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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1화 〉 신경 쓸 일이 너무 많다 (171/250)

〈 171화 〉 신경 쓸 일이 너무 많다

* * *

다시 덤벼 온 하나에게 절정 기절을 선물해준 다음.

슬그머니 방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더니,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예지와 눈이 마주쳤다.

“……좋았냐…?”

야, 씨발! 니 말투!

“…나 빼놓고 하니까… 좋았냐고….”

“얌마. 이번에는 진짜 위험했는데. 그딴소리 할래, 자꾸?”

가뜩이나 심란해 죽겠는데!

오히려 나는, 예지 니마저 건드리지는 않아서 진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구만!

철 좀 들어라, 고라니 년아!

“…좀… 괜찮아…?”

그런 내 심정이 전해진 건지, 잔뜩 심통이 났던 예지의 얼굴이 금세 평소처럼 돌아왔다.

아니, 심통 난 척을 하고 있었던 거겠지.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내게 총총 다가오는 그녀의 몸짓에는, 숨길 수 없는 불안감이 스며들어 있었으니까.

“어, 일단 당장은.”

그래서, 힘겹게 다가온 그녀의 자그마한 몸을 끌어안는 것조차, 지금의 내겐 용납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왜… 안 안아줘…?”

그렇게 세상 다 잃은 표정 지으면, 내가 뭐 냉큼 안아줄 것 같냐.

씨발, 불알이 텅텅 빌 정도로 정액을 짜냈는데도, 하나가 유혹 한 번 했다고 도로 이성을 놓아버린 나였다.

지금, 니를 끌어안았다간 내가 또 어떻게 되어버릴지 장담조차 못 하겠다고.

그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마라, 진짜.

“…나는… 남편 원망 안 해….”

뭐, 그래서 지금 당장 박아달라는 거야, 뭐야.

지금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을 텐데도, 자꾸 내 신경을 건드리는 그녀의 행동에 울컥하고 무언가가 올라오려 한다.

“…그러니까… 나… 겁내지 말라고….”

그러나, 울먹이며 맺혀나온 예지의 한 마디가 내 뒤통수를 거하게 때리는 바람에.

나의 못난 울분은 곧장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었다.

“…겁… 내지 마…….”

“…….”

그녀가 울듯 말 듯 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건, 내가 그녀만 빼고 다른 여자들과 몸을 섞었기 때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내 상태가 눈에 띄게 심각해졌음에도, 본인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는 것을 자책하고 있던 것이었을 수도 있고.

“…겁내지 마…!”

어느 순간부터 약해진 내 모습을 보며, 마음 아파하고 있던 것일 수도 있다.

겁내지 말라는 건, 나답지 않게 움츠러들어 있지 말라는 그녀 나름의 응원 메시지였던 셈이다.

“그래, 내가 잘못했다…. 일로 와….”

따져볼 것도 없이, 예지 말이 전부 맞는 말이었다.

이건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고, 내가 극복해야 할 문제인데.

그 짐을 그녀에게까지 떠넘겨선 안 됐던 거고, 그래서 더욱이 나 자신이 움츠러들어 있어선 안 됐던 것이다.

“…으응…!”

와락!

“야, 살살 좀 안겨라. 예은이 놀란다고!”

“…우리 예은이는… 튼튼한 아이….”

위험하니까 다가오지 말라는 게 아니라, 이 정도는 끄떡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해야겠지.

내 여자들에게조차 그렇게 못 해준다면, 나는 절대로 이 칼리굴라 새끼를 극복해낼 수 없지 않을까.

아직 답이 보이진 않지만, 이 정도는 가볍게 이겨내 보도록 하자.

예은이 엄마도 이렇게 씩씩하게 행동하는데, 내가 지레 겁부터 먹고 있어서 되겠냐!

주세운이 씹새끼야!

“…휴으으… 남편… 냄새…”

그런 의미에서, 내게 얼굴을 묻은 채로 고양이처럼 킁킁대는 예지의 몸을 힘껏 안아주기로 했다.

역시, 인간 비타민!! 우리 와이프!! 우리 예은이 엄마!!

예지, 니 하고 싶은 거 다 해!!

“내 냄새가 어떤데?”

“…하응…♥ …남편 정액 냄새…♥”

허허, 방금 전에 했던 말 취소다, 이년아!!

아무리 그래도, 요건 좀 선 넘었지!

바지 내리지 마라, 진짜.

* * *

광폭화한 내게 무지성 쿵떡쿵떡을 당했던, 예지를 제외한 모든 여자들이 몸을 추스르고 사무실에 모여 앉았다.

참는 게 조금 빡세긴 했지만, 내 무릎 위에 앉은 예지의 말랑 따끈한 몸을 끌어안은 채로, 그녀들과 이번 일에 대한 대책을 진지하게 논의하기로 한 것이다.

“근데, 하빈이는 왜 여깄어?”

“나도 아빠……!!”

응?

“아… 아니! 나도 아빠 딸이야!! 아빠 몸 걱정되니까, 당연히 있어야지!”

와, 역시 우리 딸!!

씨발, 감동이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소리 안 들리냐!

이게 딸내미 키우는 맛이지, 진짜!

“…쓰읍…!”

“윽…!!”

그래도, 역시 딸에게 들려주기엔 조금 민망한 내용이 많을 예정이기 때문에.

무릎에 앉아 있는 예지에게 하악질을 한 번 시켜, 얼른 하빈이를 방으로 돌려보내 버렸다.

들어가는 와중에도 잔뜩 심통 난 얼굴이던데, 저거 나중에 풀어주기는 해야겠구만.

“자, 그럼. 슬슬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하빈이의 방문이 닫히는 걸 확인한 이후.

다시 시선을 내 여자들에게 돌려, 이제 진지하게 이야기나 좀 해보자며 입을 열었는데.

어째, 그녀들의 행동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다들 아랫배를 꼭 신줏단지 모시듯 쓰다듬고 있더라고.

그 와중에 히요리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몸을 들썩거리고 있었고.

씨발, 쟤 설마 우는 거냐!?

얘들 혹시, 아직까지 나랑 했던 섹스의 후유증 같은 게 남아 있는 건가!?

“아, 아니! 진짜 괜찮아, 세운아!”

“으응…! 아가는 걱정할 필요 없어!”

“주, 주인님의… 어헙!!”

“아… 아하하…! 히요리…! 아무렇지도 않으면서 대체 왜 그러느냐…!?”

“서방님. 저희는 괜찮으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사옵니다.”

“맞아~ 우리가 얼마나 튼튼한데~ 응?”

“냐하아앙~”

그래서, 걱정스러운 마음에 다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하나같이 괜찮다면서 신경 쓰지 말라는 말만 반복하더라고.

그래 뭐, 아픈 거 아니면 됐지.

“그럼, 일단 내 말부터 좀 들어 볼래?”

괜찮다고 하니, 일단 급한 이야기부터 시작하도록 하자.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건, 내가 내 스스로의 성욕을 억제하지 못한다는 부분이었다.

“이 성욕은 아마, 예지라면 알고 있을 테지만, 내 고유 재능에서 기인한 것일 가능성이 커.”

한동안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탓에, 그녀들에게 이 얘기를 하는 건 이게 처음이었는데.

[지배의 정점]을 각성한 이후부터, 내 뒤틀린 지배욕이 과하게 튀어나오기 시작했고, 나는 그걸 ‘칼리굴라’라고 부르며 경계해왔었다.

다만, 어째선지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모르게 그것에 대한 경계심을 풀어버린 게 문제였지.

“…혹시… 내가 했던 말… 때문이야…?”

“절대 아니니까, 바둥대지 말고 가만히 안겨 있어.”

“…아응…♥”

칼리굴라에 대해 과도하게 경계하고 있던 나는, 예지의 말에 분명히 구원을 받았었다.

그 지배욕은 누군가가 주입한 게 아니라, 그동안 감춰져 있던 내 본성이라고.

그러니까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편해질 거라고, 예지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었는데.

그게, 이 뒤틀린 지배욕을 아예 경계하지 말라는 소리는 아니었거든.

나 또한 그걸 그 당시에는 잘 알고 있었으니까, 당연히 꾸준히 경계해왔었던 게 틀림없었다.

“그냥, 나도 잘 모르겠다는 말 밖에는 해줄 수가 없는데. 진짜, 어느 순간부터 이 칼리굴라 새끼에 대한 걸 완전히 잊어버렸어.”

“아무 이유도 없이 말이냐?”

언제부터 그랬는지조차 제대로 인지할 수 없으니까, 무슨 계기가 있었던 건지도 정확히 알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부터 최대한 이 [지배의 정점]에 대해서 파악해 볼 생각이거든?”

“무슨 방법이라도 있어?”

“생각해둔 게 있어.”

그게 완벽한 해결책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지만, 그래도 그런 지푸라기라도 잡아야지, 뭐 어쩌겠냐.

“주인님! 제가 모시겠습니다!!”

아니, 나를 따라오라는 말이 아니었는데.

“히요리는 이런 건 정말 빠르구나, 후후.”

“역시, 약삭빠른 암캐이옵니다.”

“이런 건 내가 따라가는 게 빠른데~”

하여튼, 철딱서니 없는 년들!

사람 말은 끝까지 좀 들어라, 제발.

“지금 내 문제도 문제지만, 더 시급한 사안이 있어.”

철딱서니 없는 년들이긴 했지만, 낮게 깔린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곧장 자세를 바로잡는 걸 보면, 은근히 믿음직스러운 부분들이 있긴 하다.

“혹시, 이번 길드 회합에 관련된 일인 게냐?”

그리고, 처음부터 그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았던 내 신뢰의 정점, 레이만이 가만히 나를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자, 단번에 집중력이 확 올라가는 게 느껴진다.

“길드 회합에서 정시연을 좀 만났거든?”

그래서 지체 없이, 내게 집중하기 시작한 그녀들을 향해, 이번 길드 회합에서 있었던 정시연과의 일을 모두 말해주었다.

그녀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다는 아인파의 첩보부터, 직접 나를 도발해왔던 그녀의 행동까지 전부 다.

“들으면 들을수록, 사특한 년이 따로 없사옵니다.”

“거긴 처음부터 마음에 안들었다냥!!”

“그럼~ 우리가 해야 할 일이란 건~ 그 여자를 감시하는 거구나?”

내 말을 들은 그녀들이 화를 내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벌써부터 앞으로의 일을 계획하기 시작한 암거미 년도 있었다.

아마, 그녀의 능력으로 미루어 짐작해봤을 때, 아일라는 혼자서 행동할 가능성이 크겠지.

“레이? 나랑 같이 서류 파악 좀 할까?”

“그리 하자구나.”

마망과 레이는 현재 KMU의 동향에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고 파악하는 일에 전력하기로 한 듯하고.

“소녀는 아버지에게, 놀 시간에 하늘에서 감시나 좀 하라고 연락을 넣겠사옵니다.”

효녀 페리는, 잠깐 바다에 놀러 나간 노라드를 불러들이기 위해 스마트 폰을 꺼내 들었으며.

“…우리는 뭐 하지…?”

“냐아아앙~”

“세운아, 나는 길드 지키고 있을게!”

“주, 주인님….”

대략, 할 일없는 나머지 여자들은, 혹시 모를 위기에 대비해 길드 방어를 준비해놓기로 했다.

뭐, 철딱서니는 좀 없어도, 다들 행동력 하난 빠릿빠릿하구만.

덕분에 앞으로의 계획도 빠르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고.

“마지막으로, 나는 지금부터 주단대 아저씨를 좀 찾아가 볼 생각이다.”

나는 나대로, 내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인간이 도움이 될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런 것부터 차근차근 밟아 나가봐야겠지.

“그 인간이 정말 도움이 될는지, 나는 잘 모르겠느니라….”

나도 동감하긴 하는데.

그걸 굳이 말로 꺼냈어야 했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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