다고 한다.

평소 밥도 주고 쓰다듬기도 해주던 인간들이 갑자기 공격해 오니까, 불가사리도 화들짝 놀라서 반격하며 도망을 쳤는데.

그 도망친 곳이 하필 핵탄두가 저장되어있는 지하 탄약고였던 게 불운이었고.

핵탄두와 우라늄까지 전부 처먹은 그 새끼는 이제 걸어 다니는 핵폭탄과도 같은 상태가 되어버렸단다.

“아니, 무슨. 핵 좀 처먹었다고, 아가리로 파괴광선을 쏘거나 하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쏩니다….”

“씨발!?”

정확히는, 먹었던 핵을 뱉어내는 과정에서 폭발과 함께 방사능이 미친 듯이 뿜어져 나온다는 모양이다.

“폭발도 폭발이지만, 순간적으로 어마어마한 방사능이 쏟아져 나와서 피폭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처음엔 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호들갑을 떠나 생각했는데, 듣고 보니 이거 보통 일이 아닌 것 같구만.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네요?”

“그렇습니다. 지금 북한은 나라가 망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불가사리가 평양까지 내려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지금 북한에 남은 건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김씨 정권의 껍데기뿐이니까.

나라가 망했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긴 하지.

그리고, 이 북한에서 터진 불가사리 사태가 KMU와 얽히게 된 것 또한, 바로 그 망해버린 김씨 정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런데, 북한이 지금의 상황을 해결해달라고, 우리나라가 아닌 중국에 요청을 보냈습니다.”

“참나, 그 새끼들이 잘도 도와주겠다.”

“예…. 그 걸어 다니는 핵폭탄을 지금 당장 처리할 생각이, 중국에게는 없습니다.”

불가사리를 처리하는데 손해를 입는다 하더라도, 중국이 이 사태를 해결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거기에 각성자 대가리가 대체 몇 명인데, 그 정도도 못 막으면 그게 중국이겠냐고.

다만, 그렇게 손해를 보면서 불가사리를 잡았으면, 지들한테 돌아오는 이득이 있어야 할 텐데 그게 없잖냐.

“현재 불가사리가 남하하고 있으니…… 직접 처리를 하더라도 최대한 중국 땅에서 멀어질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겠죠.”

“허허, 이 씹새끼들이.”

게다가, 두만강 근처에서 핵이 되어버린 불가사리를 굳이 중국과 가까운 곳에서 터뜨릴 이유도 그 새끼들에겐 없었고.

최대한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는 위치로 불가사리가 이동할 때까지는 버틸 생각이겠지.

“그래서, KMU에서 뭐라도 해보긴 했겠죠?”

그렇다 보니, 오히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우리나라 쪽이었다.

북한은 이 사태를 해결할 능력이 없었고, 그런 북한이 도움을 요청한 중국은, 니들 좆되는 거 강 건너에서 구경하고 있겠다고 낄낄거리는 중이었으니.

정부가 호들갑을 떨며 KMU에 구조 요청을 보냈고, 그걸 받자마자 KMU에서도 즉시 선발대를 보냈다고 하는데.

“예, 평균 신성력이 3.8인 세 팀을 즉시 투입했습니다만….”

선발대로 돌격한 세 팀이 방사능에 손도 못 쓰고 녹아버렸단다.

한 팀당 5명이라고 치고, 팀의 평균 신성력이 3.8이면 분명히 신성력이 4를 넘은 각성자도 있었을 텐데, 그런 새끼가 쪽도 못 쓰고 뒤져버린 거면 확실히 만만치 않은 상대임에는 틀림 없었다.

“어, 근데 그럼. 저라고 방사능에 녹아내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요?”

“어……. 혹시 방사능 안 맞아보셨습니까…?”

허허, 이 누나가, 시발.

“맞아 봤을 리가 없잖아요.”

“그, 그럼. 이번에라도 맞아보면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허허, 이 누나가, 씨발!?

“아…! 아무튼!! 선발대가 실패했다는 보고가 들어온 즉시, 내부에서도 주세운 님께 도움을 요청하자는 소리가 커졌습니다.”

“말 돌리는 거 봐라!?”

“…….”

그래 뭐, 이제 인간까지 졸업해버렸는데 그깟 방사능 한 번 맞아보고 말지.

그냥 느낌이긴 하지만, 아마도 이제 내 몸뚱이는 방사능조차 견딜 수 있을 정도로 괴물 새끼가 되어버린 것 같으니까.

“어휴, 그래서. 뭐, 나한테 도움을 요청하자는 소리가 나왔다매요. 근데 왜 안 했어요?”

“아…….”

뭐, 물어 보나 마나 뻔하지, 씨발.

이 주제도 모르는 새끼들이 내게 도움을 요청하기는커녕, 어떻게든 지들끼리 해결해 보겠다고 아득바득 고집을 부리는 중이란다.

그러다 피해를 보는 건 애꿎은 시민들일 텐데도.

“여기저기 대가리 깨진 새끼들밖에 없구만, 씨발.”

뭐, 억지로 변호를 좀 해보자면.

지금 KMU는 최대한 북한 땅이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는 선에서 이번 일을 해결하려는 중이라는데.

나에게 부탁을 해버리면, 오염이고 뭐고 일단 때려잡고 볼 거라는 우려 때문에, 최대한 미루고 있는 것이라 볼 수도 있었다만.

“아무런 대책도 없지만, 주세운 님께 도움을 청하는 것은 무조건 반대를 하고 있으니…….”

결국 어거지 변호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지금의 KMU는 제대로 돌아버린 상태라는 거다.

상황이 여기까지 치닫고 보니, 내 힘을 빌리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아인파에서도 생각을 고쳐먹는 수밖에는 없었을 거고.

마침, 타이밍 좋게 내게 붙잡힌 나일운이 물꼬를 튼 걸 계기로, 이렇게 나와 겨우겨우 접선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니, 다시 한번 부탁드리겠습니다.”

해야 할 말은 모두 전했다는 듯, 눈시울이 살짝 붉어진 것 같은 정효진이 고개를 푹 숙이며 내게 요청해왔다.

“이 일이 끝나신 뒤에 주세운 님께서 어떤 행동을 하시든, 저희는 그것을 지지하겠습니다.”

‘그것이 설령, KMU의 중추를 갈아엎는 일이 된다고 하더라도.’

“일을 해결해주시는 대가로 무엇을 말씀하시더라도 저희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아니, 할 수 없더라도 어떻게든 들어 드리겠습니다.”

햇빛이 부드럽게 쏟아지는 원목 테이블 위로, 정효진의 눈물로 추정되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도와주세요…….”

“하, 씨발.”

저렇게까지 부탁하는데 거절하는 것도, 사람 새끼로서 좀 그런 것 같고.

마침 이번 사건과 관련된 북한 땅이, 최근 내가 원했던 어떤 것과 딱 맞아떨어지기도 했다.

“알았으니까, 일단 고개 좀 들어요.”

누가 보면 내가 울린 줄 알겠네.

“주… 주세운 님…!!”

“하…, 나참.”

무엇보다, KMU 새끼들이 가장 걱정하고 있는 방사능 오염에 대해서도, 확실하진 않지만, 방법이 떠오를 것 같았으니까.

그니까, 운 좋은 줄 아십쇼.

“일단, 저도 이래저래 작전 회의가 좀 필요할 것 같으니까. 며칠 내로 연락드릴게요.”

“네… 네!!”

“알았으면 고개 좀 들라고요, 좀.”

“네…!!”

씨발, 내 말은 귓등으로도 들어 처먹을 생각이 없으신가 보네요.

그래 누나 봊대로 하세요, 싯팔.

“갑니다, 나중에 봐요.”

그래서 그냥, 테이블에 처박은 머리를 들어 올릴 생각조차 않는 정효진은 그대로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지.

그러는 와중에도 꼼짝을 않더라.

독한 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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